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사태 발발 원인된 피그스灣 사건
미국은 설탕을 비롯한 쿠바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수입하는 등 쿠바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지휘하는 좌익정권이 들어서자 급격히 멀어졌다. 카스트로가 소련에 손을 내밀었고 국유화 방침 등 親공산∙사회주의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당시 카스트로에 반발하던 70만 명의 쿠바 주민들은 미국 플로리다로 망명을 떠났으며 그곳에서 투쟁세력을 키웠다. 1961년 4월 망명자들을 필두로 한 反혁명 세력 1400여 명은 카스트로를 제거하기 위해 쿠바 남부 피그스만(Bay of Pigs)에 상륙했으나 정보전의 실패로 상륙하자마자 1200명이 체포되고 100여 명이 숨졌다. 擴戰(확전)을 우려한 당시 존 F 케네디 정부는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을 부정했다. 하지만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시부터 이들 쿠바 투쟁세력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훈련시켰으며 케네디 대통령 취임 후(1961년 2월) 이들에 대한 상륙 결정이 내려졌다.
이 사건은 소련과 쿠바가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 니키타 흐루시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미국과 근접한 쿠바를 핵무장하고 미국과의 핵 균형을 이루려고 했다. 이러한 사실을 미국 정보 당국은 1962년 여름 처음 파악했으며 10월에는 항공사진(U-2)으로 직접 미사일 배치 상황을 확인했다. 90마일 떨어진 국가에 (敵) 미사일이 배치된 것은 미국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위협이었다. 10월 14일 촬영된 항공사진이 케네디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올려진 것은 이틀 뒤인 16일이었다. 다음은 1962년 10월16일부터 28일까지, 쿠바 사태 13일간의 기록이다.
首腦部, 공습∙지상군 투입∙해상 봉쇄 놓고 舌戰
<10월 16일(火) - 1일차>
이날 오전 9시 25분부터 오후까지 백악관에서는 케네디 대통령과 국가 안보 관계자들간의 비공개 회담이 이어졌다. 항공사진 등으로 파악된 쿠바의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백악관에서는 세 가지 방안이 논의됐다.
미사일 기지를 중점적으로 타격하는 공습안, 소규모 지상군 투입안, 해상 봉쇄안 등이었다. 미국 국민들의 동요를 줄이기 위해 대통령은 기존에 계획된 외부 일정을 계획대로 진행하기도 했다.
<10월 17일(水) - 2일차>
미군 고위 당국자들은 기존에 알려진 것 외의 추가 미사일 기지가 정찰기에 잡히자 미 남동부 사령부에 모여 회의를 진행한다. 이날까지 확인된 쿠바 내 미사일은 16~32개였다. 케네디 대통령은 이날도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리비아의 하산 왕자와 오찬 회동을 한 뒤 코네티컷州로 떠나 민주당 하원의원 지지 연설을 한다.
<10월 18일(木) - 3일차>
케네디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안드레이 그로미코 소련 외무장관과 회동했다. 그로미코 장관은 쿠바에 대한 소련의 지원은 “순전히 방어적인 측면이며 미국에게는 어떠한 위협도 가하지 않는다”고 케네디 대통령에게 말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항공사진으로 알게 된 쿠바에 배치된 소련제 미사일에 대해 모른 척한 채 “쿠바에 소련의 공격적인 무기가 들어올 시 중대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국방부와 국무부, 백악관 관계자들은 이날 모임을 갖고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군사 작전을 벌인다면 어느 정도 규모로 할지, 흐루시초프에게 사전 통보를 할지 등이 다뤄졌다.
회의 기록에 따르면 딘 러스크 국무부장관과 케네디 대통령의 자문으로 활동하던 딘 애치슨 前 국무부장관은 미사일 기지를 주요 타깃으로 하는 한정적 공습안에 찬성했다. 맥나마라 국방부장관과 테일러 합참의장은 전면적인 공습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찰스 볼랜 국무부 소련 담당자 등 외교관 등을 중심으로 해상 봉쇄 방안이 제기됐다.
