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붙잡을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에게 가장 공평한 것은 시간입니다. 대통령도 24시간, 거리의 노숙자도 24시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병(病)에 걸리면 100%의 치사율을 보인다’, 바로 ‘죽을 병’입니다. 또 다른 답은 인간으로 태어난 병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면 틀림없이 죽게 되니까요.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백지 위에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 하는 것이겠죠. 집단적으로 얘기하면 국민이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는 것. 지난 70년 동안,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해서 그림을 그렸는데, 인류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그림일 것이라 믿습니다. 북한은 똑같은 ‘시간 백지’ 위에 지옥을 그렸습니다. 우리는 문명을 그리고, 북한은 폭압을 그렸습니다.
그런데도 세 사람,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는 아직도 건재합니다. 이승만(李承晩)·박정희(朴正熙0 두 위대한 지도자의 경우는 어떤가요? 한 분은 하야한 다음 미국으로 망명해 타향(他鄕)에서 생을 마감했고 시신(屍身)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부하의 총에 시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이렇게 평가할 것입니다. 이승만·박정희는 ‘자기 성공의 희생자’로, 김일성·김정일은 ‘자기 실패의 성공자’로. 북한 3대는 자신의 인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압제에 성공함으로써 장수를 누리고 제 명(命)대로 살았습니다. 반면 북한 주민들은 불행해졌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불행 위에 쌓은 성공이니, ‘자기 실패의 성공자’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승만·박정희 두 사람은 그들이 가르친 민주주의, 그들이 만들어낸 중산층의 반발로 권좌에서 물러났습니다. ‘자기 성공의 희생자’입니다. ‘자기 실패의 성공자’인 북한 3대, 그러나 그 운명이 김정은까지 계속될 것이라 보는 것은 역사에 대한 오만한 해석이 될 것입니다. 역사는 결코 김정은까지 김일성처럼 죽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역사 얘기가 나왔으니, 세계사 산책을 해볼까 합니다.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Oval Office)가 있는 웨스트 윙(West Wing) 벽에 프랑스 대통령인 마크롱과 함께 찍은 사진을 걸어놓았다가 그 사진을 떼버리고, 김정은과 싱가포르 회담에서 찍은 사진을 걸었다고 합니다. 이를 보도한 월스트리트 백악관 출입기자는 ‘마크롱 대통령과 최근 관세문제 때문에 관계가 껄끄러워졌는데 그것이 이런 사진교체에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뉘앙스로 글을 썼습니다.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사진을 집무실에 여섯 장이나 걸어놓았다는 것을 보면 그 만남을 굉장히 자랑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만난 것을 ‘상당히 영광스럽다’고 표현했고, 김정은에 대해 “만나보니 정말 멋진 사람이더라, 북한 주민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북한 주민도 그를 사랑한다”고 했는데, 그의 발언들이 그저 농담이나 외교적 수사(修辭)가 아닌 듯합니다. 독재자에게 뭔가 홀린 사람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대통령 사진을 빼버리고 김정은의 사진을 걸어놓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역사에 대한 무지(無知)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것은 히틀러, 스탈린, 무솔리니의 사진을 걸어놓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학살자, 암살자, 반인류 범죄자의 사진을 부끄럼 없이 걸어놓았을까요?
프랑스와 미국 사이에는 정말 숙명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이번 사진 교체 건을 보고 필자는 트럼프가 정말 배은망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의 독립은 프랑스의 도움이 없었으면 절대 불가능했습니다.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을 가져다준 제 1등 공신입니다. 이것을 얘기하려면 18세기 유럽에서 벌어진 7년 전쟁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1756~1763년 사이 7년 전쟁이 유럽에서 일어났습니다. 합스부르크 왕조가 다스리던 오스트리아, 그리고 상대는 영민한 지도자 프리드리히 2세가 이끄는, 신흥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던 프러시아였습니다. 이 두 나라가 티격태격하다 벌어진 전쟁이 7년 전쟁이었는데, 유럽의 나라들이 두 편으로 갈라졌습니다. 오스트리아 쪽에는 프랑스와 러시아가 붙었고, 프러시아 편에 선 나라는 영국이었습니다. 이 전쟁은 유럽에서의 전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때 영국과 프랑스는 세계에서 식민지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서로 부딪히고 있었죠. 세계 해양 발전사를 보면 포르투갈이 가장 먼저 진출하고, 다음으로 스페인, 그리고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뒤따릅니다.
