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2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아랫것들이 적어 주는 대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한 대목을 초등학생처럼 큰 소리로 읽었다. 그것은 1980년 5월 이래 날마다 경찰과 안기부에 쫓겨 다니던 대학의 ‘운동선수’들이 오매불망하던 ‘교시’였다.
“민족이 이념을 앞선다.”
머리 나쁘고 고집 센 지도자가 얼마나 위험한지! 백제의 성충, 조선의 황윤길, 트로이의 카산드라는 그 날로 시대에 뒤쳐진 자로서 전쟁을 사모하고 기득권을 고수하는 퇴물 취급을 받게 이르렀다. 후에 그 자신도 용도가 폐기된 후 상도동에 갇혀 호위 무사가 없이는 문밖 출입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고도 그는 아직 그 이유를 모르고 있는 듯하다.
10월 11일 미 하원 외교위원회의 전문위원이자 그 위원장 헨리 하이드의 보좌관인 데니스 핼핀(Dennis Halpin)이 김대중 정부 이래 남북의 ‘민족화해’를 ‘트로이 목마’로 비유했는데, 알고 보면, ‘민족’이라는 트로이 목마는 이미 김영삼 정부 때에 중앙청으로 들여놓았다. 고난은 있었지만, 1948년 정부 수립과 더불어 한국의 역대 정부는 ‘이념 전쟁’에서 북한을 압도했다. 특히 외세를 끌어들여 김일성이 기습 남침한 이후 대한민국 국민의 99%가 깡통을 찼으면 찼지 공산주의는 죽어도 못하겠다는 결의에 차 있었다. ‘반공’ 정신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더하여, 절개를 지키다가 방장 죽게 된 성춘향이 거지 차림의 암행어사 이몽룡을 만나듯, 도무지 경제를 모를 것 같았던 박정희란 장군이 고개를 꼿꼿이 치켜들고 한강을 건너더니, 곧 죽어도 눈빛만 살아 있던 한민족에게 ‘한강의 기적’을 선물하자, 북한의 선전선동은 씨알도 안 먹혔다. 전방의 국군 장병들에게도 쩌렁쩌렁한 대남 방송은 측은한 신파극이었다. 그건 순전히 ‘김일성 임금’의 국내 통치용이었을 뿐이다.
더군다나 90년대 이후 미국의 시장경제가 소련의 계획경제에 퍼펙트승을 거두자, 누가 보아도 남북한의 이념 전쟁에서 한국이 완봉승할 듯했다. 9회말 투 아웃에 10:0! 더 이상의 이념 전쟁은 무의미하게 보였다. 대학과 기업과 망월동에 진지를 구축했던 주사파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한국판 홍위병 전대협은 60년대 일본의 적군파처럼 몰락해 가는 중이었지만, 중앙청으로 민족이란 이름의 트로이 목마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쾌재를 부르며 그 해 5월에 한총련으로 깃발을 바꾸어 달고 조직을 한층 강화했다. 이제 성문을 지키는 자들이 조는 것을 끈질기게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김영삼 정부는 민주화의 자아도취에 빠지고 민족의 아편에 중독되어 성문을 지키는 자들에게 부지런히 자장가를 들려 주었다. 민주의 백마를 타고 청와대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청와대의 이전 주인들을 모욕하는 데서 알렉산더의 쾌감을 맛보고, 개혁의 칼을 뽑아 부자들에게 마구 휘둘러 여기저기서 박수갈채를 받는 데서 임꺽정의 행복을 만끽했다. 이어서 그는 민족의 깃발을 흔들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친다며 핵심부품과 외환보유고 세계1위의 일본과 호기롭게 척을 지고 슬그머니 끌어들인 민족이란 트로이 목마를 모시기 위해 일제 잔재의 상징이라며 중앙청을 허물고 민족정기를 되찾는다며 전국의 명산에서 쇠말뚝을 뽑았다.
민족의 양귀비꽃에 취한 그는 여기저기서 반미의 소리가 들려 와도 그저 철없는 아이들의 ‘랩송’ 정도로 치부하고 멀거니 쳐다봤다. 흘러간 유행가를 부르듯 이따금 반공을 흥얼거렸으나, 이념 전쟁에서 탁월한 반공 전략으로 김씨 왕조를 압도했던 은퇴한 두 총사령관을 기어코 감옥에 집어넣었다. 달러 환산 GDP가 높으면 무조건 좋은 줄 알고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에 우쭐하여 원화절상을 고수함으로써 한국의 기업에겐 고통을 주고 미국과 일본과 유럽의 기업에는 기쁨을 주다가, 결국 뜨거운 돈(hot money)의 불쏘시개에 나라 경제를 통째로 내맡겼다가(준비 없는 금융 개방) 순식간에 불이 붙자, 민주와 민족을 앞세울 때 헹가래쳐 주던 자들이 한꺼번에 손을 뺌과 동시에 맨땅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동그라졌다.
