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전 韓完相장관인터뷰를 읽어보니(1)

*기자들을 상대로 한 강의록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읽어본 필자의 韓完相(한국적십자사 총재) 당시 통일원장관 인터뷰를 소개한다. 그때에도 '냉전적 사고' '진보라는 말의 부당성' '민족이 어째서 이념보다 중요한가'가 쟁점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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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흡수통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도 피해야 한다'
- 韓完相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과의 격론 4시간

냉전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냉전적 논리는 과연 나쁜가?
강경대군이 왜 냉전의 희생자인가?
세계사의 수구세력인 김일성주의자가 과연 「진보」인가?
선거로 탄생한 盧泰愚 정부가 군사정권이란 말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韓부총리는 차분하고 성실하게 답변했다.

<1993년 9월호 月刊朝鮮>

냉전적이라는 말의 의미

지난 7월31일 정부 종합청사 4층 부총리실에서 만난 한완상(韓完相)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은 감색 싱글 양복 차림에 검은 테의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韓장관은 기자 일행을 국무위원 식당으로 안내했다. 쇠고기국에 청어구이를 곁들인 점심식사를 하면서 韓장관은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고향은 경상북도 금릉인데 주로 대구에서 살았습니다. 태어난 곳은 충남 당진이지요. 아버님이 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잠시 당진에 계셨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어느 교수가 한 일간지의 「잊을 수 없는 스승」코너에 저희 아버님 이야기를 쓰셨더군요. 일제시대 저희 아버님이 일본어 시간에 조선 역사를 가르치셨답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다시 부총리실로 돌아오니 12시30분이 조금 지나 있었다. 韓장관은 메모지를 옆에 두고 질문 내용과 대답할 사항들을 간간이 메모하면서 하나 하나 답을 해 나갔다. 차를 마시면서 시작된 인터뷰는 세 시간 넘게 계속되었다.

―1947년 12월로 기억되는데 그때 韓장관이 부산에서 열린 한 기독교 집회에 참석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당시에 그 집회를 취재하러 갔었는데 韓장관의 강연을 듣고 「말을 어떻게 저렇게 글 쓰는 것처럼 딱 떨어지게 할 수 있을까」 감탄을 한 일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 韓장관을 가까이서 뵙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韓장관께서 지금까지 쓰신 글과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니 「냉전」이라는 용어가 자주 나오더군요. 「냉전적 논리」「냉전적 통일관」식으로 「냉전적」이라는 말에는 대체로 비판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냉전적 통일관」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냉전적」이라는 말을 쓸 때는 의식과 행태(行態)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하는데 그 의식과 행태는 특정시대와 제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행태로서 「냉전적」이라고 하는 것은 독선적 권위주의라는 말과 상통합니다. 상대방의 생각은 본질적으로 악하고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상대방과는 의미 있는 사귐이나 대화를 할 수 없다고 보고 상대방을 타도나 제거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태는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이나 최근 회교 근본주의자들에게서도 나타납니다만 이것을 냉전적인 태도라고 할 때는 그것을 특정시기와 그 시대의 구조와 연결시켜 생각해야 합니다. 즉 정치분야에서 보면 냉전적 사고는 2차대전 이후 兩極체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미국과 소련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서로를 대했습니다. 미국은 소련을 악마의 제국이라 비난했고 소련은 미국이 악마의 제국주의라고 비난했습니다. 이러한 구조하에서 냉전 이데올로기가 제도화된 것이 양체제 안에 법제도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사고의 차원에서도 권위주의 사고형태로 나타납니다』

―과거 정권에서 추진해온 통일정책 중에서 「냉전적 통일관」의 구체적인 예가 될 수 있는 것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먼저 이 점을 분명히 합시다. 냉전적 통일관은 남북한에 다 공통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우리는 북한을 고립과 봉쇄, 초전박살의 대상으로 보았고 북한도 우리를 타도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이것이 냉전적 통일관의 기본구도입니다』

