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첫사랑(교육), 情婦(정치)2
[한국인의 유별난 교육열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유교 경전이 과거 시험의 교과서가 되면서 일개 양민도 이론상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 될 수 있었다. 실지로 그런 일이 조선 중기 이후에는 아주 드물지만 나왔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고려의 귀족들이 몰락했다. 산과 내를 경계로 하던 그들의 어마마한 대토지와 농장(農莊)은 신진관료와 군인 곧 신흥 정치 세력에게 멋진 전리품이 되었다.
조선의 태조는 조준의 2차에 걸친 상소에 따라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귀족과 사원의 손아귀에서 토지를 '무상몰수하여 무상분배'했다. 하급 무사와 하급 관리들이 귀족의 땅을 빼앗아 공전으로 대부분 할애하고 경기도의 논밭 곧 그들이 확보한 전국의 토지 50만결 중에 약 20%에 해당하는 경기도의 토지를 과전법에 의해 벼슬에 따라 골고루 나눠 주었다.
자연 그들은 명실상부한 최상층 집단으로 올라섰다. 권력에 이어 돈까지 장악한 것이다.
옛날 귀족에 대면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고려의 귀족이 수만 결을 가진 사람도 있었던 반면에 조선은 전 품계 18과 중에서 정1품인 제1과가 150결밖에 안 됨. 최하위인 제18과는 10결.), 그건 그들에게 대단한 재산이었다. 자다가도 자기 볼을 꼬집을 정도로 대단한 재산이었다.
그들은 귀족의 기득권을 잘 대변하던 불교를 아예 미신과 동격으로 끌어내렸다. 권문세가 못지않게 어마어마하던 사원전도 당연히 빼앗았다.
고려말에는 권문세가들이 나라를 사유화하는 바람에 국고가 텅 비어 재상의 녹봉이 360석이었지만, 겨우 20석밖에 못 받았다. 이젠 하급 관리도 20석은 확보했다.
백성들은 고려초처럼 조세(tax)를 수확의 10분의 1만 내면 되었다. 권문세가에게 10분의 5 이상을 냈던 걸 생각하면 이건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선은 개국과 더불어 과거의 문을 활짝 연 것이다. 핵심 세력이야 당연히 개국 공신들이었지만, 그들이 언제까지나 살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불교를 배척하는 대신 조선의 권력자들은 유교를 유일한 종교이자 학문이자 통치 이념으로 받아들였다. 유교 경전을 유일한 교과서로 삼았다. 검인정이 아니었다. 국정 교과서였다.
--백성들이여, 이제 이것만 달달 외면 누구나 높은 자리에 올라설 수 있다. 임금 빼고는 다 될 수 있다.
고려는 비록 과거를 인재 등용의 관문으로 사용했지만, 역시 고려는 귀족의 나라였다. 과거(科擧)가 생각만큼 그렇게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진 못했다. 귀족 신분은 대대로 세습되었다. 고려 후기에 접어들면, 세금 한 푼 안 내고 군대도 안 가면서 그들은 각자가 왕후장상과 같은 생활을 했다.
농민이 애써 지어 놓은 농작물을 법으로 정해진 것보다 무려 다섯 배 여섯 배를 빼앗아가서 고스란히 챙겼던 것이다. 1년에 두 세 번씩 서로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교대로 빼앗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원 나라는 권문세족이 이렇게 횡포를 부리면, 고려는 나라꼴이 말이 아니기 때문에 원격조정하기가 한결 좋았다. 그래서 그들은 권문세족의 횡포를 모른 척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들과 결탁했다. 물론 뇌물을 두둑이 받았다.
그러던 것이 세금이 겨우 10분의 1만 내면 된데다, 일부 자작농도 생겼다. (조준은 원래 양민들에게도 토지를 나눠 주자는 제안을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것만 해도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데, 과거에 급제하면 벼슬이 생기고 녹봉이 생긴다고 했다.
고려와는 달리 재주만 있으면 양반에겐 누구나 크게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조선에 들어서면서 과거는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등용문이 되었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양민은 누구나 이론적으로는 개천에서 뛰쳐나와 무지개를 타고 올라가 용이 될 수 있었다.
오늘날로 비유하면 조선의 과거는 벤처 사업이다.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으면 벤처 기업을 잘 일궈 코스닥에 등록하면 하루아침에 일확천금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이미 말했듯이 이보다 더 확실한 게 있었다.
공장에서 죽어라고 일해도 입에 풀칠도 겨우 했는데, 이제 악덕 기업가가 쫓겨나고 새로이 회사를 접수한 사장으로부터 충분히 먹고 살만한 월급도 꼬박꼬박 받고 보너스도 분기마다 두둑이 받는다고 생각해 보라.
