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말은 일반적·원론적
―金대통령이 하는 말 중에는 상황을 너무 단순화시킨 것이 많아 가끔 국민들의 오해를 사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내부의 적」이나 「많이 가진 자가 고통받게 하겠다」는 말 등이 그런 경우인데, 대통령의 말은 좀더 정확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점에는 어느 정도 동감합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꼭 이해해야 할 것은 대통령의 말씀이 너무 자세하면 오히려 문제가 된다는 점입니다. 대통령은 일반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고 해석의 여백을 남겨둬야 합니다. 「많이 가진 자가 고통받게 하겠다」는 것은 부당한 방법으로 치부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라 봅니다』
―특히 「내부의 적」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내부의 적이라는 말은 「인간의 가장 큰 적은 내 속에 있는 교만이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높은 수준의 도덕적 표현이라고 봅니다. 金대통령 자신이 대단한 신념과 신앙의 소유자인만큼 남을 탓하기보다는 내 속의 악을 탓하는 것이지요. 金대통령은 이런 말씀을 과거에도 많이 했습니다』
―韓장관께서는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구체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역사가 때로는 준엄하게, 때로는 아주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니고 아직 살아 있는 분들이 계시므로 지금 하기는 주저된다는 뜻입니다』
―얼마 전에 金대통령이 국사편찬위원회 위원들과 원로 역사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정부가 가까운 역사에 대한 평가를 내렸으니 역사학자들도 가까운 역사에 대해서도 평가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셨는데 韓장관계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통령이 5·16이나 12·12 등 아주 최근 역사에 대한 평가를 역사학자에게 맡겼다는 것은 「역사의 심판에 맡긴다」는 뜻에서 매우 진솔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역사의 평가에 맡긴다」고 말하는 것은 12·12 등에서 피해를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는 너무 요원하고 또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대의 정치인들에게 평가를 맡기는 것은 불공정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객관적으로 엄정하게 현대사를 관찰하는 역사학자들에게 평가를 맡긴 것은 합리적이고 잘 하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역사의 평가에 맡긴다」는 말처럼 유행하는 말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어떤 뜻입니까. 역사학자가 평가하는 것이 역사가 평가한다는 의미가 됩니까.
『그것은 역사학 방법론에서도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관학파적인 역사관에서는 지배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판단할 수 있는 전문가에게 역사 평가를 맡겼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희생당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러한 전문가에게 맡기면 관학파적인 역사판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 역사학자에게 역사 판단을 맡기는 것이 관학파적인 판단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빌라도의 심판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빌라도는 예수가 무죄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의 여론이 예수를 죽이라는 쪽이 강했으므로 빌라도는 여기에 따랐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평가에 따른 것이지요. 짧게 보면 자료 정리나 해석은 전문가의 일입니다만 역사적으로 멀리 볼 때 판단은 사람들이 하는 겁니다』
通時的 민심의 평가가 중요
―결국 역사의 평가는 민심의 평가 즉 동시대인들의 총의로써 평가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은 공시적(共時的)인 민심이지요. 제가 중요시하는 것은 통시적(通時的)인 민심입니다』
―재작년에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여론조사를 한 일이 있는데 그 결과 80%가 朴대통령이 잘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이 곧 통시적인 민심의 평가가 아닐까요.
『좀더 지켜봅시다. 아직 너무 가까운 시대의 일이라서…. 더 멀리 보면 정확한 평가가 나올 겁니다』
―金대통령의 역사인식이나 민주계의 역사인식을 살펴보면 이런 특성이 있습니다. 「5·16이나 12·12는 불법이다. 따라서 그 이후 그들이 주체가 된 역사도 불법이다」라고 보는 겁니다. 한 사건과 그 이후의 역사를 섞어서 생각을 하는 것인데 이런 방식에는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예를 들어 어떤 여자가 강간을 당해 사생아를 낳았다고 합시다. 강간을 당한 것이야 나쁜 일이지만 그 아이가 훌륭한 사람으로 자랐다면 그것은 좋은 일 아닙니까. 그 아이가 강간을 당해 태어난 아이라고 해서 다 나쁘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보아서는 안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은 비유가 잘못되었습니다. 강간당한 여성의 아들은 맞지 않는 예입니다. 강간당한 여자는 억울한 희생자입니다. 강간한 남자가 잘못한 것이지요. 그 강간한 남자가 그후에 좀 좋은 일을 했다고 합시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 남자가 옛날에 강간을 했다고 하면 그 평가가 좋을 수가 없지요. 또 강간당한 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 남자가 그 후에 아무리 좋은 일을 했다 하더라도 좋은 평가가 나올 수 없지요. 그 남자가 나중에 잘한 일은 강간했다는 원죄를 희석시키기 위한 제스처로 보일 뿐이지요. 정통성 없는 정부는 집권 이후 정책집행 과정에서 도덕성이나 합법성을 지니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정통성이 없다는 말은 집권과정에서 결정적인 하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집권과정에서 온당하고 도덕적이며 합법적인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집권했다는 것이지요.
