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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는 (1)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 (2)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 (3)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라는 3대 국정목표를 추구한다. 3대 국정목표는 4대 국정원리와 더불어 참여정부가 앞으로 5년간 지속적으로 추구해 나갈 가치이자 지향점이다. 3대 국정목표는 시대적 소명과 국민의 요구를 담고 있으며 모든 분야별 정책의 최고 목표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국정에 대한 참여의 형태에 따라 그 질적 수준이 결정된다. 1987년의 민주화 이행이후 우리 사회는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고 정부를 구성하는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를 실현해왔다. 그러나 국민의 참여는 투표라는 소극적 형태에 머물러야만 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특권세력화해 국민 위에 군림하고 국민을 각종 정치과정, 정책과정에서 배제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 민주주의는 공고화단계에 들어섰다는 국내외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성숙한 민주주의, 질 높은 민주주의로의 도약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나 2002년 우리는 참여를 통해 역사를 바꾸는 체험을 공유하고 참여정부를 출범시켰다. 이러한 의미에서 참여정부는 그 자체가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참여정부는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를 통해 주권자인 국민이 대표선출에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손으로 구성된 정부에 일상적으로 참여하고, 이를 통해 개혁과 발전을 추동해 가는 참여민주주의를 실천해 나갈 것이다. 이는 참여정부가 과거처럼 정부가 정책결정권을 독점하는 전통적 모델이 아니라 정부․기업․시민사회간의 균형과 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지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화와 정보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정의 생산적인 동반자로서 자율적인 시민사회가 필수적이다. 참여민주주의는 무엇보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민주적 시민사회를 공고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 국민들은 부단히 자신의 요구를 정부와 대표에게 전달하고, 정부와 대표가 자신의 요구에 응답하고 있는가를 감시하고 감독하며, 국민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 정부와 대표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정부와 대표로 하여금 국민의 완전한 대리인이 되도록 강제할 수 있을 때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는 완성될 수 있다.
국민들이 정부구성에서부터 정부운영에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정부와 대표에 관한 가능한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정부와 대표는 가능한 많은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하여야 한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정보의 유통은 참여 민주주의의 필수적 전제조건이다. 참여정부는 정책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제고하여 일반 국민에게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하고 제공하도록 할 것이다.
21세기 한국 사회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개혁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관료도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서 대표를 선출하고 그들에게 국가경영을 맡기지만, 대표들이 모든 국가업무를 직접 경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많은 국가 기능과 서비스가 관료에게 위임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관료가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먼저 관료 자신이 관리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봉사자라는 자세를 견지해야 하고, 국민이 자신의 고용주라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관료가 국민이 자신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었을 때 관료는 더 이상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주체가 될 것이다.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는 국민이 정부와 영광뿐만 아니라 고통과 책임도 함께 하는 민주주의이다. 국민이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참여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만큼 참여에 따른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익을 우선시하고 국가의 공적 업무에 참여하는 것이 시민적 덕성이자 의무라는 인식을 사회전체에 확산시켜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2002년에 한국민은 정치의 방관자에서 탈피하여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를 통해서 새로운 정부를 창출해냈다. 이제 참여정부하에서 국민들은 자신의 손으로 만든 정부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선출된 공직자들이 공익을 위해 일하게끔 부단히 견인하는 시민적 덕성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할 것이다.
참여정부는 국민들이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의 건설을 목표로 한다. 이는 구성원 모두가 상호간 관용과 배려의 정신을 토대로 사회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이러한 협력관계의 비용과 혜택을 구성원들이 공평하게 나누는 사회를 의미한다.
지난 20세기 동안 한국은 짧은 시간 내에 산업화를 이룩하여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압축적 근대화는 사회의 모든 부문에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하였고, 그로 인해 특권과 차별, 배제의 갈등구조가 형성되었으며, 공동체의 분열이 야기되었다. 참여정부는 이 같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공동체의 분열을 초래한 사회적 불균형을 시정하여 지역, 계층, 성, 세대가 더불어 잘사는 균형사회를 실현하여 국민통합을 이루어낼 것이다.
