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에 칼을 댄다①

KAL의 안전을 따질 권리

화살 맞고 빈사 상태에 빠진 가련한 새-대한항공(KAL). 지난 1983년은 온 국민들이 「우리의 날개」 KAL과 함께 앓고 분노했던 한 해였다. 힘겹게 날개를 푸드득거리며 떨어지는 한 마리 새를 포근히 감싸고 덮어 주는 데 있어서 우리는 아낌이 없었다. 우리 나라의 어느 기업이 KAL 만큼 국민과 정부, 그리고 언론의 귀여움을 받았을까?
그러나 환자를 쓰다듬기만으로 낫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KAL의 경우, 우리의 동정과 관용이 지나쳐서 오히려 병세를 더욱 위중하게 만들지는 않았던가? 이제는 따뜻한 간호만큼 차가운 메스도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필자가 여기서 KAL에 들이대려고 하는 칼은 난도질용이 아니라 수술용이며, 드는 매는 몽둥이질하려는 게 아니라 채찍질하자는 것이다. 이 기사는 대한항공의 실질적 주인인 趙重勳 회장이나 조종사들을 위한 글이 아니다. KAL기에 목숨을 맡기는 年 4백80만 명(83년)의 승객들을 위한 글이다. 공무원들을 비롯한 많은 해외 여행자들에게 KAL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숙명이다. KAL의 안전은 바로 우리의 안전이다. KAL에 대한 건강 진단은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KAL은 다름아닌 「우리의 날개」이니까.
지난 1월12일 오후 2시50분, 나는 취재를 마치고 日本 후쿠오카 공항에서 대한항공 A300기에 몸을 실었다. 1시간10분 뒤 약 2백명을 태운 A300은 金浦공항 상공에 도달했다. 폭설이었다.
여객기는 눈발이 걷히길 기다리며 홀딩(대기 선회)에 들어갔다. 우리 비행기뿐 아니라 3~4대의 여객기가 金浦 상공에서 층층이 대기 선회를 하고 있었다.
조종사들이 「곶감 꿴다」고 말하는 게 이런 홀딩이다. 선회 비행기들은 상하로 300m씩 분리되긴 했지만 지척이 안 보이는 구름 속에서 덜컹거리며 뺑뺑 도는 건 기분 나쁜 일이었다. 조종사들도 약 4분마다 1회전하는 홀딩 선회를 몇 번 계속하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약 30분간 선회하다가 A300은 착륙 허가를 받았다. 꿰인 곶감처럼 돌고 있던 비행기들은 폭설이 끝나자 밑에서부터 차례로 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벨트를 매라」는 기내 방송과 함께 A300은 구름을 뚫고 다이빙을 시작했다.
A300은 활주로로부터 반사되는 수직·수평의 유도 전파를 약7백50미터 상공에서 포착했다. A300은 이 전파가 만든 「보이지 않는 미끄럼틀」을 따라 활주로를 향해 3도 경사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활주로가 곧 기장의 시야에 들어왔다.
착륙 바퀴를 내리는 「꺽」 소리가 기내에선 반갑게 들려왔다. 늦어도 2분이면 착륙이다. 바로 이 순간 金浦 타워 관제사가 다급하게 조종사를 불렀다.
『고아 라운드!』
A300은 갑자기 기수를 치켜들고 급상승을 시작했다. 승객들의 얼굴엔 불안의 표정이 역력했다. 활주로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우리 비행기 바로 앞에선 착륙한 대한항공 소속의 다른 A300기가 정류장으로 빠지는 誘導路를 향해 좌회전하는 순간 활주로를 벗어나 맨땅에 박히고 말았다.
金浦타워 관제소에서는 이 사고를 알 수가 없었다.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기장은 엔진에 힘을 주어 비행기를 활주로 위로 끌어올리려다가 더 깊숙이 빠지고 말았다.
그제야 그는 무전으로 황급히 관제소에 사고 사실을 알렸다. 내가 탄 A300기가 활주로에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관제소가 황급히 착륙 중지 지시를 내린 것이 이 때였다. 활주로는 그 뒤 1시간30분 동안 폐쇄됐다. 우리 비행기는 金海공항으로 날아가 착륙, 2시간쯤 기다리다가 다시 金浦로 올라왔다.

