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북한’-김대중 만난 뒤 중앙일보의 對北 논조를 한겨레 쪽으로 바꾸고 訪北 추진하였다는 홍석현의 98년 강연록 입수!

〈중앙일보는 중도우익을 표방하고 있습니다만 남북문제에 관한 한 한겨레 쪽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변화를 하기로 한 셈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같은 자세들이 자칫 좌익으로 치부될 우려도 없지 않았겠지만, 중앙일보와 홍석현을 좌익으로 볼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고, 그렇기에 중앙일보가 더 자신 있게 나설 수 있다는 판단도 했습니다.〉

작년 7월1일자 중앙일보 ‘김영희 칼럼’의 제목은 ‘사드를 포기하자’였다. 김영희 씨는 ‘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이므로 이 주장은 私見(사견)이 아니라 중앙일보의 社論(사론)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동시에 중앙일보의 논조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던 홍석현 당시 회장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게 하는 글이었다.

김영희 씨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인 브루스 클링너가 전쟁 시뮬레이션을 해 본 결과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면 전쟁은 우리가 이기지만 전쟁 피해는 1차 세계대전 수준일 것이라고 예측했다>면서 <방사능과 독가스에 뒤덮인 폐허 위에서 이루는 통일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이 글에서 사드 배치가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발의지를 억제하는 효과를 애써 축소하고 무용론을 강조한다.

<사드나 Pac-3를 사용하게 되는 상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북한의 황해남도와 남한의 수도권을 전역(戰域)으로 시작된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확대됐다는 뜻이다. 북한의 다연장로켓과 장사정포가 이미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을 집중 포격하고 있을 것이다. 4000대 이상의 북한 탱크가 휴전선을 돌파할 것이다. 북한은 세가 불리하면 핵과 5000t 이상의 보유 화학무기도 쓸 것이다. 북한의 가공할 사이버부대는 한미연합군의 지휘통제 기능을 개전 초기에 마비시키려고 할 것이다.>

김영희 씨는 이런 상황에서 사드의 효과는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나은 정도라고 평가절하한다. 사드 배치는 ‘없는 것보다 있는 편이 나은’ 정도가 아니다. 김정은이 핵미사일을 쏠 경우 전부는 아니라도 대부분을 사드가 요격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한미군은 살아남은 戰力(전력)으로 북한을 공격, 정권을 소멸시킬 수 있다. 사드가 있으면 한미연합군은 북한에 대한 보복능력을 보전할 수 있게 되고 김정은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함부로 핵 발사 단추를 누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게 사드의 억제력이다. 이를 ‘없는 것보다 있는 편이 낫다’는 수준으로 격하시킨 것이다. 그런 김영희 씨는 사드 배치의 부작용은 과장한다.

그는 “사드 배치의 플러스 효과를 상쇄해 버릴 마이너스 항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그것은 중국의 반발이라고 했다. 김 기자는 중국의 반발이 논리적으로나 사실적으로 근거가 약하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는다.

<한국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사드 배치의 대가로 중국을 확실한 북한의 후견 국가로 만들어주는 것이 그 하나다. 사드 포기로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 견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하는 것이 그 둘이다. 정답은 사드 배치 포기다. 사드가 있다고 북한의 도발 의지는 꺾이지 않는다. 차라리 사드를 포기하고 중국의 힘을 빌려 북한의 전쟁 도발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다.>

그의 결론적 주장은 너무나 근거가 약하다. 중국은 이미 확실한 북한의 후견 국가이다. 한국과 미국이 사드 배치를 포기하면 북한을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 할 나라는 중국이다. 그런 말도 하지 않는 중국의 말도 되지 않는 요구에 굴복, 미국이 미국 예산으로 배치하려는 사드를 반대한다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억제하는 한미동맹은 균열이 생길 것이고, 이는 오히려 김정은의 도발의지를 북돋우는 것이 된다. 사드를 포기하면 한미동맹에 틈이 생기고 군사적 억제력이 약해져 전쟁 위험은 증가하는데, 믿을 수 없는 중국의 힘을 빌려 북한의 전쟁 도발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드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김영희 씨가 대변한 중앙일보와 홍석현 회장의 생각이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일 듯하다.

