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24시간’을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쓰고 있다”

‘리스크 최소화 우선주의’로 삼성의 가장 큰 강점이었던 ‘빠르고 공격적인 의사결정’은 뒷전으로 밀렸다.
최근 필자가 접한 일간지 보도 중 가장 충격적인 기사는 삼성그룹에 관한 기사였다. 지난 22일 한국경제신문은 『‘자부심·조직력·1등주의’ 실종...삼성이 흔들린다』라는 제목으로 대한민국 대표기업이 망가져가는 현실을 보도했다.

원로 기업인은 인터뷰에서 “현재 삼성은 ‘24시간’을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쓰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삼성이 처해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발언이다.

삼성을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사정기관의 전방위 수사다.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와 잦은 압수수색, 임직원의 무더기 구속은 ‘빠른 의사결정과 추진력, 조직력’이 장점이었던 삼성을 ‘눈치 보며 몸을 사리는’ 기업으로 바꿔놓고 있다.

삼성은 지난 2년간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에 이어 다스 소송비 지원 혐의, 노동조합 와해 사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및 증거인멸 혐의 등으로 100회 이상 압수수색을 당했다. 압수수색 장소도 이건희 회장 자택, 삼성본관 등 150여 곳에 달했다. 2018년 이후의 삼성그룹 관련 주요 압수수색 일지만 봐도 이렇다.

*2018년 2월~4월 : 다스 소송비 지원 관련 삼성전자 수원 본사 등 압수수색
*2018년 4월~9월 :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 관련 삼성전자 수원본사, 전현진 간부 자택, 삼성경제연구소 등 압수수색
*2018년 2월~19년3월 :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관련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증권, 삼성SDS 등 압수수색
*2019년 5월 : 증거인멸 혐의로 삼성바이오에피스 직원 자택,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전자 사업지원TF 등 압수수색

임직원들은 줄줄이 구속 기소됐다. 이 과정에서 검찰의 무차별적인 별건(別件) 수사가 이뤄졌고, 확정되지도 않은 피의사실들이 공공연하게 공표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는 두 차례나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기각됐다. 이 회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스무 번 넘게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았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대리급 직원’까지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된 것은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삼성 조직원 누구나 ‘잠재적 범법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현실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경영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삼성 관계자는 “일상적인 업무와 경영 활동도 ‘증거인멸’ ‘횡령’ 등의 의혹을 받는 것을 보면서 임직원이 ‘책임질 만한 일’은 절대 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자연스레 조직 운영도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삼성은 현재 ‘로펌 공화국’을 방불케 한다. 국정농단 사건은 법무법인 태평양,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은 김앤장, 공정거래법과 관련해선 광장, 노조 와해 의혹은 화우·세종 등이 맡고 있다. 삼성의 가장 큰 강점이었던 ‘빠르고 공격적인 의사결정’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미래 투자’인 기업 인수합병(M&A)과 사업구조 재편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직원들의 이탈 조짐이다. 삼성에 덧씌워진 ‘적폐 기업’ 프레임과 이에 따른 ‘리스크 최소화 우선주의’ 탓에 조직 문화도 급속히 보수화되고 있다. 젊은 직원들 사이에선 “미래가 안 보인다”며 유망 스타트업이나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고 한다.

삼성의 위기는 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삼성의 간판 기업인 삼성전자 매출은 국내총생산(GDP)의 10%가 넘고,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에 육박한다. 또 삼성은 글로벌 시장에서 전체 이익의 80%를 버는데, 법인세는 80%를 대한민국 정부에 납부하고 있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을 대한민국 정부에 내고 있는 것이다. 삼성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두말 하면 잔소리다.

문제는 대한민국 간판기업이자 글로벌 1류 기업의 발목을 붙잡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 정부라는 데 있다. 조그마한 혐의라도 나오면 검찰 경찰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기관들로부터 무차별 압수수색을 당하거나 소환 조사를 받는다. 산업안전보건법과 화학물질관리법 등 기업인과 기업 경영을 옥죄는 모호하고 과도한 법규도 부지기수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사건은 금융당국이 ‘회계처리 기준의 적정성’여부에 대한 과거 자신들의 입장을 수차례 뒤집어버린 데서 시작됐다. 자신들이 ‘문제없다’고 했던 회계처리 방식을 ‘문제 있다’고 해 버림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삼성타도’를 외치는 시민단체와 여당 의원이 삼성을 ‘고의로 회계조작을 한 부도덕한 기업’으로 선동하는 데 근거를 마련해줬다. 이들은 현재 회계처리 적정성 문제를 다루는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면서, 이 문제를 과거에 일어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연관시켜, 모든 것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불법적 행위였다고 강변하고 있다.

회계전문가들조차 황당하게 받아들이는 금융당국의 결정으로, 반도체를 잇는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초기의 막대한 적자를 감내하며 쏟아 부은 투자를 딛고 이제 막 세계를 향해 도약하려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신세가 됐다.

여기에 더해 정부의 ‘방치·무능’ 외교가 자초한 일본의 수출규제는 정확히 삼성전자의 미래 반도체 사업을 뒤흔들어 놓았다. D램 및 낸드플래시의 실적 부진으로 삼성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첨단 EUV공정을 통한 파운드리 사업’의 확대에 미래를 걸었다. 그런데 일본은 첨단 EUV공정에 필수적인 포토레지스트만 콕 집어 수출규제에 나선 것이다. 재고 확보에 비상이 걸린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일본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미래를 향해 뛸 수 있도록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경영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줄 의무가 있는 ‘정부’는 지금껏 ‘반일선동’ 및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구호 외에 무엇을 했나?

기업의 발목을 잡고 귀중한 재원과 시간을 허비하게 하며, ‘세계 1류 기업’의 미래를 뒤흔드는 일만 만들어내는 ‘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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