조종실의 對話 부족이 사고 원인

이번 취재를 하다가 우연히 이 A300기의 당시 기장 朴모씨(55)를 만났다. 그는 지난 2월1일자로 정년 퇴직했다. 원래는 3월 말에 퇴직하고 회사의 배려가 있으면 촉탁으로 계속 조종간을 잡을 수 있었으나 폭설 속의 그 비행이 문제가 됐던 것이다. 金浦에서 착륙을 포기하고 재상승했을 때 朴 기장은 어느 교체 항공으로 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KAL이 지정하고 있는 金浦 폐쇄시의 교체 공항은 서울 근교의 ○○비행장과 金海다. 당시 ○○비행장 상공에서는 임시 착륙하려는 비행기들이 많이 몰려 선회중이었다. 朴기장은 金海로 결정했다.
『기수를 남쪽으로 돌렸을 때 항공 기관사가 그 때야 「회사에서 ○○으로 가라고 하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지금 와서 그런 말을 전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버럭 화를 내곤 金海로 갔다』
金海에 내려 연료 잔량을 조사했다. 약1천5백kg. A300이 약15분간 뜰 수 있는 양이었다. 만약 예기치 못한 일로 金海 활주로마저 폐쇄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당시를 회상하니 오싹해졌다. 우리 나라 항공법은 여객기가 반드시 실어야 할 法定 연료를 규정하고 있다. 목적 항공까지의 비행 연료에다가 이 연료의 10%를 비상용으로 더하고, 목적 공항에서 교체 공항 상공에서 30분 동안 홀딩할 수 있는 연료를 추가한다.
이 법정 연료 이외에 항공사마다 약간의 예비연료를 더 싣기도 한다. 朴기장이 몬 A300은 후쿠오카에서 약 16t의 제트油를 싣고 떴었다. 金浦 상공에서 홀딩하면서 기름을 많이 써 착륙 포기를 했을 땐 약 6.4t이 남아 있었다. KAL에선 『그런 적은 양으로 왜 먼 金海로 갔느냐?』고 朴기장을 문책, 그를 조기 퇴직시킨 것이었다.
『기장으로서 내가 책임을 진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게 된 원인은 조종실 승무원(기장, 부기장, 기관사)끼리의 대화 부족이었다. 홀딩, 착륙, 시도, 포기 등의 과정에서 나는 조종간을 꽉 붙들고 진땀을 뺐다. 이럴 땐 부기장과 기관사가 알아서 제때 제때 비행정보를 기장에게 제공, 그의 판단을 도와야 한다. 그 날 착륙 포기 뒤 급상승했을 때 기관사가 즉시 연료 잔량이나 회사의 지시 사항을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더라면 金海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朴 기장은 『항공기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조종실 근무자끼리의 의사 소통 부족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착각의 연속이 부른 충돌 사고

