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는 문건 공개 후 ‘283차 민주당 최고위원회 모두 발언’에서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군대와 불법을 동원했던 12·12 쿠데타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2017년의 12·12 버전”이라고 하면서 이 사건을 ‘내란 예비 음모’라고 규정했다.
‘내란’은 국토를 참절(僭竊)하거나 국헌(國憲)을 문란시킬 목적으로 폭동하는 것이다. 판사 출신인 추미애 전 대표는 기무사 문건을, “탄핵이 기각될 경우를 대비해 계엄령을 준비했다는 기상천외한 문건”으로 규정하였다. 비상시를 대비한 기무사의 정상적 업무가 ‘내란음모’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집권 여당의 대표가 “기무사령관의 독단 계획이 아니라고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중략) 과연 계엄 문건의 사실상의 윗선이 누구인지, 당시 청와대 군의 실세가 누구였는지를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고 주장하니 언론은 박 전 대통령 등의 지시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다. 당시 한민구 전 국방장관은 간접적으로 이렇게 해명하였으나 메아리가 거의 없었다.
“공개적인 회의 자리에서 문건 작성을 논의하고 보고를 받았고 그것으로 끝내 버렸다.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그 이후의 사태가 그렇게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문건은 그냥 보존만 하고 있으라고 지시하고 끝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 27일 취임 후 처음 가진 전군(全軍)주요지휘관회의에서 “왜 이런 (계엄) 문서를 만들었고, 어디까지 실행하려고 했는지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면서 “그 자체만으로도 있을 수 없는 구시대적이고 불법적 일탈 행위”라고 언급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하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일탈’을 보였다. 이 무렵 석동현 전 동부지검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청와대 참모들과 대변인의 한심한 판단능력”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어차피 이미 현직 국방장관을 수사지휘 라인에서 배제하는 강수를 두면서까지 군 독립수사단을 만든 마당이라면 수사진행 상황이나 결과를 좀 지켜보고 대처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군 독립수사단이 막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그 일과 관련된 모든 문서와 보고(그것은 독립수사단의 수사 기초자료일 것임)를 대통령에게 제출하게 한 뒤 이를 입맛대로 해석, 공개해 버렸다.”
“이렇게 되면 수사의 밀행성은 어떻게 되며, 독립수사단 또한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독립적인 수사를 할 수가 있겠나? 특히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아야 할 군의 이미지는 어떻게 되나?”
이후 진행된 특별수사단 수사에서 별다른 진척이 없자, 8월 14일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계엄 문건은) 범죄 성립 여부를 떠나 기무사가 결코 해선 안 될 국민 배신 행위였다”고 말했다. ‘범죄 성립 여부를 떠나’라는 단서를 붙임으로써 ‘불법행위’라고 단언하던 입장에서는 한 발 물러났지만, “우리 국민의 평화적이고 문화적인 촛불시위에 대해 기무사가 계엄령 실행 계획을 준비했다는 사실은 국민에게 매우 큰 충격을 줬다”고 왜곡했다. 이날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기무사 해체가 결정됐고 그 결과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탄생하면서 국군기무사령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선동 2라운드
‘기무사 계엄 문건 의혹’을 수사하는 군·검 합동수사단의 수사 기간이 한 달 더 연장됐지만, 요란한 시작과 달리 ‘수사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문건 작성에 관여한 기무사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했고, 한민구 전 국방부장관, 조현천 전 국군기무사령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했지만, ‘내란 예비 음모’ 혐의를 입증할 증거는 없었다.
이즈음 언론 보도의 방향도 조금 달라지는데, 기무사 계엄령 문건 작성 또는 계엄령 준비의 배후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끌어들인다. JTBC는 7월 26일 ‘뉴스룸’ “‘탄핵기각’ 확신한 박 청와대…계엄계획 ‘교감여부’ 살핀다”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청와대가 탄핵 기각을 확신했으며, 탄핵 기각으로 촛불집회가 격화될 것에 대비해 계엄령을 준비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내용은 상상적이었다.
민병삼 전 기무부대장이 한 말, 즉 “계엄은 군이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경찰, 검찰 그리고 국정원. 계엄령을 내리는 것은 통수권자예요”라는 라디오 인터뷰 내용을 근거로, 청와대의 지시하에 기무사가 계엄령을 준비라도 한 것처럼 상상의 나래를 편 것이다.
8월 22일 《한겨레》는 “기무사령관, 박근혜 국회 탄핵 당일 청와대 들어갔다”라는 제목의 보도를 했다. 방문 시점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날이었다며, “기무사령관이 직무가 정지된 박 대통령과 부적절하게 만나 계엄을 포함한 촛불시위 대응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게 아니냐”는 상상적 의문을 제기했다.
