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있었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간 지지율 격차가 1주일 사이에 10%포인트 넘게 바뀐 것이나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적격 여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사흘 사이에 완전히 달라진 결과들이 여러 논란을 낳았다.
그런데 20일 전교조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진행한 조사 결과를 보니, 이건 ‘여론조사’가 아니라 ‘여론조작 수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법외노조 관련 국민의식 조사’를 한 결과 52.9%가 ‘전교조 합법화’에 찬성했다고 한다. 전교조를 신뢰한다는 응답도 54.5%로 나왔다.
문제는 설문조사의 질문 내용이었다. 합법화 찬반을 묻는 질문은 ‘박근혜 정부에서 법외노조가 된 전교조를 다시 합법화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둔 것’이 불법이기 때문에 법외노조가 된 것에 대해서는 어떤 배경 설명도 없다. 오히려 법 위반 사실은 빼고 ‘박근혜 정부에서 법외노조가 됐다’는 점만을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루어진 일임을 앞세워 합법화 지지를 유도한다고밖에 볼 수 없다.
전교조에 대한 신뢰도 조사는 더 어이없었다. ‘지난 30년간 참교육을 목표로 촌지 근절, 체벌 금지, 국정교과서 반대 등의 활동을 해 온 전교조를 어느 정도 신뢰하느냐’는 질문은 질문자가 답을 정해주는 식이다.
리얼미터가 과거 진행한 다른 조사결과에 대해서도 의심이 들었다. 리얼미터 홈페이지에 들어가 여러 언론사들이 의뢰해 조사한 여론조사의 질문지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흥미로운 점은 리얼미터에 조사를 의뢰하는 언론매체들이 거의 정해져 있었는데, tbs, YTN, CBS, 오마이뉴스 등이다. 이들 매체가 어떤 성향을 갖는지는 잘 알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보도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다른 매체에 의해서도 인용 보도되어 마치 ‘국민의 여론은 이런 것이다’라는 여론 선동으로 이어지는 점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를 근거로 정치적 결정을 내리곤 한다. 사흘만에 여론이 우호적으로 변했다는 리얼미터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이미선 헌법재판관을 전격 임명한 결정이 대표적이다.
부정적 여론이 압도했던 1차 조사 때와 부정적 여론이 간발의 차이로 앞선 2차 조사 때의 질문이 달랐다.
12일 조사에서는 “최근 이미선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후보자의 헌법재판관으로서의 자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로 물었다. 이때는 부적격 응답이 54.6%로 적격 응답 28.8%에 비해 압도적으로 앞섰다. 그러나 17일 조사에서는 “여야 정치권이 이 후보자의 임명을 두고 대립하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이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를 국회에 다시 요청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문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로 물었다. 임명 반대 응답이 44.2%로 임명 찬성 응답 43.3%에 비해 소폭 높게 나왔을 뿐이다.
2차 조사의 질문은 불필요하게 장황하다. 문 대통령을 두 차례 등장시켜 문 대통령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하려다 보니 장황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후보자에 대한 여론을 국회 청문회 이전과 이후로 비교해볼 작정이었다면 질문을 통일시켰어야 한다. 여론조사 회사가 질문을 바꾸고도 논란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어리석은 것이고, 논란을 예상하고도 질문을 바꾼 것이라면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리얼미터의 이런 다분히 의도적인 설문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친정부 성향의 언론사가 의뢰한 여론조사는 대부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현안에 관한 것이었는데, 질문지를 들여다보니 특정한 답을 유도하는 왜곡된 질문이 상당수였다. 사례를 정리해보았다.
<사례1 : 에너지 전환 정책>
다음은 에너지 정책 관련 질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다음 두 에너지 정책 방향 중에서 어느 것에 조금이라도 더 공감하십니까?
1. 국민의 안전과 환경 문제를 고려해 점진적으로 원전을 축소하고 태양광 등 친환경 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 (56.4%)
2. 원전 축소가 오히려 환경 문제를 악화시키고,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므로 탈원전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 (32.4%)
3. 잘 모르겠다 (모름 / 무응답 : 11.2%)
▶ 1번 선택문항 자체가 왜곡된 결과를 초래한다. ‘원전을 축소’하는 것이 ‘안전과 환경’을 위한 결정임을 전제하고 있고, 태양광을 ‘친환경 에너지’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2번 문항에서는 원전 축소가 가져오는 환경 문제와 국민 부담이 막연할 뿐이다. 원전 반대론자들의 입맛대로 만들어진 질문지가 아닐 수 없다.
