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4월 3일은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이른바 ‘마셜 플랜’에 서명, 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16개 유럽 국가들에 경제적 원조를 하기로 결정한 날이다.
마셜 플랜의 정식 명칭은 유럽부흥계획(ERP)이었으나 당시 국무장관인 조지 마셜이 처음으로 제안한 것에 따라 마셜 플랜으로 불리게 됐다. 트루만 행정부는 기아와 빈곤, 경제적 불안정이 심화되는 유럽을 소련과 공산주의의 팽창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트루먼 대통령은 ‘자유인들을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어야 한다’는 이른바 ‘트루먼 독트린’을 1947년 의회 연설을 통해 발표했다. 이에 따라 생긴 정책이 소련에 대한 ‘봉쇄 정책(containment policy)’이다. 이듬해인 1948년에는 마셜 플랜에 서명함에 따라 실질적인 조치에 나서게 된 것이다.
마셜 국무장관은 1947년 6월 5일 하버드 대학교에서 실시한 연설에서 마셜 플랜에 대한 구상을 처음으로 밝혔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정책은 특정 국가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며 굶주림과 가난, 절망과 혼란을 없애려는 것이다…이 정책의 목적은 세계 경제가 동력을 회복함으로써 자유로운 제도들이 유지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조건을 만드는 것이 돼야 한다.>
미 상원은 이 마셜 플랜 관련 법안을 1948년 3월 13일에 통과시켰고 하원은 3월 31일에 이를 통과시켰다. 상원은 71대 19로, 하원은 333대 78로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은 1951년까지 약 127억 달러의 경제 원조를 했다. 영국이 33억 달러, 프랑스가 23억 달러, 서독이 14억 달러를 받았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도 10억 달러 이상씩의 원조를 제공받았다.
마셜 플랜은 성공적이었다. 원조가 끝난 1952년 서유럽 국가들은 전쟁 이전의 경제력을 회복했다. 1951년 기준 경제 생산량은 1938년보다 35% 올랐다. 이들 국가들은 마셜 플랜에 따른 원조가 끝난 뒤에도 자체적으로 성장을 이어갔으며 약 20년 동안 전례 없는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한편 마셜 플랜이라는 말은 지난해 다시 한 번 등장해 언론의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다. 미국이 북한 문제 해결 방안으로 마셜 플랜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은 지난해 6월 18일 ‘디트로이트 경제 클럽’에서 열린 행사에서 마셜 플랜을 언급했다. 그는 이날 김정은이 무기 체계뿐만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며 미국은 정전 협정을 바꾸고 안전 보장을 대가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 주민들이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며 “우리가 성공했던 오랜 역사가 있다. 사람들은 마셜 플랜과 같은 일들을 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유럽의 파트너 국가들이 도움이 필요했을 때 지원을 했다”고 말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