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題]North Korea: The Nuclear Duplicity Continues
고든 커컬루(Lt. Col. Gordon Cucullu예비역 육군 중령. 자유기고가)
極左 성향의 남한 정부 회담서 북한 인권 문제 거론 회피
여러 언론들이 북핵 문제가 갑작스럽게 타결 된 것처럼 떠들어대고 있다. 일례로 한 언론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중단했다”고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북한의 핵 문제는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지난 1994년 봄 이후 줄곧 북한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대항해 냉온 전략을 구사하며 톡톡한 재미를 봐왔다. 당시 북한의 독재자 김일성은 우쭐하여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며 한반도를 무력 통일하겠다고 남한을 협박했다. 이에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의 핵 개발 시설이 위치한 영변에 대한 제한적 북폭(北爆)을 준비했다.
美, 94년 북핵 위기 당시 對北 전면전 계획 세워
펜타곤(美 국방성)의 실무자들은 한반도 전쟁 계획 중 하나인 ‘작전계획 5027’(전면전 계획)을 본격 가동시켰다. ‘시차별부대전개제원’(TPFDD) 과 관련된 모든 스케줄이 업데이트 됐다. 전구(戰區) 지역을 둘러싼 전투준비태세가 갖추어졌으며, 정찰위성은 실시간으로 북한의 이미지를 송출해왔다. 미국은 당시 심각한 전쟁(shooting war)으로 이어질 공산이 큰 군사적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백악관 관계자들은 아무도 이와 같은 대치 국면을 원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지의 돈 오버도퍼 한반도 전문기자는 클린턴 행정부의 최측근 관리들 그리고 내각의 관료들이 당시 얼마나 이에 대해 반대했는지에 대해 기사를 쓰기도 했다. 트루먼 대통령 이후의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은 대부분 외교에는 무능했다.
이 때문에 실무자들은 클린턴이 북한 문제를 무시하고 국내 문제에나 신경 쓰기를 원했다. 이 같은 논리는 지미 카터나 클린턴 두 대통령 모두에게 적용됐다. 클린턴은 스스로를 국내용 대통령으로 평가했다. 당시 그의 모든 초점은 자신의 무모한 행동으로 인해 빚어진 스캔들을 ‘거대한 우파 조직이 만들어낸 음모’로 돌리는 것에 맞춰져 있었다.
카터의 방북으로 체결된 ‘제네바 기본 합의서’
1994년 봄까지만 해도 클린턴은 지미 카터와의 접촉을 주도면밀하게 피했으나, 결국 김일성을 만나 핵 문제를 담판 짓겠다는 카터의 요구를 들어주게 된다. 카터의 방북은 비공식적으로 이뤄졌다. 클린턴의 특사로 방북한 미국의 前 대통령의 말을 아시아 국가, 그것도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이 들어줬다는 사실은 그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클린턴은 북한을 달래서 북핵 문제를 가장자리로 밀어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카터의 경우 이런 일을 하기에 적임자라고 여겼다.
카터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제네바 기본 합의서’로 알려진 달콤한(sweetheart)합의가 체결됐다. 이 합의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미국과 동맹국들은 북한에 대해 전력 생산을 위한 경수로를 제공하는 동시에, 핵발전소가 세워지기 전까지 중유를 제공한다. 북한에 대한 식량공급 및 의료지원을 포함한 기타 지원도 이에 포함된다. 북한은 이에 대한 대가로 현재 개발 중인 핵 프로그램에 대한 중단을 합의한다.
카터, 유화책으로 일관한 네빌 챔벌린과 다름없는 인물
지미 카터가 평양에서 합의서를 손에 들고 흔들며 서울에 도착하는 모습은 마치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전의 네빌 챔벌린(히틀러에 대해 유화책으로 일관했던 영국의 수상)의 그것과 흡사했다. 그러나 김일성은 이때 북한의 과학자들에게 정제된 플루토늄에서 농축우라늄을 추출할 것을 지시했다. 오히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신속히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달리 말해 북한은 내용이 뻔한 제네바 기본 합의서에 서명만 하고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속인 것이다.
그 결과 거덜 난 북한 경제가 되살아나 후계자인 김정일의 등장으로 사태는 더욱 악화됐으며 이 정권이 11년이나 더 연장됐다. 우리는 다시금 94년으로 돌아가 당시 북한 전략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재고해 봐야 한다. 북한의 전략은 소위 ‘벼랑 끝 전술’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은 자신들이 원했던 경수로, 연료, 식량, 의료지원, 전력 등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북한은 이내 협상국을 속여 버린다. 우리는 왜 이처럼 북한과의 협상에서 어수룩할 수밖에 없는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동북아에서는 외교라면 가장 초보라고 할 수 있는 김정일이 설쳐대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부패와 실패한 경제정책으로 말미암아 300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현재 북한의 수용소에는 30만에 이르는 주민들이 수감되어 있으며 수만 명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을 대상으로 한 독가스 실험과 세균 실험이 행해지고 있으며, 외국인 납치, 깡패국가들에 대한 미사일 수출, 마약 수출이 북한 정권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6자 회담, 북한 인권 거론하지 않아 문제
북한의 주민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정권의 압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세뇌와 통제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자 회담에서 이들에 대한 언급이 하나라도 있었는가?
이제는 북한 인권과 관련해 상징적인 어구에 그친 활동이 아니라 그 말에 뒤따르는 강력한 행동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에 대한 테러분자들의 행동에 대해 우리는 단호히 전쟁을 선택했다. 지난 5년 동안 미국은 탈리반과 사담 후세인 정권하에서 시름하던 5천 만의 사람들에게 자유를 선사했다.
지난 해 9월 美 의회는 만장일치로 대통령이 승인한 ‘북한 인권 법안’을 통과시켰다. 북한인권법안에는 북한 핵 문제와 관련된 모든 회담에서 기본적으로 인권을 거론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현재 현실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유는 극좌(hard-Left)성향의 남한 정부가 미국 또는 일본이 북한과의 회담에서 인권문제를 거론하려는 시도를 원천봉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북한은 인권문제를 거론할 경우 회담에 발붙이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지속적으로 북한 인권 문제 거론해야
북한 정권이 붕괴되면 가장 많은 탈북민을 떠안게 될 중국은 현재 탈북민들을 지속적으로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의 북한 인권 특사로 제이 레프코비츠가 부임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그는 앞으로 많은 인명을 구출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에 앞서 그는 이 일을 하루라도 빨리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며 워싱턴은 이 일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북한 문제를 헤쳐나기기 위한 긴 여정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김정일 정권의 압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자유를 외쳐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평양에 있는 이상하게 생긴 난쟁이(김정일)가 추는 춤(dance)에 대항해 지속적으로 싸워 나가야 할 것이다.
출처 : 美 프런트페이지매거진 인터넷 리뷰 9/21
번역*정리 : 김필재 (코나스 객원기자)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 코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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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9-21, 1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