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당시 미 육군 501 정보여단 군사정보요원으로 활동했다고 주장한 김용장씨의 실제 직책이 정보요원이 아니었다는 증거가 드러나고 있다. 그가 군사정보요원이 아닌 Language Specialist, 즉 한국어 전문가(통역가)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김용장씨가 언론에 공개한 501 정보여단으로부터 받은 ‘상장’에 적시돼 있다.
그는 3월 JTBC 인터뷰를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으며 5월에는 한국 국회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1980년) 5월 21일 광주를 방문해 비밀회의를 갖고 ‘사살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이미 여러 차례 국가기관의 조사를 통해 사실이 아닌 것이 밝혀졌다.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과 이재우 당시 광주보안부대장, 장사복 전교사 참모장 등 전두환이 광주를 방문했다면 알았을 수밖에 없는 핵심 인사들 역시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전두환 前 대통령의 대변인 格인 閔正基(민정기) 씨 역시 “전두환 대통령이 (21일 광주에서) 회의를 주재했다고 하는데 그가 투명인가”라며 “본 사람이 있을 텐데 아무도 봤다는 사람이 없고 (김용장씨) 자신도 직접 본 게 아니라 남의 얘기를 듣고 한 얘기에 불과한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용장씨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내용은 언론에 소개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가 ‘한국 정보요원’이 아니라 ‘미군 정보요원’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그를 세상에 알려지게 하는 과정에서 JTBC가 큰 역할을 했다. 김용장씨는 JTBC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간판 프로그램인 <뉴스룸>과 두 차례의 인터뷰를 했다. JTBC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인 <스포트라이트> 역시 그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3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내보냈다. 그의 일방적인 주장은 연일 언론에 소개됐다.
JTBC의 스포트라이트와 뉴스룸은 김용장씨를 소개하며 그가 미군 정보요원으로 광주에서 근무했었다고 설명했다. 영상에 있는 그를 소개하는 자막에는 ‘미군 정보요원’이라는 문구가 계속 비친다. 그는 미군 정보요원이었다는 증거로 501 정보여단에서 받은 표창장과 20년 근속 확인증서를 제시했다. 이 표창장과 확인증서에는 그가 정보여단 소속에서 근무한 민간인 통역관임이 나타나 있다. 이 내용을 추후 다루기에 앞서, 김용장씨가 5월 1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당시 자신의 직책을 설명하는 발언을 소개한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미 육군 501정보여단 광주파견 돼 MIS, military intelligence specialist, 한국말로는 군사정보관으로 25년간 재직했던 김용장입니다. 501정보여단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 육군 보안정보부대입니다. 같은 기관이 일본에도 있는데 500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이번 광주 진상을 밝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죄 많은 십자가를, 여러분 앞에서 감히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은 심지어 제 아내에게도 39년 동안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던 사안들입니다. 1980년 미국은 두 개의 채널로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하나는 미 국방성, 또 다른 하나는 미 국무성이었습니다. 미 국무성은 주한미대사관이, 국방성은 제가 근무했던 501정보여단이 중심이 됐습니다. 501 정보여단은 미 육군정보보안사령부 소속으로 주한미군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1980년 5월 당시, 국무성 직원이나 CIA 요원이 광주에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오직 제 사무실, 광주 전투비행장에만 저희들이, 모두 네 명이 근무했습니다. 저는 유일한 한국인이었습니다. 그 때 당시 근무했던 미국인 중에는 캐버나라는 대장이 있었고 글렌 브리핀이라는 보좌관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이 저의 동료입니다.>
그는 여당 국회의원들이 참석하고 많은 언론인들이 모여 있는 기자회견장에서 자신을 당당하게 ‘military intelligence specialist, 군사정보관’이라고 소개했다. 당시 언론은 그의 직책에 큰 의문을 품지 않고 그의 발언을 모두 사실인 것처럼 보도했다.
