권력의 두 얼굴


인류 역사상 그 어떤 독재자도 스스로 독재자를 자처하며 독재를 자행한 적은 없다. 독재를 자행하면서도 정적이나 다른 나라나 선량한 국민에게 꼭 죄를 뒤집어 씌웠다. 국민을 아끼고 국가를 위한다거나, 반역자를 처형한다거나, 패륜아를 징치(懲治)한다거나, 마녀를 심판한다거나, 부정부패를 척결한다거나, 부끄러운 역사를 자랑스러운 역사로 바꾼다거나--하여튼 독재자조차 자신의 모든 언행은 나쁜 놈을 벌주거나 멸하는 정의의 심판임을 강변했다.

성군(聖君)이나 폭군(暴君)이나 암군(暗君), 민주 지도자나 독재자나 꼭두각시, 그 누구든 말 자체로는 권력자를 판단할 수가 없다. 어느 쪽이든 말은 똑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행위를 눈여겨보고 그 결과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권력은 두 얼굴을 가졌기 때문이다.

국가 지도자는 자기 자신이나 가족 또는 패거리의 부귀영화를 목적으로 권력을 악용할 수도 있고, 국가의 번영과 자주 및 국민의 풍요와 자유를 위해 사악하고 나태하고 무능한 자들에겐 벌을 내리고 선량하고 성실하고 유능한 이들에게 상을 주되, 잘못을 뉘우친 자는 그 과거를 문제삼지 않고 또한 이전에 아무리 잘했더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그 현재를 문제삼기 위해 권력을 선용할 수도 있다.

과연 어느 쪽이냐 하는 것은 정의와 민생과 안보를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

첫째, 정의는 법치와 비판으로 실현된다.

법치(法治)는 인치(人治)의 반대로 권력을 독과점하지 않고 기존의 법을 제대로 지키느냐, 법을 어긴 자는 네 편 내 편 가리지 않고 최고 권력자라 할지라도 법 아래 다소곳이 세워 제3자인 법관이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으로 판별할 수 있다. 법을 어긴 자들이 네 편 내 편 할 것 없이 최종 판결에 승복할 때 법치는 비로소 실현된다. 그러나 법은 고정불변의 하늘나라 법이 아니다. 시대에 맞춰 바꾸지 않으면, 그 법이 도리어 불의를 조장하고 용인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때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그 법을 개정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범죄에 대비하여 기존에 없던 법도 만들어야 한다. 이것도 법치의 한 부분이다.

비판은 언로의 개방으로 실현된다. 권력자는 생리적으로 아첨을 좋아한다. 때로는 그 아첨이 옳은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비방이라고 할지라도 언로는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면 장기적으로 비방과 무고는 걸러지고 충언과 직언은 빛을 발한다.

둘째, 민생은 경제이다.

경제는 생산과 분배로 나눠진다. 생산은 꾸준히 늘려야 하고 분배는 꾸준히 개선해야 한다. 그런데 생산은 이기심을 보장할 때 늘어나고, 분배는 이기심을 억누를 때 개선된다. 이기심을 보장하려면 가능한 한 자유를 많이 주고 권력이 뒤에서 도와 주어야 하지만, 이기심을 억누르려면 가능한 한 자유를 덜 주고 권력이 앞에서 지시하고 명령해야 한다. 이 둘은 상반되는 개념이다. 이 둘을 조화시키는 방법이 바로 공평한 조세 제도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상적인 조세 부담률은 소득의 10%이다. 고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로마제국도 활기가 넘칠 때는 10%의 세금만 걷었다. 우리나라는 고려 태조와 조선 태조가 40% 이상 심지어 70%의 수탈을 10%의 세금으로 낮췄다.

국가 권력이 국민을 각개격파식으로 착취하여 일부 권력자의 살을 찌우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기본 동기로 갖고 있는 개인이나 법인이 이타심으로 나서기 힘든 사회간접시설이나 공공재, 사회보장 등에 세금을 많이 쓰게 되면서, 다시 말해서 민주적 정권이 제도화되면서, 복지 국가란 개념이 탄생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조세 부담률이 20%를 상회하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 심지어는 40%, 50%를 넘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그만큼 이기심의 동기가 줄어들게 되고 그만큼 자유가 줄어들기 때문에, 생산은 더 이상 늘어나기 힘들다. 멀쩡한 사람도 일을 않고 사회보장비나 타 먹고 빈둥거리는 경우도 심심찮게 생긴다.