「우리의 날개」 KAL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12월23일 오후 2시21분 美國 앵커리지 공항에서 일어난 KAL 화물기 충돌 사고의 우리 측 조사 결과는 나라 안에선 알려지지 않고 있다. 기자가 이번 취재로 알아낸 진상은 이렇다.
사고 당시 앵커리지 공항은 폭설 뒤 안개로 쌓여 있었다. DC10 기장 李範熙씨는 활주로 32를 사용, 이륙하라는 관제소의 지시를 받았다. 이 공항에는 3개의 활주로가 있었다. 李 기장은 정류장에서 DC10을 몰고 활주로 32를 찾아나섰다. 앞뒤가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이었지만 李 기장은 경험을 되살려 誘導路를 따라 두 번 우회전을 한 뒤 활주로에 진입했다. 유도로에서 李 기장은 『좀 이상한데 잘못 든 게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곧 DC10은 이륙을 위한 활주에 들어갔다. 비행기 속도가 60, 80, 90노트로 올라가고 있는데 활주로 저 끝에 경비행기가 한 대 서 있지 않은가? 그 때는 이미 두 비행기의 거리가 20m도 되지 않았다. 李기장은 『아차! 실수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가 죽더라도 저 비행기는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순간으로 나더라고 했다. 그는 경비행기를 피해 좌회전하면서 기수를 치켜 올렸다. 앞이 번쩍 들린 기체의 가운데 바퀴가 경비행기의 날개와 부딪쳤다. DC10은 활주로를 너머 잡목이 있는 눈덮인 맨땅을 계속 질주했다. 李기장은 『이게 마지막이다』고 체념하면서 정신을 잃었다. 기름 64t, 화물 62t을 실어 자체 무게가 약 2백 50t이나 되었던 DC10은 울퉁불퉁한 맨땅을 달리면서 불덩어리로 변해갔다. 날개, 바퀴는 산산조각나고 동체의 뒷부분도 부러져 나갔다. 조종석이 있는 앞부분이 떨어져나가 구르다가 섰다. 조금만 더 달렸으면 해안 절벽을 넘어 바다로 떨어졌을 자리에 정지했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세 승무원은 조종석 창문을 열고 탈출, 목숨을 보전했다. 경비행기의 동체는 기적적으로 다치지 않았다. 거기에 탔던 승객 7명도 가벼운 부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DC10에 승객들이 타고 있었다면 태반이 죽었을 것이다.
ㅏ자 모양의 두 활주로 가운데 KAL기가 뜨기로 돼 있었던 것은 ㅡ자 활주로였다. 그러나 KAL기는 ㅣ자 활주로에 들어와 활주를 시작했다.
그것도 출발선에서 활주를 시작한 게 아니었다. 활주로의 약 4분의 3을 잡아먹은 지점에서부터 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달릴 활주로는 8백m 뿐이었다. DC10은 2천m 이상은 달려야 뜬다. 만약 경비행기가 활주로 끝에 없었더라면 KAL기는 이륙 전에 그대로 활주로를 너머 맨 땅을 지나 해안절벽을 뛰어넘고 바다로 처박혔을지도 모른다.
李 기장은 엉뚱한 활주로로 들어갔을 뿐 아니라 그 활주로의 중간에 진입해 놓고서는 출발선에 있는 것으로 오인, 활주를 시작한 2중 착각을 했던 것이다. 당시 활주로 주변의 각종 표지판은 눈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조종실에는 여러 개의 나침반이 있었다. 그 바늘은 KAL기가 떠야 할 3백20도 방향(기수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야 했다(실제 나침반은 2백4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조종실 근무자 3명 중 아무도 이 나침반을 확인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든 것 같다고 생각했다는 기장까지도. 「魔가 끼였다」고 하면 운명론은 될지언정 합리적 지적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이륙 전 점검 사항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었을까? 李기장은 『바깥에 너무 신경쓰다가 보니 나침반 보는 걸 깜박 잊었다. 육상에서는 계기를 보면서 비행기를 모는 일이 거의 없다. 나침반 확인이 습관화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런 불안한 상황에서도 「그 습관」이 기장의 행동을 지배했다는 것은 KAL조종사들의 루틴 체크 자세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INS 사고 많았다