이런 중앙일보의 생각은 사드 신속 배치에 비판적이었던 문재인 현 대통령의 입장과 비슷하였다. 그 홍석현 씨가 중앙일보를 떠난 뒤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통일 담당 특보로 임명되었다는 점도 자연스럽다(현재 해촉 과정이라고 한다).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당시)은 1998년 9월23일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최고위 과정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제목은 ‘내가 본 북한’이다. 이 강연에서 그는 자신의 訪北(방북) 경험뿐 아니라 왜 중앙일보의 對北(대북) 논조를, ‘북한을 자극하지 말고 포용해 나가는’ 방향으로 결정하였는지에 대하여 설명한다.

그는 이렇게 강연을 시작한다.

<북한을 다녀온 지 어느새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언론사 대표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에 들어갔다는 점 때문인지, 이후 서울에 돌아와서는 가는 곳마다 ‘노동신문과의 협력사업은 어땠느냐?’ ‘김일성대학에서 좌담회를 열었다는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느냐?’는 등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방송인터뷰나 강연요청도 많았습니다. 때로는 ‘어려워 보이는 성과를 거뒀다’ ‘남북관계에 큰 진전이었다’는 등 과분한 찬사도 들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학생의 위치로 돌아가서, 제가 그동안 북한방문을 왜 추진했고, 어떻게 느꼈고, 앞으로 뭘 해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 나름대로 느낀 바를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그는 야당시절의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만난 것이 북한에 대하여 깊게 생각해보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중앙일보의 발행인에 취임한 지 얼마 안돼서 바로 (북한 문제에) 맞닥뜨리게 됐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이부영 의원의 발언에서 비롯된 조문파동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일보는 특유의 보수적인 시각으로 신문 논조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중앙일보 또한 비슷한 논조로 이부영 의원을 거세게 공격했습니다만, 저는 이 과정에서 남북관계를 어떻게 보고 어떤 방향으로 끌고 나가야 하는가? 라는 원초적인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현재의 대통령을 일산의 모처에서 만나 조문파동에 관해 서너 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로 의견이 같은 부분도 있고, 다른 점도 있었지만 이 만남은 제가 이후 남북문제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는 계기였던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그 며칠 뒤 홍석현 발행인은 북한을 어떻게 봐야 하고 언론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두고 社內(사내)토론에 부쳤다고 한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북한문제에 관한 한, 1991년 12월31일에 남북간 정치 지도자가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지키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현실성 있는 자세라고 판단>하였다고 한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합의한 이 남북기본합의서는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을 통해서 남북 간에 신뢰를 회복하고 相生的(상생적) 경제발전을 도모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중앙일보의 對北노선을 한겨레 쪽으로 설정하였다고 말한다.

<중앙일보는 중도우익을 표방하고 있습니다만 남북문제에 관한 한 한겨레 쪽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변화를 하기로 한 셈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같은 자세들이 자칫 좌익으로 치부될 우려도 없지 않았겠지만, 중앙일보와 홍석현을 좌익으로 볼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고, 그렇기에 중앙일보가 더 자신 있게 나설 수 있다는 판단도 했습니다.>

홍석현 씨는 여기서 중요한 실토를 한다. 북한 보도의 論調(논조)를 脫(탈)우파로 결정한 다음 그 노선에 맞는 방향으로 紙面(지면)을 꾸려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같은 논조변화를 결정한 후 중앙일보는 사설과 칼럼 등의 지면을 통해 실천을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김영삼 정부 시절 對北 쌀 지원을 했다가 다시 강공책으로 바꾸기도 하고, 언론도 갈팡질팡하고 따라가는 상황 속에서, 그 과정을 다룬 당시의 중앙일보의 지면을 보면 일관되게 북한을 포용하는 자세를 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안보나 경제력은 굳건히 지켜나가는 가운데, 가능하면 북한을 자극하지 말고 포용해 나가자는 논조였습니다.>

홍석현 씨는 이 같은 논조변화의 과정을 거친 뒤에는, 북한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시도하기로 했다고 설명한다. 북한정권에 호의적인 방향으로 보도를 하기 시작하면서 이를 근거로 하여 접촉을 시도하였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던 중 95년 늦은 가을 서울 어느 리셉션장에서 유홍준 씨를 만나면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대히트를 치고 있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북한편을 쓰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유홍준 씨에게 이 같은 생각을 제안했습니다.>