‘추정’과 ‘상상력’ 바탕으로 보도
![]() |
| JTBC는 ‘계엄문건’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연결시키려 노력하는 듯한 보도도 했다. |
이런 보도에서 인정되는 사실은 ‘조현천 전 사령관이 탄핵 가결 당일 청와대를 방문했다’는 것 한 가지다. 이에 ‘추정’과 ‘상상력’을 더하여 ‘친위 쿠데타 모의’라는 엄청난 말을 만든 것이다. 언론의 ‘선동 보도’ 2라운드의 줄기는, ▲기무사 홀로 계엄령을 계획했을 리 없다 ▲탄핵안 가결 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계엄령 검토를 지시했고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 지시에 의한 친위쿠데타 시도라는 시나리오였다.
이와 같은 주장의 중심엔, 《한겨레》, 박주민 의원 등 여당인사, 친위쿠데타 고발장을 제출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JTBC, SBS 및 ‘김어준의 뉴스공장(교통방송)’ 등이 있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기무사 계엄령 문건은 조 전 사령관을 향한 윗선의 지시 여부가 핵심이다. 그가 탄핵 의결을 한 당일 청와대를 방문한 사실은 계엄령을 주도하는 데 있어서 청와대와 소통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라며 “청와대 방문과 관련한 집중적인 수사를 통해 윗선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적 사기극’
김용태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은 지난 11월 7일 기무사 작성 계엄령 관련 문건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나자 강경한 논평을 했다.
“청와대가 벌인 대소동은 국민적 사기극이자 역사적 사기극”, “문재인 정권은 대법원, 헌법재판소, 경찰, 검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등 헌법기관과 국가권력기관을 장악하는 데 성공하고 나서 마지막 남은 군 권력기관인 기무사를 장악하기 위해 이 같은 소동을 벌였다”고 했다. “국민과 역사 앞에 사기 쳤던 이들은 포토라인도 아니고,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여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경향신문》)
11월 7일 합수단의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한 방송사들의 보도는 힘이 빠져 있었다. MBC 뉴스데스크는 아예 해당 뉴스를 보도조차 하지 않았고, KBS 뉴스9 및 SBS 8시 뉴스는 일곱 번째 소식으로, JTBC 뉴스룸은 여덟 번째 소식으로 각각 보도했다.
보도에서는 미련이 느껴졌다. 핵심 피의자의 잠적으로 어쩔 수 없이 수사를 중단한 것으로 ‘조현천 전 사령관만 들어오면’ 계엄령 문건을 작성하게 된 경위와 작성 지시 주체, 박근혜 대통령의 개입 여부, 내란 음모 혐의까지도 다 밝힐 수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수사가 미뤄지게 되었다는 식이었다.
JTBC는 “군·검 합동수사단이 미국에 도피해 있는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잡힐 때까지 수사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등과의 공모 의혹을 밝히는 것도 동시에 미뤄졌습니다”라고 시작했다. “기소중지는 범죄 혐의가 있지만 피의자의 소재가 확인되지 않아 수사를 못 끝낼 때 하는 조치입니다”라고 설명했다. KBS 및 SBS도 비슷하게 보도했다.
JTBC는 합수단의 수사 결과 중 굳이 ‘성과’라며 이렇게 보도했다.
“합수단은 탄핵 국면인 2016년 12월 5일, 청와대에 들어간 조 전 사령관이 평소와 달리 수상한 동선(動線)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황교안 전 권한대행, 김관진 전 실장, 한민구 전 장관 등과 공모가 있었는지 밝히는 것이 그 다음 단계지만 일단 조 전 사령관 체포 이후로 미뤄졌습니다.”
조 전 사령관이 청와대에 들어갔다는 사실에 ‘수상한 동선’이 더해졌다. 수상한 동선은 또 박근혜 전 대통령 등과의 ‘공모’로 연결된다. ‘수상한 동선’이 무엇인지는 KBS 뉴스9의 보도가 조금 더 구체적이다.
“계엄 문건 작성을 지시한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은 2016년 11월부터 석 달 동안 청와대를 네 번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 나흘 전인 12월 5일 청와대 방문 때 수상한 동선이 확인됐습니다. 김관진 당시 국가안보실장을 면담한 뒤 평소와 달리 부관에게 대기하라며 청와대 안에서 상당 시간 어디론가 사라진 겁니다. 합수단은 이때 조 전 사령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 계엄 문건을 보고한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결론은 ‘反軍선동 세력에 의한 쿠데타 조작 사건’
직무가 정지되기 직전의 대통령을 만났다고 한들 그것이 어떻게 계엄령 선포나 쿠데타 계획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취재력보다 추리력이 훨씬 뛰어난 한국 언론의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지난 여름 대대적으로 기무사의 ‘내란음모’ 의혹을 제기했던 기자들에게 이날 합수단이 발표한 수사 결과는 대단히 실망스러운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대소동의 본질은 기무사에 의한 쿠데타 음모가 아니라 정권과 언론이 합세한 쿠데타 조작 사건에 더 가깝다. 아니면 말고 식 반군(反軍)선동이었다. 기무사라는 국가 안보 기관 하나가 그 바람에 날아갔다.⊙
(끝)













문 정권은 잘 못을 해도 시인도 하지 않고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왜 그럴까? 그래서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와 각 기관에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한 것인가? 참으로 한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