지난해 12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작성한 소련기에 의한 KAL 007 점보기 격추 사건 조사보고서는 대한항공에 유리한 내용만 담고 있지는 않았다. 보고서는 스파이 비행설, 연료 절감을 위한 항로 단축설을 일축하면서도 항로 이탈의 책임을 KAL 조종사에게 슬쩍 돌렸다. 이 보고서는 관성 항법장치(INS) 3대의 동시 고장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 대신 조종사의 조작실수 가능성을 두 가지로 추정했다.
첫째는 KAL 조종사가 앵커리지 이륙 직후 비행 방향을 나침반 침로 2백46도로 맞춰 놓았다가 북태평양 상공 깊숙이 들어가서도 INS 유도 방식으로 스위치를 돌려 놓은 것을 잊어먹었다는 추정이다. 즉 007기는 INS로 유도되지 않고 나침반 침로 2백46도에 계속 이끌려 소련 영공으로 들어갔다는 말이다. 둘째는 조종사가 INS에 출발 지점 현재 위치(앵커리지 공항)를 찍어 넣을 때 경도를 실제보다 10도나 동쪽으로 誤入시켰다는 추정. 조종사는 오입된 걸 모르고 INS에만 유도를 맡겼다가 소련쪽으로 흐르게 됐다는 얘기다.
모의 시험 결과에 따른 이 추정을 KAL에선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결정적인 정보가 없는 지금 추정은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007사건 직후 많은 전문가들은 정확 무비한 INS를 장착한 비행기의 항로이탈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이번 취재 과정에서 INS는 결코 만능이 아니며 그런 사고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KAL에선 알려지지 않은 INS 사고사례를 더러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82년 9월28일 파리의 오를리 공항에서 KAL의 DC10 여객기가 이륙했다. 약 20분간 북쪽으로 비행한 뒤 禹 기장은 운항 방식을 INS로 바꿨다. 목적지는 앵커리지. 그런데 비행기가 거꾸로(남쪽으로) 내려가지 않는가? 기장은 INS에 출발지 위치(오를리 공항)를 잘못 찍어 넣었음을 깨달았다. 일단 이륙한 뒤에는 출발지 위치를 고칠 수 없다. 내버려 두면 INS는 엉뚱한 곳으로 비행기를 몰고 간다. 그렇다고 INS를 꺼버릴 수도 없다. 지상 항법 보조 시설이 있는 육지 상공에선 INS가 없어도 날 수 있다. DC10이 날기로 돼 있었던 것은 북극 항로였다. 이런 곳에선 편차가 심한 나침반을 믿고는 비행할 수 없다.
禹 기장은 귀환을 결심했다. 먼저 약 1천4백만 원어치나 되는 45.3t의 기름을 바다 상공에서 뿌려야 했다. 착륙가능 무게에 맞추기 위해서 였다. 禹 기장은 착륙 출발 위치를 수정, 다시 이륙, 무사히 운항을 끝냈다.
禹 기장은 20일간의 운항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와 비슷한 INS 사고는 호놀룰루 공항 등에서 몇번 더 있었으나 처벌을 각오한 KAL 조종사들의 용기 있는 귀환 결단으로 더 큰 사고는 모면되었다.

틈만 있으면 끼여드는 魔

INS에의 위치 입력은 이렇게 한다. 먼저 비행기를 정지시킨 다음 INS 스위치를 「스탠드 바이」 자리에 놓고 3대의 INS에 따로따로 출발지 위치를 찍어 넣는다. 보통은 부기장이 입력, 기장이 점검한다. 그 다음에 스위치를 「얼라인먼트」(정지) 자리로 돌리고 9개의 통과 지점 위치를 쳐 넣는다. 그런 뒤 15~30분쯤 기다리면 표시등에 초록 불빛이 들어온다. 불빛이 들어오기 전에 비행기를 움직이면 입력된 자료가 흐트러져 INS는 작동되지 않는다. 그린 라이트가 들어오면 INS 스위치를 「네비게이션」(운항) 자리로 돌리고 이륙할 수 있다.
오를리 공항 사고조사 결과에 따르면 禹 기장은 그날 좀 바빴다고 한다. 이륙 전의 운항 브리핑이 늦어졌고 이륙 허가도 늦게 나왔다. 손님들이 탈 무렵 그는 조종실에 들어갔다. 부기장과 기관사가 INS에 찍어 넣은 위치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원래는 기장이 확인해야 하는데 이륙 시간이 임박한데다가 부기장이 이미 점검을 끝내고 이상이 없다고 해서 재확인을 생략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출발지 위치(오를리 공항)는 동경 몇도인데 서경으로 잘못 入力되었음이 뒤에 밝혀졌다. 앵커리지 사고와는 규모가 다르지만 「눈의 착각」과 「루틴 체크 생략」이 겹쳐서 일어났다는 점에선 같다.
INS 3대에 항로 좌표를 入力할 때는 약 5백개의 숫자를 찍어 넣는다. 여기서 숫자 하나만 잘못되어도 안 된다. 조종사들은 컴퓨터에서 쳐 나온 비행 계획서를 보고 단추를 두들긴다. 이 컴퓨터 글자체는 한국인에겐 낯설고 0이나 3이 8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세 사람이 차근차근 크로스 체크를 하면 문제는 없다. 조종사들도 인간인지라 일상적인 반복 체크에 싫증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런 약간의 틈 속으로 魔가 끼여드는 것이다.