처음에는 기업이나 다른 단체들처럼 중국이나 조선족을 통한 통로를 타진했지만 시일만 걸리고 효과가 없었는데, 우연히 일본 쪽 경로를 통해 유력인사와 연결되면서 실마리가 풀렸고, 97년 7월 마침내 중앙일보 북한문화유산 답사팀이 언론사상 최초로 북한 땅을 밟고 이어 올해(1998년) 9월까지 네 차례 방북조사가 성사되었다는 것이다.

홍 씨는 여기서 북한이 당시 다른 신문들을 모두 제쳐두고 중앙일보를 가장 먼저 받아들였던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중앙일보의 논조 변화였다고 실토하였다. 중앙일보의 논조변화는 95년 초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를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북한과 주한미국 대사관이었다고 한다.

홍석현 씨는 북한 방문 체험을 공개하였다.

<지난해 9월 중앙일보의 첫 방북 때에는 차창 밖으로 시가지 사진도 못 찍게 했습니다만 회가 거듭될수록 통제의 수준이 점차 완화됐습니다. 3차 방북 때에는 인터넷을 통한 기사와 사진의 전송까지 가능해져 백두산 천지(天池)와 내금강의 사진을 직송하는 개가도 올렸습니다. 이번에는 컴퓨터 통신으로 인터넷을 보고 서울에 있는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것까지 가능해졌습니다. 저는 이를 감시의 눈길이 소홀해졌다기보다는 중앙일보에 대한 신뢰감을 높여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봅니다.>

그는 <북에서 가장 놀란 점 중의 하나는 (그들이) 남한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저희들의 방북 파트너였던 조선아세아태평양위원회 측은 매일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상황이었습니다. 실무자들의 대부분도 김일성대 출신의 최고 엘리트들이었고, 이중 몇몇은 과거 남북한 접촉 때마다 수행해서 서울에 다녀갔던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함께 갔던 우리 측 대표단의 젊은 기자들과 논쟁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예컨대 우리 기자들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우위성을 간접적으로 비칠라치면 바로 “그래 우리는 못산다. 못 살아도 남한처럼 서로 괴롭히면서 살지는 않는다. 행복의 척도는 돈이 아니다. 산더미 같은 돈을 쌓아놓고도 더 많이 못 벌어 불행해지는 일은 없다”는 식의 만만찮은 대응을 해옵니다.>

<최고 지도층 인사들의 수준은 더욱 놀라웠>다고 했다. 도착하는 날 공항에서부터 떠나는 날까지 거의 일정을 같이 했던 아태위원회 이종혁 부위원장(월북한 소설가 이기영 씨의 차남)은 오랜 외교관 생활과 유학생활 때문인지는 몰라도 매우 높은 수준의 안목과 식견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나름대로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엿볼 수도 있었다고 한다.

로동신문의 강덕서 책임주필 대리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우리가 접하는 북한 로동신문의 기사수준이나 ‘통일의 길’을 통해 얼핏 보게 되는 북한 TV의 수준만을 놓고 보면, 북한 언론인에게서 유치함과 수준 이하의 사고방식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 만나보니 대화의 방법이나 내용면에서 마치 우리나라의 어느 유명한 언론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홍석현 씨는 이종혁을 통하여 김정일에게도 의견을 전하였다고 한다.

<당시 저는 동행했던 이 부위원장과의 대화를 통해 제 뜻이 북한 최고위층에 전달되도록 했습니다. 그 내용의 골자는 이제는 남북이 대결과 불신의 벽을 넘어 점차적 화해와 경제적 협력을 해야 하며, 이것만이 21세기 한민족이 살아갈 상생(相生)의 원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북한 측에 그는 “현 정부는 지난 어느 정부보다 남북관계의 개선과 발전에 선의의 역점을 두고 있다. 예전 정부들과 혼동치 말라, 내 개인적 판단이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또다시 신뢰를 쌓아가며 협력을 할 기회는 없어진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순조롭게 진행되려면 북한도 상응하는 조처를 취해야 한다. 잠수정 사건을 북한은 고의 아닌 사고였다고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북의 공식적 사과가 나와야 우리 정부도 후속 정책을 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홍석현 씨는 남북간 교류 및 경제협력의 필요성을 설명한 뒤 <앞으로 중앙일보의 방향이나 사론(社論)도 이 같은 방향에서 다룰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중앙일보의 對北 보도 기조를 결정하였음을 거듭 밝힌 셈이다.

