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서 발생한 산불은 다행히 진화되었다. 1800채가 넘는 주택·시설물 피해, 여의도 면적 의 두 배에 가까운 530만㎡ 산림이 불탔고, 돌아갈 집이 없어 임시 대피소 등에 머무는 주민들이 아직도 7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대형화재보다 더 요란했던 것들이 있다. 정부와 여당은 듣기 민망할 정도로 화재진압의 성공을 자화자찬했고, 언론은 열심히 거들었다. 몇몇 매체들의 기사 제목은 낯간지럽다.
“위기대응 돋보인 강원 산불 진압, 남은 과제도 많다”(경향신문)
“민관 총력 대처한 강원 산불, 피해 복구·지원 서두를 때”(연합뉴스)
“‘헌신적 사투’로 막은 산불, 국회는 뭘 하고 있나”(한겨례)
“靑 '강원 산불, 체계적 대응으로 조기 진화 및 피해 최소화””(파이낸셜뉴스)
“‘강원 산불’ 국가가 움직였다…달랐던 재난대응 ‘세 장면’”(헤럴드경제)
“정부 ‘산불과의 전쟁’…초동대처가 참사 막았다”(뉴시스)
“‘3대원칙’지켜 최악 산불참사 막았다”(매일경제)
위 기사들은 대체로 대형화재가 발생했지만, 정부의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응으로 조기 진압된 것을 칭찬하는 내용이다. 경향신문 “위기대응 돋보인 강원 산불 진압, 남은 과제도 많다”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일 심야와 5일 잇따라 국가위기관리센터 회의를 주재한 뒤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현장을 찾아 피해 주민들을 만났다.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임식도 치르지 못한 채 산불 현장에서 진영 후임 장관과 임무를 교대했다. 시민들도 한마음이 돼 조기 진화를 응원했다. 세월호 등 대형참사들을 겪으며 사회의 위기대응 역량과 안전의식이 한 단계 성숙해졌음을 실감케 했다.>
대형 재난에 대통령과 장관이 회의를 주재하고 현장을 찾는 것이, 왜 ‘위기대응 역량’의 성숙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을 가지고 언론은 마치 정부의 대단한 활약으로 화재가 진압된 듯 보도했다. 방송사들은 문재인 대통령보다 먼저 현장을 방문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 대한 보도에는 인색했고, 4일 밤 화재 발생 5시간이나 지난 자정을 넘어 지하벙커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의 늑장 출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낙연 총리 홍보매체로 전락한 언론
자화자찬의 정점은 ‘이낙연 총리의 깨알수첩’이라는 제목으로 쏟아진 보도였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까지 일제히 보도했다. 강원 산불 대책회의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의 수첩 메모 사진을 한 매체가 기사화하자, 정운현 국무총리실 비서실장이 8쪽 분량의 수첩 내용 전문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했고, 이를 모든 언론이 집중보도한 것이다.
6일 정 실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총리의 산불대책 수첩 메모가 화제”라며 “오전 9시47분 사진 기사가 올라온 지 4시간 만에 ‘좋아요’ 3600여 개에 댓글 1100여 개가 달렸다”고 전했다. 관련 기사에는 이런 대목들이 들어있다.
<정 비서실장이 공개한 이 총리의 수첩에는 ‘해야 할 일’에 대해 번호가 붙은 메모가 적혀있다. 첫 번째는 ‘잔불정리·뒷불-감시-현지’, 두 번째는 ‘이재민 돕기 식사·숙박·의복·의료·학생공부·농업 등 시급한 생업’ 등의 내용이다. 이 총리의 메모 내용은 전날(5일) 그가 만난 산불 피해 이재민의 호소이기도 했다.> (뉴스원)
<또 이 총리는 ‘국민께서 이웃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착한 심성. 기부금품을 가장 알차게 쓰도록 미리 준비’라고 적으며 국민의 온정 사용처에 대해 수첩 1쪽을 빼곡히 채웠다.> (중앙일보)
전 언론이 이낙연 총리의 홍보 매체가 된 것인가. 국무총리든, 말단 공무원이든, 일반 회사원이든 자신의 할 일을 수첩이나 다이어리에 메모하고, 업무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적는, 지극히 상적인 일이 왜 ‘화제’가 되어야 하는가. 이낙연 총리의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에 언론이 동원이라도 된 것인가.
