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뇌리엔 행동하는 보수주의자이자 영원한 자유인으로 각인된 朴槿 전 유엔대사는 오늘 만 92세로 별세하기 하루 전까지도 트위트로 행동을 멈추지 않았던 애국자였다.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줏대 있는 외교관으로 유명한데, 현직에서 물러난 지난 20여년간은 애국운동의 현장에 있었다. 밝고힘찬나라운동본부를 만들었고, 한미우호협희 회장을 역임하면서 국민행동본부를 지원하였다. 2005년엔 맥아더 동상을 부수려는 좌익들과 현장에서 대결하기도 하였다. 그는 2002년 무렵부터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는 자위적 핵무장을 결단하는 수밖에 없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해왔다. 정부 고위 관리 출신으로서 핵무장을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외교가에선 그와 관련된 유명한 에피소드가 많다. 주로 그의 연설에서 생긴 逸話이다. 1983년 9월 소련 요격기가 대한항공 007편을 미군 정찰기로 誤認, 사할린 상공에서 격추, 승객 승무원 269명을 죽였을 때, 박 대사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회의에 참석, 명연설을 하였다. '대한항공기는 맹수에 의하여 사냥된 먹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사건은 민간항공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무도한 행위다'고 비판하였다. '맹수에 사냥된 먹이'라는 말이 신문 사설 제목이 되기도 하였다.
항공테러와 인연이 또 있다. 1987년 11월 김현희-김승일 조에 의한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이 나고 이듬해 유엔안보리에 이 문제가 올라갔을 때 그는 유엔대사였다. 안보리 연설에서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면서 북한 대사를 향하여 '몽상에서 깨어나라'고 영어로 일갈하였다.
보수주의 이론가이기도 한 朴 선생은 '한국 보수주의의 위기'(1997, 한국논단), '정과 멋의 한국보수주의'(2000, 한국논단), '한국의 보수여, 일어나라'(2002, 월간조선), '자유와 정의'(2011, 기파랑), '자유 민주 보수의 길'(2015, 기파랑), 그리고 영문으로 쓴 회고록 'HIBISCUS'(랜덤하우스)를 남겼다.
박근 선생은 6·25 전쟁에도 종군하였다. 보수는 자유를 지키는 정치운동이라면서 '역사는 자유를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진보해왔다'고 힘주어 말하곤 하였다. 그래서 당대의 최강대국은 항상 자유가 가장 많은 나라였다는 것이다. 박 선생은 세상을 늘 낙관적으로 인식하였다. 좌익의 발호에도 불구하고 자유는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다는 이념적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낙담하는 후배들을 격려하였다.
그는 기파랑에서 나온 '자유 민주 보수의 길' 머리글에서 보수의 철학을 이렇게 정리하였다.
<보수주의는 한두 사람의 머리에서 꾸며낸 ‘탁상공론’을 멸시한다. 마르크시즘이니 공산주의니 하는 유토피아 이론도 불신한다. 아무리 머리 좋은 인간도 우주의 진리를 다 아는 체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우리는 진보주의니 뭐니 하면서 보수주의에 대항하려는 사상이나 이론도 겪었고 경험했다. 그 실험들이 눈앞에서 망하는 것도 보았다. 보수주의는 공산주의 혁명뿐만 아니고 모든 혁명을 경계한다. 과거는 없애고 오늘부터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겠다는 자세를 경계한다.
과거를 전부 가슴에서 청소하고 어제까지 배운 것을 전부 머릿속에서 청산하고 나면 사람의 행동 지침이 되는 것도 없어진다. 본능만 남게 된다. 인간은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野獸가 되고 만다.
박정희의 5·16 군사혁명은 과거를 청산하려는 ‘혁명’이 아니었다. 응당 5·16 개혁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기존 질서를 몽땅 슬어 없애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의 과거를 청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흡사 어제가 없었던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것을 싹 쓸어내고 원시로 되돌아가 다시 제로로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5공 청산’ 등과 같이 과거를 청산하겠다느니 하는 한국 정치는 아직도 너무 어리고 어리석다.>
박근 대사가 설파하는 그러한 가치관을 지닌 보수주의자는 한 마디로 아래 위를 아는 사람일 것이다. 忠孝를 겸하고 죽은 사람과 살고 있는 사람과 태어날 사람들을 이어주는 정과 멋과 교양이 있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그가 그런 자유인이었다. 박 대사는 80, 90대의 나이에도 젊은 마음으로 싸우고 사랑하고 논쟁하였다. 이승만 박정희의 위대성을 알아주었고 전두환을 변호하였으며, 민주투사들의 僞善을 알아본 이였다. 마지막까지 이승만, 박정희, 트루먼 동상 세우기 운동을 이끌었다. 세 분의 동상이 서는 그날 박근 선생이 이루지 못하고 떠난 恨이 풀릴 것이고 이 나라도 바로 설 것이다. 명복을 빈다.
<박근 대사 약력>
1927년 경남 고성군 고성읍 무량리 출생
1953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 졸업
195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원 졸업(정치학 박사)
1961~1969 외무부 문화과장, 미주과장, 주미참사관
1969~1975 駐英공사, 駐美공사
1975~1983 駐스위스, 駐태국, 駐벨기에 겸 EC 겸 룩셈부르크 대사
1983~1985 외교안보연구원장
1985~1986 駐제네바 대사
1986~1988 駐유엔 대사
2001 ~ 2008 제3대 韓美우호협회 회장, 한미우호협회 명예회장













멋지고 자랑스러운 형님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스승 한분이 幽明을 달리하셨다! 부디 저승에서 나마 '百尺竿頭 進一步"의 위기에 처한 조국 '자유대한민국"을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