<중앙일보는 앞으로도 문화교류 활성화를 위해서 남북언론간의 제휴, 공동사업을 계속 추진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이미 로동신문에 제시했던 3대 사업,

첫째, 남북간 문화유적 공동 조사 발굴 및 공동보도

둘째, 남북간 언어 이질화 현상을 막기 위한 공동 조사연구

셋째, 남북간 생태계 공동조사 연구를 위한 공동 작업을 지속적으로 펴 나갈 것입니다.

이밖에 금강산 개발은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 하며, 남북경협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남쪽의 기업인과 북쪽의 당국자들이 만나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해답을 찾아내는 남북간 토론회라는 대화의 장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그는 언론의 對北 보도 자세를 비판하기도 하였다.

<북한에 대한 보도방법도 이제는 보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해야 할 때입니다. 북한사람들도 이제는 기사를 잘못 쓰면 바로 사장실에 항의전화를 해대는 우리의 독자처럼 여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자들 사이에선 농담조로 ‘북한은 언론중재위에 회부되지 않는 소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써도 항의를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이겠죠.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앞서 말했거니와, 북한은 남한 내 주요 언론의 뉴스를 인터넷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매우 일목요연하고 철저한 언론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홍석현 씨는 북한의 대응에 대하여 구체적인 사례를 들었다.

그동안 방북사업을 이끌었던 권영빈 논설위원이 3차 방북 직후에 ‘강행군·총진군’은 적화남침의 의미가 아니라 경제건설을 위한 구호이며, 사실상 주민과 군인이 따로 없는 북한의 실정상 “북한에 식량지원을 하면 군량미로 악용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에서 떨어진다는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이를 북에서는 크게 환영하는 추세였던 반면, 우리 정부에서는 항의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그런데 권 위원이 4차 방북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북한의 인공위성발사와 관련 ‘광명성이 가야 할 길’이라는 제하의 칼럼으로 북한은 군사적 강대국화를 떠나 경제입국을 통한 부국화를 촉구했는데, 당장 반응이 나타났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중앙일보가 모처럼 좋은 글을 썼다는 반면, 북한 측에서는 북경을 통해 우리 측에 “아니 알 만 한 사람이 어떻게 광명성이 어쩌고저쩌고 하느냐(북한에서 광명성은 사실 김정일 총비서의 별칭에 해당됨), 이제 당분간 중앙일보와는 공동사업을 보류하고, 앞으로의 계획도 재검토하겠다”며 반발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제 말이 북한에 잘 보이는 기사를 많이 쓰자는 말은 아닙니다. 얼마든지 기사를 쓰고 비판할 때는 비판을 해야 합니다. 다만 북한에도 이제는 뉴스의 객관성과 공정성과 같은 잣대를 부여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북한 관련 기사들을 선별하고 조작, 과장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와 다를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 즉 언론의 자유를 스스로 내팽개쳐 버리는 행위이자, 오늘날 언론이 혁명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있는 공산주의의 언론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북한 언론의 한계를 이렇게 설명하기도 하였다.

<독자들은 알 권리가 아니라 ‘알 의무’ 밖에 부여받지 않았으며, 언론은 자유가 아니라 통제 속에 혁명의 수단으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방북과정에서 로동신문사 방문, 남북언론인의 밤 행사 등을 거치면서, 체제는 달라도 사람 자체는 ‘신문쟁이’로서는 같은 속성을 엿보았습니다. 앞으로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비정치적 분야의 교류를 필두로, 남북언론인 교류를 활성화 시켜나가겠습니다.>

홍석현 씨의 강연을 통하여 사드배치 반대까지 주장하게 된 중앙일보의 노선 변화, 그 비밀을 알게 되었다.