이런 그의 주장에 처음 증거를 갖고 의문을 제기한 것은 설갑수라는 번역가이다. 그는 황석영 등이 쓴 5.18 관련 책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영문판을 번역한 사람이다. 그는 김씨의 기자회견 후인 5월 16일 <’미 육군 정보요원’ 김용장이 답해야 할 의문들>이라는 경향신문 기고문을 통해 김씨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설갑수씨가 집중적을 의문을 제기한 부분은 김용장씨의 당시 신분이었다. 김용장씨의 주장 이외에는 증거가 없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김용장이 501그룹 시절 받은 포상은 그가 501그룹 종사자였음을 증명할 뿐 광주에서 군사정보 전문가로 일했다는 증거는 아니다”라며 “지금까지 공개된 501부대의 두 상급기관, 육군 정보보안사령부(INSCOM)와 국방정보국(DIA) 문건에서 광주 근무 ‘한국인 정보전문가’의 흔적은 찾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김씨의 증언의 정확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김용장씨는 앞서 소개한 기자회견에서 “1980년 광주에 CIA나 국무부 직원은 없었다”고 한 바 있다. 설갑수씨는 자체적으로 조사를 실시, “CIA 요원 상주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광주에는 국무부 소속 미 문화원들이 있었고 미국의 5.18 초기 정보는 문화원 직원들의 작품이었으며 20년 넘게 광주의 미 육군정보 요원이 이들의 존재를 모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설갑수씨는 INSCOM의 1980년 연례보고를 검토, 당시 501 그룹에는 미군 194명, 직접 고용한 민간인은 두 명뿐이었다고 했다. 그는 “그 중 하나가 김용장이었을까”라며 “그러한 특기자가 굳이 광주 공군기지에 20년간 배치됐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설갑수씨는 6월2일 <5.18의 ‘꿈 같은 증인’ 김용장은 ‘미 육군 군사정보관’이 아니었다>는 제목의 경향신문 기고문을 통해 김용장씨의 직책과 관련된 후속취재 결과를 소개했다. 그는 미군 당국에 정보요청을 하는 등의 취재를 통해 “그가 501 군사정보단의 군사정보관(Military Intelligence Specialist)로 근무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설갑수씨에 따르면, 김용장씨는 9급 통역으로 501 정보단에 1974년 입단했고, 90년대 중반 통역관(Language Specialist)을 끝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설갑수씨는 “이 기간 그는 비공식 정보원으로서 광주 주변의 첩보를 수집해 보고할 수도 있었으나 그가 속했다던 501 정보단의 524 임시대대-미 육군 정보보안사령부(INSCOM)-국방정보국(DIA) 계통을 거치는 공식 보고서를 직접 작성할 위치나 권한은 없었다”라고 했다.
설씨는 또한 김용장씨가 501 정보단 직책을 맡았다는 것을 물증으로 증명한 적이 없었다고도 지적했다. 20년 동안 501 정보단에서 일했다는 근속표창만을 제시했을 뿐 어떠한 직책도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공개한 부대 표창 중 하나에는 그가 ‘민간인 통역관’이었다는 설명도 담겨 있다.
그가 공개한 표창은 ‘COMMANDER’S AWARD FOR CIVILIAN SERVICE’이다. ‘민간근무자에 대한 사령관 표창’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그가 받은 상장 내용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INSCOM 공보국은 이와 관련된 설갑수씨의 질문에, “민간인 언어전문가나 통역은 군사정보관으로 활용되거나 임명될 수 없다”며 “그들은 정보전문가로서 훈련받거나 고용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김용장씨 퇴직 직전 501 부대장이었던 퇴역 장성 H씨 역시 김용장씨를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H 장군은 ‘민간인 통역이 군사정보직으로 갈아타거나 겸직할 수 있느냐’는 설갑수씨의 질문에 코웃음을 치며 전화를 끊자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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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확인 절차가 전혀 없는 JTBC의 황당한 5·18 관련 보도 행태
정보원에게 받은 정보를 보고한 정보원의 말을 사실인양 보도
5·18을 앞두고 다시 한 번 황당한 주장이 언론을 도배하고 있다. 1980년 당시 미 육군 501정보여단 군사정보관으로 활동했다는 김용장씨가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 “전두환이 5월 21일 광주를 방문해 ‘사살 명령’을 내렸다”는 주장이다. 그는 올해 3월 JTBC와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주장을 해 세상에 알려진 사람이다.
그의 주장을 종합하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21일 광주에 내려가 비밀회의를 가지고 ‘사살 명령’을 내렸으며 그가 떠난 직후 ‘계엄군의 집단사격’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국가차원의 조사가 수차례 이뤄진 뒤에 나오는 것도 황당하지만 이를 보도하고 있는 JTBC의 보도 행태가 더욱 황당하다.
JTBC는 김용장씨가 국회에서 증언(?)을 한 날인 13일, 김 씨 관련 기사를 간판 프로그램인 뉴스룸을 통해 세 차례에 걸쳐 내보냈다. 두 꼭지는 이른바 ‘스트레이트’ 기사로 이날 있었던 김씨의 주장을 차례로 소개한 기사다. JTBC는 이후 김용장씨를 직접 스튜디오로 초대해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우선 1차 보도인 스트레이트 기사의 제목은 <“광주에 내려온 전두환” “발포 아닌 사살” 국회 증언>인데 유선의 기자가 보도했다. 손석희 앵커는 이 기사 보도를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앵커: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에 있는 시계탑입니다. 오후 1시에서 1시 30분을 향해 가는 시각, 80년 5월 21일 여기서 계엄군은 시민을 향해 집단, 조준 사격을 했습니다.
김용장: “발포 명령과 사살 명령은 완전히 다릅니다.”
허장환 “그 사격은 제가 직접 목도를 했습니다. 앉아쏴 자세에서 사격은 절대 자위적 투사가 아닙니다. 그건 사살이지.”
