Ⅸ. 2000년 6월의 남북 頂上회담
원칙적 合意의 함정
2000년 6월 중순에 있었던 남북 頂上회담에 대한 가장 큰 의문은 북한이 중요한 고비를 맞을 때마다 우리가 가졌던 의문이었다. 북한은 정말 변화하고 있는가, 아니면 새 병에 담은 똑같은 낡은 포도주인가 하는 것이다. 시간만이 그 대답을 해 줄 것이지만, 북한의 과거 행동 기록을 돌아보고, 달리 설득력 있는 증거가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큰 기대를 걸지 말고 신중하게 대응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미 분명해진 것은 이 頂上회담이 北의 위협에 대한 인식을 감소시키고, 駐韓미군을 平價切下(평가절하)했으며, 북한에게 유리하게 발전되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을 가속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金正日이 왜 金大中 대통령과 頂上회담을 갖기로 동의했는지 확실한 이유는 모르지만, 입수할 수 있는 증거에서는 세 가지 주요 요인이 시사되고 있다.
(1)원조에 기반을 둔 생존전략이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자신감 증대,(2)원조가 절실하며, 다른 나라보다는 한국에서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원조를 얻을 수 있다는 인식, (3)金大中 대통령이 이미 국가보안법의 개정과 駐韓미군의 地位變動(지위변동) 가능성, 聯邦制(연방제) 통일에 대해서 언급하고, 金正日을 개인적으로 『지도자로서 상당한 정도의 판단, 능력, 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 점 등으로 판단, 金大中 정부가 만만한 파트너라고 인식한 것 등이다.
요컨대 金正日은 공산주의 동조자와 북한 협조자들의 세력이 남쪽에서 기반을 확대하고 있으며, 金正日은 그들에게 강력한 지원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어쨌든, 평양頂上회담은 경쟁에 새로운 국면을 추가했으며, 이미 확인된 몇 가지 趨勢(추세)를 강화했다. 형식적인 절차에서 이 頂上회담은 1972년과 1991년에 있었던 남북합의와는 달리 대한민국과 북한의 지도자들이 공식적인 자격으로 6월 선언문에 서명했다는 점에서 전진적인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먼저 있었던 合意書(합의서)에서 인상적인 것은 그것을 하나씩 읽어보면, 왜 기본적으로 동일한 분야에 관한 합의를 되풀이해야 하느냐 하는 의문이 생긴다는 점이다. 이것은 최근의 頂上회담에 대해서도 하나의 우려할 만한 측면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이 선언도 과거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원칙적인 합의에 불과하고,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약속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선언 역시 궁극적으로는 앞서 있었던 협정의 전철을 밟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첫 단계가 구체적 약속 없이 일련의 원칙 합의일 경우, 그 다음 단계는 그 원칙의 올바른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되고, 세 번째 단계는 상호 비난 속에서 대화가 결렬되고, 북한은 대한민국이 합의정신을 배반했다고 비난하게 되는 것이다.
북한의 경제적 파탄 때문에 지금의 경우는 예외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북한의 원조 필요성은 새로운 요인으로 보이지만, 金正日이 예상되는 미국과 대한민국 내의 정치적 변화에 앞서 신속한 得點(득점)만을 노리고 있는지, 아니면 장기간에 걸쳐 외부 원조를 얻어야 하는 필요와 정권의 권력을 유지할 필요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태세가 되어 있는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
어떤 경우이건, 그 頂上회담에 대한 한국의 반응은 1972년과 1991년에 「돌파구」라고 널리 찬양되었던 것에 비해서 더 陶醉的(도취적)이고 非現實的(비현실적)이다. 金大中 대통령의 반복된 신중한 성명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 頂上회담을 미디어에 보도된 그대로 받아들이고, 남북이 드디어 관계 개선과 궁극적으로는 평화통일을 위한 길에 들어섰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이미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서 점점 더 드러나기 시작한 「위협 부정 사고방식」(threat denial mindset)을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을 뿐이다.
(5)김정일, 김대중을 만만한 상대로 봐
- 스티븐브래드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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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0-21, 02: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