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死後 50년이 지나도 음모론을 믿는 사람이 61%’

정부 발표 믿지 않는 의사∙역사학자·범죄학자·영화감독에 의해 계속 再생산
파란 선은 케네디 암살에 3자가 개입했다고 믿는 사람, 흑선은 오스왈드 단독 범행을 믿는 사람. (이코노미스트 캡처)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음모론이 제기된 사건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이다. 1963년 11월22일 텍사스주 댈러스를 방문한 케네디는 의전 차량에 오른 채 시내의 딜리 플라자를 접근하던 중 총을 맞고 숨졌다. 범인은 쿠바의 카스트로 공산당 정권을 지지하던 前 美 해병대원 리 하비 오스왈드가 지목됐다. 당시 의전 차량에는 영부인인 재클린 케네디와 존 코널리 텍사스 주지사가 동승했다. 암살 발생 이틀 후 연방수사국(FBI) 정보원으로 알려진 나이트클럽 경영자 잭 루비는 구치소로 수감되기 위해 이송되던 오스왈드를 살해했다. 이후 루비 역시 1967년 암으로 투병하다 숨졌다.

당시 대통령의 암살 장면은 TV로 생중계됐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충격에 빠진 것은 물론, 사건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많은 미국인들은 오스왈드가 마피아나 쿠바, 소련 등 적대세력을 비롯해 미국 내의 보수세력의 사주를 받아 범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오스왈드가 허무하게 죽어버린 게 아무래도 찜찜하다는 이유였다.

대통령이 숨지자 린든 존슨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존슨은 케네디 대통령이 숨진 지 한 주 후인 29일 대통령 직속의 조사단을 조직하고 수사를 일임했다. 이 조사단에게는 위원장을 맡은 대법원장 얼 워렌에서 비롯된  ‘워렌 위원회’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이들은 1964년 9월까지 약 10개월간의 조사를 진행해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이라고 밝혔다.

10개월간의 대통령 직속 조사단의 결과를 미국인들은 믿지 않았다. 1976년 미 연방 하원에는 암살조사특별위원회가 구성돼 워렌 위원회 보고서를 재검토하기도 했다. 1988년 미 법무부는 음모론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수사 종결을 선언했고 잭 루비 역시 케네디 신봉자였고, 우발적인 범행이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정부 기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의사들과 역사학자, 영화 제작자들을 중심으로 의혹은 계속 제기됐다.

의사들은 케네디의 부검 자료와 당시 병원에서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 간의 의견 차이가 있다는 점, 오스왈드가 있던 곳에서 쏜 총알이 케네디를 맞출 수 없는 각도였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범죄학 전문과들과 합세해 신조어 ‘매직 불릿(마법의 총알)’을 만들어 내 선동에 나섰다. 총알은 직선으로만 이동하는데 어떻게 케네디 대통령을 맞췄던 총알이 휘어서 코널리 주지사를 또 맞출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한 케네디와 코널리의 傷痕(상흔)이 의학적으로 성립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제3의 인물이 개입했다고 믿었으며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은 이 같은 내용을 다큐멘터리인 양 제작해 논란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결국 각종 再演(재연) 실험 등을 통해 오스왈드밖에는 범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대통령 의전 차량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오픈카와는 다른 구조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마법의 총알’ 주장은 무색해졌다.

그럼에도 케네디 암살 음모론은 계속돼 제기된다. 올리버 스톤의 영화는 존슨 부통령의 ‘쿠데타’였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음모론은 계속 자극적으로 進化(진화)한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케네디 암살 50주년을 맞은 2013년 11월23일호에 ‘인정 좀 해라, 오스왈드가 했어(Face it: Oswald did it)’라는 그래프 기사를 게재했다. 케네디가 암살된 1963년부터 2013년까지 오스왈드 단독 범행이라고 믿는 미국인과 믿지 않는 사람을 그래프로 보여줬다.

다행히 음모론을 믿지 않는 사람은 1960년대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 하지만 2013년 기준 3자가 개입했다고 믿는 사람 비율은 여전히 61%에 달했다. 단독 범행으로 믿는 사람은 30% 수준이었다.

1970년대 중반에는 3자 개입설을 믿는 사람이 80%에 달했고 단독 범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20%도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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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argate 2019-01-15 오전 3:10

    죄송한 얘기지만 이 글을 쓰신 분도 무분별한 음모론을 펼치는 사람들 만큼이나 자료들을 찾아 보지 않고 반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 같습니다.
    얘를 들어 케네디 암살 장면이 TV로 생중계 되었다고 주장하시는데 그런 사실은 전혀 없습니다.

    아래는 위키피디아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No radio or television stations broadcast the assassination live. Most media crews did not ride with the motorcade, but were instead waiting at the Dallas Trade Mart in anticipation of President Kennedy's arrival there. Members of the media who were with the motorcade were riding at the rear of the procession.

    (암살 장면을 생중계한 라디오 혹은 TV 방송은 없었다. 대부분의 언론 관계자들은 케네디의 행렬과 같이 타고 다니지 않고 댈러스의 무역 마트에서 케네디 대통령의 행렬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행렬과 동행했던 언론 들은 행렬의 마지막 부분의 차랑을 타고있었다)

    남아 있는 유일한 동영상은 제프 루더라는 사람이 가정용 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화질이 매우 열악한 동영상이 존재할 뿐입니다.

    이 사건이 음모냐 아니냐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오스왈드는 댈러스 경찰에 체포된 이후
    일관되게 자신이 한 일이 아니이고 자신은 그냥 희생양이라는 입장을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그 말이 다른 어떤 증언 보다 신뢰성이 더 가는 것 같습니다.

    위키피디아에 나오는 또다른 내용입니다.

    As a result of increasing public and congressional skepticism regarding the Warren Commission's findings and the transparency of government agencies, House Resolution 1540 was passed in September 1976, creating the United States House Select Committee on Assassinations (HSCA) to investigate the assassinations of President Kennedy and Martin Luther King, Jr..

    The Committee investigated until 1978, and in March 1979 issued its final report, concluding that President John F. Kennedy was probably assassinated as a result of a conspiracy.

    (케네디 암살사건의 조사를 담당한 워렌 보고서와 정부 기관의 투명성에 대해 민간과 의회에서 의구심이 증폭됨으로 인해 1976년 9월 케네디 대통령과 마르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하원 특별 위원회 (HSCA) 를 결성하는 1540호 결의안이 하원을 통과한다.
    하원 위원회는 1978년 까지 조사를 마친 후 1979년 3월 케네디 대통령은 아마도 음모의 결과로 암살 되었을 것이라는 내용의 최종 보고서를 발표한다)

    일반적으로 음모론이라는 것이 대체로 근거가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음모론이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짓는 것 또한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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