정부가 집권과정의 하자로 인해 정통성이 결여되었을 때는 반드시 비판 세력이 있게 마련입니다. 비판세력을 그대로 둔 채 정치권력을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비판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악법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집행과정의 부도덕성이 다시 비판받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통치는 점점 어려워지니 정통성 없는 정권은 통치비 조달을 위해 정경유착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돈 준 사람을 부패시켜 부정부패가 나오게 됩니다. 이와 같이 집권과정이 잘못 되면 집행과정에서 잘못될 개연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한번 강간을 한 사람은 다시 그와 비슷한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과 같습니다. 강간한 사람은 강간을 비판하는 세력이 없는 한 강간 비슷한 일을 또 하게 되는 겁니다. 한번 잘못한 일이 있다고 해서 그 후에 잘한 일까지 나쁘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일부 옳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놓친 주장입니다』
국민이 정부의지를 믿느냐가 중요
―제 이야기는 복잡한 역사를 너무 단순하게 보아서도 안되고 또 너무 도덕주의적으로 보아서도 안된다는 뜻입니다. 5·16의 경우를 볼 때 5·16이 무너뜨린 정부가 과연 정통성이 있었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정권은 국민들이 세워준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그 정권을 유지할 능력이 있어야 정통성이 있는 정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면씨나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박정희가 쿠데타를 꾸미고 있다는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고 쿠데타가 나자 총리는 수녀원으로 달아나 연락두절, 육참총장은 쿠데타 세력에 즉시 붙었습니다. 국민들이 만들어준 정권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 순간 정통성이 상실된 겁니다.
저는 5·16에 대한 비판이 장면 정권에 대한 옹호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또 5·16 이후 朴정권은 민정이양과 윤보선과의 대통령 선거로 부분적인 정통성은 회복했다고 봅니다. 물론 유신 이후에는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이런 복잡한 상황을 너무 단순화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또한 역사를 이야기할 때 지난 30년의 역사가 마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세 사람의 전유물인 것처럼 이야기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역사란 동시대인들의 땀과 눈물로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과거 정권을 비판할 목적으로 역사 전체를 대통령의 전유물인 것처럼 이야기하면 그 시대의 역사 건설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을 섭섭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조부장의 염려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장면 정권이 정통성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칩니다. 정통성은 있었는데 그것을 지킬 능력이나 리더십이 없었다고 해야 더 정확하겠지요』
―韓장관께서는 신정부의 통일정책의 가장 중요한 기조가 국민적 합의라고 보시는 것 같은데 그것은 지금까지의 통일정책에는 국민적 합의가 없었다는 뜻입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뜻입니까.
『금방 지적한 것처럼 정통성이 결여되었거나 부족한 정부는 저항세력을 생산합니다. 저항세력은 정부 정책 전반에 대해 비판을 하는데 통일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을 합니다. 지난 날 정통성이 부족했던 정권의 경우를 보면 통일정책이 국내의 의견을 분열시키는 작용을 해왔습니다. 통일정책을 둘러싸고 이른바 「진보세력」과 정부 간에 갈등이 심각했지요. 다만 7·4 공동성명 때는 다같이 기뻐했는데 그 직후 유신체제가 출범하면서 7·4 공동성명이 체제유지를 위한 방안임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 통일정책을 더욱더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 과정을 몸으로 관찰해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통일정책을 책임있게 관장해야 하는 자리에 앉고 보니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국민의 자발적인 지지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의 합의에 기반을 둔 통일정책이라는 기본적인 사항을 새삼스럽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저는 정통성 있는 정부의 경우에는 국민의 합의를 구성할 수 있는 여건은 쉽게 갖추었다고 봅니다』
내가 감상적 통일주의자라니…
―저는 지금까지 통일정책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가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 합의가 70%냐 99%냐 하는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 평화 통일,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이어야 한다는 큰 원칙에 대해서 국민들이 합의하고 있다고 봅니다. 비당국자 일부의 반대는 있었지요. 그러나 비당국자의 핵심이 김일성주의자들이라고 볼 때 과연 이들까지 설득해서 합의의 수준을 높여야 하는가는 의문입니다.