대사고 막은 대만 상공의 좌선회

007사건 직후인 지난해 10월 어느날 사우디 아라비아 다란에서 출발한 KAL의 DC10 여객기가 방콕에 기착했다가 다시 서울을 향해 이륙했다. 대만 남쪽 마콩 섬 상공을 지날 때였다.
갑자기 비행기가 왼쪽으로 도는 게 아닌가? 약23마일이나 중공쪽으로 항로를 벗어나면서 좌선회를 하자 조종실에선 야단이 났을 것이다. INS를 확인하니 마콩 상공 다음의 통과지점은 대만의 대북인데 入力한 대북 좌표의 경도 부분이 지워져버렸음을 알아냈다. 마콩까지 DC10을 잘 끌고 온 INS는 다음 통과 지점이 어딘지 모르게 됐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선회를 시작한 것이었다. 대만 관제소에서는 『당신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추궁하기도 했다. 다행히 통과 지점의 수정은 비행중에도 가능하다. 玄모 기장 등 조종사들은 다시 좌표를 입력, 서울까지 비행기를 몰고 올 수 있었다. 조종사들이 그래도 계기관찰을 잘 하고 있었기 때문에 007사건의 재판은 모면되었다. 007사건 직후 INS조작에 대해 신경을 잔뜩 쓰고 있는 중에서도 이런 사고가 났다는 것은 「INS 맹신자들」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이 사고가 入力 잘못인지 계기 잘못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어느 퇴직 조종사는 이런 말을 했다.
『INS 사고를 낸 조종사들을 문책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문책을 너무 두려워하다가 더 큰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가령 호놀룰루에서 이륙한 직후 조종사가 출발 위치 誤入을 알았다고 하자. 그는 먼저 막대한 양의 기름 방출과 회사에 돌아갔을 때의 처벌을 걱정하게 된다. 그래서 INS 대신 나침반만 믿고 이판사판으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일대 모험을 하려는 충동에 빠지지 않을까? 무사히 가기만 하면 자기들끼리 입을 다물고 그 사실을 영원히 비밀로 할 수 있으니까…』
이 조종사는 「이판사판」이란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면서 가정법상의 설명을 아주 사실적인 투로 얘기했다. 『자신의 처벌보다는 승객들의 안전에 더 신경을 써 출발 공항에 돌아가는 기장은 오히려 표창해야 한다』는 그 조종사의 말에는 일리가 있는 듯했다. KAL 여객기의 조종실에 편승, 貫熟 비행을 한 교통부 소속 어느 관제사는 이런 얘기도 했다.
『007 사건 뒤였기 때문에 일부러 북태평양 항로를 택했다. 야간 비행중 바깥을 봐야 지표가 될 만한 건 있을 리 없었다. 믿는 것은 오직 작은 INS 상자뿐. 조종사에게 「지금 INS가 아웃돼버리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3대가 동시에 그렇게 될 수야 있겠느냐?」고 그는 말했다. 「일단 그렇게 가정해 보자」고 했더니 「나도 어째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관제사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요즈음의 조종 시스팀이 너무 INS에 의존하고 있는 관계로 나침반과 해·별자리를 계산하여 하늘을 날던 본래의 비행감각이 점점 무디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007 사건 이후 미국의 항공 전문가들은 『한국 조종사들은 INS에 좌표를 찍어 넣을 때 3명이 따로따로 하지 않고 리모트 모드로 3대의 INS를 연결 한 사람이 동시에 쳐 넣은 습관이 있다』고 말했다. KAL 조종사들은 리모트 모드의 동시 입력 방식은 입력후 상호체크만 제대로 하면 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KAL 조종사들의 가장 큰 취약점은 이 루틴 체크의 소홀인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미국 항공 우주국은 지난 5년간 미국 조종사들이 경험한 21건의 INS사고 사례를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사고 원인도 KAL의 경우와 비슷하다. 007사건은 INS의 신화를 깨뜨렸다는 점에서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로고 조명등을 안 껐더라면…

