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이승만은 80점 지도자'
´이승만´ 주제로 대학원생들과 토론
20일 '이승만은 과연 독재자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한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위원은, 이날 밤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본부관 세미나실에서 ´이승만 시대의 평가´를 주제로 대학원생들과 토론회를 가졌다.
- 주최측(국민대 정치대학원) 여학생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으며 악수하는 조갑제 편집위원
박정희 前 대통령은 반대세력으로부터의 끈질긴 부정적 재평가 시도에도 불구, 여전히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전두환 前 대통령 역시, 공개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하는 것이 금기시 되다시피 했던 사회적 분위기가, 최근에는 팬클럽(전사모)까지 결성되는 등 달라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인색하다고 할 수 있다.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상당수 국민들의 뇌리에 ´이승만´이라는 존재는 4·19로 쫓겨난 ´독재자´ 정도로만 인식되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승만´에 대한 조갑제 편집위원의 평가를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현재의 자유대한민국이 있게한 주인공´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조 위원은, '민족사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에겐 가장 중요한 두가지 사건이 있는데, 첫 번째는 신라의 삼국통일이다. 이로 인해 ´우리가 남이가´라는 ´민족의식´이 생겨났다. 즉 ´민족주의´가 형성됐다. 두 번째가 1948년의 대한민국 건국이다. 신라가 ´민족통일국가´를 건설했다면, 이승만은 ´국민국가(국민이 주인되는 국가)´를 건설했다'고 말했다.
기성세대는 건국·호국·산업화·민주화를 이뤄냈는데, 이 4가지를 단기간 내에 해낸 나라는 한국밖에 없으며, 이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이라는 인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조 위원의 주장이다.
´최초의 한국인 박사´, ´최초의 신문사장(매일신보)´ 등 ´최초´라는 수식어를 여러개 붙일 수 있는 이승만은, 일찌감치 선진문물(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을 배워 이를 건국에 적용, 대한민국이 공산국가(후진국)가 되지 않고, 미국이나 유럽국가 같은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바탕을 깔았다는 것.
이처럼 ´선진국´을 배운 이승만과는 달리, 김일성은 소련과 같은 ´독재국´을 배웠고, 이를 북한에 적용한 것이 오늘날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승만과 김일성은 같은 기독교 집안임에도, 김일성의 경우는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이 ´독재´와 결합하여 ´주체사상´이 탄생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밖에도, 이승만은 휴전(한국전쟁) 후 한반도에서 손떼려는 미국을 압박(반공포로석방 등)하여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케 했으며 이같은 ´안보 우산´으로 박 대통령의 산업화도 가능했다고 역설했다. ´군사비´로 들어갈 비용을 ´경제개발비´로 전환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세미나실은 빈자리 없이 꽉 들어찼다
이처럼 '대한민국을 만들고, 지키고, 발전의 토대를 닦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조 위원의 평점은 B학점 격인 ´80점´.
1. 말년에 연로(年老)한 관계로 人의 장막에 둘러싸이고, 경제에 소홀(박 대통령처럼 적극적인(확고한) 자립경제 정책(리더쉽)이 없었다).
2. 6·25 초기 대응에 실패, 서울에서 많은 희생자 발생.
3. 자신의 통치이념을 이어갈 정당 만드는데 실패.
4. 일제 경찰과 헌병 출신자들을 기용, 이들로 인해 야당탄압과 인권유린이 생겼다.
등이 조 위원이 밝힌 A학점을 안준 이유다.
그러나 4번의 경우, 이들이 공산당 잡는 전문가들이었기에 공산주의와의 생존대결 과정에서 나온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며, 이승만 초대 내각에는 ´친일파´가 단 한명도 없었고, ´반민특위´를 통해 어느정도 친일파 청산이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북한 김일성 정권의 경우, 자신들을 반대하는 친일파들만 숙청했을 뿐이며, 친일파라고 해도 협조적이면(김일성 동생 김영주의 경우는 일제 통역관 전력) 요직에 기용했다고 덧붙였다.
이승만을 ´외세´를 끌어들인 인물이라며 제기되는 일부의 비판에 대해서도, 동족을 치기 위해 외세(소련, 중공)를 끌어들인 것은 북한 김일성이며, 이승만의 경우는 이러한 남침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지도자´로서의 이승만 뿐 아니라, ´인간 이승만´에 대해서도 조 위원은 ´청렴성´ 등을 들어 좋은 평가를 내렸다. 중립적 시각으로 토론회를 진행하던 김상회 정치대학원 교수도, 이승만의 ´청렴성´에 대해서는 우회적으로 인정했다. 그는, 이승만이 망명 당시 머물던 집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거지 같았다'고 말해 장내에 폭소가 터졌다.
- 한 학생이 일어나서 질문을 하고 있다
차분하게 조 위원의 강연을 경청하던 학생들은 순서가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맥아더는 점령자인가, 해방자인가'라는 질문에 조 위원은, '일제로부터 해방시켰고, 공산침략으로부터 구원했다. 두 번이나 도움을 줬으니 당연히 해방자'라고 답했다.
'제주도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학생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제주4.3학살´에 대한 이승만 책임론을 언급했다. 그는 '이승만에게 책임이 없다면, 유태인 학살에 히틀러의 책임이 없는 것인가'라는 취지의 질문을 했다.
이에 조 위원은 '히틀러의 직접 지시로 ´인종청소´ 차원으로 자행된 유태인 학살과, 좌익들과의 싸움에서 반작용으로 발생된 학살은 다른 것'이라고 답했다. 이와함께, 예를 들어 (학살당한) ´남로당´의 후손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이승만이 학살자일 수 있겠지만, 이는 ´역사적´ 평가가 아닌 ´피해자´의 평가가 된다는 내용의 말도 덧붙였다.
이 날 조 위원은 학생들에게 '지금의 기준으로 이승만을 평가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당시 우리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미국이나 유럽같은 선진국 지도자들처럼 하지 못했다고 이승만을 폄하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 '당시 우리의 상황이라면, 링컨이라고 해도 이승만보다 잘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노무현 정권의 대외관계, 대북정책 등에 대해서도 '불안하다'는 등 비판하며,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한 학생의 ´북한이 대남적화전략을 포기하지 않았느냐´는 내용의 질문에 대해, '여러분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점이, 김정일에겐 매우 좋은 상황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국민대 정치대학원 홈페이지(http://gspl.ac.kr/)는 이날 토론회 녹취내용을 22일(목)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따라서 본 기사에서 미처 소개하지 못한 부분들을 이 날 녹취록을 통해 보다 자세하게 알 수 있다.
[김남균 기자] hile3@hanmail.net
조갑제-대학원생 토론회
- 독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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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9-21, 14: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