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寅旭 강원산업 창업주의 삶

修道士 같은 기업인 鄭寅旭 강원산업 창업주

강원산업으로 탄광을 개발하고 삼표연탄으로 19공탄을 찍어 연료혁명을 일으킴으로써 산림의 황폐를 막았다는 평을 받는 고 鄭寅旭 강원산업 명예회장은 검소한 생활로 유명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도 지나간 연도의 탁상용 메모지를 묶어 메모장으로 재활용했다. 그의 밑에서 총무과장을 지낸 분은 이런 일화를 소개했다.

'하루는 鄭회장께서 구두 뒤축이 덜렁거려 저에게 수선을 해오라고 하더군요. 수선비가 1800원인가 했는데, 2000원을 주시는 겁니다. 거스럼돈 받기가 뭣해서 그냥 왔는데 '잔돈은 왜 안받아오는가' 하시더군요.'

한국 석탄협회 김재구 기획실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鄭寅旭 회장이 석탄공사 총재로 재직하실 때의 일입니다.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차 태백 탄전지대로 떠나게 됐어요. 예우상 鄭寅旭총재께서 청량리 역에 배웅을 나왔는데, 구두는 다 해져 너덜거리고 중절모에 구멍이 나 있었어요. 국회의원들이 그런 鄭총재의 모습을 보고는 '총재가 이처럼 검소하니 석탄공사는 국정감사를 할 필요가 없겠소' 이렇게 말했답니다.'

일제 시대 일본 도쿄의 와세다 대학에 유학하면서 사회주의 사상에 빠진 적도 있는 그는 강원도 탄광촌에 이상향을 세웠다. 그의 친구인 李東旭 전 동아일보 회장은 이런 회고를 했다.

'일제시대에 심훈의 '상록수'라는 소설이 발표돼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크게 감동한 鄭회장은 자신의 힘으로 상록수에 나오는 것과 같은 이상향을 건설하겠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鄭회장은 늘 '광부들 사택에서 피아노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싶다'고 했는데, 제가 현장을 가보니 정말로 그것이 실현되었더군요.'

그는 외자유치에 의한 고속성장 전략을 쓴 박정희 시절에도 민족자본, 민족기술을 강조하면서 깊은 지하로 내려가 채탄하는 과정도 국산 기술로 해결했다. 이를 두고 李秉喆 삼성그룹회장은 '鄭회장은 기업인이라기보다는 修道士이다'란 평을 했다고 한다.

鄭寅旭 회장은 1993년 강원탄광을 폐광할 때 기계와 설비들을 통일 이후에 북한지역에서 쓸 수 있도록 기름칠을 하고 잘 정리하여 보관해두도록 했다고 한다. 鄭회장은 '우리 기계가 북한에서도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준비해놓으라'고 신신당부했다는 것이다. 그는 1999년 88세에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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