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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군의 연세대 접수시도였던가
친정부 시민단체의 오만함과 정부의 신뢰상실
정당한 시설보호요청 거부, 경찰마저도 혁명군으로 돌아섰는가?
‘8.15.민족대축전’행사를 주최하는 한총련,통일연대,민중연대 등이 14일 밤에 연대 캠퍼스에서 ‘반전평화 미군철수 결의의 밤’ 행사를 치르려고 하다가 연세대학교의 강력한 반대로 경희대로 변경하였다는데, 이런 사태를 보면서 우리나라는 지금 혁명 중인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 사태는 대축전의 주최측이 지난 3일 연세대에 행사개요와 일정표 공동보도문 준비위원장 명단을 팩스로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연세대는 10일, 교내 개최를 허용할 수 없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14일에는 연대교수평의회가 이를 지지하였다. 연대학생회도 학교방침에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표시하면서 교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등 진입을 저지하려고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행사 주최측은 연대 사용을 포기하고 경희대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학문을 하는 대학교정이 정치집회로 오염되어서는 안 된다든가, 10년 전에도 연세대가 한총련 행사로 쑥대밭이 되었다든가 하는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그 행사가 우리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켜 오히려 통일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둥의 얘기는 더더욱 하고 싶지 않다.
통일이라는 민족적 대과업을 하는 마당에 그까짓 캠퍼스가 정치로 좀 오염되면 어떻고, 기물이 좀 부서지면 어떤가. 정화하고 고치면 그만이지. 또 갈등이 생긴다고 하지만, 한줌도 안 되는 반통일·반민족세력의 넋두리에 불과한데 갈등은 무슨 갈등, 무시하면 그만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도 존중받을 수 있는 견해라고 해두자.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사태의 심각성은 친정부 시민단체의 오만함과 정부의 신뢰상실에 있다.
이번 행사를 통하여 이를 주최하는 세력은 독재정권 이상의 오만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연세대를 행사장소와 숙소로 사용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밀어부쳤다. 행사 당일인 14일 오후 4시경 경희대로 변경하였다는데, 경희대도 장소사용을 허락하지 않았고 보면 역시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캠퍼스를 접수한 수준이다. 그들이 사유재산, 대학의 자유라는 말을 모를 리 없고 보면, 오만하게 무시한 것임이 명백하다.
이렇게 남의 재산을 일방적으로 접수하여 사용하는 엄청난 권한은 심지어 국가권력에게도 없다. 아니 국가가 비슷한 권한을 가진 경우가 있기는 하다. 징발(徵發)이 그것이다. 국가가 전쟁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하에서 작전수행에 필요한 시설을 그 소유자의 허락없이 사용하는 경우다. 이 경우에도 보상은 해야 한다. 징발은 오직 비상사태하에서 보상을 전제로 허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주최측의 연세대 접수 시도 그리고 경희대 교정의 접수는 분명 징발 이상 가는 무법행위다. 제도에 없음은 물론 전시(戰時)도 아니고 보상도 전제되지 아니하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친정부 시민단체는 이제 국가권력을 능가하는 권력을 가졌다는 말이 된다. 현정권 태동의 1등 공신이기에 그런가, 아니면 이들 단체들이 노대통령을 “사용”하고자 당선시켰기 때문에 그런가?
진짜로 심각한 점은 정부의 태도다. 행사주최측의 이러한 오만방자한 행태에 대하여 정부는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와주었다. 특히 압권은 경찰의 태도다. 연세대가 경찰에 시설보호요청을 한데 대하여 경찰은 장소사용은 당사자 사이에 협의할 문제라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나면 중재를 하겠다고 ‘의연’하게 대처하였다 한다.
자유주의연대가 성명서에서 이미 지적하였다시피 허락없이 다른 사람의 시설물에 들어가는 것은 건조물침입죄다. 주거침입죄와 동일한 범죄다. 행사주최측이 집단적으로 건조물침입죄를 저지르겠다고 공표하고 행동에 들어가자 연세대가 경찰에 시설보호를 요청한 것이다. 그런데 경찰은 시설사용문제는 당사자간에 협의할 일이라고 했다니,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당장 오늘 저녁에 2만명이 침입해 들어가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마당에 웬 시설사용문제?
