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김 열풍`, 이대로 좋은가
이상돈 본지 편집위원(중앙대 법대 교수)
미국에서 국가기밀 서류를 한국 측에 건네준 혐의로 수감됐다 풀려나 보호관찰을 받아온 로버트 김(64·한국명 김채곤)이 7년 6개월 간의 수형생활과 1년여의 보호관찰을 끝으로 집행이 종료됐다. 그는 내달쯤 우리나라를 방문할 계획이다. 이에 국내언론들은 또 다시 그를 애국자로 칭송하고 있다. 그는 과연 애국자인가? 아래 글은 로버트 김 애국자 논란과 관련해 중대 법대 이상돈 교수가 지난해 8월 본지에 기고한 칼럼이다.(편집자주)
요즘 ‘로버트 김 열풍(熱風)’이라고 할 만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모든 신문 방송이 단지 조국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옥고(獄苦)를 치른 로버트 김에 대해 조국이 보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로버트 김 후원회’가 생겨서 전 국민을 상대로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으니 촛불 시위의 재판을 보는 것 같다.
이상돈 교수
김씨 문제에 대해선 보수와 좌파가 보조를 같이 하고 있다. 지난 6월 초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로버트 김에 대해 무관심한 우리 정부를 질타했다. 최근에 로버트 김은 저서를 펴내었고, 조국이 자기가 한 행동을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로버트 김 사건은 ‘스파이 사건’이다. 스파이 사건의 진실은 꽤 오랜 세월이 흘러야 윤곽이 드러나는 법이다.
김씨 사건과 관련해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은 점이 몇 가지가 있다. 도무지 무슨 동기로 김씨가 미 해군의 기밀문서를 한국 대사관의 무관이던 백동일씨에게 넘겨주는 무모한 행동을 했나 하는 점이다.
김씨는 미국에 대한 충성서약을 하고 미국 시민이 됐고, 또 비밀엄수 선서를 하고 비밀취급인가를 받았다. 그가 근무하던 미 해군 정보국은 1985년에 유대인 직원이던 조너던 폴라드가 일급 기밀을 이스라엘 정보부에 넘겨주다가 발각된 곳이다. 김씨가 그런 사실을 몰랐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김씨가 백씨에게 넘겨준 정보가 그의 말대로 정말 중요한 것이었는지, 또는 당시 익명의 미국 관리 말대로 이미 한국측에 전달됐던 것들인지도 알 수 없다. 한국군 고위층이 당시 상황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김씨는 1996년 9월 말에 한국 대사관 주최로 워싱턴 근교에서 열린 국군의 날 기념 리셉션에서 FBI에 의해 체포됐다. 1주일 후 그가 낸 보석 신청은 기각됐다. 담당 판사는 그가 한국으로 도주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 그 해 10월6일자 뉴욕타임스는 김씨가 카드 빚 10만 달러를 지고 있고 집은 3개의 저당권에 잡혀 있다고 지적했다. FBI는 법원에 제출한 증거물을 통해 김씨가 미국 정부에서 은퇴한 후 한국 정부기관에서 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했고, 또한 동생과 함께 무엇인가를 한국에 수출하기 위한 계획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수출계획에 대한 FBI의 주장은 입증되지 못했지만, 2000년 6월27일 미국 상무부는 김씨의 수출면허를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김씨와 김씨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점에 대해 해명할 필요가 있다.
김씨는 검찰과 유죄협상(plea bargain)을 통해 최고형량이 징역 10년인 모의(conspiracy)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판사는 김씨에게 징역 9년이란 무거운 형벌을 선고했다. 이렇게 해서 김씨는 7년 반 동안이나 감옥에 갇혔다. 김씨는 무거운 형벌이 내려진 것은 자기가 외국 태생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방국간에도 첩보행위는 있기 마련이나 미국시민이 자기의 인종적 모국을 위해 스파이 행위를 한 대표적 경우는 1985년에 일어난 유대계 미국인 조너던 폴라드 사건이다. 중앙일보와 조선일보의 사설은 이스라엘 정부가 폴라드를 구출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김씨에 무관심한 우리 정부를 비판했다.
