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갑제 대표와 만나 5·18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하는 백승묵 前 203항공대대장.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사자(死者)명예훼손을 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두환(全斗煥) 전(前) 대통령의 변호인 측은 지난 5월 30일 광주지방법원 재판부에 헬기사격 실험을 해줄 것을 신청하였다.
“전일빌딩의 탄흔은 UH-1H 및 500MD 헬기가 호버링 상태(일정한 고도를 유지하면서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사격을 가하여 발생한 탄흔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하겠다는 취지다.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주장한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이 조 신부와 5·18 희생자, 유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광주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변호인은 최근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신청서에서 “500MD와 UH-1H에서 기관총 및 소총으로 사격을 실시해 실제로 어떤 탄흔이 발생하는지 여부를 검증하는 것은 전일빌딩 탄흔의 발생원인을 규명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증거조사라고 사료된다”고 했다. “헬기의 비행소리는 보통 사람에게 마치 기관총 소리로 들릴 수 있다. 따라서 헬기가 비행할 때 지상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여부를 규명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검찰, “현장검증 불필요”

검사는 지난 7월 8일 해당 증거신청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고 헬기사격 실험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검사는 “현장검증이 실시되는 장소(육군항공작전사령부)는 본 건 공소사실 기재 장소와 건물의 배치 및 구조 등이 상이하고 당시 헬기의 고도 및 헬기와 건물과의 거리 등이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아니하는 등 정확한 재현이 가능하다고 보기 어려운바, 위 현장검증으로 도출되는 결과를 통해 헬기사격 유무 등 본 건의 사실관계와의 관련성을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이어 “총 19명의 헬기사격 목격자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질 것인바, 위 현장검증을 통해 확인되는 프로펠러 소리 등으로써 ‘헬기에서부터 나는 총소리를 들었다’는 취지의 다수 목격자 증언 등의 신빙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 또한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변호인은 또 “전일빌딩의 탄흔 밀집도는 헬기사격으로 이뤄질 수 없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감정 결과에 대한 사실조회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이 감정서를 작성한 감정관 김동환을 조만간 검찰 측 증인으로 신청할 예정이기 때문에, 쌍방의 증인신문을 통해 사실조회 신청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며 사실조회 신청을 불허(不許)해달라고 요구했다. 검찰은 국과수 감정 결과가 있기 때문에 이를 다시 조사할 필요 없이 감정인의 신문을 통해 확인하자는 취지인 것으로 보인다.
변호인은 광주지방검찰청에서 실시한 5·18 사망자에 대한 사체검시기록과 광주광역시에서 보유한 헬기사격에 의한 사상자에 관한 조사결과보고서 및 보상결정서(이른바 유공자 명단) 역시 증거로 채택할 것을 요청했다. 관련 기록에는 피해자들의 사인(死因) 혹은 부상 원인이 기재돼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헬기사격 피해자가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겠다는 취지였다.
검찰은 이에도 반대했다. 검찰은 “재판의 핵심 쟁점은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는 조비오 신부 주장의 허위 여부, 즉 헬기사격의 유무(有無)”라며 “헬기사격으로 인한 피해자의 유무는 쟁점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헬기사격으로 인한 피해자가 있었는지 여부와 실제로 헬기사격이 있었는지는 다른 문제라는 주장이다. 헬기사격은 있었지만 피해자는 없었을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목격자 진술로만 진행되는 재판”
변호인은 각 언론사에 요청해 ‘광주 상공에서 비행한 헬기’의 사진과 동영상을 증거로 채택하자고 주장했다. 검사 측은 “이런 사진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당시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거나, 역으로 위 사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헬기사격이 없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며 증거 채택에 반대했다.
현재 변호사와 검사는 헬기사격 유무를 확인하기 위한 증거 채택에 힘을 쏟고 있다. 검사는 당시 사격을 목격했다는 증인들을 불러 신문에 나서고 있다. 변호인이 요구하는 헬기조종사의 증인신문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변호하는 정주교 변호사는 “유무죄(有無罪)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며 “검사는 헬기사격도 조사하지 말자, (출동했던) 헬기조종사도 조사하지 말자고 하고 있는데 이는 진실을 가리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현재 검찰은 헬기조종사의 증인 채택 문제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이라고 한다. 정 변호사는 “검찰은 총 쏜 사람들이 쐈다고 하겠느냐”며 검찰이 조종사들의 증언에 신빙성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 변호사는 “맞았다는 사람과 때렸다는 사람에 대한 조사 없이 어떻게 목격자만 가지고 재판을 하느냐”고 개탄했다.
