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前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된 1월24일, 현직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 전산망에 ‘법관의 재판개입은 검찰이 주장하는 혐의로는 죄가 되지 않는다’는 요지의 글을 게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前 대법원장은 일제 강제징용 소송, 전교조 법외(法外) 노조 소송 등 각종 재판에 개입하고 ‘판사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직권남용 등) 등으로 구속됐다.
서현석(47·사법연수원 30기) 수원지법 안산지원 부장판사는 24일 오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이하 직권남용죄)에 관한 짧은 견해’라는 A4용지 10여 쪽 분량의 글에서 “법관 인사권자이거나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법원장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청탁을 한 경우 (사건을 맡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심판할 뿐 이를 따를 의무 자체가 없다”며 청탁을 들어줬다 해도 직권남용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형법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 부장판사는 법관이 재판과 관련해서 다른 법관의 지시·명령 등을 따를 의무가 없으면 남용될 직권이 애초부터 없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다.
서 부장판사는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직권은 공무원이 ‘국민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리행사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이라고 전제했다. 공무원의 지위나 권한 그 자체를 보호하는 것은 직권남용죄가 만들어진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부당한 지시·명령 등(권한 행사)을 했다고 해도 국민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니라면 이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국민의 권리·의무와 관련이 없는데도 상급자와 하급자 간에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직권남용죄를 적용하는 것은 “사물(자연)의 본성에 반하고 그 처벌 범위를 한정지을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서 부장판사는 “선거 등을 통해 선출 또는 임명된 상급공무원이 그를 보조하는 하급공무원의 생각과 다른 결정을 내렸다고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경우 선출직 공무원이 하급공무원보다 작은 권한을 행사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면 선거 등을 할 아무런 이유나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서 부장판사는 그러면서 법관의 심판권과 관련, “헌법상 법관은 (자신의) 사건과 관련해 ‘독립하여’ 심판할 권한이 있을 뿐 다른 법관이나 외부 사람은 그에 관여할 권한 자체가 없다. 법관 인사권을 가지고 있거나 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관이 사건 담당 법관에게 청탁을 한 경우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있는가. 아니다”라고 했다.
서 부장판사는 “만약 청탁의 내용이 부당하고 법관이 자신의 양심에 반함에도 편의를 받기 위해 이를 받아들여 심판했다면 소송 당사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을지언정 부당한 심판을 한 법관이 피해자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라고 했다. 오히려 “해당 법관은 피해자가 아니라 부당한 심판을 해서 자신의 직권을 남용한 것이므로 탄핵 등을 통해 법관의 지위에서 물러나야 마땅할 뿐”이라고 했다.
법관이 재판 청탁을 했다는 이유로 직권남용죄 처벌을 받으면 검사 역시 처벌을 받게 된다는 주장도 했다. 서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그 판결이 확정된 경우 검사가 기소권을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이로 말미암아 피고인은 법정 출석과 같이 의무없는 일을 하게 되는 등 권리의 행사를 방해받았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태는 검사가 기소함으로써 발생한 것이고 기소권은 검사가 독점하는 권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동일한 논리(재판개입이 직권남용죄가 된다는 논리)를 적용하면 기소에 관여한 수사검사나 결재과정에 있던 검사들 모두 직권남용죄로 기소돼 처벌받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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