앵커: “발포가 아닌 사살이었다.” 5.18 당시 광주에서 활동한 미군 정보요원 김용장 씨와 보안부대 수사관 허장환 씨는 ‘계엄군의 사격은 사살이었고,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오늘(13일) 국회에서 증언했습니다. (하략)>
손석희 앵커는 기사 소개에 앞서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조준 사격이 있었다고 단정했다. 그는 그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어떤 출처도 밝히지 않았다. 이 기사에 소개될 김용장씨와 허장환씨의 주장을 ‘증언’으로 표현해 사실임에 틀림없다는 보도 행태를 취했다. 이 기사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의 입장이나 전두환씨가 같이 회의를 했다는 사람들의 주장은 전혀 소개되지 않았다. 이들은 과거 검찰 조사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광주에 오지 않았다고 밝혀왔다.
JTBC는 이후 <“헬기 사격, 전투기 출격대기도…” 구제척 증언 ‘일치’>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것인데 기사 첫 문장은 “김용장 씨는 헬기사격을 백악관에 보고했다고 말했습니다”이다. 김씨가 이런 보고를 하게 된 경위나 헬기 사격이 사실임을 뒷받침하는 어떤 내용도 기사에는 없다. 미 정보요원이 백악관에 보고를 했으니 시청자들은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식이다.
이날 뉴스룸 후반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사실확인 노력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김용장씨의 황당한 주장이 24분 동안이나 전파를 타는 상황이 이어졌다. 손석희 앵커의 역할은 김용장씨의 주장에 신뢰성이 있는지, 무엇을 바탕으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지만 이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물론 손 앵커는 김용장씨가 1997년에 받은 상패를 보여주고 ‘시청자들의 신뢰를 위해서’라고 말했다. 광주사태는 1980년에 일어났다.
이날 인터뷰에서 우선 손석희 앵커는 김용장씨와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이런 사실을 공개하기로 한 어려운 결정을 했다’는 격려성 발언을 했다. 이에 김용장씨는 “그렇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제 마음속의 십자가는 너무 크고 너무 무거웠다. 감히 누가 39년 비밀을 지킬 수 있겠나? 현장에서 직접 본 사람으로서는 그 비밀이 굉장히 컸다”라고 했다.
이런 답변이 나온다면 대다수의 기자들은 ‘당시 현장에서 무엇을 했고 무엇을 직접 봤습니까’라고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손 앵커는 ‘미국 정보요원이라는 역할이 무엇이고 보고체계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 시청자들은 광주사태와는 관련 없는 미국 정보 보고 체계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 했다.
이후 손 앵커는 ‘광주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은 정보도 있을 테고 본인이 직접 취득한 정보도 있을 텐데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은 정보는 누구로부터 얻느냐’고 물었다. 기자가 인터뷰를 했다면 ‘당시 직접 취득한 정보는 무엇이었습니까’이었을 것이다.
손 앵커의 질문에 김용장씨는 “한국 정보기관 요원 등을 비롯한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정보원들을 통해 정보를 받는다”고 했다. 이에 ‘왜곡된 정보를 줄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며 “한국에 있는 정보기관도 그 첩보를 자기 기관을 통해 상부에 보고하고 우리에게도 주고 또 그 정보가 상보하는 과정에서 크로스체크가 되기 때문에 허위정보를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이 질문 과정은 또 한 번 핵심 논점에서 벗어난다. 손 앵커와 김용장씨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전두환 장군이 광주에 와서 사살명령을 내렸다는 것일 텐데 미 정보요원의 전반적인 정보 취득과 보고 활동에 대해서만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
손석희 앵커는 김용장씨가 받았다는 상패를 소개한 뒤 본론으로 들어가겠다며 ‘전두환 씨가 (광주에) 온 것을 어디서부터 어디로부터 정보를 받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김용장씨는 “전두환 씨가 5월 21일 정오쯤 해서 왔는데 우리 정보원을 통해서 첩보를 받았습니다. 그 첩보원은 보안사령부에서 근무하는 정보요원”이라고 했다. 이어 “그 분이 첩보를 줬고 그 후에 505보안부대에 근무하는 여러 분들도 본 적이 있다”라고 했다.
손 앵커는 “전두환씨가 온 것을 봤다는 얘기인가”라고 물었다. 김 씨는 “본 적 있다”라며 “그리고 간접적인 증명을 할 수 있는 몇 가지가 있다”며 전두환씨가 탄 헬기의 비행 계획서 기록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김용장씨는 자신이 직접 본 것은 없고 남에게 들은 얘기를 자신이 보고했으니 이를 진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손 앵커는 의문을 갖지 않았다. 손 앵커는 본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도 하지 않았다.
손석희 앵커는 이후 “전두환 씨는 그때 광주에 안 갔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사실 자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면 그런 발포명령의 개연성이 그만큼 높아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용장씨는 “그렇다”라면서 “아마 전두환 씨가 나이가 많이 들어서 아마 기억력이 떨어질지 모르지만”이라고 했다.
김용장씨는 계속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한국군 ‘편의대’가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방화 등을 하면서 무력진압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계엄군의 성폭행과 관련된 보고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모든 주장의 출처는 ‘정보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