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후 한국 문학계의 頂上에 올랐던 세 사람이 모두 신라정신을 자신들의 가장 큰 탐구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깊은 뜻이 있다.
소설의 金東里는 고향이 경주이고 자신을 신라혼의 전승자라고 생각했다. 그의 문학작품 속에서는 신라정신으로 상징되는 한국인의 전통신앙이 외래 문물과 부딪쳐 일으키는 갈등이 자주 소재로 등장한다.
시의 徐廷柱는 6.25의 참화속에서 신라정신을 탐구함으로써 절망을 이겨냈다고 한다. 신라정신을 소재로 한 그의 시는 책 한권을 이룰 정도이다.
시조의 金相沃은 통영출신인데 총체적으로 신라의 美에 탐닉했다. 그의 시조, 수필, 도예작품에는 신라와 관련된 묘사가 많다.
한국 문학의 최고봉에 오른 분들의 審美眼이 의논이라도 한 듯이 신라의 아름다움에 주목한 점은 신라의 위대성을 새삼 확인해준다. 대체로 예술가들은 眞善美 가운데서 美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칸트 같은 철학자들도 美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眞과 善이 자연스럽게 따른다고 믿었다. 우리가 예술과 문학을 즐기는 것도 아름다움을 통해서 진실되고 착한 경지에 도달하겠다는 무의식적인 심리작용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金相沃의 '詩와 陶磁'라는 수필집에도 신라에 대한 찬미가 많다.
<비록 지리(地利)를 못 얻고도 人和만으로 그 천시(天時)를 기다려 , 살아온 겨례가 있으니 묘하다. 대륙 동방에 돌기한 젖꼭지 같은 나라 6부 촌장이 화백(和白)하여 일찍이 사람의 주권을 대리시킨 묘한 왕국-신라의 조업(肇業)이 그것 아닌가, 묘한 일이다.
피비린내 전쟁에도 얼굴을 곱게 꾸민 꽃서방(花郞)을 내보낸 나라, 그들의 서울, 서라벌은 꿈의 나라 佛國이었다. 현실을 불국으로 꿈꾸는 불국사 뜨락. 거기 묘하게도 두 개의 꿈과 현실을 세웠다.
하나는 다보탑, 하나는 석가탑. 하나는 곡선, 하나는 직선. 하나는 動, 하나는 靜. 하나는 歡生, 하나는 殉敎. 하나는 육신, 하나는 영혼. 하나는 평화, 하나는 전쟁. 하나는 원효, 하나는 차돈. 그리고, 보라. 하나의 원효는 무수한 원효와 더불어, 춤추며 노래 불러 노닐다가도 그 흔들리던 마음, 주춧돌처럼 제자리에 도로 靜立시킬 수 있었으니 묘하고, 하나의 차돈은 또 무수한 차돈과 더불어, 목 잘려 흰 피를 흘리다가도 그 影像을 옮겨 10리밖 영지에까지 띄울 수 있었으니, 아 어찌 묘하다 아니 하리. 묘하다 아니 하리.>
세 문학 巨匠의 신라耽美
-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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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0-23, 1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