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시와 천치의 세상


홍콩영화나 중국 무협소설을 보면, 가끔 강시가 등장한다. 그것은 겉보기에는 멀쩡한 사람이지만, 실은 시체로서 찔러도 피도 나지 않고 팔다리가 잘려도 아픈 줄 모르고 가공할 무공을 휘둘러 악마의 화신인 주인의 명령에 따라 닥치는 대로 살생을 자행한다. 백도와 흑도 가릴 것 없이 전대의 고수가 강시가 되는 수가 많아서 그 무공이 상상을 초월한다. 어둠을 물리치고 밝음을 되찾으려는 주인공과 그를 따르려는 소수의 의인들이 이들을 마주치는 순간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된다. 최대의 고비다. 이들을 격파해야만 마교의 교주를 만나 최후의 일전을 치를 수 있는데, 이들 강시에 가로막혀 만사휴의(萬事休矣)가 될 판이다.

새 천 년에 접어들면서 난데없이 한국에 강시들이 출몰한다. 주로 대학교수란 중에 이런 자들이 많다. 송모라고 북한을 들락거리던 자가 독일에서 학자적 양심과 남북화해를 들먹이며 날아오더니, 이제는 강모라고 UN의 3년 연속 대북 인권 결의안에는 길길이 뛰는 자가 귀하신 몸에 손을 대면 UN에 제소하겠다, 어쩌겠다, 하면서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 날뛰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강모라고 예쁘장한 천치가 송모의 뒤를 봐 주더니, 이젠 천모라고 영리하게 생긴 천치가 북한주민 2천만 인권에는 악어의 눈물 한 방울 흘릴 줄 모르면서 불구속 수사 원칙이라는 인권을 들먹이며 강모를 위해 법의 철권을 휘두른다. 환한 미소를 곁들이면서!

강시가 설치고 천치가 날뛸 때는 최후의 결전이 임박한 시점이다. 어둠이 막바지에 달한 때이다. 악의 세력이 드디어 제 세상을 만났다고 득의만면하는 때이다. 강시와 천치야 스스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리 없다. 설치고 날뛰는 자체가 즐겁기만 하다. 리모컨으로 강시를 조종하고 선전선동으로 천치를 부려먹는 자가 머잖아 정체를 드러내어 최후의 일전을 벌이려 할 것이다. 그 자는 오로지 힘에 의해서만 거꾸러지기 때문에 반역의 누명을 쓴 주인공과 그를 따르는 소수의 의인들은 지혜와 힘을 한데 모아 최후의 일전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그래야 수천만 노예를 해방하고 수천만 반노예가 또 다른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어둠은 밝음을 이기지 못한다. 강시와 천치는 밝은 세상이 오면 절로 사라진다. 무덤으로 들어가거나 특수학교에 들어간다. 가장 무서운 존재는 강시를 만들고 천치를 부려먹는 교주이다. 이 마교의 교주도 진리의 레이저 빛에 쏘이면 두 눈을 감싸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다. 그러면 세상에는 폐허 속에서 희망의 싹이 힘차게 솟아오른다.

(2005.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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