사회적 불균형의 시정은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사회구성원 모두가 동등하게 경쟁에 임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회적 약자가 경쟁에서 기본적으로 배제되지 않고 참가할 수 있는 ‘국민적 최소한도’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약자를 사회공동체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적극적 차별해소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또한 사회적 부, 권력, 가치의 재분배를 통하여 계층간, 지역간, 중앙, 지방간, 양성간에 공정한 게임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균형발전사회는 경제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도모함으로써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되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노동자에게도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이 균형발전 사회이다. 또한 중앙과 지방간에 균형발전이 이루어져야 수도권 시민들과 지방이 더불어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지역간에 균형발전이 이루어져야 지역 분열과 반목이 극복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환경파괴를 중단하고 생태계의 균형을 회복해야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잘 사는 균형사회가 이루어질 것이다.
서로 다른 이해와 가치를 가진 집단이 더불어 살기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관용과 배려의 정신이다. 관용은 사회내 다양한 이념, 정파, 이익들을 지닌 구성원들이 상호병존하기 위해 다른 구성원의 견해와 입장이 치명적 사회 와해의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 한 이들을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도덕적 자세를 의미한다. 배려는 건강한 유기체적 사회가 반드시 보유해야 할 구성원들의 도덕적 자질이며, 아울러 해당 사회가 유기체적 구성을 통해 전 구성원의 혜택을 도모하는 사회적 합리성의 필수요건이다. 타자에 대한 배려가 결핍된 사회는 갈등과 분열을 야기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전 사회구성원의 손실을 초래하는 결과를 산출할 수밖에 없다.
관용과 배려는 공동번영의 기초이다. 기업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이윤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만 보지 않고 재생산을 위한 수요를 창출하는 요인으로 보고 노동자들은 기업의 이윤을 자신의 소득향상을 위한 원천으로 볼 때 노사가 더불어 잘 사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 특정 지역의 발전은 다른 지역의 정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발전하는 길로 가는 시발점이라는 인식이 공유될 때, 지역간에 더불어 잘사는 길이 열린다. 여성의 지위향상이 실현되었을 때 장기적으로 양성 모두 더불어 잘 사는 사회가 실현된다는 의식을 남성도 공유할 때에 양성평등 사회가 이루어진다.
균형발전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간의 상호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영합(zero-sum)적인 갈등구조하에서 상호협력은 이루어지 않는다. 상호협력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집단간의 경쟁구도가 모두가 이득을 보는 윈-윈게임 구도가 되어야 한다.
효율적 협력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구성원간에 협력을 위한 비용과 혜택에 대한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형평성은 협력의 핵심적 요건이다. 형평성의 기준은 수학적 평등으로 기계적으로 설정하기보다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세력에 대한 우선적 배려를 고려하여야 한다. 특권과 차별을 없애고 사회적 불균형을 시정하는 것은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통합의 위기를 해결하는 기본 원리이다.
그러나 사회적 불균형을 시정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모든 정책과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집행하여 정부에 대한 신뢰를 쌓는 일이 중요하다. 과거 불균형의 시정을 통해 사회통합을 이루려는 정부의 노력이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한 것은 정부의 정책과정에 대한 불신이 큰 몫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참여정부는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여는 데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한다는 대담한 목표를 제시한다. 21세기 탈냉전, 세계화, 지식정보화의 세계사적 변화의 물결 속에서 동북아가 부상하고 있다. 자본과 기술, 생산과 물류가 동북아에 집중되어 동북아는 이제 세계경제의 견인차가 되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는 전세계 생산의 1/5을 차지하고 있으며 동북아 한․중․일 3국에 16억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이는 EU 인구의 4배에 달한다. 대서양 시대에 동북아는 지리적으로 변방에 머물러 있었지만 세계화와 지식정보화 혁명으로 동북아는 변방의 불리를 단숨에 극복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21세기 새로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지식정보화 혁명으로 디지털이 새로운 세계표준이 됨으로써 동북아는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후발지역에서 디지털 세계표준의 설정자가 되고 있다. 또한 디지털을 통해 동북아시아는 이질성을 극복하고 있다.
