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실장이 대형 산불 컨트롤타워? 존 볼턴이 캘리포니아 산불에 나서는 격

내각을 식물인간으로 만드는 ‘청와대 정부’의 또 다른 모습

집권 여당과 친여 매체들은 강원도 산불이 마치 자유한국당 탓이라도 되는 듯 공격했다. 이들은 지난 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정의용 안보실장이 밤까지 이어진 회의로 국회를 떠나지 못한 것을, 야당의 ‘발목잡기’로 선동했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전후 사정을 알 수 있다.

이날 오전부터 하루 종일 이어진 회의는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정의용 안보실장을 상대로 야당 의원들은 하노이 회담 실패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 10일 한미(韓美) 정상회담에서의 의제 등 북한 비핵화와 관련한 중요한 질의들을 이어갔다. 화재 진압만큼이나 중요한 국가안보에 대해 야당으로서 할 일을 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질의사항이 많기 때문에 추후 한 번 더 회의를 열어 질의를 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으나 여당은 반대했다. 그러면 저녁 식사를 간단히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정회(停會)시간을 최대한 줄이자고 제안했으나, 여당은 이 또한 반대했다. 19시52분 정회, 식사 후 21시25분에 회의가 속개되었다. 1시간30분이 넘도록 저녁 식사를 한 것이다.

저녁 식사를 위해 정회하기 전, 19시30분경 홍영표 원내대표는 “잠시 정회를 하겠는데요, 위원님들 양해를 한번 구할 사안이 있습니다. 정의용 안보실장께서 10일 날 대통령의 미국 정상회담 때문에 업무가 좀 많으시다고 그래서 아까부터 요청을 했는데 위원님들이 추가로 정의용 실장님에게 질문하실 위원님이 안 계시면 먼저 좀 이석을 할 수 있도록 양해를 구합니다”라고 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오후 내내 ‘미국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정의용 실장의 빠른 이석이 필요하다며 계속 야당 측에 협조를 요청했다. 야당의 ‘대북 정책’ 관련 질문을 사전에 차단해 이슈화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러나 야당은 질의를 계속하겠다고 했다.

21시50분 경 홍 원내대표는 처음으로 화재 얘기를 꺼낸다.

『◯ 위원장 홍영표  송석준 위원 수고하셨습니다. 지금 언론에도 크게 보도가 되고 있는데, 고성 산불 문제를 지금 얼마나 파악하고 계십니까? 실장님이나 안보실장님 말씀해 보십시오.
  ◯ 국가안보실장 정의용  오늘 저녁 7시 한 반경에 변압기에서 발화가 돼서, 고성군에서 시작을 했습니다만 바람이 동향으로 불어서 지금 속초 시내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간인 대피령도 내렸고요 지금 소방차 한 50대도 동원했고, 헬기는 야간이기 때문에 저희가 작동을 못 하고 있습니다. 우선 1차장을 위기관리센터로 다시 보내서 상황을 관리토록 했습니다.
  ◯ 위원장 홍영표  지금 속초 시내에도 아마 소개령이, 일부 주민들 대피령이 내린 것 같습니다. 굉장히 상황이 심각한데, 아무튼 정의용 안보실장은 이 건에 대해서도 아마 지휘를 하셔야 되는데 그것을 감안해서 위원님들이 질의를 좀 해 주시고요, 위원님들의 추가적 질의가 없으신 게 확인이 되면 바로 이석을 하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더불어민주당 부산 해운대구을 출신 윤준호 위원 질의하십시오.』

처음으로 화재 사실을 공개적으로 얘기하고, 정의용 실장을 제외한 담당자들을 위기관리센터로 먼저 보낸 후 추가 질의를 계속하도록 진행한 것은 홍영표 원내대표였다. 이후에도 여당  및 야당이 계속 질의를 이어갔다. 하노이 회담 결과를 둘러싼 격렬한 공방도 이어졌다. 40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하노이 회담이 실패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정의용 실장을 상대로 한 야당의 질의에 여당 의원들의 고성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홍영표 원내대표는 고성 산불 얘기를 다시 꺼냈다. 그는 “그리고 저는 위원님들한테 솔직히 말해서 오후부터 ‘지금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 안보실장을 좀 일찍 떠나게 하면 좋겠다.’ 그런데 합의를 안 해 주셨고. 그런데 지금 고성 산불이 굉장히 심각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사실과 다른 말을 했다. 오후부터 안보실장의 빠른 이석을 요청했다고 했으나, 그것은 화재 때문이 아니라 ‘한미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것이었다. 화재 얘기가 나온 것은 밤 10시가 다 된 시점이었다.
 
