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보잉이 2017년 선보인 ‘보잉737맥스8’ 기종이 5개월 사이 두 차례 추락해 탑승객 전원이 숨진 사고 때문이다.
보잉737맥스8 기종의 운항은 2018년 10월 29일 발생한 인도네시아 라이온에어 여객기 추락사고(탑승객 189명 전원 사망)에 이어 2019년 3월 10일 에티오피아 항공 여객기 추락사고(탑승객 157명 전원 사망) 이후 중단됐다. 같은 기종 비행기의 연이은 사고로 기체에 결함이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한국은 이스타항공이 보잉737맥스 두 대를 지난해 들여와 노선에 투입했지만 에티오피아 사고 발생 이후 운항을 중단했다.
2017년 출시(出市)된 보잉737맥스는 보잉의 대표적인 중·장거리 여객기로, 2019년 1월 기준 주문량은 약 5000대이며 전(全) 세계 항공사에 인도된 항공기는 350대다. 이 기종은 보잉의 향후 매출의 약 4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베스트셀러’ 기종이다. 비행기당 가격은 약 1억2000만 달러(약 1422억 원)다.
현재까지 정확한 피해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보잉은 지난 4월 발표한 자료에서 운항 중단으로 약 10억 달러의 손해를 봤다고 한다. 이는 사고 관련 초기 비용만 추산한 수치이기 때문에 실제 피해 규모는 훨씬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보잉의 주가(株價)는 에티오피아 사고 발생 전인 3월 1일에 440달러를 기록했다. 6월 첫째 주 기준 보잉 주가는 3개월 사이 약 20% 폭락한 350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보잉은 현재 문제가 된 ‘소프트웨어’ 보완 절차를 밟으며 운항 재개 승인을 받으려 한다. 그러나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사람들은 보잉737맥스의 안전성에 여전히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여행객 약 60%, 보잉737맥스 타기 불안하다”
6월 초 공개된 애트모스피어 연구소(Atmosphere Research Group)의 조사에 따르면, 약 60%의 미국 여행객들이 보잉737맥스(이하 맥스) 타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20%의 미국 여행객들은 맥스의 운항이 재개돼도 최소 6개월간은 이 비행기를 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40% 이상의 응답자는 가격이 더욱 비싸고 불편하더라도 맥스가 아닌 다른 비행기에 탈 것이라고 했다. 맥스 기종의 운항 재개 후 6개월 이내 이 비행기에 탑승하겠다는 응답자는 14%에 불과했다.
사업 및 업무 목적으로 비행하는 사람의 63%와 일반 여행객 65%는 운항 재개 후 1년이 지나더라도 맥스 비행기에 탈지 불확실하다고 했다. 이 조사는 4월 27일부터 5월 1일까지 미국인 2000명을 대상으로 했다. 이들은 지난 1년 사이 최소 한 번 이상의 왕복 비행기표를 구매해 여행한 사람들이다. 애트모스피어 연구소는 보고서에서 “여행객들은 맥스를 단순히 무서워하는 수준이 아니라 공포를 느끼고 있다”며 “현재로서 맥스는 사람들이 타고 싶지 않은 비행기”라고 했다.
글로벌 금융서비스 기업 ‘바클레이스(Barclays)’가 지난 5월에 발표한 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175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 중 44%는 맥스 기종을 최소한 1년은 기다렸다가 탈 것이라고 답했다. 절반 이상의 응답자는 가격 등 모든 조건이 같다면 맥스가 아닌 다른 비행기를 탈 것이라고 했다. 21%의 응답자는 평생 맥스 기종을 안심하고 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운항이 재개되자마자 맥스에 탑승할 수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19%로 집계됐다. 스위스 금융그룹 UBS도 70%의 사람들은 현 시점에서 맥스로 운영되는 비행기표를 구매할 의사가 없다고 분석했다.
“보잉은 문제 알고도 침묵했다”
신뢰에 타격을 받은 것은 보잉뿐만이 아니다. 보잉737맥스8(이하 맥스8) 사건으로 인해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위상 역시 큰 타격을 받았다. 전 세계 항공 규제 당국은 FAA의 결정을 대체로 다 따라왔으며, 가장 공신력 있는 항공안전감독기관으로 대해왔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FAA가 맥스8 운항 승인 과정에서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들이 밝혀지며, 특히 중국을 비롯한 해외 항공안전감독기관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보잉과 FAA가 신뢰도를 잃게 된 이유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사고 이후 계속된 보잉의 무책임한 대응과 초기 운항 승인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전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보잉과 FAA의 유착관계’ ‘안전문제를 등한시한 보잉’ 등의 비판이 올 상반기 전 세계 언론을 장식해왔다. 이와 관련된 증거와 증언들은 계속 쏟아지고 있다.
현재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교통부는 보잉과 FAA의 유착관계를 조사하고 있다. 미국 의회도 청문회를 소집하는 등 정확한 사고원인 규명에 앞장서고 있는데, 보잉이 문제를 알고도 침묵했다는 증거가 새롭게 공개됐다.
