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正熙 대통령은 눈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장교시절부터 지도를 잘 읽었고, 헬기로 공중시찰을 많이 하여 국토를 손금처럼 파악했다. 그는 또 地形 나무 생태계 등 자연현상에 대한 관찰력이 예민하여 주변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사물을 ‘눈 여겨 보는’ 사람이었다. 朴 대통령은 그림을 잘 그렸다. 특히 스케치를 잘했다. 도로변 정비 지시문에 스케치를 첨부하기도 했다. 그가 1973년 7월3일 경주 불국사 造景에 대해서 내린 지시 중엔 이런 대목이 있다.
‘불국사 주차장의 1~2호 변소 뒤편에 벚꽃나무를 植栽(식재)하여 미화할 것’
1976년 4월4일 대통령은 모범 예비군 30명을 접견했다. 그는 漁民중대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과거에 사냥할 때 보니 오리떼들도 먹이를 주워먹을 땐 한두 마리가 주위를 감시하고 있어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신호를 보내 일제히 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로작업에 열중할 때도 반드시 교대적으로 감시자를 두어 철저히 四界를 감시하도록 하십시오”
이해 5월30일 충남 금산의 七百義塚(칠백의총)을 찾았을 때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철쭉은 하나하나 떨어져 심는 것보다 한쪽에 모아 여러 가지 빛깔로 함께 심는 게 좋습니다”
1976년 3월5일 朴 대통령은 부산 동명목재의 새마을운동 슬라이드를 본 뒤 姜錫鎭 사장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까 슬라이드를 보니까 고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여자가 쓰는 새마을 모자가 남자 것과 똑 같은데 여자 것은 여자머리 모양에 알맞게 고치는 게 좋겠습니다”
朴 대통령은 드러난 사물뿐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일들의 핵심도 정확히 파악하고 실천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비전만 있고 실천력이 없으면 말만 현란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는 비전과 조직력과 실천력을 겸비했다.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을 새마을 지도자 육성이라고 보았다. 1975년 7월12일 朴대통령은 새마을지도자와의 환담에서 이런 말을 했다.
“落後부락의 경우 그 부락지도자를 뽑아서 수원연수원에 입소시켜 장기교육을 시킨 뒤에 그 지도자에 대한 평가를 하고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면 그 부락지도자로 내려보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예산도 적게 들고 새마을부락으로 일으키는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지도자가 이론을 몰라도 농촌지도소를 뛰어다니면서 직접 연구하고 교육을 받고와서 앞장서서 가르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정부가 일일이 다하려면 百年河淸입니다. 한두 달 교육을 하여 완전히 정신무장을 시켜 내 고향을 일으키고 탈바꿈시키겠다는 정열에 불타는 청년을 그 부락에 보낸 다음 정부가 지원해주면 반드시 성공하리라고 봅니다”
朴 대통령의 말은 구체적이다. 가장 구체적인 말은 숫자인데 그의 말엔 숫자가 많이 나온다. 1976년 4월5일 시흥군 의왕면에서 나무심기를 한 뒤 이런 설명을 했다.
“지난 72년 겨울 크리스마스 무렵 1군단 사령부에 갔을 때 오동나무에 씨가 주렁주렁 달려 있길래 농촌진흥청과 임업시험장에 일러 그 씨를 갖다 묘목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안된다고 했으나 결국 성공하여 74년에는 10만 그루의 묘목을 가꾸어내어 고속도로변 95정부에 심었습니다”
그는 1976년 7월6일 수원새마을지도자연수원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양수기 이용법에 대해서 설명했다.
“양수기에 비닐 호스를 많이 쓰고 있는데 내가 농수산부에 지시한 바 있지만 폴리플로필렌으로 호스를 만들면 상당히 오래 갈 것이며 길이도 50미터 단위로 만들고 연결장치를 달아주면 몇 킬로미터까지고 길게 쓸 수 있습니다. 소방호스를 관리하듯이 벽에 걸었다 가뭄 때 쓰면 좋겠어요”
눈이 좋은 사람 박정희
-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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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1-06, 13: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