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1970년대 한국의 중화학공업건설을 주도했던 청와대 제2경제수석 비서관 吳源哲씨의 회고담이다.
<수출에 실패를 하면 나라의 경제가 어려워지고 드디어는 국가위기가 닥쳐온다.
우리나라도 수출에 실패해서 1997년에 소위 IMF사태를 맞고 현재(2001)까지 여기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어느 나라이건 수출을 장려하고, 어느 시대의 대통령이건 수출을 늘리겠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나라에서는 성공을 하고, 어느 대통령은 실패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그 답을 1960∼70년대의 우리나라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1960∼70년 당시 우리나라의 수출진흥은 마치 군사작전과 같았다. 총사령관은 朴 대통령이고, 작전참모 본부는 상공부였다. 실제로 전투에 임한 것은 수출연관업체의 임직원인데 그 중에서도 최전선에서 싸운 것은 1960년대에는 여자 단순기능공이고, 70년대는 남자 기능공이었다. 그리고 온 국민이 합세했다.
우리국민은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절망적인 민생고」 즉, 「한 많은 보릿고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수출제일주의」라는 것을 깨닫고,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수출에 매진했다. 매해 40%의 수출신장이라는 것은 바로 기적이었다. 그러니 이러한 기적을 이룩하는 길이 어찌 험하지 않겠는가? 어찌 고생스럽지 않겠는가? 이 고생의 표출은 '땀과 눈물'이었다. 당시 수출에 깊이 관여한 사람 중에 땀과 눈물을 안 흘려 본 이가 누가 있겠는가? 마치 군에 갓 입대한 신병 중에서 땀과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는 상공부에서 그 예를 찾아본다. 朴 대통령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나 「수출 10억 달러 수출계획(시안)」 조차도 무시하고 「수출 40% 신장」만을 고집했다. 「밀어붙여라」가 그의 명령의 전부였다. 상공부에서는 이 목표를 향해 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출품목별, 회사별, 나라별, 날짜별, 금액별 등등 상세한 통계를 작성하고, 이것을 토대로 월별 수출계획을 수시로 체크해야 한다. 매달 매달의 실적은 무역확대회의를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되고 언론에 공개된다. 자기가 담당한 수출이 부진할 때는 막바로 그 담당자의 책임으로 돌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수출애로사항이 생기면 자진해서 타부처와의 협력을 얻어내야 하고, 수출이 부진한 업자에 대해서는 직접 방문해서 독려해야 한다. 즉 발로 뛸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그 달의 수출액이 목표액에 미달할 때는 선수금이라도 받아 수출액수를 채워야 한다. 그러니 각 담당자는 빚 독촉을 받는 사람처럼 하루라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수출확대회의를 개최하는 것 자체도 보통 일이 아니다. 국가원수를 위시해서 국가의 중요인사를 망라하는 회의를 준비한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닌데 이것을 매월 개최해야 하니 담당부서(수출진흥과)로서는 고역중의 고역일 수밖에 없다. 만의 하나라도 실수를 하면 큰 문책을 당했다. 수출진흥과장의 증언을 들으면,
'왜, 한달이 그렇게 빨리 가는지 모르겠다. 전달 수출확대회의를 끝내고 하루 이틀 지난 것 같은데 또 다음달 수출확대회의가 온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린다. 수출확대회의에 대한 준비가 덜 됐는데 내일이 수출확대회의라는 꿈을 꾸고 벌떡 일어나게 된다'
'체중이 7㎏나 줄었다. 몸이 축나서 이대로는 못 배겨나겠다' 등등이다.
그래서 아무도 이 자리에 가려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이 자리야말로 수출진흥을 위해서는 중추적이고 중요한 자리이다. 그래서 가장 유능한 인사를 배치해야 한다. 할 수 없이 임기를 1년 기한으로 하고 1년이 끝나면 영전시켜 준다고 약속하는데도 아무도 수출진흥과장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다.
이때 상공부에서 유행한 노래가 있다. 「수출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라는 노래이다. 당시 유행하던 '사랑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의 노래 중 사랑이라는 가사를 '수출'로 바꿔 부른 것이다. 수출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했을까?
그러나 이러한 고생도 목표로 정했던 수출고지를 달성하고 나면 환희로 돌변했다. 이렇게 한해 한해가 힘겹게 지나고, 드디어 1970년에 10억 달러라는 수출고지를 돌파한다. 이로써 우리 국민은 「보리밥」이라도 먹을 수 있게 됐다. 다음 고지는 수출 100억 달러이다. 이때 우리국민은 「쌀밥에 쌀 막걸리」를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온 국민은 계속 뛸 수밖에 없다. 고생은 하면서도 신명나게 일할 때의 이야기이다>
"수출은 눈물의 씨앗"
- 吳源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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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1-04, 11: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