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4월 2일은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는 결정적인 날이다. 이날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의회에서 연설을 통해 미국이 참전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설파했다. 미국은 조지 워싱턴 대통령 때부터 고립주의 외교노선을 유지해왔으며 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의 잠수함 공격 작전에 따른 민간인 피해 등으로 인해 미국은 참전을 고민하게 됐다.
이에 따라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참전을 위해서는 정당성을 강조해야 했는데 그는 4월 2일 연설을 통해 의회의 동의를 호소했다. 그는 이날 “(미국) 의회는 최근 일어난 독일 제국의 행동이 미국 정부와 국민들에 대한 전쟁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을 선포해야 한다”며 “모든 권한과 자원을 독일 제국에 사용하고 전쟁을 끝내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틀 뒤인 4월 4일 미국 상원은 82대 6으로 전쟁을 선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다음날인 4월 5일 미 하원 역시 이 결의안을 373대 50으로 채택했다. 이에 따라 윌슨 대통령은 다음날인 6일, 공식적으로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1916년부터 1921년까지 미 전쟁부장관을 지낸 뉴튼 베이커는 1936년 10월 1일 미국의 외교 전문매체인 ‘포린어페어스’에 ‘우리는 왜 전쟁에 참전했는가’라는 제하의 칼럼을 게재했다. 그는 이 칼럼에서 4월 2일 있었던 윌슨 대통령의 연설을 본 의원들은 이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의회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해외에서 파견된 외교관들에 배정된 자리는 그 자리대로, 각료들에 배정된 자리는 그 자리대로 가득 찼다. 윌슨 대통령이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자 의회의 모든 사람들은 만장일치로 이에 찬성하는 반응을 내놨다. 화이트 대법관 역시 이와 같은 발언이 나오자 손을 위로 들고 흔들었으며 이는 대통령의 결정에 찬성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였다. 미국의 대법관들은 대통령의 의회 연설에 참석하지만 이들은 의원들과는 달리 박수나 야유를 보내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한다.
한편 1차 세계대전은 1914년 6월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드와 부인 소피아가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했을 때 세르비아의 암살단이 잠복해 있다가 이들을 사살하면서 시작됐다. 오스트리아는 7월28일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고 독일 제국은 오스트리아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러시아가 보호국인 세르비아를 위해 참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프랑스와 영국 등도 연합군 편에 참전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제국, 그리고 오스만 터키가 이에 맞섰다. 각 진영이 7000만 정도의 병력을 동원했고 약 1000만 명의 군인이 숨졌다. 주전장은 프랑스와 독일의 서부전선이었다.
독일은 서부전선에서 밀리자 1917년 9월 연합국에 휴전 제의를 하는 방안을 고민하게 됐다. 그런 가운데 독일의 동맹들은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불가리아는 9월 30일, 오스트리아는 10월 27일, 오스만은 30일 항복했다. 독일 정부 역시 11월 11일 연합국과의 휴전조약에 조인했고 5년에 걸친 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종결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