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애국상 수상 10주년에 즈음하여

제1회 우남애국상 수상단체 국민행동본부!

從北세력에 맞서 싸워온 ‘國民의 행동대’

국민행동본부의 출범은 육해공군해병대예비역대령연합회(1995년 4월17일 창립, 이하 대령연합회)와 깊은 관련이 있다. 대령연합회가 세간에 화제가 된 것은 2000년 6월15일 김대중이 평양을 다녀온 뒤 김정일의 서울 답방설이 나돌 무렵이다. 그 해 12월 서정갑(徐貞甲)은 대령연합회 회장 자격으로 “국민의 정부는 더 이상 국민을 우롱하지 말고 그 정체성을 밝혀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단체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애국운동이라는 의미에서 ‘국민행동본부’라는 명칭을 병행 사용했다. 그리고 예비역 대령들의 애국심 차원을 벗어나 확고한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기초하여 애국정신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단체로 거듭나기 위해 2001년 1월 말 국민행동본부가 공식 출범됐다. 국민행동본부는 이후 ‘종북과 정면으로 싸우는 국민의 행동대로서 역할을 했다.

국민행동본부는 2001년부터 2016년까지 일간지 등에 의견광고 486건, 광고횟수 908건, 집회 및 기자회견 259건을 기록했다. 그 동안 단체가 주도하는 집회 및 기자회견 등에 참석한 애국시민을 모두 합치면 242만 6000명에 달한다. 이러한 애국활동의 결과 지난 17대 대선에서 우파 정권 출범이라는 결실을 이뤄내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2009년 9월 노무현의 오른팔이었던 이병완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자신의 책 <박정희의 나라, 김대중의 나라 그리고 노무현의 나라>에서 “17대 대선의 진정한 승리의 주역은 ‘양갑(兩甲: 서정갑, 조갑제)’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승리의 주역은 국민인가’라는 章에서 “조갑제가 한국판 보수•우파의 이론적, 역사적 토대를 발굴•계발해 냈다면, 서정갑은 태극기와 성조기, 그리고 군복을 동원하여 거리와 광장 투쟁을 일으킨 이른바 ‘아스팔트 우익’”이라면서 徐 본부장이 “전통적 군부•우익단체는 물론이고 일부 대형 기독교 교단들을 조직하고 동원하는 선전•선동 활동의 주역을 맡아 냈다. 3·1절, 6·25, 8·15 는 물론 심지어 개천절까지도 태극기와 성조기, 군복의 군무(群舞)를 연출해 냈다”고 평가했다.

어떤 조직이든 내부의 이견(異見)과 갈등을 조정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힘을 들이면 외부의 敵과 싸우는 데는 소홀하게 되는 것이다. 국민행동본부가 일하는 양식은 선명하다. 첫째는 국가적 이슈를 선정하는 일, 둘째는 이슈를 성명으로 작성하고 광고하는 일, 셋째는 집회와 강연 등을 통해 행동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이 과정은 시간이 생명이다. 적절한 타임에 성명이 발표되고 집회가 개최되어야 한다. 이슈가 등장하면 즉각 행동에 옮기는 신속성이 국민행동본부의 특징이다.

2004년 7월2일 주요 일간지들의 1면 톱뉴스로 대통령직속 기구인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가 남파간첩들과 빨치산 출신들을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했다는 뉴스가 차지했다. 당시 정부와 여당은 국보법 폐기를 여론화시키면서 대통령까지 나서 “국보법은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라”며 대중을선동했다. 이들 세력은 국보법 폐지의 당위론을 들이댔고, 공영방송은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했다.

당시 ‘반핵반김국민협의회’ 5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던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은 “이제 우리가 믿을 곳은 국군 밖에 없다”며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10월4일 반핵반김국민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30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서울광장에서 ‘국가보안법 사수 국민대회’를 개최하고 국보법 사수에 나섰다.

그러자 경찰은 이 집회를 추진한 국민행동본부장을 10·4 국가보안법 사수국민대회를 전후하여 내란선동죄 쿠테타선동죄로 소환하여 결국 간첩을 심문하는 곳이자 악명 높은 양천구 대공분실로 연행됐다. 당시 전투복을 입고 조사에 응했다. 군인에게 전투복은 그대로 수의가 되기 때문에 명예로운 죽음을 각오한 것이었다.

2005년 여름에는 한반도 공산화 통일을 의도하는 것이 분명한 ‘우리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라는
從北단체가 인천자유공원에 우뚝 서 있는 맥아더 동상 주변에서 60여일 간 불법농성을 벌였다. 이에 국민행동본부는 같은 해 7월15일 인천의 애국시민들과 함께 맥아더 동상 파괴책동을 분쇄하고, 그들이 남기고 간 한반도 깃발을 가져왔다. 국민행동본부의 당시 행동은 헌법이 보장한 국민저항권에 의거하여 국민이 직접 반역세력 저지에 나선 ‘의거’라는 평가를 받았다.

국민행동본부애국기동단은 2009년 6월24일 덕수궁 앞에 마련된 ‘노무현 시민분향소’라는 不法시설물을 철거하자, 서정갑 본부장은 이를 지휘했다는 이유로 從北세력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이들은 이른바 ‘대한문 분향시민 소송단’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서본부장과 국민행동본부를 위협했다. 실제로 당시 이들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국민행동본부를 겨냥하여 온갖 비방과 욕설이 난무했다.  

국민행동본부는 통진당(舊민노당)에 대한 최초의 위헌정당 해산청원을 2004년 6월23일 프레스센터에서 최초로 제기했다. 당시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은 “대한민국 정부가 위헌정당제소권을 행사하지 아니한 결과 민노당과 같은 위헌적인 반미친북(反美親北) 세력이 강화되어 헌법상의 민주적 기본질서가 위협을 받고 있다"면서 다수 국민의 뜻을 받들어 헌법질서와 국민의 재산과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로 하여금 "민노당 해산"을 헌법재판소에 제소할 것을 구하는 청원을 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국민행동본부는 2004년 6월23일, 2011년 8월26일, 2012년 5월30일, 2013년 4월8일 등 총 4차례에 걸쳐 위헌정당 해산청원을 한 끝에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서 2013년 11월 5일 법무부가 헌법재판소에 통진당 해산청구를 하기에 이르렀다.

좌익들은 국민행동본부를 ‘수구꼴통’으로 비하하지만 이것은 사실 칭찬이다. ‘수구(守舊)’란 말은 ‘옛것’을 지킨다는 말인데, 국민행동본부가 지키려는 ‘옛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이다. ‘꼴통’이란 말은 어떤 일을 외골수로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국민행동본부는 나라사랑을 ‘외골수’로 한다.

국가와 함께, 역사와 함께, 진실과 함께 걸어온 국민행동본부가 건재하는 한 대한민국은 영원할 것이다. 마부위침(磨斧爲針)의 심정으로 자유의 태극기가 평양의 하늘에 휘날리는 그날을 위해서 국민행동본부는 대한민국과 함께 할 것이다. 神의 은총이 대한민국과 영원히 함께 하길 바란다.

2017.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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