영국은 17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진출하는데 주로 인도와 아메리카 대륙으로 갑니다. 북미(北美) 대륙에는 영국으로부터의 이민자들, 종교탄압을 피해 온 청교도들의 이주가 늘면서 영국은 곳곳에서 식민지를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뒤따라 온 나라가 프랑스였습니다. 그래서 영국과 프랑스가 북미 대륙에서 충돌하게 됩니다. 인도에서도 마찬가지죠. 이렇게 해서 7년 전쟁은 인도와 미국에서도 벌어집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영국의 승리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캐나다에서 영국은 프랑스 세력을 몰아내고 퀘백을 점령합니다. 인도에서도 영국군이 프랑스를 물리칩니다. 그 결과, 영국은 식민지 제국의 선두그룹에 서게 됩니다. 7년 전쟁은 무대가 세계 전체였기 때문에 ‘세계전쟁’이라고도 합니다. 이 세계전쟁에서 영국이 이긴 것입니다. 프랑스가 이 패배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을 무렵, 바로 1775년 미국에서 독립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미국의 독립전쟁은 세금 문제로 일어났습니다. 세금을 많이 물리는 데 반발한 사람들이 조직을 만들게 되고 ‘이럴 바에야 영국으로부터의 독립국을 만들자’ 하고 일어난 것이 미국의 독립전쟁입니다. 이 독립전쟁의 지휘자는 바로 ‘조지 워싱턴’입니다. 그는 과거 영국군에 근무하기도 했는데, 7년 전쟁에 참전해 프랑스군을 많이 죽이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조지 워싱턴이 이끌던 독립군은 사실 오합지졸(烏合之卒)에 가까웠습니다. 정규군도 아니고 대부분 민병대다 보니 영국의 정예부대에 밀려 연전연패(連戰連敗)하고 있었습니다. 가만 두었으면 영국에 의해 진압될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프랑스가 개입하게 됩니다. 미국 독립군에서 ‘벤자민 프랭클린’을 프랑스에 보내어 외교 공작을 하게 되는데, 그 결과 프랑스는 7년 전쟁에서 진 복수전을 미국의 독립전쟁에서 하게 됩니다. 프랑스는 조지 워싱턴의 독립군을 대규모로 지원합니다. 처음에는 탄약을 보냅니다. 독립군이 쓴 탄약, 총알의 90%가 프랑스가 보내준 것이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드디어 실 병력을 보냅니다. 대서양 함대를 보내고 1만 명이 넘는 정규군을 보냅니다.
이렇게 해서 독립군이 살아나게 되고 마지막 결전이 1781년 버지니아州 항구 요크타운에서 벌어집니다. 약 2만 명의 병력이 9000명의 영국군을 포위합니다. 프랑스군이 약 9000명, 군함이 29척, 미국 독립군이 약 8000명. 여기서 영국군이 항복을 해버립니다. 전투의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았으나, 전투규모 자체보다는 상징성이 있는 전투였습니다. 당시 영국 정치권에서는 미국의 독립을 굳이 막을 필요가 있는가 하는 反戰論이 많았는데, 마침 영국군이 요크타운에서 항복해버리니 영국 정치권이 확 돌아서게 된 것입니다. 영국은 마침내 미국의 독립을 허용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무엇을 얻었는가? 득본 게 별로 없습니다. 승리의 기쁨 외에는. 이때가 프랑스 루이 16세 시대인데, 독립전쟁에 전비(戰費)를 너무 많이 쓰다 보니 재정이 적자로 돌아서게 됩니다. 그 결과 세금을 많이 거두게 되고, 프랑스의 부르조아 자본가 그릅이 반발하게 되어 결국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미국의 독립운동에 돈을 너무 많이 썼던 루이 16세의 재정파탄이 그 원인입니다. 사실 프랑스로서는 억울한 일입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트럼프 대통령이 인식한다면 어떻게 프랑스 대통령 사진을 떼고 어린 독재자, 미국의 적(敵)인 김정은의 사진을 걸 수 있습니까? 역사에 대한 무지 그리고 무시입니다. 프랑스와 영미권(英美圈)이 항상 사이가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프랑스와 미국은 협력할 때는 협력해 온, 모양이 꽤 근사한 사이였습니다. 