게다가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나면 중재를 한다니, 경찰이 언제 ‘물리적충돌중재위원회’가 되었는가? 그리고 “물리적 충돌”이라니? 한쪽은 건조물침입을 하는 범죄행위이고 다른 한 쪽은 그 범죄를 제지하는 행위인데, 이걸 아울러 물리적충돌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되는가. 자동차를 훔쳐가려는 도둑을 보고 차주인이 막아선 경우, 양쪽을 싸잡아 물리적인 충돌이라고 하면 말이 되는가 말이다. 그런데 우리 경찰이 양쪽에 ‘공평’하게도 물리적충돌이라고 표현하면서 중재를 하겠다고 나섰으니,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재미없는 얘기를 하자면 경찰의 할 일은 한 마디로 말해서 범죄를 막는 것이다. 범죄가 막 일어나려고 할 경우 설사 피해자의 요청이 없어도 이를 방지하여야 한다는 이치는 굳이 경찰관직무집행법을 거론할 것도 없이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닌가.
경찰은 우리 신체에서 손발과 같은 존재다. 머리가 아니다. 손이나 발이 독자적인 의지에 따라 행동하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장애인이라고 부른다. 경찰은 법에 정해진 범죄를 막는 손발이다. 그렇지 않고 경찰이 법에 어긋나는 ‘고차원적인 가치’를 내세워 의지대로 행동한다면, 그런 나라를 장애국가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경찰이 만약, 이 행사가 우리 민족의 통일을 위한 위대한 활동이니 대학에 무단침입하는 따위의 범죄행위는 무시해도 된다는 그런 고차원의 판단에 따라 진입을 저지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손발이 두뇌의 명령과 따로 노는 비정상 국가다. 경찰이 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코드에 맞는지 여부에 따라 행동하는 나라 아닌 나라가 되는 것이다.
경찰이 이런 식이라면, 국민은 이제 경찰이 내 신체, 재산을 지켜준다고 믿을 수 없게 된다. 얼마 전 안티조선운동을 한다는 사람이 조선일보를 인쇄하는 공장에 방화를 한 적이 있다. 이와 비슷한 일이 또 발생할 경우 이제 국민은 경찰이 자신 편이지 먼저 물어본 다음 신고를 해야 되겠다. 피해자는 ‘경찰이 방화범의 생각이 옳다고 여겨서 수사를 하기는커녕 증거를 없애버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한 다음,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이 들 경우에 한하여 신고를 하는 것이 신상에 좋다는 얘기다.
경찰이 법체계를 무시하고 코드에 맞게 행동해도 될 경우가 있긴 있다. 바로 혁명중인 경우다. 혁명중이라면 경찰이 국민을 향하던 총부리를 구체제로 돌릴 수도 있고, 이는 국민으로부터 박수를 받을 일이겠다. 이번 행사참가자들이 혁명군이라면, 그리고 경찰이 혁명군에 가담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였다면, 경찰의 행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총부리를 구체제로 돌리는 순간 경찰은 더이상 경찰이 아니고 혁명군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혁명의 와중에 있는가? 행사참가자들은 혁명군이고, 연세대, 경희대와 연대 학생회, 자유주의연대는 혁명군에 저항한 반혁명세력인가? 이제 혁명이 무르익어 경찰마저도 혁명군으로 돌아선 것인가?
경찰의 시설보호요청 거부행위는 혁명가담일 경우에나 정당화된다. 국가기관이 현행 법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데에 동참한 것이니 말이다. 혁명이 아니라면 범죄를 저지르는 쪽이 내편이기에 그랬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이 역시 혁명참여에 못지않은 파격적인 행위다.
경찰이 이번에 대학진입을 방조한 행위는 안기부에 의한 도청행위, 정통부에 의한 휴대폰 도청불가능이라는 거짓말에 버금가는 국민에 대한 신뢰배반 행위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최근 우리 국가기관이 신뢰를 잃는 행위에 경쟁이 붙은 것도 같다. 개인이 신뢰를 잃으면 사회생활이 어렵고, 국가가 신뢰를 잃으면 존립이 위태로워진다는 사실은 고금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는데, 어쩌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이재교 (변호사, 법학박사)
경찰도 혁명군으로 돌아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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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8-16, 10: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