냉전적 통일관은 남북 공통 현상

―지금 말씀하신 취지의 냉전적 통일관은 1974년 7·4 공동성명 이후 적어도 우리 정부의 통일정책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북한을 적으로 보지 않고 동반자로 본다는 7·4공동성명은 수사상(rhetoric) 그렇게 표현된 것이지요』

―만일 우리 정부가 냉전적인 사고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그토록 많은 희생자를 낸 아웅산 사건 직후에 북에 대해 선전포고를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아웅산 사건 불과 1년 뒤에 수해가 났을 때 북한이 보내준 수해구호물자를 받아주었습니다. 북한이 우리에 대해 냉전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도 냉전적이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좀 억울한 평가가 아닙니까. 韓장관의 말은 지난 정권의 통일정책에 대한 부당한 비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정권에 냉전적인 통일관이 없었다고 범주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웅산 사건의 피해자 입장에서는 북한의 가장 냉전적인 도발에 대해서 근원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 정부는 그런 대응이 가져올 부정적인 효과를 계산해서 그렇게 하지 않은 겁니다. 북한이 우리에게 해온 도발에 비해서 우리 정권이 덜 냉전적이었음은 사실입니다. 노태우 대통령의 7·7 선언 같은 것은 매우 전향적인 것이었지요. 그러나 범주적으로 지난 정권에 냉전적 통일관이 없었는데 내가 없었던 것을 갑자기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냉전적 사고나 의식이 약화됐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없어졌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냉전의 강조는 극복의지의 표현

―강경대군 폭행치사 사건이 났을 때(1991년 5월) 어느 신문에 기고하신 글을 보니 「강경대군이 냉전시대의 희생자」라는 표현을 쓰셨더군요. 공안정권의 살인이라고도 하셨던데 강군은 학내문제인 등록금 인상 반대를 위한 시위에서 우발적인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까지 냉전과 연결시키는 것은 과잉 인식 아닙니까.

『그런 이야기가 나온 배경에 깔려 있는 논리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해방 이후 지난 정권까지 역대 정권의 정통성이 결핍되어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정통성 문제를 들고 나오는 비판세력을 탄압할 때 정부는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을 앞세워 왔습니다. 국내 정치의 부끄러운 부분 즉 인권탄압이나 폭행치사 등을 합리화할 때 일관되게 써온 논리가 냉전의 논리였습니다. 그러한 현실에 비추어 강경대군 사건을 보면 냉전이 이런 것을 쉽게 합리화시켜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해방 이후 계속돼온 이러한 현실에 주목하여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강경대군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 않습니까. 그 사건은 당시 정부에서 그 학생들이 주사파라고 해서 강경대응을 한 결과 발생한 것도 아니고 단순 학내시위에 대응하다가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오히려 사건은 그 이후에 정치화됐지요. 강군의 죽음 자체는 냉전이나 공안정권과는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질문의 뜻은 이해합니다만 사건을 분단과 그것을 밑받침해준 냉전 이데올로기라는 큰 시야에서 본다면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지요』

―韓장관께서는 한반도의 현실을 냉전으로 보십니까, 아니면 평화로 보십니까.

『불안한 평화지요. 전쟁이 없다는 의미에서 평화라는 뜻입니다. 요즘은 북한 핵문제 때문에 불안하기도 하고…. 지구상에서 냉전시대가 아직 지나가지 않은 곳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한반도입니다』

―그렇다면 즉 한반도에 아직 냉전이 끝나지 않았고 평화상태도 아니라면, 이 시대를 사는 사람 특히 백만 대군을 가진 북한을 지척에 두고 있는 나라의 정부에 있는 사람들은 냉전적 사고를 하는 것이 더 안전한 것이 아닐까요.

