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는 최근 베네수엘라 사태와 관련, ‘남미는 어떻게 베네수엘라 지역을 잃게 됐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은 지난 20여년동안 남미 국가들이 베네수엘라 문제 해결을 위해 조치에 나서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며 이들이 베네수엘라 사태 해결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남미 국가들은 자국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으며 실제로 도움을 주기 위한 역량도 없고 정치적 동기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남미 국가들은 1980년대 민주화를 이뤄내는 과정에서 외세 개입을 최소화하고 역내(域內) 단합을 강화하려 했으나 제대로 된 행동과 조치가 뒤따르지 않았고 베네수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배척하려던 외세, 즉 미국과 중국이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관련 논문을 전문(全文) 번역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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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베네수엘라의 젊은 야당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는 자신이 이 나라의 임시 대통령이라고 선언하며 니콜라스 마두로 현재 대통령은 2018년 5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을 저지름으로써 국가를 이끌 정당성을 잃었다고 밝혔다. 이후 미국과 브라질을 비롯한 많은 남미 국가들은 과이도를 베네수엘라의 정당한 대통령이라고 인정했다. 남미 국가에서는 볼리비아와 가이아나, 수리남, 그리고 우루과이 등이 이에 동참하지 않았다.
대다수의 남미 국가들이 과이도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것과 관련해 많은 사람들은 이를 마두로의 독재정권에 맞서기 위한 중요한 진일보(進一步)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사실 남미는 베네수엘라 사태와 관련해 더 이상 중요한 역할을 맡지 못하고 있다. 마두로와 그에 반대하는 젊은 도전자는 모두 국내 문제에 있어 군부(軍部)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울러 실제적으로 영향을 끼칠 외부 세력은 미국과 중국이며 아주 넓게 봐야 쿠바와 러시아가 포함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는 지난 1980년대에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외세의 개입을 줄이는 것을 외교의 핵심 목표로 삼아온 남미 국가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브라질의 경우는 특히 국경 지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수십년간 지속돼 온 브라질 외교가 크게 실패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브라질은 역내(域內)에서 자신을 외교적 및 정치적 지도자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온 바 있다. 베네수엘라 사태가 보여주듯 남미는 다시 한 번 열강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
상황이 왜 이렇게 됐을까?
남미는 지난 20세기 내내 외세 개입에 따른 길고 고통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 미국과 같은 국가들은 자국의 외교 정책 이해 관계를 위해 남미 지역에서 쿠데타나 군부 독재를 지원해줬다. 남미 국가들은 1980년대에 민주화를 이뤄 나가며 일종의 지역적 통합 체계를 통해 주권과 민주주의를 향상시키려 했다. 이런 역내 협력을 통해 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하는 국가들에 불이익을 주는 방식을 택했으며 이중 하나의 예로는 지난 1991년 창설된 남미공동시장이자 경제공동체인 ‘메르코수르’를 꼽을 수 있다. 남미 국가들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국가들의 경우는 메르코수르 회원 자격을 중지시키는 등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는 방법도 마련했다. 그러나 역내 국가들은 민주주의 가치가 무너지는 것을 막는 데는 실패했다. 마누엘 셀라야 온두라스 대통령은 2009년 쿠데타로 인해 실각했으며 페르난도 루고 파라과이 대통령도 2012년 논란이 되는 탄핵으로 인해 정권을 잃었다. 당시 두 국가는 일시적인 외교 고립에 처해지는데 그쳤다.
브라질은 이런 과정에서 역내의 가치를 정립하기 위한 핵심 역할을 맡아 왔다. 브라질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남미에서 핵심 외교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노력했으며 주변에서 발생하는 위기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브라질은 1996년 파라과이의 리노 오비에도 장군이 후안 카를로스 와스모시에 대한 쿠데타를 일으키지 못하도록 설득한 바 있다. 와스모시는 파라과이에서 처음으로 민주적 절차를 통해 당선된 민간 대통령이었다. 3년 후 브라질은 다시 한 번 파라과이에서 일어난 정치적 혼란 상황을 중재했다. 브라질은 당시 힘을 빼앗긴 라울 쿠바스 그라우 대통령이 망명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지난 2002년 베네수엘라에서는 우고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당시 브라질은 미국과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고 다른 중남미 국가들이 포함된 ‘베네수엘라의 친구들’이라는 단체를 구성하고 차베스 대통령과 야당 사이의 중재를 맡았다. 그러나 남미 대륙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려 한 이런 국제사회의 노력은 차베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차베스는 지난 십여 년간 구축된 국제사회의 정치 체계는 쿠데타를 비롯한 정치적 혼란을 방지하는 게 목적이지 선거로 당선된 지도자가 이끄는 국가가 민주주의 체제를 점진적으로 약화시키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차베스는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중미 국가들 등과 투명하지 않은 석유 계약을 체결하며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브라질 기업들에게도 수익성은 보장하되 투명하지 않은 사회기반시설 구축 사업권을 보장해줬다.
