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련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1976년 朝大의 대표단과 평양에서 면담한 북한의 김일성은 이렇게 단언했다고 한다. “총련이 적과 당당히 싸울 수 있는 것은 기지인 조선대학교를 통해 끊임없이 간부를 양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은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이다.”
미노베의 ‘지원사격’으로 朝大의 재정이 안정되고 이를 통해 총련 간부와 조선학교 교원이 배출됐다. 김일성이 그리는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측면에서 지원하는 ‘공작기지’로 일본의 총련 커뮤니티가 한층 강화된 것이다. 朝大의 인가 검토에 소극적인 관료나 의원에 의존하게 되면 이제 일본의 국익과 안전을 지킬 수 없다. 사회주의의 승리를 부르짖었던 미노베가 혜택을 주고 키운 것이 朝大이기 때문이다. 담당부서가 이 문제를 금기시하고 손을 놓고 있는 동안 김씨 일가를 숭배하는 사상교육이 도쿄도의 보호 하에 끝없이 이어지게 될 것이다.
<朝大의 학교인가 투쟁>
《조선대학교는 조국의 따뜻한 배려를 기반으로, 재일조선인 자녀들을 위한 민족교육의 최고학부로 1956년에 창설됐다...(중략) 과거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은 민족으로 모국어와 민족문화를 빼앗겼던 재일조선인은 해방 후 수많은 박해와 고난에 굴하지 않고, 자녀들에게 모국어를 통한 민족교육을 위해 비상한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1955년 재일조선인의 의사와 이익을 대표했던 재일조선인총련합회가 결성된 후 자주적인 초-중-고급학교 교육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일관된 교육 체계를 확립했다. 재일조선인 公民의 조국왕래 자유가 실현되지 않고, 조선고급학교 졸업생의 일본 각 대학 진학이 인정되지 않았던 실정에서 대학의 설립은 한층 더 필요한 것이었다. 본교의 설립으로 재일조선인은 일관된 민족교육 체계를 갖추게 되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자녀들에게 대학교육을 실시할 수 있게 됐다.》 (출처: <朝鮮大学校をみて> 서문, 1967년 발행)
위 책은 미노베의 학교인가(1968년 4월)에 앞서 창립 10주년을 맞은 朝大가 인가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출판한 것이다. 장문을 인용한 이유는 朝大를 창설한 총련 측 의도와 생각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재일교포를 ‘조선공민’, 북한을 ‘조국’으로 아주 당연하게 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재일교포의 대부분은 남한 출신이다. 총련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북한의 김일성은 재일교포를 남한에서 발생한 조선혁명을 일본에서 ‘지원하는 세력’으로 밖에 보지 않았다고 한다.
북한의 지시를 받는 총련은 한국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非합법적 ‘어둠의 공작’ 활동에 관여하며, 이와 관련된 인물, 자금, 기술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왔다. 수많은 일본이 납치 사건도 북한의 이러한 방침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의 적화(공산화) 통일이 달성되면 떳떳하게 조국(북한)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조선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청소년은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북한의 공민’이 되는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 원래 북한의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일본과의 자유왕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조선대학을 설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견강부회(牽强附會)가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