『한반도의 불안한 평화가 안정된 평화로 가려면 우선 냉전적인 현실을 합리적으로 똑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북한이 얼마나 냉전적인가를 이해하고 남북관계가 얼마나 불안한가를 알아야 극복방안이 나온다는 뜻입니다. 제가 냉전을 강조하는 것은 현실 속의 냉전적 측면에 대한 인식을 강조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이 상황을 현실적으로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는 겁니다』

주사파를 진보적이라 한 일 없다

―韓장관의 뜻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려면 韓장관이 쓰시는 용어가 먼저 정리되어야 할 것 같아서 용어의 문제를 먼저 다루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진보」가 사회주의 성향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 경우에는 긍정적인 가치판단이 들어간 「진보」라는 말을 피하고 정직하게 「좌파」나 「사회주의」라는 말을 써야 되는 것 아닙니까. 북한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수구적인 정권이고 사회주의는 무너져가는 낡은 이데올로기이니 진보가 아니라 「守舊」입니다. 언론에서도 일반적으로 운동권을 진보와 동일시 하는데, 그 운동권이 주사파라면 어떻게 진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저는 국내정치 문제와 관련해서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국내 기존구조가 다수 국민들에 의해 부당하다고 생각돼 그것을 타파하려고 할 때 그것은 진보이고 그 구조를 옹호하는 쪽은 보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는 좋은 가치로 봅니다. 그러나 남북관계를 진보와 보수의 개념과 연결시킬 때는 주의해야 합니다. 어느 체제에서나 교조주의는 가장 보수적인 것입니다. 지금 학생운동의 특정 세력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저는 한번도 주사파가 진보적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나 제가 통일원 장관으로 취임 할 때 「감상적 통일주의는 지양해야 한다」고 한 것도 다 그들을 두고 한 이야기입니다』

―韓장관께서는 金泳三 대통령의 취임사를 준비하는 일에 참여하셨는데, 취임사 내용 중에 「사상과 이념보다 민족이 중요하다. 동맹국보다 민족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 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6·25에 적용시키면 우리의 동맹국 미국이 동족간의 전쟁에 참여한 것은 부당하다는 뜻이 됩니다. 근대 국가는 같은 민족이 아닌 같은 이념의 결집체입니다. 동맹국보다 조국이 중요하다면 이해가 되지만 민족이 이념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은 근대 국가의 개념에도 맞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취임사가 쓰여질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달리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금년 초 취임사를 작성하던 시기에는 냉전체제가 와해돼 어제의 적성국이던 소련과 중국이 우리의 우방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 민족은 4천년 동안 같은 언어와 문화로 동질성을 이어왔고 1천3백년 동안 단일국가를 이뤄온 상수의 개념인데 비해 동맹과 우방의 개념은 변수라는 뜻입니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미국과의 우방관계를 약화시키는 뜻으로 해석될 위험이 있지만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언어는 진실의 전부를 담지는 못하지요. 그러나 그 당시의 상황에서 언어가 지시하는 바를 정확하게 밝혀야 할 것입니다. 특히 이 취임 연설문 부분에서 북한 당국자를 청중으로 정해놓고 한 말이기에 여기서 동맹국이라는 것은 북한의 동맹국인 소련과 중국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문민은 反군사권위주의를 의미

―그러나 「동맹국보다 민족이 중요하다」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북한은 통일전선 전략상 민족을 중시해왔는데 대통령의 취임사가 마치 북한의 주장에 화답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러한 우려가 있다는 점은 시인을 할 수 있습니다만 그 뜻은 민족의 논리를 정권과 이데올로기의 강화를 위해서 활용하려고 하는 특정 세력에 대한 하나의 쐐기로서 진짜 민족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 말은 민족의 정통성은 우리 쪽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최근 韓장관의 연설문을 보면 「현 정권은 정통성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지난 정권이 정통성이 없거나 약하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韓장관께서는 盧泰愚 정부를 어떻게 보십니까. 군사정부로 보십니까 아니면 문민정부로 보십니까.

