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걸려 온 전화의 목소리에서 그 사람의 몸과 마음에 심한 고통의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오열(嗚咽)섞인 목소리, 때로는 비참함을 상기하며 분노에 부르르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
전화 목소리의 주인은 북한 북부에 사는 30대 여성. 최근까지 함경북도 회령시 근처에 위치한 12호 교화소, 통칭 전거리 교화소에 수감됐었다. 북한에 사는 취재 파트너의 소개를 받아 전화로 긴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이름은 가명으로 은숙 씨라고 한다. 본인의 안전을 위해 구체적인 죄명과 구금, 석방된 시기는 공개할 수 없다.
북한의 인권 상황이 열악하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은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부터는 인권 유린 사례의 보고가 줄고 있다. 국내 실정을 외부 세계에 전해 온 탈북자가 국경경비의 엄격화로 급감했기 때문에 내부정보가 전해지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전거리 교화소에 대해서는 2015년 12월에 한국 국가기관인 통일연구원이 ‘교화소’를 발간, 2017년 2월에는 민간 싱크 탱크인 현대아산 정책연구원이 ‘북한 교화소 내의 인권 실태~전거리 교화소 내의 사망과 질병의 비율을 중심으로’를 간행했다. 모두 수감 체험이 있는 상당수의 탈북자를 면접하고 들은 귀중한 조사지만, 수감 시기가 2012년 이전의 사람이 대부분, 즉 김정은 정권 출범 이전의 체험이 중심이 되고 있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인권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은숙 씨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민중은 여전히 소름끼칠 듯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증언을 소개하려 한다.
◆ 상상을 초월하는 ’12호 교화소‘는 마치 죽음의 형무소
전거리 교화소는 중국 국경에서 수십 킬로 정도 떨어진 산간에 있다. 중국에 월경(越境) 후 송환된 사람이 많아 6할 정도를 차지했다. 이외 밀수나 금지된 한국 드라마의 비디오를 본 사람, 각성제 사용자도 있었다고 한다.
“수감동에는 남자가 2000명, 여자는 600명 정도 있었습니다. 좁은 방에 빽빽히 가득 밀어넣어 자다가 몸을 돌릴 수도 없는 정도였습니다. 남자는 인근의 동 광산 채굴과 목공 일, 여자는 목공과 가발 만들기. 생산품은 중국에 수출한다고 합니다. 농작업도 시켰습니다. 여성 수감자도 매를 맞습니다. 맞아 다리가 부러져 불구가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영양실조와 위생 상태가 나빠 병에 걸린 사람이 많아 계속해서 사람이 죽었다는 증언에는 숨을 멈췄다.
“옥수수를 통째로 갈아 만든 밥이 한 끼에 150그램 정도 나왔는데 중노동을 시키니 배고파 죽을 지경입니다. 찬은 없고 소금 국만.”
은숙 씨에 따르면 간수는 뱀과 쥐를 잡아 삶아 먹거나 구워 먹는 것을 장려하고 있었다고 한다. 수감자가 죽으면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이다.
◆ ‘하루에 3명은 죽었다…’
“3일에 한 번 남자 죄수가 시체를 10구 정도 모아 짐수레에 싣고 가까운 산에 운반합니다. 시체는 태워 재를 버립니다. 가족에게도 통보하지 않습니다. 전염병과 굶주림으로 하루 평균 3명은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3명이라면 1년에 1000명을 넘는다. 믿겨지지 않아 은숙 씨에게 몇 번이나 되물었지만 “정말입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죽은 사람이나 출소자와 교대하는 것처럼 새로 사람이 계속 들어왔다고 한다.(거의 같은 내용을 전출의 한국 두 연구소가 보고하고 있다).
몇 년의 형기를 마치고 풀려난 은숙 씨는 반생반사(半生半死) 상태였다고 그녀의 어머니가 전했다. 우리와의 전화 통화 끝에 은숙 씨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한국에 데려가 주실 수 없어요? 이제 이 나라에서는 못 살겠어요.”
김정은 시대가 된 지금도 인권 상황의 개선 조짐은 없다. 핵무기와 미사일만 주목받고 있지만, 이웃 나라의 국민이 심하게 유린되고 있는 현실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은숙 씨의 상세한 증언에 대해서는 이후에 보고한다. (이시마루 지로)
















배 고파 강냉이 몇알을 입에 삼키면 그것으로 끝이란다. 지금 남조선에선 동물(개 고양이)에게도 고기통조림을 먹이더라만. 북한의 농장에서 일하는 소들의 몰골도 사람처럼 먹지 못해 소름 끼치도록 말라 가고 있더라. 한반도 북쪽은 밤이연 암흑이다. 허나
남반부는 환하게 밝혀져 있어 마치 섬처럼 보이더라. 나,개성에서 중학교를 다닐쩍
북의 수풍땜에서 서울까지 송전하던 전기를 끊었다. 개성은 깜깜이 절벽이었다.
70년이 지나고 보니 어쩌면 이렇게도 남북이 거짓말 처럼 바뀌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