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유행가 중에 '4계의 노래'라는 아주 단순한 리듬의 노래가 있다. 아라키 도요히코라는 사람이 작사. 작곡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젊은이들이 캠핑장에서 가끔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가사를 한국말로 번역하여. 10여 년 전 일본 여행 때 관광버스 안에서 이 노래를 처음으로 들었으나 가사를 외우지 못했었다.
2년 전 일본에 갔을 때 내 책 「유고(有故)!」를 번역한 JICC출판사의 한 여자직원에게 그 고충을 호소했었다. 몇 달 뒤 그 일본 여자직원이 파아란 종이 위에 가사를 적어 보내주었다.
봄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이 맑은 사람 /
제비꽃과 같은 나의 친구들 /
여름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이 강한 사람 /
바위를 부수는 파도와 같은 나의 아버지 /
가을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이 깊은 사람 /
사랑을 이야기하는 하이네와 같은 나의 연인 /
겨울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이 넓은 사람 /
殘雪을 녹이는 大地와 같은 나의 어머니.
한국인들에게 어느 계절이 가장 좋으냐고 물으면 아마도 가을이라는 대답이 나올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달'을 묻는다면 5월이나 10월이 수위를 차지하지 않을까? '가을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이 깊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가을이 사람의 생각을 깊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가을은 자신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한해의 결산인 추수를 통해서, 섬광처럼 타오르다가 소리없이 사라지는 단풍과 낙엽을 통해서 우리는 잠시 인생의 의미를 되씹어보게 되는 것이다. 계곡에 쌓인 낙엽을 밟을 때 가끔 콧날이 시큰해지면서 눈물이 맺히는 경험을 해보기도 한다. 그 눈물은 슬퍼서가 아니다. 이렇게 살아있는 '나'라는 존재를 온몸으로 느낄 때 샘솟는, 생명에의 감동 때문인 것이다. 이렇게 숨쉬고 낙엽 냄새를 맡으며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고마우며 감격적인 것인지를 가을이 가르쳐줌으로 해서 우리 마음이 좀더 깊어지는 것이다.
지구가 속해 있는 은하계는 돋보기 모양인데 약 1000억 개의 별들을 갖고 있다. 이 우주 속에는 또 은하계만한 성운(星雲)이 별들처럼 널려 있다. 그 수많은 별들 중에서 인간과 같은 고등동물이 살고 있는 곳은 지구 이외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우리의 행운은 지구에서 태어났다는 데서 시작된다. 지구가 탄생한 것은 약 45억 년 전이었다. 최초의 생명이 나타난 것은 32억 년 전이었다.
인간의 조상에 해당하는 동물이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약 400만 년 전이었다. 인간이 문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만들어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하기 시작한 것은 약 5000년 전부터였다. 배고픔의 문제를 겨우 해결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갈 수 있게 된 것은 한국인의 경우 불과 수십 년 전부터였다.
인간이란 동물은 지구 역사의 약 0.1%에 해당하는 시간대를 점유하고 있을 뿐이다. 인류문명의 시간대는 그보다 더 짧아 지구 역사의 0.0001%에 불과하다. 이 시간대에 태어나는 행운을 가졌기에 우리는 지금 공룡이나 해조류가 아니라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생명으로서, 그것도 인간으로서, 더구나 20세기의 인간으로서 '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확률로 계산해본 적이 있다. 분모의 숫자에 0이 한 바구니 분량만큼 붙는 바람에 중간에서 계산을 포기했지만 내가 한없이 재수 좋은 존재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가 있었다.
살아 있다는 것, 그것도 건강하게 한국의 심장부인 광화문 근방에서 일하고 있다는 데 대해서 10분만에 한 번씩은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감사를 표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으니까.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이 행운과 감사의 마음을 갖고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는 생명의 기쁨과 소중함을 나눠 갖는 일이다.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 고민 많은 사람들은 온전한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는 이들이다. 잘살고 심신이 건강한 사람들은 이들을 도와야 한다.
요즈음 과소비를 비판하는데 이런 해결책은 어떨는지……. 오늘 10만 원을 쓴 사람은 30%에 해당하는 3만 원을 돼지 저금통에 무조건 집어넣는다. 룸살롱에서 백만 원을 뿌리고 온 날은 30만 원을 집어넣어야 한다. 이렇게 모은 30%의 과소비 벌금을 가난하고 병든 이를 도우는 데 쓰는 것이다. 과소비를 많이 할수록 자선도 많이 하게 되는 기가 막히는 아이디어가 아닌가. 돼지 저금통으로 투입하는 돈이 아까우면 과소비를 줄일 것이니 이쪽이든 저쪽이든 좋은 일만 하게 만드는 이런 발상을 사줄 사람들은 없는가?
둘째,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도록 하자. 돌이나 풀, 구더기나 상어로 태어나지 않고 어엿한 문명인으로 태어났으니 우리는 내일 새벽에 교통사고로 죽더라도 불평할 자격이 없다. 내가 잘 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생명과 출생시기와 출생지가 그렇게 주어졌기 때문에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면 짜증을 내서도, 질투를 해서도, 자학을 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그러면 긍정적 사고란 도대체 무엇인가? 한국 사회의 부정부패는 단시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부패 척결이 될 때까지 성장을 멈추고 있을 수는 없다. 이럴 때는 차라리 '우리가 땀흘려 벌어놓은 부의 일정 부분은 도둑질 당하게 돼 있으니……'하는 전제를 깔고서 그런 도둑질을 감당하고도 남을 만한 성장을 위해 더욱 땀흘리는 자세, 이것이 바로 긍정적 사고의 요체이다.
한국의 정치판이 엉망이라고 통곡만 하고 있다고 해서 정치인들이 개과천선하여 올바른 정치를 하게 되지는 않는 것이다. 이럴 때도 차라리 '정치란 영원한 몬도가네'라고 접어두고는 '그럴수록 경제.사회.문화 등 다른 분야에서 더욱 열심히 노력하여 정치의 마이너스적 영향력을 상쇄시켜버리자'고 나서는 것이 속 편한 자세다. 부패 척결이나 정치 발전을 위해 계속해서 애를 써야겠지만 그것이 어렵다고 절망하지는 말고 '너희들이 백원씩 도둑질하면 나는 천 원씩 채워넣겠다'는 배짱으로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밉던 인간도 곱게 보이고, 추한 것도 아름답게 다가온다. 긍정적인 자세란 인간과 사물에 대한 애정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생긴 것 같다. '사랑은 사랑 받는 자의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의 것이니라.'
<1990년 10월 社報 럭키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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