『범주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盧泰愚 정권은 권력획득 과정을 중심에 놓고 보면 문민정부의 성격이 강합니다. 지지율이 낮았다 하더라도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성립된 정권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그런 의미에서 선거에 의한 정통성은 갖췄다고 봅니다. 그러나 盧정권의 지배 엘리트의 구성을 보면 권위주의 시대의 주역들의 상당수가 주요 위치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앞의 정권과 연속선상에 있는 정권이라고 봅니다. 권위주의적 요소를 완전히 청산하지는 못했던 정권이라는 뜻이지요. 따라서 盧정권을 군사정권이다 아니다 범주적으로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권위주의에서 문민정부로 넘어가는 징검다리로서 과도기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문민정권」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저는 金대통령이 대통령 선거기간 중에는 그런 말을 쓰더라도 취임한 후에는 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취임 후에 오히려 문민정부라는 말을 더 자주 쓰면서 지난 정권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문민이라는 말을 너무 자주 쓰면 국민들 중에는 문민이 아닌 이들도 있으므로 더러 섭섭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통합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文民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독선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생각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민이라는 용어가 「반(反)군사」 즉 대다수의 군인들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쓰여지는 말은 아닙니다. 여기서 문민이란 반(反)군사권위주의 즉 소수의 정치화된 군인들을 반대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문민을 군사 전반에 대한 반대의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음은 인정합니다. 그런 오해는 빨리 풀어졌으면 좋겠습니다』

朴정권의 경제발전은 차선일 뿐

―金泳三 대통령이 기자 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일본 기자의 질문에 「5·16은 쿠데타였고 그 이후의 역사 전체를 후퇴시키는 시초가 되었다」고 평가하셨는데 이와 같은 평가에 동의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5·16이 역사를 후퇴시켰다기보다는 정치적인 면에서 후퇴를 가져왔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는 5·16 이후에 세계가 인정하고 또 우리가 실감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경제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이 정치적 후퇴와 경제적 발전을 분리하지 앟고 뭉뚱그려서 역사가 후퇴했다고 평가해버리면 5·16 이후 30년 동안 국가발전에 앞장서서 기여한 기성세대가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당시 대통령이 그 말을 한 자리는 기자회견장이기 때문에 그 말의 뜻을 자세하게 해명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대통령의 말에 주석을 단다는 의미에서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후퇴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최근 젊은 학자들 사이에는 「朴정권이 정치는 후퇴시키고 경제는 발전시켰다」는 평가에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와 경제의 관계는 반드시 제로 섬(zero sum) 관계인가, 즉 朴정권 하에서는 경제발전을 위해서 정치발전은 보류 또는 제약시킬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것은 차선이었지 최선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朴대통령 시절에 정치발전을 도모하면서 동시에 경제를 발전시킬 가능성은 전연 없었는가 하는 것은 앞으로 더 연구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민주화는 경제발전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입니다. 1987년 6월 사태 때 국민들이 한달 동안 정치적 소용돌이를 겪으면서도 경제가 몰락하지 않고 그 위기를 충분히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민주화가 가능했던 것 아니냐 하는 것이지요. 또한 현대사에서 정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룩한 나라는 없지 않습니까.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하려 했다가 오히려 혼란에 빠졌고 등소평의 중국은 정치적 통제를 계속하며 경제발전은 이루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우리나라는 분단이라는 부담을 안고 있었고….

『그래서 제가 차선이라고 하는 겁니다. 영국은 정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룬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경우는 민주제도는 확고하지만 경제가 형편없지요. 그러나 경제가 먼저 발전돼야 정치발전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에 도그마가 들어가면 위험합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것은 두 가지가 동시에 발전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朴대통령의 업적이 과찬할 일은 못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朴대통령이 그만큼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역사에 최선이 있었던 적이 있을까요.

『…(웃음). 역사는 항상 최선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겠지요. 그 과정에서 기복이 심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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