프랑스가 독일의 침공으로 위기에 빠졌을 1차 세계대전 때, 영국이 도와주고 마지막에는 미국의 ‘위드로 윌슨’이 참전을 결심하고 대군을 보내주어서 결국 독일을 물리칩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막강한 프랑스군이 독일의 전격전에 걸려 6주 만에 항복하게 됨으로써, 영국만 남은 상황이 됩니다. 영국 윈스턴 처칠의 영웅적인 투쟁이 계속되다가, 일본이 1941년 12월에 진주만을 공격함으로써 미국이 참전하게 되고,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프랑스가 해방됩니다. 그리고 드골이 프랑스 망명정부를 이끌면서, 이제는 패전국이었던 프랑스가 전쟁 마지막에는 승전국이 됩니다. 그리고 독일을 분할 점령하는 네 나라(프랑스·영국·미국·소련)에 프랑스가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영국의 처칠과 미국의 아이젠하워의 도움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미국을 독립시켜준 프랑스가 미국으로부터 1차, 2차 세계대전을 통해 큰 도움을 받은 격이었습니다. 프랑스는 이 고마움을 어떤 식으로 표시했을까요? 뉴욕의 상징물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준 선물입니다. 역시 미술 강국답게 근사한 작품을 선물한 것입니다. 그 선물은 현대 가장 인기 있는 조각품이 되었습니다. 여신상의 골조는 철근으로 되어 있는데, 만든 사람은 바로 에펠탑을 만든 ‘에펠’입니다.
프랑스 파리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하철역 이름에 ‘프랭클린 루즈벨트’역이 있습니다. 샹젤리제 거리에는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 동상과 함께 영국의 처칠 대통령 동상도 있습니다. 또 1차 세계대전 격전지에 가보면 프랑스를 도와주었던 미국 장군들의 동상도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 여사가 프랑스계여서인지 몰라도 프랑스 전국에 ‘존. F. 케네디’ 이름이 붙은 거리가 많습니다. 드골 대통령이 케네디 대통령 사후(死後)에 지시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2차 세계대전 전우(戰友)이기도 했던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크게 도와준 일도 있습니다. 1960년 초 파리에서 강대국 정상회담이 열립니다. 그때 소련의 후루시초프와 미국의 아이젠하워가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그 직전에 미국이 띄운 U2機라는 정찰기가 소련의 미사일에 격추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조종사는 죽지 않고 생포됐습니다. 후루시초프는 이 사건을 좋은 비난거리로 삼아 정상회담 자리에서 신랄하게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공격합니다. 이 때 사회를 봤던 사람이 드골이었습니다. 드골은 곤경에 처한 아이젠하워 편을 듭니다. 그는 흥분하는 후루시초프 서기장을 향해 “지금 이 순간 소련에서 쏘아올린 첩보 위성이 프랑스 위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좀 조용히 합시다.”
이처럼 프랑스와 미국, 서로 언어와 문화권이 다른 나라지만, 자유라는 가치에는 같은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나온 프랑스의 인권선언, 프랑스의 3색기(旗)에도 박힌 자유·평등·박애, 그리고 미국의 독립선언, 이 두 가지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나타내는 가장 고귀한 문서입니다. 이것이 프랑스와 미국의 진정한 우정입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다면, 어떻게 프랑스 대통령의 사진을 떼고 자유를 말살하는 어린 독재자의 사진을 걸 수 있을까요? 프랑스 사람을 대신해 흥분해 봅니다.
프랑스 대통령 사진을 떼고 김정은 사진을 건 트럼프의 배은망덕(背恩忘德)
- 조샛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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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6-21, 17: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