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캠프 선대위 멤버 이용득, '범민련' 관계자 참여한 南北노동자 행사 참석

범민련(이적단체) 이규재, “1700만 촛불, 불의를 밀어내고 정의가 실현되는 계기를 만들어”
기사본문 이미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캠프 중앙선대위 상임고문인 이용득 의원(국회 환경노동위, 비례·안동)이 利敵단체 범민련 관계자들이 참석한 남북한 노동자 관련 단체 행사에 참석하여 기념촬영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노총(한국노총) 위원장 출신의 이 의원은 지난 1일 민노총과 한노총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조국의 평화통일,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전민족대회 남북노동자 공동준비위원회(전민족대회 남북노동자 공동준비위)’ 결성식에 참석했다.

이날 양대노총이 발표한 ‘전민족대회 남북노동자 공동준비위’와 북측 직총이 말하는 ‘전민족대회 북남노동자 단체준비위’는 표현만 다를 뿐 같은 단체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하여 권재석 한노총 통일부위원장은 경과보고를 통해 전민족대회 남북노동자 공동준비위 결성은 지난 2월 7~8일 심양에서 개최된 남북 노동자·사회단체 실무협의회에서 결정하고 4월 11~12일 전민족대회 남북해외 공동실무위원회에서 최종 확정되었다고 밝혔다.

<통일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용득 의원은 “남북관계는 지난 6.15이후 잠깐 반짝했다가 계속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작은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민족문제가 이렇게 된 것이 안타깝다”며 “이번 전민족대회를 계기로 활발한 소통의 촛불을 열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먼저 남북이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부터 시작해 6.15 직후와 같은 좋은 시절이 오길 바란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기사본문 이미지
이용득 의원 페이스북 캡쳐


利敵단체 범민련남측본부의 이규재 의장은 “1700만 촛불의 단합된 힘이 불의를 밀어내고 정의가 실현되는 계기를 만들어냈다면, 남·북·해외 온민족의 단합된 힘은 평화를 안아오고 자주통일의 새 국면을 열어놓게 될 것”이라며 “이날 결성식을 계기로 전민족대회를 위한 투쟁에서 남북 노동자가 최선봉에 설 것을 결의하자”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가 전민족적인 통일대회합을 소집하여 온 민족의 총의를 하나로 모아나가자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며, “전민족대회를 성대히 개최함으로써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공고한 평화를 실현하며 남북관계 개선과 자주통일 민족공동의 번영을 위해 일대 전환적 국면을 열어 놓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최근 계속되는 자신의 안보관에 대한 보수진영의 문제제기에 대해 “국민들도 더이상 색깔론에 속지 않는다. 이놈들아”라고 말했다.

문 후보는 지난달 30일 충남 공주대 신관캠퍼스 후문에서 진행된 길거리 유세에서 “선거철이 되니까 색깔론에 종북몰이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이제는 지긋지긋하다. 그렇게 정치권이 색깔론과 종북몰이를 해도 저의 지지율은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면서 이 같이 언급했다.

 

[관련보도] 이적(利敵)단체 범민련의 국내-해외 '조직체계'
범민련 해외본부는 1992년 1월 베를린에서 동경으로 조직을 이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利敵단체)은 국보법 철폐, 주한미군철수, 연방제 통일 등 북한의 對南노선을 추종해온 단체이다.
      
      범민련은 1990년 5월 김일성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연방제 통일을 위한 전 민족 통일전선을 형성하라”고 지시한데 따라 결성됐다.
      
      이후 범민련은 1990년 8월15일 개최된 제1차 범민족대회 당시 남한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던 소설가 H씨가 기조보고를 통해 범민족대회를 계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상설기구의 설치를 제안하고, 이를 곽동의와 XXX이 지지하는 형식으로 기구결성에 합의해 발족됐다.
      
      제1차 범민족대회 이후 범민족대회(남·북·해외) 공동위원회는 1990년 8월19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여기서 범민련 결성과 구체적인 조직구성 내용을 발표했다.
      
      북한의 <중앙방송> 및 <평양방송>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당시 기자회견에서 첫 발언자로 나섰던 XXX은 범민련이 자신의 제안과 해외 대표인 곽동의의 재청 및 북쪽 윤기복 범민족대회 준비위원장의 동의로 결성되게 되었다고 밝혔다.
      
      당시 기자회견에서는 각 기구의 책임자 명단도 발표됐다.
      
      공동의장에 허담, 윤기복, 장철, 여연구, 정규명, 곽동의, 김성, 이철재, 서만술, 이행우(해외 측) 등이, 중앙위원에는 윤기복, 염태준, 전금철, 등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우원회(조평통), 조국통일전선(조국전선)을 비롯한 북한의 對南공작 기관 산하조직 간부들과 민주민족통일해외한국인연합(한민련),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등 해외 親北조직 관계자들이 선출됐다.
      
      범민련 해외본부는 1990년 12월16일 독일의 베를린에서 발족됐으며 在獨(재독)음악가 윤이상이 초대 의장을 맡았다. 윤이상은 동양의 정신을 서양의 악기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세기 5대 작곡가로 꼽혔던 인물로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범민련 해외본부는 1992년 1월 베를린에서 동경으로 조직을 이전시킨다.
      
      이유는 한국 내 정보가 빠르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에서 한통련 등을 활용해 보다 적극적인 반체제 활동을 벌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범민련 해외본부가 일본으로 옮겨진 1992년 이후 남한의 일부 정치인을 비롯한 반체제 세력의 일본 내왕이 잦아졌다. 남한에서는 1991년 1월23일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준비위가 서울 향린교회에서 개최됐다.
      
      당시 결성준비위에는 XXX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공동의장, XXX 서울민협 의장, XXX 신부 등 준비위원 50여명이 참석했으며, 여기서 준비위원장(문익환)과 집행위원장이 선출됐다. 
      
      북한은 1991년 1월25일 黨비서 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부위원장인 윤기복을 의장으로, 백인준(문예총 위원장), 여연구(조국전선 의장), 김영호(사민당부위원장), 전금철(조평통 부위원장), 한시해(조평통 서기국장), 백남준(조국전선 서기국장) 등 12명을 부위원장으로, 그리고 강영섭(기독교도연맹위원장) 등 40명을 중앙위원으로 선출, 범민련 북측본부를 구성했다.
      
      범민련 북측본부는 결성5주년을 맞은 1996년 1월25일 평양에서 중앙위원회 총회를 열고 남한의 국가보안법 철폐투쟁 등 1996년도 5대 투쟁과업을 제시하고 일부 의장단과 중앙위원을 補選(보선)했다.
      
      현재 범민련의 중앙조직은 북한의 통일전선부에서 직접 관장하는 범민련 북측본부를 중심으로 남측본부 및 해외본부가 연결되어 있고, 각 본부 간 연락을 담당하고 범민련을 대변하는 기구로서 범민련 공동사무국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동사무국의 실제 운영은 조총련계 인사인 朴勇(박용)이 맡고 있다.

    박용은 1972년 조총련에 가입 후 1983년 북한의 지령을 받아 대남공작을 전담 수행하는 부서인 조총련 중앙본부 정치국 지도원으로 발탁된 후 1983년부터 범민련 해외본부 사무차장, 1999년부터 범민련 공동사무국 사무부총장 등으로 활동하며 남·북·해외 3자간 통신연락을 전담했다.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