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大의 학교인가 투쟁>
《조선대학교는 조국의 따뜻한 배려를 기반으로, 재일조선인 자녀들을 위한 민족교육의 최고학부로 1956년에 창설됐다...(중략) 과거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은 민족으로 모국어와 민족문화를 빼앗겼던 재일조선인은 해방 후 수많은 박해와 고난에 굴하지 않고, 자녀들에게 모국어를 통한 민족교육을 위해 비상한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1955년 재일조선인의 의사와 이익을 대표했던 재일조선인총련합회가 결성된 후 자주적인 초-중-고급학교 교육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일관된 교육 체계를 확립했다. 재일조선인 公民의 조국왕래 자유가 실현되지 않고, 조선고급학교 졸업생의 일본 각 대학 진학이 인정되지 않았던 실정에서 대학의 설립은 한층 더 필요한 것이었다. 본교의 설립으로 재일조선인은 일관된 민족교육 체계를 갖추게 되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자녀들에게 대학교육을 실시할 수 있게 됐다.》 (출처: <朝鮮大学校をみて> 서문, 1967년 발행)
위 책은 미노베의 학교인가(1968년 4월)에 앞서 창립 10주년을 맞은 朝大가 인가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출판한 것이다. 장문을 인용한 이유는 朝大를 창설한 총련 측 의도와 생각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재일교포를 ‘조선공민’, 북한을 ‘조국’으로 아주 당연하게 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재일교포의 대부분은 남한 출신이다. 총련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북한의 김일성은 재일교포를 남한에서 발생한 조선혁명을 일본에서 ‘지원하는 세력’으로 밖에 보지 않았다고 한다.
북한의 지시를 받는 총련은 한국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非합법적 ‘어둠의 공작’ 활동에 관여하며, 이와 관련된 인물, 자금, 기술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왔다. 수많은 일본이 납치 사건도 북한의 이러한 방침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의 적화(공산화) 통일이 달성되면 떳떳하게 조국(북한)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조선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청소년은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북한의 공민’이 되는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 원래 북한의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일본과의 자유왕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조선대학을 설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견강부회(牽强附會)가 아닐 수 없다.
<왜곡된 朝大창립 의의>
두 번째는 ‘조선고급학교 졸업생의 일본 각 대학에의 진학이 인정되지 않고 있는 실정’ 이라는 대목이다. 확실히 과거에는 조선고급학교 졸업생이 대학진학을 희망하면 朝大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가령 재일한국인이 일본 고등학교에서 일본의 유명대학으로 진학했다 하더라도 다양한 취업차별이 존재했고, 일류기업 등의 경우 채용하지 않았던 사정도 있었다.
일본은행에서 상대를 하지 않자 재일상공인들은 조은(朝銀)을 통해 융자를 받기도 했다. 따라서 총련은 조선학교→朝大→총련 커뮤니티로의 취업이라는 ‘자체 시스템’을 만들어 이를 재생산 해나가는 것에서 조직을 유지할 수 이었다. <朝鮮大学校をみて>가 출판된 1960년대는 좌경화 바람이 강하게 불었던 시대로 총련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힘으로 돈과 인재를 갖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2000년대 이후 다수의 일본 대학이 朝高 졸업생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대부부의 일류기업들도 이제는 재일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채용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재일조선인 자제들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朝大 창설의 의의는 사실상 사라졌다. 실제로 총련이 朝高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진로희망조사에서는 전체의 2할 밖에 朝大 희망자가 나오지 않자 조직이 충격에 빠졌다. 총련 커뮤니티 내의 ‘자기완결’ 시스템이 이제는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 애초부터 朝大를 정점으로 하는 조선학교 교육 내용은 총련 간부들이 자신의 권력 유지, 보신을 위한 것이었다.
총련과 조선학교의 역사를 간단히 되돌아보고자 한다. 현재까지 이어져온 조선학교의 ‘왜곡’과 도쿄도 등 지자체의 관계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종전 당시 일본에 있던 재일한국인은 약 200만 명이었다. 다만,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강제연행’이 아니었다. 실제로 있었던 것은 관(官)의 알선, 징용 등의 전시동원으로 당시 일본인에게도 비슷한 조치가 취해졌다. 게다가 대다수 재일한국인들은 직장과 높은 급여에 이끌려 스스로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다.
전후 약 140만 명이 고향인 한반도로 돌아갔다. 그런데 일은 없고 사회는 혼란스러웠다. 그 결과 다시금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들이 잇따랐다. 일본에 남기고 온 가족을 찾아 돌아온 사람들, 새로 일을 찾아 밀항한 사람들이 복잡하게 얽혀 구성된 것이 전후의 재일한국인 사회이다.
조총련 朝鮮대학교의 학교인가 투쟁 과정
- 金泌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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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1-10, 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