동북아 시대의 도래는 한반도에 엄청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은 동북아 시대의 중심국가가 될 수 있는 지정학적, 지경학적, 지문화적 이점을 보유하고 있다. 반도라는 지정학적 조건은 한국으로 하여금 대륙세력인 중국과 해양세력인 일본간의 평화를 만들어내는 중재국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호조건이다. 한반도는 해양축과 대륙축이 만나는 동아시아의 십자로에 위치하고 있다. 한반도는 유라시아 실크로드의 기점인 동시에 해양세력인 일본과 미국으로 가는 관문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반경 1200 km 안에 7억의 인구와 6조달러의 GNP를 가진 거대 시장이 존재하고 있으며 동북아 5대 도시 (서울, 동경, 북경, 상해, 블라디보스톡) 중 서울이 다른 도시와 최단 거리에 접근할 수 있는 중심적 위치에 놓여있기 때문에 동북아시아의 비즈니스와 금융의 중추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부산항과 광양항은 동북아시아의 관문항으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고, 인천공항은 동아시아의 중추공항으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한반도는 선진 해양세력의 지식, 정보, 문화, 기술을 대륙에 전달해주는 중간매개자이다. 기독교, 유교, 불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한국은 동아시아적 포용의 표준을 제공함으로써 동아시아적 이질성을 극복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도로와 철도가 만나고, 바다와 하늘의 길이 열리면 한반도는 동북아의 관문으로서 물류와 산업, 금융의 중심지로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남북종단 철도가 중국, 몽고,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이어지면 한반도와 유럽이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동북아의 십자로에 위치한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적 질서 속에 갇혀 있다. 북한은 한국을 동북아와 유라시아로 연결시켜 주는 다리이다. 그러나 아직 북한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이 유라시아 대륙으로 나가는 길이 막혀있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평화는 한국이 동북아의 중심국가로 부상하는 데 필수적 전제조건이다. 한반도의 평화없이 우리 민족의 발전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도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관점에서 남북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반도의 평화도 가능하다.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이루어내는 데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다면 우리는 마침내 변방에서 중심으로 도약하는 오랜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의 제도와 환경, 의식과 관행을 세계적 보편가치에 부합하도록 만들고, 이것을 동북아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의 유수한 기업들이 우리나라에 투자하고 싶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합리성을 토대로 효율성이 극대화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상대하면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혁신을 이루어야 21세기 동북아 시대의 평화와 번영을 우리가 주도할 수 있다.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은 참여정부가 추구하는 가치이자 국가를 운영하는 기본 원리이다. 이러한 4대 국정원리는 국가운영의 모든 분야와 모든 과정에서 관철되어야 한다.
원칙과 신뢰는 사회질서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원리이다. 원칙이 통하지 않고 반칙이 유리한 상황이 반복된다면 공동체의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되고, 국민참여도 좌절될 수밖에 없다. 반칙과 불신은 사회의 계층간 대립과 갈등을 조장한다. 원칙과 신뢰가 있어야 질 높은 사회발전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원칙과 신뢰는 국정운영의 첫 번째 원리가 된다. 이는 반칙과 변절, 특권의 문화를 청산하고 원칙, 정의, 정도를 실현하고자 하는 노무현 정부의 최고 국정원리이다. 원칙이 바로 서고 사회가 원칙대로 움직인다면 사회적 신뢰가 형성된다. 원칙을 바로 세우고 규범을 준수하고 모든 약속은 지켜진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신뢰사회를 구축해야 한국 사회가 전진할 수 있다.
원칙이 준수되고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올바른 원칙을 세우고 모두가 이를 자발적으로 준수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사회가 합의한 원칙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상응하는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 원칙을 준수하는 자에게 보상이 주어지고 반칙을 하는 자에게 상응하는 제재를 가하는 법치주의가 지켜질 때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기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특권층이 반칙을 해도 용납이 되었고 반칙을 해서 얻은 승리가 용인이 되었다. 그러나 반칙이 통하는 사회에서는 구성원간의 자발적인 상호 신뢰가 형성되지 않는다. 반칙과 불신이 성행하는 사회는 도덕적 자산의 부족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사회에 만연된 기회주의, 연고주의, 정실주의의 문화와 관행을 걷어내고 상식이 통하고 원칙이 바로 선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지도자가 반칙을 하는 나라, 국민이 지도자를 의심하는 나라는 발전할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원칙을 지키면 저절로 신뢰가 뿌리를 내린다. 원칙이 살아있고 정부와 국민이 서로 믿어야 좋은 정책이 나오고 실패한 정책도 바로 잡을 수 있다.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반칙이 횡횡한다면 사회질서는 유지될 수 없다.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불신하고 있을 때, 정상적인 교환과 거래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사회전체는 불신을 검증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신뢰라는 도덕적 자산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효율성을 위해서 필수불가결하게 축적해야 하는 사회적 자본이다. 불신은 불신으로 처벌받고 신뢰는 신뢰로 보상받게 된다. 따라서 신뢰는 사회 구성원간의 결속을 강화하고 강한 동일체의식을 낳으며, 상호협력으로 이끄는 강력한 사회연대를 창출한다.