차선책으로 김대중 정부와 손을 잡았던 한국판 홍위병들은 새 정부가 예상외로 자기들보다 한 수 앞서 반공을 햇볕으로 바꾸어 ‘친지김동’을 얼싸안는 것을 보고, 트로이 목마 옆 성문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보초 서던 자들을 수고했다며 전역시키거나 휴가 보내거나 물갈이하는 것을 보고, 이제 경복궁으로 옛 이름을 되찾은 옛 중앙청에 모셔져 있던 그 목마의 뱃속에서 밤중에 몰래 기어 나와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아예 광화문을 점령해 버렸다.
김영삼 정부가 멋도 모르고 민주의 가면을 쓴 자들에게 속아 반공 전선에서 물러나 민족이란 이름의 트로이 목마를 끌어들인 후, 한국은 이념 전쟁에서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밀리기 시작하다가, 노태우 정부 막바지에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김정일 훈련병(군대 경력이 전혀 없음)이 이제 한숨 돌리고 절벽 위의 정자에서 늘씬한 미녀들에 둘러싸여 서성거리는 것을 보고 김대중 정부가 달려가 얼싸안고 볼을 비벼 주자, 그가 단숨에 ‘자주평화통일’ 북측 총사령관으로 등극하면서 한국이 도리어 절벽으로 몰리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이념 전쟁에서 압록강과 두만강을 코앞에 두고 단 한 마디 ‘항복’ 소리만 받아내면 되었으나, 김영삼 정부가 이미 항복한 걸로 지레짐작하고 ‘민족’이라는 트로이 목마를 선물로 받아 이를 전리품으로 알고 남하하는 바람에 단숨에 임진강까지 밀렸다.
그의 치세 5년 동안 임진강 이남 곳곳에 저들은 ‘반미반일(反美反日) 반제민족(反帝民族)’ 진지를 구축했다. 이들이 6․15공동선언 이후 당당히 네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그에 앞서 제일 먼저 방송을 장악했었다. 그 후에 새로운 신천지 인터넷을 무혈점령했고.
노태우 정부 때까지 ‘아래로부터 민족자주통일’을 도모하다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후 똑똑한 몇 명을 그 각료나 참모로 들여보내 ‘위로부터 민족자주통일’도 함께 꾀하기에 이른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위아래 양쪽에서 협공했다. 그러나 처음 2년 동안은 반공 세력이 워낙 강력하여 민족이라는 이름의 트로이 목마에서 핵심 세력이 다 나오진 않았다. 위로부터의 혁명에 신중을 기했다. 마침내 이들이 노무현 정부 수립에 성공한 이후는 정말 거칠 게 없었다. 거의 눈치를 보지 않고 위아래에서 동시에 미국과 일본을 협공하는 척 대한민국을 민족의 마약으로 중독 시켜 깊은 잠의 바다에 빠뜨렸다. 호머의 [오디세이아]에는 빠져 있는 뒷이야기이지만, 이젠 트로이를 돕던 막강 동맹군 페르시아군을 돌려보내고 성문만 열면 된다. 그러면 군량미가 떨어져 다 죽어가던 그리스군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김영삼 정부는 천추의 한을 남겼다. 역대 정부가 99% 이겨놓은 이념 전쟁에서, 김씨 왕조와 친북좌익이 기를 쓰고 퍼뜨린 헛소문인 줄도 모르고 ‘자유통일’을 ‘흡수통일’이라며 단호히 거부하고 ‘민족반역집단’의 항복을 받아내지 않고 화달짝 물러섰던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마땅히 반공에 이어 ‘북한인권’으로 나아가야 했다.
한반도는 예외지만 냉전 체제가 붕괴되면서, 효력이 떨어진 반공 전략 대신 또 다시 벌어지는 치열한 이념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북한인권’을 내세워야 했다.
그러면 전세계가 한 편이 되어 도와 주었을 터이고 무엇보다 4800만 절대다수 한국 국민으로부터 또 2000만 전체 북한 주민들로부터 열렬히 환영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벼랑 끝에 선 김씨 왕조가 제 울타리 안의 2000만 민족을 노예로 만들어 놓은 채 언어도단도 유분수지,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내려 보낸 ‘민족’이라는 트로이 목마를 자진해서 대단한 전리품으로 알고 끌어들였다. 그로써 대한민국의 운명은 거의 결정되었다. 한국의 대통령은 마지막 1년을 제외하고는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을 모두 합한 것보다 센 힘을 갖고 있으니까. 그 때나 지금이나.
그 사이 북한에서는 3백만이 굶어 죽었다. 이제 어쩌면 그 이상이 ‘서울 바다 불바다, 인천 바다 불바다’에서 생으로 타 죽을지 모른다. 한 명이라도 덜 죽으려면, 북한 주민들에게 8․15 해방보다 10배나 더한 기쁨을 선사하려면, UN과 더불어 ‘북한인권’을 소리 높여 외쳐야 한다. 그러면 1950년대의 ‘평등’ 환상과 1860년대의 ‘민족’ 망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남북의 시대착오적인 두 세력들을 동시에 몰아내고, 군사도 군량미도 없던 12척의 전선에 1척을 보탠 13척에 피난민으로 급조한 군사를 태우고 피난민의 식량에서 십시일반으로 얻은 군량미로 그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고 200여척의 왜군을 맞아 기적이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 없는 완봉승을 거둔 이순신 장군처럼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통쾌하게 대역전극을 벌일 수도 있다.
(2005.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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