분배를 유난히 강조하는 공산국가는 그들의 선전과는 정반대로 원칙적으로 조세부담률이 100%이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산국가에서는 공산당이 유통 구조를 완전히 장악하여 일방적으로 분배한다. 이기심을 원천적으로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생산은 노예의 생산이 되어 어느 시점부터 전혀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계속 줄어든다. 설령 일시적으로 늘어나도 품질이 형편없어진다. 생산이 만성적으로 부족하고 생산품의 대부분은 그 품질이 조악해짐에 따라 분배도 권력의 양과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양뿐만이 아니라 품질도 권력 곧 수백 개로 나눠진 새로운 계층에 따라 달라진다. 극심한 분배 왜곡 현상이 일어난다. 깡패 사회보다 못하다.

민주 국가에서는 세금이 아닌 방식으로 분배를 개선하는 제도가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노동조합이다. 생산수단을 장악한 소유자나, 자본을 빌려 준 금융가나, 생산수단과 노동자와 생산요소와 자본과 거래처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이익을 극대화하는 일선의 경영자가 이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게 아니라, 노동자에게도 그 생산성만큼 임금과 복지로 분배해 주고 주인 의식을 심어 주어 사기를 앙양하는 데에 노동조합은 큰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이 노동조합이 생산을 가로막고 분배를 왜곡할 수도 있다. 그 자체가 조직의 힘을 빌어 권력집단으로 바뀌고 기득권으로 군림하면, 그렇게 된다.

이 때는 국가 권력이 나서야 한다. 이것도 무조건 힘으로 밀어붙이면, 그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기존의 법률 안에서 또는 새 법률 안에서 노조의 불법과 탈법을 막아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 노조는 투표권이 있다. 따라서 집권이 최대 목표인 정당은 이들과 야합하고 싶은 강렬한 유혹을 받기 쉽다. 엉터리 지도자가 오랫동안 쏟아져 나온다. 생산과 분배를 둘러싸고 노사(勞使)만이 아니라 노노(勞勞), 사사(使使), 노민(勞民 노조와 국민), 노정(勞政) 등등 만인에 대한 만인의 이전투구가 벌어지고 그 사이 국가 경쟁력은 급격히 약화된다. 비전의 지도자가 나와야만 이 난국이 극복된다.

이 때 등장하는 새 지도자는 무엇보다 법치를 중시해야 한다. 또한 법이 만능은 아니기 때문에 설득을 병행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왜, 어떻게 생산을 가로막고 분배를 왜곡시키는지에 대해 노조 바깥 사람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서 노조 안의 노동자 때문에 압도적 다수의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끈질기게 납득시켜야 한다.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가 바로 그런 지도자였다. 네덜란드, 아일랜드, 핀란드, 뉴질랜드 등도 성공사례로 꼽힌다.

셋째, 안보는 평화 유지능력이다.

평화 유지 능력이란 주변 국가의 침략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위할 수 있는 능력을 1년 365일 항상 갖추고 있음을 일컫는 말이다. 안보에는 동맹이 필수적이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친구가 없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안보에서 제일 주의할 것은 주변 국가의 동기는 선악 어느 쪽이든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민주적인 국가도 총 한 방으로 이웃 국가를 접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흑심을 품을 수 있고, 아무리 독재적인 정권도 이웃 국가가 만만찮은 군사력을 상비(常備)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 더하여 그 군사력을 유사시엔 언제든지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군인, 즉 전쟁의지로 충만한 군인을 보면, 멸망을 각오하지 않는 한 흑심을 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어느 쪽인가.
역대 정권이 각각 어느 쪽이었던가. 특히 제멋대로 민주를 독점한 지도자들이 과연 어떤 길을 걸어왔던가. 그들의 언행은 일치했던가.

그 사이에 국가 안보는 얼마나 튼튼해졌으며 국민 경제는 얼마나 윤택해졌는가. 법치는 얼마나 공고해졌으며, 언로는 얼마나 개방되었는가. 웃음소리가 집집마다 얼마나 많이 흘러나오는가. 창가로 꽃향기가 얼마나 많이 새어나오는가.

(2005.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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