<사례2 :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설치 찬반 조사>
최근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수사가 국가 권력의 방해와 은폐로 인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실패했으므로, 특별수사단의 설치와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설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이 질문에는 ‘특별수사단’의 설치가 필요하다는 측의 주장, 즉 ‘국가 권력의 방해와 은폐로 책임자 처벌에 실패’했다는 확인할 수 없는 주장만 담고 있고, 설치를 반대하는 측의 주장은 전혀 담겨있지 못하다. 당연히 ‘찬성’을 유도하는 조사일 뿐이다.
<사례3 : 패스트트랙 관련 국회 몸싸움 책임>
선거제도 개편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된 이후 7년 만에 이른바 ‘동물국회’가 재현됐다는 비판까지 나옵니다. 선생님께서는 누구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십니까?
1. 더불어민주당의 무리한 추진
2. 자유한국당의 물리력 행사
3. 바른미래당의 내부 갈등
4. 여야 공동 책임
5. 기타
6. 잘 모르겠다
▶ 질문 자체가 국회에서 일어난 ‘충돌’, ‘몸싸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질문에서부터 ‘격렬한 충돌’, ‘동물국회’라는 단어가 등장함으로써, 사태의 배경보다는 ‘충돌’이라는 행위에 집중하게 만든다. 당연히 패스트트랙 강행을 저지하기 위해 몸싸움도 불사한 ‘자유한국당’에 더 큰 책임을 돌리게 만드는 유도성 여론조사다.
<사례4 : 약산 김원봉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 찬반>
항일 독립투쟁을 주도한 약산 김원봉은 해방 이후 북한의 고위직을 지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독립유공자에게 주는 훈장이나 포장의 서훈 대상에서 제외되어 왔습니다. 최근 이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약산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 항일 독립투쟁의 공적이 뚜렷하므로 찬성한다.
2. 북한 정권에 기여했으므로 반대한다
3. 잘 모르겠다
▶ 이 문제가 여론조사를 필요로 하는 사안일까? ‘암살’등 여러 유명 영화를 통해 이미 ‘김원봉=영웅’의 이미지가 각인된 대중에게 이 문제는 ‘물어보나 마나’한 것이다. 그들에게 겨우 ‘북한의 고위직을 지냈다’는 사실은 반대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애초에 대중이 아닌 역사적 지식이 있는 전문가에게 물어야 할 내용이다. 또한 질문에 ‘6.25 남침을 계획했다’, ‘남파간첩을 보낸 북한 지도부’ 등의 정보 제공이 함께 있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사례5 : 청와대의 장관 임명 강행에 대한 찬반>
최근 장관 후보자 일곱 명 중 두 명이 지명 철회되거나 자진 사퇴했고, 국회는 일부 장관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더라도 사흘 후인 8일에는 임명을 하겠다는 입장인데요. 선생님께서는 이와 같은 청와대의 입장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 장관의 인사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찬성한다.
2. 국회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으므로 반대한다
3. 잘 모르겠다
▶ 청와대의 입장을 지원해주기 위한 의도된 설문일 뿐이다. 질문 서두에서부터 이미 장관 후보자 두 명이 지명철회 및 사퇴했다는 배경 설명이 청와대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다. 또한 국회가 반대하는 이유인 장관후보자들의 위장전입, 거짓말 등 결격사유를 언급하는 대신‘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고 함으로써, 임명 반대 논리를 흐리고 있다. 선택문항 1번에서도 ‘인사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라고 해, 청와대의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인식을 강요한다. 2번도 ‘장관으로 임명하기에 결격사유가 많으므로 임명을 반대한다’로 했어야 할 것이다.
리얼미터의 여론조사를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이 여론조사 기관이 ‘공정성’보다는 의뢰자가 원하는, 즉 의뢰자 입맛에 맞는 조사에 충실한 기관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의뢰자 대부분은 좌파성향, 그리고 친정부 성향이다.
게다가 탈원전, 김원봉 서훈 문제 등 전문가조차 일도양단(一刀兩斷)해서 대답하기 어려운, 즉 여론조사에 부적합한 분야까지 마구잡이로 조사하는 과감성까지 갖췄다. 이쯤 되면 여론조사에 무식한 것인가, 아니면 ‘여론조작’을 작정한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의 질문을 읽어보니… 여론조사인지, 여론조작인지 헷갈린다!
- 조샛별(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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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6, 23: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