홍 대표는 계속해서 “속초 시내에서 민간인들을 대피까지 시키고 있고. 그런데 위기 대응의 총책임자입니다. (중략) 그래서 지금부터 좀 효과적으로 저도 진행을 할 테니까 협조를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 저렇게 대형사고가 생겨서, 산불이 생겨서 지금 민간인이 대피까지 하고 있는데 그 대응을 해야 될 책임자를 우리가 이석시킬 수 없다, 이래서 국회에서 잡아 놓는 것이 옳은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다시 회의를 진행했다.

홍 원내대표의 발언에 대해 나경원 원내대표는 “안보실장은 부득이 그러면 우리가 한 번 질문할 때까지 조금 계시고 그 사이에 다른 관련된 비서관이나 모두 가도 좋다고 얘기했습니다. 마치 생방송에서 저희가 뭔가 지금 방해하는 것처럼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어쩌다, 지금 저희가 청와대 한 번 부르기 쉽습니까?”라며 유감을 표했다.

30분 이상 회의가 또 진행된 후 홍영표 원내대표는 “위원님들 모니터를 켜시고요, 속보를 한번 보십시오. 지금 화재 3단계까지 발령이 됐습니다. 이것은 전국적으로 번질 수도 있는 화재라고 합니다”라고 강조했고, 다른 의원들의 동의를 얻어 정의용 실장의 이석을 허락했다.

이날 정의용 안보실장이 국회를 늦게 떠난 것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홍영표 원내대표에게 있다. 그가 국회 운영위원회 진행을 책임지는 ‘위원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치 야당이 발목을 잡은 듯 발언했고, 언론은 앞뒤 확인도 없이 받아쓰며 일제히 자유한국당을 공격했다.

여기서 한 가지 드는 의문이 있다. 정의용 안보실장이 ‘대형 산불’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미국의 존 볼턴이 캘리포니아 산불 진압에 책임자로 나서는 격이다. 모양이 이상하지 않은가. 연평도 사건, 천안함 폭침 등 국가안보와 관련한 중대한 비상 상황에 안보실장이 나서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지만, ‘대형 산불’의 컨트롤타워가 안보실장이라니, 좀 우습지 않은가? 국무총리도 있고, 행정안전부 장관도 있다. 굳이 청와대 비서실이 이런 사안에까지 책임자로 나서는 것, 내각을 식물인간으로 만드는 ‘청와대 정부’의 또 다른 모습 아닌가.

이런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언론은 이런 프레임으로 보도한다.
‘대통령 몇 시간 만에 회의 참석’ ‘대형 재난에 골프 치고 있던 정신 나간 공무원’ 등.

이번 강원도 산불에서도 속초시장이 아내의 환갑 기념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비행기 편이 여의치 않아 늦게 복귀한 일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이건 모든 공무원들이 마치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자’나 ‘점쟁이’가 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공직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매달려야 한다는 것인가. 모든 국민 또한 웃고 떠들어선 안 되며 조신하게 사태를 예의주시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조직’과 ‘체계’가 왜 필요하며, ‘시스템 구축’이 왜 필요한가.

대통령이, 또는 관련 책임자가 다른 일로 혹은 사적인 이유로 회의를 늦게 주재하거나 늦게 참석했다는 이유로 마치 할 일을 못 한 것으로 단정 짓는 프레임은 후진적이다. A가 없으면 B가 대신해 국가 위기에 대처하는 시스템이 순조롭게 작동되는 것, 이것이 훨씬 선진적인 모습 아닌가. 대형사고가 나기만 하면 어김없이 ‘세월호 7시간’ 류의 프레임으로 평가하는 모습은, 좌파든 우파든 이제는 버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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