『논의에 약간 혼란이 생긴 것 같은데…. 물론 합의는 있었지요. 통일은 민주적·단계적 통일이어야 한다. 그리고 통일된 조국은 인권과 자유가 신장된 조국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지요. 그러나 제가 말하는 합의는 통일과정이나 통일된 조국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의 합의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을 강조하는 정권의 의지를 국민들이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이지요. 비록 정부가 바른 말을 하더라도 정통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한 항상 합의는 깨어졌습니다. 정통성이라는 문제를 고려하지 않으면 조부장의 말이 옳습니다. 그러나 정통성 문제를 고려하면 달라집니다.
과거에 정부의 통일정책을 비판했던 비당국자들은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의 대상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방법은 그들 중 상당수를 껴안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안에 김일성주의자들은 포함되기 어렵다는 조부장의 말에는 동감입니다. 그래서 감상적 통일지상주의자들은 이 합의구조 안으로 들어오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저보고 감상적 통일주의자라니…. 이 점에 대해서는 일부 언론의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韓장관께서 국민적인 합의를 강조하시고 또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한총련 간부들도 만나셨는데, 그러다보니 오히려 국민적 합의가 깨어지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공안당국은 한총련의 핵심세력이 김일성주의자들이라고 분석하고 있는데 이들까지 끌어안으려고 하다 보니 고유의 안정희구 세력이 불안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숫자로 보면 저는 안정희구 세력을 더 많이 만났습니다. 또 제가 한총련 간부들을 만났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 가운데 극단적으로 나아가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흡수통일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바람직하지 않아
―한총련 간부들과 나누셨던 대화중에 「끔찍스럽던 과거에는 생각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정통성 없는 정부는 여러분에게도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한 부분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부총리가 김일성주의자들과 말을 맞춰 전(前) 정권을 욕한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한총련 간부들이 이 방에 왔을 때 사진을 찍으면서 한 이야기 중에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틀린 것은 아닐지라도 부분적으로 한 이야기를 강조하다 보니 균형이 깨어진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서 당시 한총련 간부들과 한 이야기를 소개하지요. 그 젊은이들과 식사를 하면서 한 시간 반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제가 북한의 통일전선전략은 전혀 변한 것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북한은 새 정부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지요. 또한 그들 가운데 「고려연방제」가 타당하다고 보는 학생들에게 고려연방제는 통일이 아니라 분단고착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니까 그들이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한시간 반 정도 이야기를 하고 나서 그들의 반응이 「정부는 타도의 대상인 줄만 알았는데 대화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국과 비당국이라는 말을 쓰시는데 비당국이라고 하면 학생들뿐 아니라 일반 국민을 지칭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더 좋은 말이 있으면 추천해 보세요』
―최근 묘하게도 남북간에 「흡수통일은 반대한다」는 데 합의가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북한은 먹고 먹히는 통일은 반대한다고 했고 金대통령도 「우리는 흡수통일 할 필요도, 의사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흡수통일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한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독일 통일 이후 우리가 동서독식 통일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그것이 흡수통일이라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독일통일은 동독이 무너지면서 이루어진 민주통일이지 흡수통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흡수통일이라고 하면 무력통일을 말하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가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흡수통일에 반대하는 기본논리는 양쪽에 다른 정치체제를 가진 상태를 지속하자는 것 즉 분단고착화가 아닙니까. 흡수통일 반대론에 합의해 주면 그것은 마치 「북한의 민주화」에 의한 독일식 통일까지도 반대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韓장관께서는 북한의 민주화도 통일 이후에 하자는 「先통일 後민주화」를 주장하는 것 같은데 이래서는 안되는 것 아닙니까.