이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 들어선 좌파 정권들은 차베스에 대한 일종의 동질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이 베네수엘라의 우방으로 남았던 이유는 차베스의 ‘석유 외교’와 브라질 기업들에 제공된 수익 보장이었다. 실제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2000년대에 들어 약 10년동안 차베스의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이들 국가들은 차베스를 국제사회의 압박에서 보호해줬고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의 외교관들에게 자신들이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브라질의 경우는 최근 일어난 정치적 및 경제적 혼란 사태로 인해 베네수엘라에 대한 영향력이 더욱 줄어들었다. 차베스가 암으로 사망하자 마두로가 2013년부터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이후 브라질 정권은 경제 불황과 대규모 부정부패 스캔들에 휩싸였으며 과거부터 지속해온 외교 정책을 이어가지 못하게 됐다. 남미 지역 문제를 관리해온 지도자가 사라지고 베네수엘라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촉진시키게 된 것이다.
남미의 고위 외교관들은 사적인 자리에서는 베네수엘라가 결국에는 붕괴할 수밖에 없으며 정치 상황이 너무나도 악화돼 상황을 중재하려는 시도는 겉치레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2013년 이후 이뤄지는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은 이미 너무 늦었고 효과도 적을 것이라는 이들의 분석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차베스 정권 시절 그로 하여금 기본적인 민주주의적 가치를 지키도록 하는 압박을 가하는데 있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2012년 메르코수르에 가입한 베네수엘라에 민주주의가 회복될 때까지 회원자격을 정지한다고 압박할 수 있었다.
외교적 혼란
현재 남미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남미 대륙의 국가들은 지난 20년간 외세의 영향력을 줄이려 노력해왔다. 그러나 현재 베네수엘라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쿠바순이다. 역내 다른 국가들이 베네수엘라에서 취할 수 있는 영향력은 매우 제한적이다. 베네수엘라 난민들로 인해 브라질과 콜롬비아가 타격을 받고 있지만 할 수 있는 게 적다는 설명이다. 만약 베네수엘라 위기 상황이 지속되거나 고조된다면 이에 따른 여파는 수년간 이어지게 될 것이다.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당선을 비롯한 최근 정치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남미 국가들이 베네수엘라 사태를 해결하는 데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전망이다. 콜롬비아는 미군이 주둔하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할 수는 있지만 역내 어느 국가도 직접적인 개입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보우소나로의 경우는 대외적으로 미국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지원을 나설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브라질은 베네수엘라에 군대를 보내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역내에 친미(親美) 국가가 들어선다고는 하더라도 이런 행동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미 국가들은 이미 그들이 발표한 과이도를 대통령으로 인정한다는 외교적 조치 이상의 조치를 취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두로 정권이 붕괴하게 되더라도 베네수엘라에서 발생할 상황은 미국과 중국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이는 베네수엘라가 중국을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쿠바가 베네수엘라와 갖고 있는 관계는 거의 정치적인 관계이며 마두로가 정권을 잃게 되면 축소될 것이다. 마두로의 후임자는 서방세계와 중국이 이끄는 개발은행과 대규모 계약을 채택해 국가 재건에 나서야 할 전망이다. 또한 이는 수십년간 이어질 고통스러운 작업일 것이다. 극심한 사회 불균형과 석유 수입에 대한 의존도를 비롯한 베네수엘라의 많은 문제점을 차기 정권이 쉽게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기 전 상황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미국과 중국 지도자의 도움을 받아내야만 한다.
남미 국가 지도자들은 이와 관련해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자국내 경제 위기를 해결해야 하고 치열한 재선을 앞두고 있다. 브라질의 보우소나로 역시 외국 문제에 적극 개입하기 전에 자국내 경제 및 정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가까운 동맹이자 베네수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콜롬비아 역시 해결해야 할 국내 문제가 산적해 있다. 현재 콜롬비아는 자국으로 들어온 100만 명이 넘는 베네수엘라 난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 난민 숫자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아울러 베네수엘라를 재건할 역량이나 정치적 동기 역시 없다.
현실적으로 남미 국가들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은 네 가지다. 첫째는 남미 대륙에 퍼지고 있는 베네수엘라 난민 문제 대응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남미 지도자들은 역내 정상회의를 열고 베네수엘라 난민들을 어느 곳으로 이주시키고 거주지를 제공할지 등의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또한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그리고 페루와 같이 난민 문제로 가장 타격을 받은 국가들에 대한 보상금을 마련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두번째는 마두로 정권이나 후임 정권이 의료 및 인도주의적 지원을 받겠다고 한다면 이를 전달할 수 있도록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셋째로 남미 국가들은 마두로 정권의 핵심 지도층들을 사면하고 망명을 허락해줘야 한다. 이는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이를 통해 현재 베네수엘라의 지도층을 설득시킬 수 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피를 흘리는 전투에 나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나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의 전철을 밟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설득하는 것이다. 후세인과 카다피는 권력을 잃은 뒤 목숨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칠레, 그리고 다른 남미 국가들은 마두로 정권의 붕괴를 역내 군대간 협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남미국방위원회나 다른 협력 단체를 구성해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자연재해에 공동으로 대응하며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에 같이 참여하는 것이다. 이런 활동의 목표는 마두로를 따랐다는 이유로 붕괴될 수 있는 베네수엘라 군대로 하여금 다음 정권이 들어서도 군대에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압박 역할을 하는 것이 돼야 한다. 물론 이런 협력 관계는 베네수엘라 군부에 제한적인 영향만 끼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미래에 지금과 비슷한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면 남미 국가들이 베네수엘라 군대와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남미 국가들이 앞으로 자신들의 뒷마당에서 일어나는 일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