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다시 核을 만들 역량이 있을까?

대만의 핵개발 秘史 (5) – 李登輝 총통 “대만은 핵무기 개발 역량은 있지만 절대 개발하지 않을 것”

아직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

대만의 비핵화는 미국의 대표적인 비확산 성공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대만을 최종적으로 설득, 혹은 협박하는 과정, 대만이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 많은 정보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미국 정부는 당시 기록을 아직 기밀 해제하지 않고 있다. 앞서 소개된 바와 같이 미국은 대만 문제에 있어서는 비밀 유지에 특히 신경을 썼다.

비밀 유지에는 장단점이 뒤따랐다. 우선 장점은 대만과 미국 모두 서로의 체면을 살릴 수 있었던 점이다. 미국은 동맹국이 핵무장 직전까지 가도록 막지 못했다는 사실이 공개됐을 시 따라오는 국제사회의 질타를 피할 수 있었다. 대만 역시 미국에 일방적으로 굴복하는 모습을 외부에 알리지 않아도 됐다. 아울러 극소수만 알고 있었던 비핵화 합의였기 때문에 외부세계의 눈치를 비교적 덜 받으면서 비핵화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반면 여러 부작용도 있었다. 미국은 대만 핵 프로그램 관련 정보를 어떻게 입수했는지 역시 숨기려 했다. 그렇기 때문에 1970년대 ‘미국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대만에 경고하고 공론화를 위해 언론에 정보를 흘리는 일까지 해야 했다. 또한 일각에서는 대만의 핵 프로그램 관련 위반 사항을 제때 공개하지 않고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이 핵 프로그램 진전으로 이어졌다고 비판한다.

대만은 지금도 핵무기를 만들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북한의 핵과 중국의 계속된 위협이 있기는 하지만 대만이 다시 핵무장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하지만 핵개발 역량이 있는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장셴이(張憲義)는 이와 관련해 “대만이 원자력 연구와 개발 노력, 그리고 인재 양성을 계속해왔고, 또 핵무기 프로그램을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원자로 없이도 다시 예전 역량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필요한 물질과 사람, 그리고 기기만 있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핵 전문가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씨는 대만이 예전 역량을 따라잡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수 년은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미스터리가 있다. IAEA를 비롯한 사찰단은 대만 비핵화 당시 약 10개의 핵연료 요소(注 연료판이나 연료봉의 묶음)가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이들이 재처리되지 않은 채 핵 폐기물로 처분됐을지, 재처리 과정을 거친 플루토늄이 됐다면 현재 어디에 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실제로 대만이 핵 프로그램을 지속하고 있다는 의심은 2000년대에도 계속 제기돼 왔다. 물론 1980년대처럼 큰 규모의 움직임은 없었지만 아직 일부 핵 프로그램이 존재할 수는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대만 지도자들은 핵 역량을 마음만 먹으면 다시 가질 수 있다는 인식을 주는 발언을 몇 차례 해왔다.

지난 1995년 7월, 중국이 대만 인근 해상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대만 여론은 크게 들끓었고 리덩후이(李登輝) 당시 총통은 국회 연설에서 핵무기를 다시 개발할 수 있다는 위협적 발언을 했다. 그는 “우리는 (핵무기 보유) 문제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며 “모든 사람들이 알다시피 우리는 이런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리덩후이는 논란이 거세지자 며칠 뒤 수위 조절을 했다. 그는 “대만은 핵무기를 개발할 역량은 있지만 절대 개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정정했다. 리덩후이가 핵무기를 재개발할 계획이 실제로 있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대만 정치권에서 핵무기 개발은 계속 논란이 돼 왔다.

이런 논란은 2004년에 다시 일어났다. 유시쿤(游錫堃) 당시 대만 행정원장은 2004년 9월, 중국이 타이페이와 같은 대만의 인구 밀집 지역에 미사일 100발을 발사하면 대만은 중국 본토에 있는 최소 10곳의 목표 지점을 공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유시쿤 행정원장은 핵무기라는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지만 야당이었던 친민당(親民黨) 의원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일어났다. 당시 친민당 의원들은 유시쿤에게 공개 질의를 보내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이 있느냐고 추궁했다. 유시쿤은 강력하게 부인했다.

대만의 입법부나 대중들 대다수는 현재 핵무기 개발에 반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만 정부로 하여금 핵개발 의혹이 생길 때마다 강력하게 부인하도록 하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또한 여전히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는 IAEA의 사찰 절차 역시 대만이 다시 핵개발에 나서게 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

대만과 북한의 차이

대만은 중국이라는 안보 위협이 해결되지 않았고 미국의 안전 보장 약속을 대만이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비핵화했다. 대만 비핵화의 핵심은 미국의 압박이었다. 대만은 미국에 의지할지, 아니면 혼자서 원자력 에너지 생산에 필요한 물질을 구입하고 안보를 책임질지 결정해야 했다. 만약 후자(後者)를 선택했다면 가장 가까운 동맹으로부터 멀어졌을 것이고 민간용 원자력 산업도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현재 미국은 이란과 북한에 외교적, 경제적 압박을 통해 비핵화에 나서도록 하고 있다. 핵을 포기하도록 한 뒤 경제 개발을 실현시키고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대만과 달리 북한과 이란은 미국의 적대국이며 상대적으로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다는 점이 대만 때와 다르다. 그나마 한 가지 긍정적인 점은 중국이라는 궁극적인 안보 위협이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경우 비핵화를 했다는 점 정도이다.

올브라이트 씨는 북한이 비핵화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대만 때처럼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과 원자로를 민간용이라고 주장하며 계속 보유하겠다고 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미국은 앞으로의 협상 과정에서 이런 식의 빠져나갈 구멍을 줘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만 사례와 마찬가지로 민간용이라고 주장한 뒤 비밀리에 다시 핵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북한의 경우는 외부에서 농축 우라늄을 구입하는 것이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북한의 주장 자체가 설득력이 없다고 했다. 대만 사례에서 봤듯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을 동결하거나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끝내는 것만이 북한 비핵화 달성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올브라이트 씨는 강조했다. 

한편 북한이 핵 관련 일부 기술을 대만 내 회사들을 통해 불법적으로 조달해왔다는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대만은 2017년 9월에 들어서야 북한과의 모든 교역을 중단했다. 대만은 정식적인 국가 지위를 갖고 있지 않으며 유엔의 회원국도 아니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대만이 핵 관련 수출 통제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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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ve 2018-12-01 오후 6:39

    아! 아깝다! 모든 난관을 뚫고 99% 까지 도달. 완성을 눈앞에 두고 1978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핵무기 개발이 중단되지 않았더라면 자주 국방의 염원을 완수하고 오늘날 북한 김씨 반역집단으로 부터 핵위협을 당하지 않아도 될텐데! 12.12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미국 레이건 정부의 승인과 그간 각고의 노력으로 완성 단계에 있던 핵개발 연구 성과와 전문 인력의 해체를 맞바꾼 것이 못내 통탄스럽다! "오직 믿고 바랄 것은 우리의 힘 뿐"임을 깅조한 島山 선생의 말씀이 되새겨지는 오늘이다. 자유대한민국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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