또한 신뢰는 거래비용을 줄임으로써 경제적 효율성을 증진시킨다. 신뢰가 기본적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는 사회에서는 약속이 지켜지도록 강제하기 위해서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신뢰가 형성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그러한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신뢰하는 사람은 피신뢰자의 행동을 확실히 하기 위한 행동의 감시와 강제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어지고, 자신이 기대하는 행동을 강제하기 위해 제3자를 불러들일 필요도 없어진다. 신뢰가 형성되어 있으면 자발적 협력이 가능하게 되고 공식적 규칙과 규제에 관해 협상하고, 합의하고 재판하고 강제할 필요가 없어진다.
신뢰사회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법의 지배가 작동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절차적인 객관성, 투명성, 공정성이 확보된 법의 테두리 내에서 평화적으로 경쟁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규칙으로서의 법을 신뢰하고 그 결과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주의가 다른 체제보다 더 많은 사회적 신뢰를 생산하고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법치주의 때문이다. 다시말해 신뢰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뢰한 사람의 신뢰를 저버림으로써 얻게 되는 무임승차적 이득을 취할 수 없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법치주의가 신뢰받은 사람의 배신행위로 치러야 할 비용을 높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 만큼 신뢰한 사람의 위험부담을 줄여주고 있다.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인 법치주의가 모든 사람을 불신의 검증을 통해 걸러주고 있기 때문에 자발적이고 광범위하게 확산된 신뢰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절차적인 객관성, 투명성, 일관성, 공정성이 확보된 법치주의에 따라 구성된 정부를 시민들이 신뢰할 것이고, 그러한 조건하에서 계약이 강제될 때 시민들은 서로를 신뢰하게 될 것이다. 법의 지배는 시민과 대표, 대표와 대표, 시민과 동료시민사이에 신뢰의 위반을 방지하는 보루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법에 의해서 대표와 시민들이 신뢰의 검증을 받는 것이 일상화된다면 정치사회가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될 것이다.
과거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과 불투명은 부정부패의 온상이었으며, 시장경제의 정상적 작동을 가로막아온 근본 원인이었다. 이로 인해 우리는 1997년말에 절체절명의 국가적 경제위기를 맞이하는 비운을 겪었다. 앞으로도 우리가 공정성과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제고시키지 못하면 한국 경제의 지속적 발전과 도약을 기대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시장경제의 원활한 작동은 공정한 경쟁 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사회내에 공정성의 가치가 정립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구성원들간의 공정한 경쟁을 위한 규칙의 설정과 이를 위반하는 행위에 대한 규제와 처벌의 확립이 요청된다. 지대추구행위를 금지하고 독과점을 규제하며, 정보획득비용과 거래비용의 비대칭적 부과를 개선하고, 편법․술수․거짓을 막기 위한 법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공정한 경쟁은 법과 제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가 있더라도 이를 공정하게 적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오히려 사회의 불만과 갈등만 증폭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공정성을 훼손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특권과 정실주의이다. 특권과 정실주의를 척결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올바른 잣대를 마련한다고 하더라도 그 잣대가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여기서 더 나아가 진정한 의미의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경쟁에 들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만들어 주는 사회적 고려가 필요하다. 부존자원이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있는 상태에서 경쟁을 시작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사회적 약자나 소외계층에게 최소한 의미있게 경쟁에 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사회적 차별의 시정, 사회보장제도의 확충, 교육기회의 확대와 같은 적극적인 기회 균등보장 정책이 필요하다.
이러한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공정성이 관철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없다. 공정한 경쟁과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을 때, 사회구성원들간의 신뢰는 형성되지 않는다.
투명성은 국민들의 공동체 의식 또는 일체감 형성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사물의 투명성이 빛의 투과성에 의해 결정되듯이, 사회의 투명성은 정보의 공개성에 의해 결정된다. 올바른 정보를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공개할 때 사회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높아질 수 있다. 참여정부는 앞으로 국정과 관련된 원칙과 과정, 그리고 결과를 모두 국민들에게 신속하고도 올바로 전달해 투명성과 공정성을 획기적으로 제고시켜 나갈 것이다. 아울러 사회 각 방면의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제도적 개혁을 적극적으로 주도해 나갈 것이다.