KAL기 사건에 대한 ICAO보고서에는 사할린 상공 피격 현장의 피격 당시의 밝기에 대해 쓰고 있다.
「달은 하현이었고 수평선 위 60도 각도에 있었으며 야간의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이 보고서는 또 「KAL기의 수직 꼬리에 달린 로고(社章)조명등은 보통은 켜지만 켜고 안 켜고는 기장 마음대로다」고 했다. 이 문제는 KAL 조종사들 사이에 한 동안 화제가 됐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ICAO 보고서는 잘못 적고 있다. 「로고 조명등」은 보잉747, DC10, A300 등 대형기의 꼬리 날개에만 있다. 수직 꼬리에 크게 그려진 KAL 마크를 양쪽의 수평 날개에 붙은 조명등이 비춰 KAL에선 3년 전 이것을 켜지 말도록 조종사들에게 지시했다. 「전구수명을 아끼자』고 그랬다는 말도 있고 『정비 부서쪽의 요청 때문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고공에선 충돌 위험이 없으므로 켤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랬다는 말도 있다. 이 조명등을 켤 법적 의무는 없다. 일부 조종사들은 그러나 회사의 소등 지시에 반대했었다고 한다.
『비행기 회사에서 만든 것은 그대로 작동하는 게 원칙이다』는 반론이었다. KAL은 007피격 뒤부터는 이 조명등을 다시 켜도록 했다. 『만약 그 때 KAL 007기가 로고 조명등을 켜고 있었더라면 소련 요격기들은 6~8마일 바깥에서도 민항기임을 알았을 터이고 KAL기를 스파이기라고 한 그들의 거짓말은 더욱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철면피 같은 소련 요격기 조종사도 너무나 뚜렷한 KAL 표시를 보고서는 생각을 달리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로고 조명등이 켜졌더라면 사건의 파국을 막아 주었을지도…? 당시의 어둠에선 요격기 조종사가 2천 피트 위에 있는 KAL기의 동체에 씌어진 글씨를 판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판독가능 거리에 접근했을 때는 이미 발사 명령을 받은 뒤여서 그런 문제엔 신경도 안썼을 터이고…』
이런 부질없는 상상을 하는 것은 나 뿐만이 아닌 듯하다. 이 사례를 소개하는 것은 KAL을 나무라자는 것이 아니다. 앵커리지 사고나 INS 사고의 원인을 살펴보면 사고는 한 가지 요인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여러 가지 불운이 겹칠 때 사고가 터진다. 오를리 공항에서의 INS 入力 잘못은 入力者의 실수, 점검자의 과실, 기장의 확인 생략이 겹쳐서 일어났다. 앵커리지 사고는 안개, 유도로 착각, 나침반 확인 생략 등의 요인이 동시 발생하여 터졌다. 007 참극은 항로이탈, 항로 이탈 비행기에 대한 관제소의 경고 생략, 소련의 냉혈한 대응 등이 겹쳐서 빚어졌다.
이론상으로는 항공기는 절대 사고를 낼 수가 없다. INS, 기상 레이다, 나침반, 방향 지시기, 엔진 등 중요 장치는 3중, 4중으로 안전보장(Fail Safe)이 돼 있어 한둘이 마비돼도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돼 있다. 그래도 사고가 나는 것은 동시에 여러 장치가 마비되든지, 동시에 조종사와 정비사가 여러 가지 실수를 연발했을 때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협력해야 비행사고를 낼 수 있다』는 우스개가 나돈다.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원리 원칙대로 하는 것이 안전의 지름길이다. 그런 뜻에서 KAL이 다시 로고 조명등을 켜기로 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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