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떠난 金鎭載 전 의원

갑자기 떠나간 김진재 전 의원

홍석준기자 udo@chosun.com


가을비가 뿌린 26일 오전 부산 영락공원 장례식장. 국화꽃이 산을 이뤘다. 어른 키보다 큰 3단짜리 조화 500여개가 장례식장 입구를 에워싸고 있었다. 1개에 10만원씩, 조화 값만 족히 5000여만원은 될 듯 싶었다. 그런데 아직도 덜 도착한 듯, 국화단을 어깨에 멘 꽃가게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빈 자리를 찾고 있었다.
“부산 시내의 국화가 동이 났다카데” “어제 오늘 국화값이 많이 올랐다던데” “보통사람 초상집엔 조화 10~20개가 고작인데”…. 장례식장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난생 처음보는 조화행렬에 한마디씩 던졌다.

24일밤 별세한 김진재 전 한나라당 의원(향년 63세)의 장례식장 바깥풍경은 이랬다. 수천억원의 재산가이면서 5선의원을 지낸 부산을 대표하는 보수정객의 갑작스런 죽음.

국회의원, 도지사, 현역 장관, 전 부산시장 등 내로라하는 지도층 인사들도 자신의 문상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어, ○○○ 지사도 왔네?” 구경하던 옆 상가의 문상객들이 수근거렸다. “그 돈 아까워서 어떻게 가겠노” “명줄 앞에는 그 많은 재산도 아무 소용없네” “평소에 그렇게 건강하고 자기관리를 잘 하던 양반이라는데 왜 갑자기 갔을까” “몇달 전 돌아가신 선친이 김 전 의원을 끔찍히 사랑하시더니.”

부산 제일의 갑부라던 선친 김도근 전 동일고무벨트 회장이 세상을 뜬 것은 지난 4월. 불과 6개월만에 김 전 의원까지 갑작스레 떠나자 부산사람들은 온통 이 얘기 뿐이었다.

김 전 의원은 17대 총선 출마를 포기한 뒤, 지난해부터 일본 게이오대학 객원 연구원 자격으로 일본에 머물러 왔다. 일본에서 몇차례 만난 김 전 의원의 부인 성효인씨(59)는 기자에게 “평생 지금같이 행복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남편이 1981년에 처음 민정당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개인생활이 있었나요? 부부라고 오붓하게 함께 여행 다녀본 것이 몇번이나 되는지 모를 정도에요. 보람은 있었지만 지역구 뒤치닥거리에 당 안팎의 선거 때마다 거리를 헤매야 했던 일들이…정치는 이제 젊은 분들에게 맡기고 편안히 좀 즐기고 싶어요.” 한국에서와 달리 최고급승용차 대신 전철, 짙은 색 정장 대신 캐주얼 복장의 두사람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두사람은 등산복 차림에 털모자, 베낭을 메고 일본의 구석구석을 다녔다. “25년만의 자유 아니가?” 김 전 의원이 수줍은 듯 웃으며 이렇게 말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김 전 의원은 그래도 오랜 ‘정치인 티’를 벗지는 못했다. 일본인들의 앞선 질서의식과 부러운 지역문화를 발견할 때면 “우리도 배워야 하는데”라며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건강도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김 전 의원은 사망하기 몇개월 전 정밀 암 검진을 했지만 전혀 문제가 없었다.

정밀진단 때 발견되지 않았던 임파선암 징후가 발견된 것은 불과 두달 전. 국내 권위의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고 수술없이 약물치료에 성공했다. 한 때 퇴원한 김 전 의원은 지인들에게 웃는 목소리로 “이번에 큰 일 날뻔 했다”고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입원을 했고 치료과정에서 백혈구 숫자가 급격히 떨어졌다. 아들 세연씨(33)의 수혈도 받았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패혈증 증세였다. 의사들이 심각성을 발견한 지 불과 몇시간이나 됐을까. 김 전 의원은 중환자실에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수천억원의 재산가가 제대로 치료 한번 못 받고 세상을 떠난 셈이다. 25일밤 빈소를 찾은 문상객들은 국밥을 먹으며 이를 화제 삼았다. 어이없는 사망소식에 충격을 받은 듯 여느 정치인의 초상집 풍경과 달리 술을 자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담배를 끊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남의 돈 받지 않고 자기 재산을 써가며 정치를 해 온 김 전 의원 스타일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재산이 없어도 이른바 ‘똑똑한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곳 상가에서만큼은 그리 먹혀들지 못했다. 김 전 의원의 한 지지자는 “돈 많다고 손가락질 하는 세상이 됐지만, 김 전 의원만큼은 적어도 도둑질은 안했다'고 말했다.

술잔이 여기저기서 돌면서 문상객들은 서서히 김 전 의원의 사연을 잊고 있었다. 빈소에서 눈시울을 붉혔던 젊은 국회의원들도 밤이 깊으면서 산 사람들의 권력 얘기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부산의 모 국회의원은 깍두기 머리, 기름발라 뒤로 넘긴 머리를 한 청년당원 10~20명 대동하고 나타나 권세를 과시했다. 병아리 의원들은 중진의원이 상가에 나타나면 뛰다시피 달려가 고개를 조아렸다. “어이, 우리도 다음에 상가에 갈 때는 당원들 대동하고 가야겠다”는 초선의원들끼리의 대화도 들렸다.

김 전 의원의 그늘 밑에서 정치를 꿈꿨던 정치지망생들은 자기고민에 표정이 무거워졌다. “내년 지방선거 공천때 누가 날 도와주나” “김 전 의원이 없으면 새 위원장 밑에 줄을 서야 하는 것 아니냐”….

초상집 밤은 산 정치인과 정치지망생들의 가슴에서 김 전 의원을 지우고 있었다. “아이고, 죽은 사람만 억울하지”하는 김 전 의원 비서의 한숨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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