“진실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
전두환 전 대통령의 변호인은 지난 7월 11일 검찰 주장에 대한 반박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피해자의 존부(存否)가 기총소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이라면 도대체 헬기 기관총이 장난감 총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기총소사란 “비행기에서 목표물을 비로 쓸어내듯이 기관총으로 쏘는 일”을 말하기 때문에 ‘기총소사’의 의미 속에는 무수히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였음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헬기사격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헬기사격설을 근거로 ‘학살’을 주장하고 있고, 국방부 특조위는 헬기 기총소사를 ‘광주 시민에 대한 소탕작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어째서 피해자의 유무(有無)가 기총소사와 무관하다는 말입니까? 피해자의 유무는 헬기사격과 무관하다는 검사의 주장은 듣는 귀를 의심케 합니다.〉
변호인은 “조종사의 진술을 청취해보기도 전에 (진술을) 거짓으로 추단하는 것은 불공정한 예단”이라며 “조종사들은 직접 관련된 행위자들인데 이들을 조사하지 아니한 채 헬기사격설에 대한 조사를 마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 “헬기조종사에 대한 증인조사에 반대한다는 것은 헬기사격설에 관한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 아니냐”고 했다.
변호인은 또 다른 중요 쟁점인 헬기사격 실험에 대한 필요성도 재차 강조했다. 의견서에서 “약 50cm 기둥 안에 50개의 탄흔을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전일빌딩을 향하여 기총소사를 했다면 전일빌딩 10층 방송실 한 개의 방이 아니라 10층 전체 공간에서 탄흔이 발견돼야 한다”고 했다. 전일빌딩에 남은 탄흔을 포함해 목격자들이 주장하는 헬기사격 소리와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헬기사격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검사는 목격자 19명에 대한 증언만 있으면 헬기 기총소사 여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장검증을 부적절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목격자 다수의 진술만 있으면 행위자들인 헬기조종사에 대한 조사나 현장검증도 없이 형벌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은 인민재판에서나 있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실체적 진실발견을 형사소송 최고의 이념으로 삼고 있는 현행 형사소송법하에서 여러 사람의 목격자 진술만으로 재판하자는 주장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주장이라고 할 것입니다.〉
헬기사격 의혹의 도화선 ‘전일빌딩 탄흔’
‘5·18 당시 계엄군의 헬리콥터가 시민을 향해 사격을 했다’는 주장은 1988년 국회의 광주특위 때부터 제기되어왔다. 이후 광주사태에 대한 국가적 조사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헬기사격 의혹은 부정되어왔다. 이제 와 새삼 또 논란이 된 것은 광주광역시 금남로 소재 전일빌딩 10층 내부에서 150개 이상의 총탄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 판매 금지 처분도, 검찰의 사자명예훼손 혐의 기소도 모두 전일빌딩 탄흔에서 비롯됐다.