대형 산불로 전 재산을 잃고 실의에 빠진 이재민들, 그리고 4월 들어 전국 방방곡곡에 번진 산불을 바라보는 국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는 화재의 원인 규명,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실효적인 대책이다.
이언주 “산불 현장에서 자화자찬 이벤트”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낙연 총리 수첩 보도에 대해 “전 정권 땐 수첩공주라고 비판하더니 수첩왕자는 괜찮은가”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어느 방송을 보니 이 총리가 현장에서 피해 주민 위로하는 것을 일일이 찍어 실시간 중계하다시피 하는데, 그런 현장에서 다큐멘터리를 찍었어야 했는지 씁쓸하다”며 “문재인 정부는 자화자찬식 이벤트 대신 산불이 왜 일어났고, 왜 이렇게 피해가 커졌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중요한 건 이 산불이 어떻게 일어났고 어떻게 번질 수 있었는지, 왜 소방당국은 조기 진압에 실패했는지”라며 “한전의 책임 여부, 한전이 탈원전으로 지난해 7조 원의 적자를 기록한 일과의 관련성, 발화 이후 불이 어째서 축구장 면적 742배까지 번질 수 있었는지, 소방당국 지휘와 대응은 적절했는지,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규명하고 책임소재를 밝혀야 한다”고 했다.
반복되는 재난
이번 산불은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큰 산불은 주로 강원도에서 거의 4월에 일어났다. 2005년 양양 산불은 낙산사를 태웠고, 2000년 동해안 산불은 서울 여의도 면적의 열 배 크기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모두 4월 초에 일어났다.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속수무책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재난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번 산불도 정부가 지정한 ‘산불 예방대책 기간’에 일어났다.
2000년, 2005년, 그리고 이번 산불에서 공통으로 나타난 현상이 있다. 야간에는 사실상 진화 작업이 중단된다는 점이다. 소방 인력이 대규모로 투입되지만, 불길이 도로나 민가로 번지는 것을 막는 역할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소방청이 보유한 살수차로는 국지적 대응만 가능해 실질적 진화 작업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도하다 날이 밝은 뒤에야 헬기를 동원한 본격 진화 작업에 들어간다. 14년 전, 19년 전에도 똑같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심야에 “가용 가능한 모든 인력과 장비를 투입하라”고 긴급 지시를 내렸는데, 현장에서는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장비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 등에서 사용하는, 야간에 투입할 수 있는 대형 소방용 헬기가 없다. 산불용 진화차도 없다. 지난해 처음으로 야간에 띄울 수 있는 소방 헬기가 한 대 구비됐다. 그런데 이 헬기는 크기가 작아 강풍이 불 때는 비행하기 힘들다. 강원소방본부가 지난해 국회에 바람이 센 날도 야간에 투입할 수 있는 대형 헬기를 사게 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예산 배정을 받지 못했다. 250억 원짜리 야간 투입 가능 헬기 도입은 무산됐다.
산악지대에 특화된 진화차도 돈 문제에 막혔다. 독일산인 이 차량은 대당 약 10억 원으로 3000리터짜리 물탱크를 갖추고 있다. 한국처럼 산이 많은 곳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장비인데도 전국에 한 대도 없다. 강원소방본부가 두 대를 사려 했는데, 국회에서 예산 처리가 미뤄져 한 대도 장만하지 못했다.
정부는 산불 진압을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다. 예방대책 기간만 설정하고, 필요한 조치나 장비들을 갖춰놓지 않아 대형화재를 되풀이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볼 때다.












박근혜 대통령이 수첩에 기록하는 습관을 두고는 수첩공주니 뭐니하며 개지랄 떨던 눈치빠른 언론이 차기 대통령은 이낙연이라고 점찍고 벌써 忠誠先買 경쟁 하는 것 같습디다. 문재인은 이미 X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