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패망(6)사이공 총공격

4월24일 워싱턴 주재 소려대사 도브리닌은 키신저 국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포드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에 대한 소련측의 답변을 읽어주었다. 그 요지는 “월맹이 미국의 명성에 타격을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브리닌의 답변은 또 “월맹은 파리협정에 따를 정치적 결과를 추구한다”고도 했다. 키신저는 이 답변이 미국의 철수작전에 대해서 월맹군이 적극적으로 방해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미국은 네 시간 뒤 소련측에 재차 메시지를 보냈다. 포드 대통령은 “우리는 상황이 우호적일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철수를 진행하고 있다”고 못박아 소련의 안전보증을 은근히 촉구하면서 “철수작전을 방해하지 않는 한 미국은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4월24일 티우를 이어 대통령이 된 트란 반 홍은 두옹 반 민 장군을 총리로 초대했다. 민 장군은 이를 거부하고 국회가 자신을 대통령으로 임명해줄 것을 요청했다. 민 장군은 권력투쟁에서 티우 대통령에게 진 뒤에는 親共的인 성향을 보여왔다. 그는 월맹이 자신을 상대해줄 것이라고 착각했다. 4월27일 민 장군은 대통령에 취임하자말자 월맹에 대해 휴전과 정치협상을 제의했으나 거절당했다. 29일 그는 모든 미국인이 24시간내에 철수할 것을 명령했다. 월맹은 민 대통령의 존재가 다 끝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보고 29일 사이공에 대한 최후 공세를 명령했다.
4월29일 탄손누트공항에 대한 월맹군의 포격이 시작되자 포드 대통령은 최후의 철수령을 내린다. 탄손누트 공항에 모여서 철수를 대기하고 있던 미국인들 400명과 월남인들 8000명은 포격이 시작되자 활주로를 뛰어다니면서 공황상태에 빠졌다. 포격은 곧 중단되었으나 비행기를 이용한 철수도 중단되었다.
키신저가 마틴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철수령을 전달하자 마틴 대사는 '나는 자원봉사자와 함께 마지막까지 남아 뒷수습을 다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대사가 월맹군에게 포로가 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키신저는 대통령의 명령이라고 하면서 그의 제의를 거부했다. 마틴 대사는 아들을 월남전에서 잃었다. 키신저는 1885년 영국 장군 골든이 카르툼에서 철수명령을 거부하고 남았다가 피살된 경우를 생각하면서 마틴 대사가 그런 영웅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다. 그는 마틴 대사에게 '우리의 영웅은 워싱턴에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마틴 대사는 2주동안 약5만 명의 월남인과 약6000명의 미국인을 철수시켰다. 이 철수기간중 다친 사람은 네 명뿐이었다. 마틴 대사는 또 8만 명의 월남인들이 그들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탈출하는 것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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