2017년 1월, 광주광역시 의뢰로 전일빌딩을 조사·감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은 이 탄흔들이 “헬기가 호버링 상태로 고도만 상하로 변화하면서 사격한 상황이 유리하게 추정된다”고 밝혔다. 탄흔의 밀집 정도와 직경을 근거로 당시 사용됐을 걸로 짐작되는 총기 종류 감정결과도 내놓았다. 5.56mm 실탄을 사용하는 M16 소총 또는 7.62mm탄을 사용하는 M60 기관총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과수 발표 몇 달 뒤인 2017년 5월 취임한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은 그해 5·18 기념식에서 “새 정부는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 규명에 노력하고, 헬기사격까지 포함해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곧이어 문 대통령은 ‘1980년 5·18 광주사태 당시 신군부가 시위대를 대량 살상하기 위한 헬기사격을 계획했고, 실제 전일빌딩 기총 사격으로 일부 실행됐다’는 주장과 관련, 이 두 가지 문제를 특별조사하라고 송영무(宋永武)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이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헬기사격 및 전투기 출격 대기 관련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이하 5·18특조위)’가 설립되었다. 2017년 9월 출범한 5·18특조위는 5개월의 활동기간을 거쳐 지난해 2월 ‘5·18 기간 동안 광주지역에서 공지(空地)협동작전의 일환으로 헬기사격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계엄군은 5월 21일 헬기를 이용하여 일반시민에게 위협사격을 하였고, 무장을 하지 아니하고 시위를 하는 시민들에 대하여 직접사격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5월 21일 헬기사격은 무차별적이고 비인도적인 것으로서 계엄군 진압작전의 야만성과 잔학성 그리고 범죄성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또한 시민들과 물리적 충돌을 하고 있는 과정에서 실시되었던 지상군의 사격과 달리 헬기사격은 사전 계획적·공세적 성격을 띠고 있다. (중략) 대량살상 능력을 갖춘 무장헬기까지 동원하여 사격을 하고 시민을 살상하는 행위는 집단살해 내지 양민학살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국군을 ‘양민학살’ 집단으로 모는 特調委
5·18 당시 출동했던 헬기조종사들이 한결같이 헬기사격이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지만, 특조위는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다. 5·18특조위가 국군을 ‘양민학살’ 집단으로 몰아가며 기존 국가적 조사결과를 뒤집은 논리는 이렇다.
〈계엄군 지휘부가 문서로 ‘헬기사격 실시’를 지시했고 이를 하달받은 현장 지휘관들의 헬기조종사들에 대한 구두명령이 있었다. ▲헬기가 무장한 상태로 작전활동을 했다. ▲특조위 면담 조사에서 5명의 헬기조종사들이 무장헬기의 출동사실을 시인했다. ▲당시 사실상 발포를 허용하는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으며 자위권 발동명령이 하달된 상태였다. ▲평시보다 엄중한 군법이 적용되는 비상계엄하에서 헬기사격 명령을 받은 헬기조종사들이 헬기사격 명령을 무시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렵다. ▲따라서 명령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헬기사격이 존재했다는 뚜렷한 증거다.〉
특조위의 조사 발표에 따라 국방부는 1980년 5월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공식 인정했다.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도 “우리 군이 38년 전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역사에 큰 아픔을 남긴 것에 대해 국민과 광주시민들께 충심으로 위로와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5·18 기념식 기념사에서는 “학살의 책임자, 암매장과 성폭력 문제, 헬기사격 등 밝혀내야 할 진실들이 여전히 많다”며 “아직까지 규명되지 못한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 정부는 국방부 자체 5·18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통해 계엄군의 헬기사격과 성폭행, 추행, 성고문 등 여성인권 침해행위를 확인하였으며 사과했다”라고 단정했다.
“관계자 200여 명 중 ‘사격했다’고 말한 사람 아무도 없다”
헬기사격이 있었는지 여부의 쟁점에 대해 가장 중요한 증언자는 당시 출동했던 헬기조종사들이다. 이들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지난 39년 동안 ‘헬기사격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럼에도 거의 모든 언론은 헬기사격이 있었다고 기정사실처럼 전하고 있다.
이에 당시 광주에 출동했던 헬기조종사 백승묵(당시 육군1항공여단 61항공단 203항공대대장), 이정부(당시 육군1항공여단 31항공단 103항공대대장)씨를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과거 정부 차원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여러 차례 증언한 바 있다.
