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봄, 서울 광진구에 있는 워커힐 아파트를 찾아간 일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합참의장과 주미(駐美) 대사를 지낸 유병현(柳炳賢) 장군이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이로 당시 팔순(八旬)인 유 장군은 자신의 지나온 길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제게 기자의 시각으로 자신의 지나온 삶에 대해 질문해 달라고 했습니다. 남의 손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기록이 너무 주관적으로 흐르는 것을 방지하고 기억을 되살려내기 위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던지는 질문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10여 차례 이어지던 우리의 만남은 어느 날 끝이 났습니다. 유 장군의 건강이 나빠졌기 때문이죠. 이후 다행히 건강이 회복된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에 유 장군의 회고록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물론 본인이 직접 쓴 회고록이었죠.
저는 《월간조선(月刊朝鮮)》 2005년 10월호에 1980년 당시 합참의장 유 장군과 미국 대통령 당선자 레이건 측 사이에 오간 2급 군사 비밀문서를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구명을 대가로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과 레이건의 한미(韓美)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과정을 보여주는 문서였죠.
제가 유 장군을 만나면서 입수했던 문서였습니다. 많은 비화를 간직하고 있던 분이라는 방증이죠.
유 장군과의 개인적 인연을 길게 얘기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5·18 광주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5·18진상규명위원 3명 중 2명에 대해 결격 사유가 있다며 임명을 거부했습니다. 저는 그 근저에는 5·18 당시 북한군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자칭 보수라는 분들을 포함한 우파 진영의 논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 장군은 이런 말을 했죠.
“5·18 광주 당시 한미 공조로 북한의 개입을 원천 봉쇄했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요. 북한군의 조직적 개입을 말하는 분들과 북한군이 조직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는 유 장군의 말. 저는 후자를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