폴라드는 체포된 후 혐의를 인정하고 검찰과 유죄협상을 했으나 뜻밖에 법정 최고형인 종신징역을 선고받았다. 그가 중형을 선고받은 데 대해선 말이 많다. 미국 정보기관은 너무나 많이 알고 있는 그가 사회로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주장이 있나 하면, 그가 누출시킨 정보 때문에 당시 소련에서 활동하던 미국의 첩자가 희생됐다는 설, FBI에 침투해 있던 소련 첩자가 그를 함정에 빠뜨렸다는 설 등 온갖 이야기가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신문이 이 사건을 대서특필한 것이 판결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분명하다. 폴라드는 재판정에서 감옥의 흑인 수형자들 때문에 수감생활이 어렵다는 말을 해서 사건을 담당한 흑인 판사를 분노케 했다. 폴라드를 기소한 검사는 미국 시민이 미국의 기밀을 자기의 인종적 조국에 넘기는 것은 가장 가증스런 간첩행위라 면서 법정최고형에 처할 것을 요구했다. 폴라드의 범행동기는 분명했다. 그는 미국이 이스라엘의 안보에 중요한 정보를 이스라엘에 주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서 많은 극비문서를 이스라엘 정보부에 넘겼던 것이다.
로버트 김 사건은 이스라엘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일으켰다. 폴라드가 10년 이상 복역해서 이제는 석방이 가능하다고 보았던 시점에서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스라엘 정부는 중동 평화협상과 결부시켜 폴라드의 석방을 클린턴 대통령에게 부탁하기까지 했지만 거부당했다. 미군 당국과 정보기관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1967년 6일 전쟁 중 미 해군의 첩보함 리버티 호가 이스라엘 공군기에 의해 격침된 데 대해 미 해군이 뒤늦은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이스라엘 정부는 폴라드에게 이스라엘 국적을 부여하는 등 그를 구해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노력은 대체로 비공식적인 것이었다. 2002년 1월에는 전 총리 네타냐후가 노스 캐롤라이나의 교도소를 방문해서 수감 중인 폴라드를 만났다. 막후 교섭이 실패로 끝난 데 대해 좌절해서 그런 파격적인 방문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내 유대인 단체들은 침묵을 지켰다. 유대인이며 2000년 대선 때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나섰던 조 리버만 상원의원은 폴라드가 감옥에서 죽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폴라드 석방운동과 김씨 사건이 상호간에 나쁜 영향을 주었다고 볼 여지도 있다. 로버트 김이 석방되자 폴라드 문제가 또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폴라드의 첫 번째 부인은 이스라엘 정부에 대해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김씨 후원운동이 대외적으로 어떻게 보일 것인가 하는 점도 문제다. 지난 6월 초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미국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스파이를 한국인들이 지지하고 나서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김씨에 대한 우호적인 반응은 반미(反美)운동으로 비치는 것이다. 지금처럼 김씨 후원운동이 계속되면 미국 언론은 갈수록 한국에 비판적인 자세를 취할 것이다. 그것은 결국 한미 동맹관계를 저해할뿐더러 미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교포들, 특히 이제 미국 사회의 주류(主流)로 진출하기 시작하는 교포 2세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정부는 미국 서해안 지역에 사는 일본계 주민들을 집단수용소에 가둔 적이 있다. 이들이 일본과 내통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였지만, 그것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기본권 유린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로버트 김을 공공연하게 ‘영웅’으로 치켜세운다면 미국의 이 같은 조치는 정당한 것이 아니었을까 ? 우리 모두 냉정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관련기사>
[해외칼럼] South Korea`s `heroic` spy
데이비드 스코필드(David Scofield)英 셰필드 대 동아연구소 선임 연구원
로버트 김, 미국 군사 정보 넘겨줘...(한미)동맹관계에도 악영향 미쳐
최근 한국의 언론과 정치인들은 간첩혐의로 구속된 후 7년 6개월 만에 풀려난 로버트 김에 대해 연일 치켜세우고 있다. 이와 함께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는 지난 화요일 뚜렷한 결말 없이 끝나버렸다.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은 지난 1974년 미국에 귀화한 이후 美 해군정보국에서 1급 기밀정보를 다루는 컴퓨터 분석관으로 근무했다.