그럼에도 39년이 지난 지금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것이 사실처럼 번지고 정부가 이를 공식 사과하는 상황에 처하자, 이들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다시 한 번 증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인터뷰 과정에서 ‘헬기사격이 있었다면 어떻게 조종사 단 한 명의 증언도 나오지 않을 수 있느냐’고 했다. 이정부씨는 “당시 광주에 있던 조종사와 정비사, 무장사 등 200여 명의 조종 관계자들 중 ‘사격했다’고 말한 항공종사자들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는 “이들이 말하지 말라고 해서 39년 동안 말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백승묵·이정부씨는 헬기사격이 있었다면 인명피해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며, 광주는 ‘불바다’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헬기사격의 위력을 알지 못하는 비전문가들이 ‘상상’에 기반해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백승묵씨는 육군항공사령부 부사령관(준장)으로 예편한 베테랑 헬기조종사다. 월남전에도 참전했으며 총 비행시간은 6000여 시간에 달한다. 그는 1980년 5월 21일 UH-1H를 타고 광주에 도착했다. 당시 출동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계속)
“전일빌딩의 탄흔은 UH-1H 및 500MD 헬기가 호버링 상태(일정한 고도를 유지하면서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사격을 가하여 발생한 탄흔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하겠다는 취지다.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주장한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이 조 신부와 5·18 희생자, 유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광주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변호인은 최근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신청서에서 “500MD와 UH-1H에서 기관총 및 소총으로 사격을 실시해 실제로 어떤 탄흔이 발생하는지 여부를 검증하는 것은 전일빌딩 탄흔의 발생원인을 규명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증거조사라고 사료된다”고 했다. “헬기의 비행소리는 보통 사람에게 마치 기관총 소리로 들릴 수 있다. 따라서 헬기가 비행할 때 지상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여부를 규명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검찰, “현장검증 불필요”

검사는 지난 7월 8일 해당 증거신청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고 헬기사격 실험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검사는 “현장검증이 실시되는 장소(육군항공작전사령부)는 본 건 공소사실 기재 장소와 건물의 배치 및 구조 등이 상이하고 당시 헬기의 고도 및 헬기와 건물과의 거리 등이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아니하는 등 정확한 재현이 가능하다고 보기 어려운바, 위 현장검증으로 도출되는 결과를 통해 헬기사격 유무 등 본 건의 사실관계와의 관련성을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이어 “총 19명의 헬기사격 목격자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질 것인바, 위 현장검증을 통해 확인되는 프로펠러 소리 등으로써 ‘헬기에서부터 나는 총소리를 들었다’는 취지의 다수 목격자 증언 등의 신빙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 또한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변호인은 또 “전일빌딩의 탄흔 밀집도는 헬기사격으로 이뤄질 수 없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감정 결과에 대한 사실조회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이 감정서를 작성한 감정관 김동환을 조만간 검찰 측 증인으로 신청할 예정이기 때문에, 쌍방의 증인신문을 통해 사실조회 신청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며 사실조회 신청을 불허(不許)해달라고 요구했다. 검찰은 국과수 감정 결과가 있기 때문에 이를 다시 조사할 필요 없이 감정인의 신문을 통해 확인하자는 취지인 것으로 보인다.
변호인은 광주지방검찰청에서 실시한 5·18 사망자에 대한 사체검시기록과 광주광역시에서 보유한 헬기사격에 의한 사상자에 관한 조사결과보고서 및 보상결정서(이른바 유공자 명단) 역시 증거로 채택할 것을 요청했다. 관련 기록에는 피해자들의 사인(死因) 혹은 부상 원인이 기재돼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헬기사격 피해자가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겠다는 취지였다.
검찰은 이에도 반대했다. 검찰은 “재판의 핵심 쟁점은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는 조비오 신부 주장의 허위 여부, 즉 헬기사격의 유무(有無)”라며 “헬기사격으로 인한 피해자의 유무는 쟁점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헬기사격으로 인한 피해자가 있었는지 여부와 실제로 헬기사격이 있었는지는 다른 문제라는 주장이다. 헬기사격은 있었지만 피해자는 없었을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목격자 진술로만 진행되는 재판”
변호인은 각 언론사에 요청해 ‘광주 상공에서 비행한 헬기’의 사진과 동영상을 증거로 채택하자고 주장했다. 검사 측은 “이런 사진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당시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거나, 역으로 위 사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헬기사격이 없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며 증거 채택에 반대했다.