실질적 민주주의로 접어든 지금은 대결과 투쟁의 시대가 아니라 대화와 타협의 시대이다. 올바른 민주주의는 이념, 이익, 정체성이 다르다는 것을 서로 관용하고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상대방을 대화 파트너로 받아들이고 민주적 의사결정에 동참함으로써 가능하다. 또한 민주주의는 나의 가치만큼이나 상대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따라서 관용은 대화의 전제조건이고 대화는 포용과 통합의 출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대결과 반목의 투쟁문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다양성이 아닌 획일성, 전부가 아니면 전무, 관용이 아닌 배제의 문화가 한국 민주주의의 질높은 민주주의로의 발전을 가로막아 왔다. 대화가 실종되고 끝없는 힘겨루기와 밀고 당기기의 투쟁이 사회적 갈등해결의 주요한 방식이었다. 그 가운데 민주적 토론을 통하여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각각 자신의 목소리만을 고집하였던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상대방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바탕으로 대화를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모두가 차이를 인정하고 관용의 바탕 위에서 공존과 협력을 추구해야만 공동번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는 공존의 틀 내에서 우의에 찬 경쟁을 하는 민주주의이다.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을 관용할 때, 대화를 통해 집단적 의사를 형성해가는 토론 민주주의가 가능해진다.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민주주의는 지역갈등, 계층갈등, 노사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광장이 될 수 있다.
화합은 일방적인 포용이나 흡수통합에 의해서 달성되지 않는다. 화합은 차이를 인정하고 특정 이데올로기를 강요하지 않으며, 권력을 분점하고 개체의 자율성을 최대한으로 보장해주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정치권에서만이 아니라 노사, 지역, 세대, 양성간에도 대화는 단절되어 있다. 참여정부는 모든 문제를 대화와 토론으로 풀어나가는 ‘토론 문화의 시대’를 열어갈 것이다.
원칙과 신뢰에 기반을 둔 대화를 통해 문제해결을 시도하면 타협이 가능해진다. 타협은 자신의 이익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서로의 이익이 더 증진된다는 믿음에서 가능하다. 이제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방식도 토론 없이 투표를 통해 어떤 특정한 대안을 선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화와 토론을 통해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토론문화의 시대’(‘토론공화국’)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의사소통의 장벽들을 허물어야 한다.
과거 개발독재시대에 한국의 권력구조와 통치스타일은 집권과 타율을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모든 권력은 중앙정부에, 그리고 모든 자원은 수도권과 재벌에 집중되었다. 정치는 제왕적 대통령, 제왕적 총재에 의해 수직적으로 통치되었고, 경제는 소수의 재벌에 집중되었으며, 자원은 수도권에 편중되었다. 중앙집권과 집중의 논리가 개발연대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세계화,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러한 집중과 집권의 논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국가의 전 영역에서 심각한 동맥경화 현상을 초래하였고, 마침내 1997년말의 경제위기를 초래하였다.
집중은 중앙을 제외한 모든 영역의 주변화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동맥경화현상을 일으켜 중앙의 삶의 질도 저하시킨다. 세계화, 지식정보화 시대에 거대국가의 비효율성과 비민주성은 더욱 확실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분권과 자율, 참여와 자치라는 새로운 국정원리가 필요한 것이다.
분권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러나 분권은 자율을 전제로 하고 자율은 책임을 수반한다. 따라서 집중과 집권으로 생긴 우리나라의 각종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권화와 함께 각 단위의 책임성과 자율성을 높이는 노력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결국 책임과 자율성이 있는 사람과 조직들이 분권을 이야기할 수 있고, 그 역으로 분권의 과정을 통해 자율성과 책임도 신장될 수 있다. 이 점에서 전국의 10개 도시에서 분산적으로 치러진 월드컵은 분권화의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였다. 지방 도시가 월드컵 행사를 성공리에 치렀다는 사실은 지방이 수도권과 대등한 위치에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월드컵을 통해 우리도 이제 분권화된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분권과 자율은 모든 영역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정치권력이 분권화되어 자율적인 국민들의 목소리가 상향적으로 반영되는 정치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경제구조가 분권화되어 기업의 혁신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지방분권이 이루어져서 세계지방화 시대가 요구하는 현지화, 특성화, 유연화의 요건을 충족시켜 지방이 새로운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분권과 자율은 중앙과 지방뿐만 아니라 지역간의 화해와 공존을 만들어 내는 열쇠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