독일식 통일은 어렵다
『흡수통일은 곧 무력통일이고 여기에 반대하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동서독 통일은 흡수통일이 아니지요. 사회학에서는 명시적 기능(manifest function)과 잠재적 기능(latent functio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명시적 기능이란 제도나 정책이 의도했던 결과를 의미하고 잠재적 기능이란 의도하지 않았는데 나온 결과를 말합니다. 동서독 통일의 경우 명시적 기능으로서는 흡수통일이 아니지만 잠재적으로는 흡수통일의 요소가 있습니다.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동독인들은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서독인들의 생활을 알게 되었지요.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흡수통일과 같은 결과를 낳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에는 북한 사람들이 남한의 삶의 질, 개방성, 체제유연성 등을 알 수 있는 통로가 완전히 차단되어 있습니다. 현 단계에서는 동서독처럼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다른 각도에서 생각을 해보지요. 북한이 자체 모순에 의해 또는 외부의 충격에 의해 붕괴되었다고 가정합시다. 과연 우리가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두달 전 헬무트 슈미트 전 서독 총리가 와서 독일통일이 빚어낸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요즘 동독에 땅을 가지고 있던 서독인들이 통일 후에 송사를 벌이는데 2백만건이 넘는다고 합니다. 향후 10년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엄청난 국력이 낭비되리라고 합니다. 잘 사는 서독인 네 사람이 못사는 동독인 한 사람을 먹여 살리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경제상황이 나쁘니까 2대 1이라고 해도 굉장히 힘들 겁니다. 또한 동독인들의 사회 심리학적 열등감이 매우 심각한 사회 문제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급류에 휩쓸려 가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물가에 있던 형이 뛰어들었다고 합시다. 서독은 동독을 끌어내 물가로 나와 저렇게 허덕이고 있는데 우리는 뭍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급류에 같이 휩쓸릴 것」이라고 말입니다. 북한이 갑자기 붕괴해 수백만의 북한 사람이 갑자기 남으로 몰려온다면 큰 문제입니다. 시장 교란 같은 경제적인 어려움은 물론이고 문화적 충격, 질서유지 등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우리가 흡수하려는 의도도 전혀 없지만 흡수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의 흡수통일도 바람직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또한 정부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 면밀한 대비를 하고 있습니다. 슈미트 총리가 제게 한국의 통일방안이 뭐냐고 묻기에 3단계 통일론을 이야기했더니 점진적이고 현실적인 통일론이라고 칭찬을 합디다.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흡수통일은 불행한 사태
―그렇다면 韓장관께서는 상당히 보수적인 통일관을 갖고 계십니다. 그런데 흡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반대한다는 것은 지금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렇다는 것이지 10∼20년 후에 그런 상황이 생기는 것은 괜찮을 것 아닙니까.
『어느 미국학자가 북한이 빨리 붕괴할수록 통일비용이 싸다고 했는데, 지금이건 나중이건 흡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2천2백만의 북한동포를 일방적으로 먹여살리는 일은 10년내에는 어렵습니다. 점진적으로 통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흡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가까운 시일 안에 일어나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흡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방안으로 정부가 내세운 것이 공존공영의 기조입니다. 북한을 타도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탈냉전의 시각에서 동반자로 보면서 교류를 통해 북한을 개방시키고 삶의 질을 높여주자는 것이지요. 우리 정부에서는 북한이 중국식 모델로 가는 데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핵문제가 터져 중단이 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물자교역, 임가공교역은 꾸준히 이루어져 금년 상반기에 9천만 달러의 교역이 이루어졌고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흡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피하려면 북한에 중앙통제력을 가진 정부가 유지되고 휴전선은 그대로 둔 상태에서 군사도발을 포기한다는 원칙하에 경협을 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핵문제 해결을 전제로 단계적 협력관계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먼저 화해 협력 단계에서 경협을 통한 신뢰구축을 하고 2단계에서 남북연합을 이룹니다. 이 단계에서 휴전상태가 평화체제로 이행되지만 정치적 통합의 단계는 아닙니다. 이 상태에서 북한의 삶의 질을 점차 높여 나중에 완전 통일될 때 비용이 안들고 평화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국민정서에 비추어볼 때 그런 통일정책의 설득력이 약한 것은 김일성 김정일 체제가 당분간 계속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 사이에 북한의 인권 즉 민주화 문제는 어떻게 됩니까. 경협을 하면서 우리가 북한의 인권신장에 적극적으로 힘을 써야 하는 것 아닙니까. 통일과정이 3단계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북한의 인권문제는 거론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신지….
『그 점에 대해서는 오해가 있었습니다. 지난 번에 방송기자협회 기초강연에서 통일정책과 핵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1차적 중요성은 핵문제에 있다. 핵문제가 이토록 시급한데 지금이 인권문제를 거론할 때인가 하는 것은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말은 북한의 인권문제가 3단계에서 갑자기 나오는 것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인권문제는 서서히 펴나가야 하는 것이지 어느 단계에서 갑자기 활짝 꽃피는 것은 아닙니다. 초기 단계에서 북한의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것도 인권신장의 하나입니다. 또한 단계론을 주장하는 것은 북한지배체제의 정당성을 인정하겠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북한을 갑작스럽게 흡수할 경우 엄청난 비용과 고통이 들것이므로 그것을 치르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韓完相 장관과의 격론 인터뷰(2)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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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1-07, 16: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