현재 변호사와 검사는 헬기사격 유무를 확인하기 위한 증거 채택에 힘을 쏟고 있다. 검사는 당시 사격을 목격했다는 증인들을 불러 신문에 나서고 있다. 변호인이 요구하는 헬기조종사의 증인신문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변호하는 정주교 변호사는 “유무죄(有無罪)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며 “검사는 헬기사격도 조사하지 말자, (출동했던) 헬기조종사도 조사하지 말자고 하고 있는데 이는 진실을 가리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현재 검찰은 헬기조종사의 증인 채택 문제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이라고 한다. 정 변호사는 “검찰은 총 쏜 사람들이 쐈다고 하겠느냐”며 검찰이 조종사들의 증언에 신빙성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 변호사는 “맞았다는 사람과 때렸다는 사람에 대한 조사 없이 어떻게 목격자만 가지고 재판을 하느냐”고 개탄했다.
“진실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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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11일 故 조비오 신부 死者명예훼손 재판이 열린 광주지방법원에 출두했다. 사진=조선DB |
〈피해자의 존부(存否)가 기총소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이라면 도대체 헬기 기관총이 장난감 총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기총소사란 “비행기에서 목표물을 비로 쓸어내듯이 기관총으로 쏘는 일”을 말하기 때문에 ‘기총소사’의 의미 속에는 무수히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였음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헬기사격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헬기사격설을 근거로 ‘학살’을 주장하고 있고, 국방부 특조위는 헬기 기총소사를 ‘광주 시민에 대한 소탕작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어째서 피해자의 유무(有無)가 기총소사와 무관하다는 말입니까? 피해자의 유무는 헬기사격과 무관하다는 검사의 주장은 듣는 귀를 의심케 합니다.〉
변호인은 “조종사의 진술을 청취해보기도 전에 (진술을) 거짓으로 추단하는 것은 불공정한 예단”이라며 “조종사들은 직접 관련된 행위자들인데 이들을 조사하지 아니한 채 헬기사격설에 대한 조사를 마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 “헬기조종사에 대한 증인조사에 반대한다는 것은 헬기사격설에 관한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 아니냐”고 했다.
변호인은 또 다른 중요 쟁점인 헬기사격 실험에 대한 필요성도 재차 강조했다. 의견서에서 “약 50cm 기둥 안에 50개의 탄흔을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전일빌딩을 향하여 기총소사를 했다면 전일빌딩 10층 방송실 한 개의 방이 아니라 10층 전체 공간에서 탄흔이 발견돼야 한다”고 했다. 전일빌딩에 남은 탄흔을 포함해 목격자들이 주장하는 헬기사격 소리와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헬기사격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검사는 목격자 19명에 대한 증언만 있으면 헬기 기총소사 여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장검증을 부적절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목격자 다수의 진술만 있으면 행위자들인 헬기조종사에 대한 조사나 현장검증도 없이 형벌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은 인민재판에서나 있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실체적 진실발견을 형사소송 최고의 이념으로 삼고 있는 현행 형사소송법하에서 여러 사람의 목격자 진술만으로 재판하자는 주장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주장이라고 할 것입니다.〉
헬기사격 의혹의 도화선 ‘전일빌딩 탄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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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9월 13일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들은 5·18 때의 탄흔이 남아 있는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을 현장 조사했다. 사진=조선DB |
2017년 1월, 광주광역시 의뢰로 전일빌딩을 조사·감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은 이 탄흔들이 “헬기가 호버링 상태로 고도만 상하로 변화하면서 사격한 상황이 유리하게 추정된다”고 밝혔다. 탄흔의 밀집 정도와 직경을 근거로 당시 사용됐을 걸로 짐작되는 총기 종류 감정결과도 내놓았다. 5.56mm 실탄을 사용하는 M16 소총 또는 7.62mm탄을 사용하는 M60 기관총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과수 발표 몇 달 뒤인 2017년 5월 취임한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은 그해 5·18 기념식에서 “새 정부는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 규명에 노력하고, 헬기사격까지 포함해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곧이어 문 대통령은 ‘1980년 5·18 광주사태 당시 신군부가 시위대를 대량 살상하기 위한 헬기사격을 계획했고, 실제 전일빌딩 기총 사격으로 일부 실행됐다’는 주장과 관련, 이 두 가지 문제를 특별조사하라고 송영무(宋永武)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이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헬기사격 및 전투기 출격 대기 관련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이하 5·18특조위)’가 설립되었다. 