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스커드, 노동1호 미사일 개발사

일본은 핵을 탑재한 북한의 미사일 공격이 현실로 다가옴에 따라 자체적인 미사일방어체제(MD)를 구축하기 시작

스커드 미사일 개발

중국의 DF-61 개발 취소 등으로 탄도미사일 기술 습득이 어려워진 북한은 1979년부터 독자적인 탄도미사일 개발계획에 착수하게 된다. 그러나 기술의 한계를 느낀 북한은 1980년 이집트와 ‘탄도미사일 공동개발 협정’을 체결하고 소련제 스커드(Scud) 미사일과 이동식 차량 발사대(MAZ-543)을 제공받기로 합의했다. 북한은 1984년 스커드-B 미사일(북한명 화성-5호)의 복제품을 제작하여 같은해 9월 시험발사에 성공한 뒤 1986년 양산을 시작했다.

북한은 이란과 탄도미사일 기술을 상호 지원하며, 이란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계획에 자금을 지원하고, 대신에 스커드-B의 구매에 우선권을 갖는다는 내용의 ‘탄도미사일 개발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 따라 이란으로부터 지원 받은 미사일 개발 자금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큰 활력이 됐다. 북한은 1987년부터 스커드-B 미사일을 이란에 수출하기 시작하여 이듬해까지 총 100기를 수출했다. 이외에도 북한은 이란에 스커드-B 미사일의 조립 및 생산 공장을 설립해 주고 기술지원까지 제공했다.

스커드-B의 개발에 성공한 북한은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 전역을 사정권에 둘 수 있는 새로운 미사일 개발에 서둘렀다. 미사일의 사정거리를 연장하려면 최종 발사속도를 증가시켜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탄두의 중량을 줄이고 연료탱크와 산화제 탱크의 용량을 키워야 한다. 북한은 스커드-B의 탄두중량 줄여 미사일의 탄체 중량을 줄이고, 미사일의 탄체 지름은 그대로 둔 채, 연료탱크와 산화제 탱크 부분을 1m 연장하여 용량을 증대시켰다. 북한은 1989년 스커드-C(북한명 화성-6호)를 초도생산하여 1991년 실전배치했다. 사거리 700km의 스커드-C의 개발이 알려지자 이란은 1990년 가을 북한과 새로운 미사일협정을 체결했다. 북한은 1991년 4월 시리아와도 스커드-C를 공급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노동-1호 미사일

노동-1호(북한명 화성-7호) 미사일의 개발은 북한이 1988년부터 시작한 미사일 사정거리 연장 프로그램에 따른 것이다. 북한은 당시 사정거리 500km의 스커드-C 개량형 미사일 개발에 성공했지만 기존의 스커드 기술만으로는 이 이상의 사거리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북한은 스커드 기술을 확대시켜 4개의 스커드 엔진으로 추진하는 ‘집속 로켓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나 사거리 연장 조기 달성 계획에 차질이 발생하여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기술을 획득하기 위해 소련과 동구 공산권 국가의 과학자들을 비밀리에 초창하는 한편, 중국에 미사일 기술 지원을 요청했다. 북한은 1990년대 초부터 구소련의 미사일 기술자들을 다수 초청했다. 이들 중에는 소련의 스커드 미사일과 중거리 미사일 개발을 전담했던 마케예프 설계국과 로켓 엔진을 전담했던 이사예프 설계국 및 고스베르크 설계국 소속의 기술자들, 그리고 미사일 내열재료의 전문 기술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모두 북한의 집속 로켓 및 이후 대포동 계열 미사일에 사용된 다단계 로켓 개발에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은 1991년 10월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노동미사일 개발을 위한 지원을 요청했고, 중국은 이례적으로 북한의 요청을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중국은 미사일 개발 주무부서인 ‘항공우주부’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등에서 북한의 미사일 개발 관련 기술자들이 연수를 받을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중국은 미사일 제작 기관인 ‘보리과학유한공사’와 ‘국방항공총공사’ 등을 통해 북한에 미사일 관련 기술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중국의 기술지원과 구소련으로부터 밀입국한 기술자들에 의해 북한의 미사일 개발은 급진전을 이룰 수 있었으며, 결국 1993년 5월 노동-1호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당시 북한은 총 4기의 미사일을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부근에서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TEL) 등을 이용해 시험 발사했다. 당시 이란 등에서 온 참관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사된 미사일 1기는 100km 정도를, 2기는 100km 미만의 짧은 거기를 비행했고, 나머지 1기는 500km 가량을 비행했는데, 가장 먼 거리를 비행한 미사일이 노동-1호 미사일로 추정됐다.

미 정보당국은 시험발사를 관찰한 결과, 탄두 중량을 1t으로 가정하여 노동-1호 미사일의 최대 사거리가 약 1000km에 달하는 것으로 발표했다. ‘미국 과학자 연맹(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 FAS)’은 소련의 초기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인 R-13/21을 모델로 북한이 노동-1호 미사일을 개발했다고 분석했다. FAS는 소련의 SLBM 초기 모델이 스커드 미사일 기술을 단계적으로 발전시킨 모델이라며 노동 미사일과 R-13/21의 직경이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북한이 독자적으로 발전시켜온 스커드 미사일 기술과 소련의 초기 SLBM 기술을 결합해 노동미사일을 개발한 것이라고 FAS는 추정했다.

노동-1호의 시험발사로 한국과 함께 위기를 크게 느낀 국가는 일본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사정권 밖에 있었기 때문에 북한의 위협을 크게 느끼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오키나와를 제외한 본토 전체가 노동-1호의 사정권에 들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와 함께 당시(1993년) 북한이 2~3개의 핵무기를 완성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서방 측의 분석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은 핵을 탑재한 북한의 미사일 공격이 현실로 다가옴에 따라 자체적인 미사일방어체제(MD)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이란, 시리아, 오만, 예멘, 이라크, 파키스탄, 리비아 등 중동 국가에 노동-1호 미사일 등을 수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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