그는 이곳에서 근무 중 북한과 중국 잠수함의 배치현황 등에 관한 군사기밀 자료를 1990년대 중반 주미 한국대사관의 해군 무관이었던 백동일 대령에게 넘겨주었다. 증거에 따르면, 그는 신뢰를 쌓고 미래에 잠재적으로 더 수지맞는 이중행위를 위한 길을 닦기 위해 한국측에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FBI의 감청 기록에 따르면 로버트 김과 그의 동생인 김영곤씨는 미군이 보유한 비밀 컴퓨터 시스템과 이에 대한 제조 기술 등을 한국정부에 판매할 계획(plan)을 고안(devise)했다. 만일 이 계획이 성공했다면 두 형제는 횡재(windfall)를 했을 것이다.
당시 로버트 김은 계약을 통해 수출 허가를 받아 냈으며 합법적인 루트를 통해 미국의 민감한 기술이 한국에 넘어갈 뻔했다. 한편 지난 2000년 6월 美 상공부는 이 기술에 대한 수출 금지를 명령했다. 스파이활동은 대개 돈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나 로버트 김은 그의 행동 동기가 단지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 대한 애국심 때문이었다며 사실과 다른 발언을 해 혼란을 주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그의 말을 여과 없이 받아들임으로써 그를 영웅으로 만들고 있다. 물론 로버트 김의 선동 행위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는 국가의 안보 문제와 관련된 정보를 가지고 음모를 꾸몄던 사실에 대해 변명을 하고 있다. 체포 당시 수사관들이 조사한 산더미 같은 증거 자료를 그에게 들이댔을 때 그는 자신의 혐의에 대해 변명을 했다. 특히 그는 북한에 대항해 강력한 동맹관계를 유지했던 한미관계를 고려해 선처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한국의 언론들은 보도 하지 않았으며 한국인들은 이 사실을 무시해 버렸다. 현재 한국에서 로버트 김은 좌파와 우파 그리고 정부 내에서 모두 그는 사심 없이 조국을 위해 일한 애국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로버트 김은 그가 정말로 사랑한다는 한국에 정착을 할 의사가 없다. 물론 그가 여전히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미국 시민권을 포기할 의사를 표명한 적도 없다.
로버트 김과 관련해 한국의 언론과 정부가 취하는 태도는 다음과 같다. 복잡한 세계를 단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태도로 본다는 점, 그리고 국가의 안보와 관련된 모든 행위는 선한 행동이 된다는 논리이다. 결국 이러한 인식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현실성과 타당성을 벗어나 로버트 김이라는 인물을 국가적 신화(myth)로 만든 후 혈맹관계인 미국을 내던지는(cast) 결과를 낳았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당은 로버트 김과 그의 가족을 후원할 것을 약속했다. 현재 로버트 김의 동생인 김성곤씨는 열린당의 의원이며 최근 국회는 로버트 김 사진전까지 열었다. 언론들은 연일 로버트 김씨의 한국행을 희망하는 논조의 사설을 쓰고 있으며 그가 일선 학교를 돌아다니며 어떻게 하면 애국자가 되는지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고 하고 있다.
로버트 김은 애국자가 아니다. 그는 단지 미국에서 가졌던 높은 신뢰를 요구하는 지위를 이용한 부패한 한국계 미국인일 뿐이다. 그에 대한 한국의 반응은 간첩행위는 부를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논리를 만들어 냈다. 이는 결국 ‘(한미)동맹의 미래’(future of the alliance)에도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아시아타임스 2004/6/12
`로버트 김 열풍`, 이대로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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