2017년 9월 출범한 5·18특조위는 5개월의 활동기간을 거쳐 지난해 2월 ‘5·18 기간 동안 광주지역에서 공지(空地)협동작전의 일환으로 헬기사격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계엄군은 5월 21일 헬기를 이용하여 일반시민에게 위협사격을 하였고, 무장을 하지 아니하고 시위를 하는 시민들에 대하여 직접사격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5월 21일 헬기사격은 무차별적이고 비인도적인 것으로서 계엄군 진압작전의 야만성과 잔학성 그리고 범죄성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또한 시민들과 물리적 충돌을 하고 있는 과정에서 실시되었던 지상군의 사격과 달리 헬기사격은 사전 계획적·공세적 성격을 띠고 있다. (중략) 대량살상 능력을 갖춘 무장헬기까지 동원하여 사격을 하고 시민을 살상하는 행위는 집단살해 내지 양민학살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국군을 ‘양민학살’ 집단으로 모는 特調委
5·18 당시 출동했던 헬기조종사들이 한결같이 헬기사격이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지만, 특조위는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다. 5·18특조위가 국군을 ‘양민학살’ 집단으로 몰아가며 기존 국가적 조사결과를 뒤집은 논리는 이렇다.
〈계엄군 지휘부가 문서로 ‘헬기사격 실시’를 지시했고 이를 하달받은 현장 지휘관들의 헬기조종사들에 대한 구두명령이 있었다. ▲헬기가 무장한 상태로 작전활동을 했다. ▲특조위 면담 조사에서 5명의 헬기조종사들이 무장헬기의 출동사실을 시인했다. ▲당시 사실상 발포를 허용하는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으며 자위권 발동명령이 하달된 상태였다. ▲평시보다 엄중한 군법이 적용되는 비상계엄하에서 헬기사격 명령을 받은 헬기조종사들이 헬기사격 명령을 무시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렵다. ▲따라서 명령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헬기사격이 존재했다는 뚜렷한 증거다.〉
특조위의 조사 발표에 따라 국방부는 1980년 5월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공식 인정했다.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도 “우리 군이 38년 전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역사에 큰 아픔을 남긴 것에 대해 국민과 광주시민들께 충심으로 위로와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5·18 기념식 기념사에서는 “학살의 책임자, 암매장과 성폭력 문제, 헬기사격 등 밝혀내야 할 진실들이 여전히 많다”며 “아직까지 규명되지 못한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 정부는 국방부 자체 5·18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통해 계엄군의 헬기사격과 성폭행, 추행, 성고문 등 여성인권 침해행위를 확인하였으며 사과했다”라고 단정했다.
“관계자 200여 명 중 ‘사격했다’고 말한 사람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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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하는 이정부 前 103항공대대장. |
이에 당시 광주에 출동했던 헬기조종사 백승묵(당시 육군1항공여단 61항공단 203항공대대장), 이정부(당시 육군1항공여단 31항공단 103항공대대장)씨를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과거 정부 차원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여러 차례 증언한 바 있다.
그럼에도 39년이 지난 지금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것이 사실처럼 번지고 정부가 이를 공식 사과하는 상황에 처하자, 이들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다시 한 번 증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인터뷰 과정에서 ‘헬기사격이 있었다면 어떻게 조종사 단 한 명의 증언도 나오지 않을 수 있느냐’고 했다. 이정부씨는 “당시 광주에 있던 조종사와 정비사, 무장사 등 200여 명의 조종 관계자들 중 ‘사격했다’고 말한 항공종사자들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는 “이들이 말하지 말라고 해서 39년 동안 말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백승묵·이정부씨는 헬기사격이 있었다면 인명피해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며, 광주는 ‘불바다’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헬기사격의 위력을 알지 못하는 비전문가들이 ‘상상’에 기반해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백승묵씨는 육군항공사령부 부사령관(준장)으로 예편한 베테랑 헬기조종사다. 월남전에도 참전했으며 총 비행시간은 6000여 시간에 달한다. 그는 1980년 5월 21일 UH-1H를 타고 광주에 도착했다. 당시 출동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