조선 초는 마르크스의 이론대로 이룩한 공산 혁명(토지 개혁)과 정보 혁명(벤처 열풍)이 한꺼번에 닥친 것과 같은 기가 막힌 기회의 시기였다.
오늘날 정보화 시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서민이 몰락하고 일부 정보화 선두 주자만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것과 같은, 한 편으로는 부럽고 한 편으로는 불안하기만 한 오늘날의 상황과는 전혀 달랐다.
다 죽어가던 서민이 일제히 잘 살게 된데다 그 서민이 이론상으로는 권력과 부와 명예를 함께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코스닥이 뜨면서 젊은이들의 가슴이 얼마나 울렁거리는가.
--지금은 무늬만 벤처인 회사가 흑자 기업인 대기업보다 시장가치가 더 높은 경우가 있기 때문에 거품 현상이 심각하다만.
인생관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사고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그런데 조선 초에 이보다 더한 변화가 있었다.
오늘날의 아이디어와 기술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공부였다. 유교 공부였다. 교육이었다. 먹고 사는 걱정이 없어진 것만 해도 덩실덩실 춤을 출 지경인데, 자식 교육만 열심히 시키면 자식이 재상까지 될 수 있다니, 양반들이 교육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지 상상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일찍이 한국인이 이 때보다 희망에 넘쳤던 때가 없었다. 물론 일반 서민은 사실상 큰 혜택이 없었다. 노비야 말할 것도 없다. 10분의 1세금은 법이었지, 암암리에 정부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는 사전(private farm)에서 10분의 5를 바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사람의 자녀가 공부를 할 수 있었을 리 없다.
이것은 오늘날 벤처 벤처 하지만, 모두들 가슴만 울렁거렸지 실지로 혜택을 보는 사람은 극히 일부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미국 예를 들면 아이디어가 발전하여 나스닥에 상장되어 뜨는 경우가 겨우 1백만분의 6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의식 구조가 온통 바뀌었다. 지금 한국인의 의식 구조도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조선 초의 한민족이 바로 그러했다. 설령 공부할 입장이 못 되어도 누구나 가슴에 공부에 대한 소망이 가득했다.
교육열은 이 때 한국인의 의식을 넘어 무의식 세계로 깊숙이 자리잡게 되었다.
한양에 온 중국 사신들은 하나같이 놀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집집마다 골목마다 글 읽는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희미한 등잔불 아래서도 책을 거의 외우고 있었기 때문에 어린아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양반 집에서는 눈을 지그시 감고 누구나 글을 읽는 소리가 낭랑했던 것이다.
--서양의 중세 대학생들은 밤에는 공부를 않았다. 등불이 너무 희미하다는 핑계였다.
중국은 나라가 워낙 크고 지방 분권이 강했기 때문에, 벼슬길도 다양했고 먹고 사는 방법도 다양했기 때문에
누구나 공부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80년대에 서울에 온 어떤 미국인이 우연히 새벽에 호텔 밖으로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새벽 5시도 안 되었는데 학생들이 종종 걸음으로 달리듯 우르르 몰려가는 것을 목격했다.
--아니, 이렇게 이른 시간에 학교에 가는가?
너무도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학원에서 새벽반 수업을 들으러 간다고 했다. 학교 수업은 몇 시에 시작하느냐고 했더니, 7시 40분이라고 했다. 왜 그렇게 일찍 시작하느냐고 물었더니, 귀찮다는 듯이 보충수업을 하러 간다고 했다.
이 미국인은 단언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과는 전혀 다른 시각이었다.
--이들이 30대만 되면 이 나라에 큰 일을 일으키겠구나.
맞았다. 그들이 바로 오늘날 벤처 기업의 주역이다. 그 당시 그들은 혹독한 주입식 교육을 받았지만, 지금 그들의 머리는 창의력으로 가득 차 있다. 정말 튀는 세대이다.
사람은 뭔가 일단 지식을 머리속에 집어넣으면, 환경에 맞추어 그 지식을 얼마든지 창의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증거이다. 사회 환경이 여전히 단순하면 그 지식을 단순하게 쓰지만, 사회 환경이 다양해지면 그에 맞춰 지식도 다양하게 응용하는 게 사람이다. 지식을 다양하게 응용하는 게 바로 창의력이다.
주입식 교육을 무조건 배제하는 것은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한다고 본다. 기초 지식, 기본 지식은 열린 교육만으로는 절대 많은 학생에게 가르칠 수 없다. 그런 교육은 까딱 잘못하면 극소수 애들만 똑똑하게 만들 뿐이다. 주입식 교육과 열린 교육을 절충해야 한다. 서로의 장점을 학생에 따라 달리 적용할 필요가 있다.
--계속--
(2000.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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