미국 연방하원의원 피터 드파지오(민주·오리건)와 릭 라센(민주·워싱턴)은 지난 6월 7일 “보잉이 받음각(angle-of-attack) 센서에 오류가 발생했을 때 점등(點燈)되는 계기판 경고등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와 에티오피아 사고는 모두 받음각 센서의 오류로 발생했다. 오류 경고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상황에서 새롭게 탑재된 시스템이 작동한 것이다. 조종사들은 이에 적절한 대처를 취하지 못했다. 보잉은 이 기술을 조종사·항공사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비극을 부른 기술 MC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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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실속방지시스템(MCAS) 작동원리. |
MCAS가 작동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은 받음각 센서다. 받음각은 비행기 날개를 절단한 면의 기준선과 기류가 이루는 각도를 뜻한다. 맥스 기수에는 두 개의 받음각 센서가 달려 있다. 이 센서는 날개의 각도 등을 측정해 기수가 너무 높게 올라가 기체가 기울어지면 MCAS를 작동시킨다.
드파지오와 라센 의원은 언론 성명을 통해 “보잉이 이 결함을 2017년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까지 수정을 미뤘다”고 했다. 성명에 따르면, 보잉은 관련 소프트웨어 수정을 2020년에야 시작할 계획이었다. 보잉은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여객기 추락사고 이후 일정을 앞당겼다.
고든 존드로 보잉 대변인은 “회사 자체의 안전성 검토에 의하면 관련 경고등이 없다고 해서 비행기의 안전이나 운항에 나쁜 영향은 끼치지 않는다고 봤다”고 해명했다. 그는 “관련 소프트웨어는 2020년에 도입되는 맥스10 기종부터 적용될 예정이었다”며 “받음각 경고등과 관련해 부족한 점이 있고,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드파지오와 라센 의원은 보잉이 문제를 확인했음에도 FAA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보잉의 셀프 검증’
미국 수사당국은 보잉이 맥스8 기종을 만들고 FAA로부터 운항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시간을 단축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유착관계가 있었는지에 대해 수사 중이다. 비행기 제작부터 운항 승인 과정을 앞당기기 위해 안전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기술들에 대한 검증 절차를 건너뛰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보잉이 운항을 서두르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10년 넘게 보잉 제품만 구입하던 아메리칸항공이 2011년 에어버스로부터 새로운 기종 수백 대를 구입하려 했기 때문이다. 보잉은 10년 정도를 투자해 새로운 비행기를 만드는 대신 원래 있던 737 기종을 보완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통해 시간을 줄이려 한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보잉 비행기 엔지니어들은 설계도 등을 평소 수준보다 두 배 빠르게 만들어 제출해야 하는 압박을 받았다. 시간과 예산에 쫓겨 일하는 직원이 부족해지면 다른 부서에서 차출해왔다고 한다. 한 엔지니어는 “시간표는 매우 짧았다”며 “빨리, 빨리, 빨리(go, go, go)와 같은 상황이었다”고 언론에 밝혔다.
에어버스는 오랫동안 보잉의 적수(敵手)가 되지 못해왔다. 그래서 에어버스는 전 세계 저가(低價)항공사를 집중 공략하는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택했고, 이후 급격하게 성장하게 됐다. 2008년의 경우 에어버스는 483대의 비행기를 항공사들에 인도했으나 보잉은 375대에 그쳤다. 에어버스의 급부상으로 보잉은 맥스 개발을 서두르게 됐다.
보잉이 운항 승인 과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로비스트들을 대거 투입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보잉은 수백만 달러를 들여 미 의회와 FAA에 로비해왔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문제를 제기하며 연방정부의 관리감독 체계를 다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FAA는 2005년 일부 규정을 수정해, 비행기를 만든 회사에서 일부 안전 관련 검증 과정에 참여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보잉 직원이 FAA의 운항 적법성 검증 절차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이 같은 조치는 FAA가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최대한 받아 검증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서였다. 해외 기업과 경쟁하는 미국 기업이 오랜 규제 및 검증 절차로 받을 불이익을 줄이려는 목적이었다. 언론들은 이를 ‘보잉의 셀프 검증’이라고 비판했다.
개발 마지막 단계에서 내린 치명적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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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드파지오 美연방하원의원. |
외신 보도에 따르면 보잉은 맥스8을 개발할 당시 MCAS로 인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작동하더라도 여러 종류의 센서에서 ‘문제 있음’ 신호가 있을 때에만 작동하도록 만들어졌다. 보잉은 비행기의 ‘속도 센서’와 ‘받음각 센서’ 모두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판단을 내릴 때에만 MCAS를 작동하도록 했다.
그러나 보잉은 출시 1년을 앞두고 MCAS가 실속을 막기 위한 거의 모든 상황에서 작동하도록 수정하기로 했다. MCAS가 비행기 기수를 더욱 강하게 떨어뜨리도록 수정했다. 아울러 속도 센서와 받음각 센서 모두에서 문제 있음 신호가 발생하면 작동하도록 한 이 시스템을 받음각 센서 한 군데에서 보내오는 신호만으로도 작동하도록 바꿨다.
개발 단계 당시 시험 비행에 참여한 관계자들은 “특별한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다만, MCAS에 문제가 발생할 상황에 대한 실험은 했지만 받음각 센서에서 잘못된 신호를 보내와 MCAS가 오작동될 가능성은 실험하지 않았다고 한다.
보잉은 MCAS에 대한 수정 사항 역시 FAA에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보잉은 이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조종 매뉴얼에서 삭제해도 되느냐’고 물었고, FAA는 이에 동의했다. 그래서 많은 조종사가 10월 인도네시아 추락사고 이후에야 MCAS에 대해 알게 됐다. 이와 관련해 보잉은 “운항 승인 과정에서 모든 적법한 절차를 따랐으며, 안전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세계 항공 역사상 최악의 은폐라고 비판받아야 할 대목이다. 이런 변명으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시기를 놓쳐 에티오피아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