*對北 논조를 한겨레 쪽으로 선회시킨 일은 자신이 주도하였고 김대중 씨(대통령이 되기 전)의 영향이 있었다.  

*이런 논조 변화가 그의 방북을 성사시켰다.

*북한에 갔다 온 이후 신문을 만들 때 북한 정권의 반응을 의식하면서 공정을 기하기로 하였다.

*북한에도 공정성과 객관성을 부여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998년의 이 강연 이후 계속된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에 대하여 중앙일보는 과연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하면서 보도하였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사드를 포기하자”는 주장은 核前(핵전)무장 해제 주장에 다름 아닌데 그렇다면 중앙일보는 대한민국에 대한 객관성과 공정성부터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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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1일 중앙일보 社說 제목은 <3개국 순방 박 대통령, 사드 배치 중국 양해 얻길>이다. 사드 배치에 대하여 중국에 '너그럽게 살펴서 받아들여주세요'라고 말하고 오라는 뜻이다. <3개국 순방 박 대통령, 사드 배치 중국 이해 얻길>이라고 하면 이해가 간다. 다소 굴욕적이지만.
 
'양해'는 잘못 쓴 낱말이다. 북한의 核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생존을 지키기 위하여 방어용 무기를 배치하는 데는, 어느 나라의 양해도 필요하지 않다. 더구나 북한의 핵개발을 사실상 방조해온 중국의 승인을 받아오라는 말을 하는 언론에 대하여는 '國籍(국적)이 어딘가'라고 물을 권리가 있다.

'허락'이나 '승인'이라는 뜻이 포함된 '양해'는 사대주의 시절의 朝鮮 조정이 明 나라에 썼을 만한 용어이다. 중앙일보는 사드 배치 반대를 公論化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이는 두고두고 이 신문의 汚點(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래서 '양해'는 이 조직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정직하게 드러낸 말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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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정의진리 2017-06-27 오후 9:46

    순진한 재벌집 아들이 잠깐 북한에 가서 북한 사람 몇 명 만나보고 뭘 꺠달았다고 그러는지 말이 안된다. 그쪽에서 나온 사람들이 식견이 대단했다고? 철저하게 훈련받은 앵무새들이게 무슨 식견이 있나? 불쌍한 중앙일보... 그걸보는 독자들도 불쌍하기는 마찬가지.

  • 朴京範 2017-06-27 오후 12:33

    1995년 독자가 바라지도 않았는데 서둘러 가로쓰기를 하고 한글전용하겠다는 것이 그 발단입니다.

  • 멋진나라 2017-06-26 오후 5:58

    그도 평생 갑질하니 입은 잘 놀리겠지만,
    조선양반 쓰레기 먹물의 변종일 뿐.
    빨리 망하는 것이 세상을 위해 좋은 일.

  • 기본정석 2017-06-26 오후 4:38

    김영희기자는 사실 별로 들은게 없는 사람이다.
    TV토론에서도 앞뒤 논리가 안맞고 내용이 진부한적이
    한두번이 아니다.어찌 지성인의 대표선수라는 논설위원이니
    대기자가 됐는지 중앙일보만이 알따름이다.
    요즘에야 홍석현아저씨도 홍준표를 만나
    이리저리 병살타를 치고있지만.원래 중앙일보는
    뚜렷한 색깔이 없었다.해바라기 언론임은 알만한 사람
    다 알고있었다.준표씨의 선전을 기대하며....

  • 이중건 2017-06-26 오후 1:17

    4천대의 북 땡크가 넘어온다.
    웃기는 소리다. 3만 탈북자가 여기와 있다.
    탱크한번 몰아보지 못하고 제대한다.
    배고파 기름 팔아먹고 물 솓아붓고...
    고흥군 경제력밖에 안되는 북한 종이호랑이에 벌벌떨지말고
    항상 공세적 자세로 가야 한다.

  • 미래현자 2017-06-26 오후 12:35

    평양를 방문한 김구가 북한의 엄청난 군대를 구경하고, 한국정부를 건국하면 북한 침략이 명백하므로 한국 건국을 반대했다. 홍석현은 북한과 전쟁하면 피해가 크므로 항복하자고 한다. 북한의 간첩이 아니고 무엇인가? 홍석현 즉각 구속하고 중앙일보 폐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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