흐루시초프에게 사전 통보를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해상 봉쇄나 전면적 침략을 가할 시에는 사전 통보를 해야 한다는 의견에 전원 참석했다. 하지만 공습만을 가할 시 통보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볼랜 정도뿐이었다. 맥나마라와 테일러, 애치슨은 모두 사전 통보를 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러스크 국무부장관은 사전 통보 없이 한정적 공습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의견에는 모두 반대했다. 볼랜을 비롯한 외교관들은 정치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으며 맥나마라와 테일러, 맥콘 CIA 국장 등은 공습이 시작될 시 한정적으로 끝날지 미지수라며 사전 통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국방부에게 공습 계획 등의 성공 가능성과 작전 계획 등을 정리하라고 지시한 뒤 회의를 마쳤다.
<10월 19일(金) - 4일차>
케네디 대통령은 기존 계획된 일정을 수행하기 위해 오하이오와 일리노이주로 떠났으며 안보 관계자들은 워싱턴에 남아 쿠바 사태를 논의했다.
맥나마라, “공습으로는 미사일 100% 제거 못해”
<10월 20일(토) - 5일차>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민주당 후보 유세 지원에 나섰던 케네디 대통령은 급하게 워싱턴으로 복귀했다. 복귀한 지 5시간 만에 케네디 대통령은 해상 봉쇄 결정을 내렸다. 케네디 대통령은 국민들의 동요를 우려, 주치의와 함께 감기 증세가 있다는 거짓말을 하고 워싱턴으로 이동했다.
이날 오후 2시30분부터 5시10분까지 백악관에서는 국가안보보장회의가 소집됐다. 이날 모임에는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 존 맥콘 CIA 국장, 국방부의 로버트 맥나마라 장관∙로즈웰 길페트릭 차관∙폴 니츠 차관보, 멕스웰 테일러 합동참모본부의장, 국무부의 딘 러스크 장관, 백악관의 맥조지 번디 대통령 국가안보 특별보좌관 등이 동석했다.
이날 회의는 CIA의 레이 클라인이 쿠바 미사일 현황을 보고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는 현재 사거리 1020해리(약 1889km)에 달하는 탄도 미사일(SS-4) 16개가 쿠바에서 작동중이라며 사격까지 걸리는 시간은 결정 후 18시간 이내라고 밝혔다. 또한 타격 범위가 넓어 미국 중부지역도 타격권에 들어선다고 했다.
이어 맥나마라 장관은 대통령에게 해상 봉쇄 작전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그는 우선적인 해상 봉쇄를 통해 소련제 미사일이 추가로 쿠바에 배치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해상 봉쇄 후 소련과 협상을 통해 현재 배치된 미사일을 철수시키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어 그는 해상 봉쇄의 장단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장점)
1. 동맹국들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다.
2. 미국이 지켜온 傳統(전통)(注: 선제공격을 가하지 않는)과는 거리가 먼 쿠바로의 공습을 피할 수 있다.
3. 자유세계 지도자격의 국가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군사 작전이다.
4.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막아 소련과의 전면전을 피할 수 있다.
(단점)
1. 쿠바에 이미 배치된 미사일을 제거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2. 미국 내외에서 정치적인 분쟁에 휩싸일 수 있다.
3.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입지가 약해졌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위와 같은 맥나마라의 보고를 받은 케네디는 해상 봉쇄 이후 더 많은 미사일이 배치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테일러 합참의장의 의견을 물었다. 케네디는 테일러에게 이틀 후인 월요일에 공습을 가한다면 쿠바 미사일 몇 대를 폭파할 수 있는지 물었다.
테일러 장군은 “공습 준비를 마치기 위해선 화요일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맥나마라 장관은 우리가 핵무기를 쿠바에 사용하면 쿠바도 핵 공격을 가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테일러 합참의장은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과 함께 해상 봉쇄든 공습이든 지금 시기를 놓치면 다시는 미사일을 제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대통령을 설득시키려 했다.
해상 봉쇄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던 중 백악관 직속 안보보좌관인 번디는 케네디 대통령에게 공습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당시 공습 계획은 테일러 합참의장과 맥콘 CIA 국장 등이 지지했다.
맥나마라 장관은 공습으로는 배치된 미사일의 3분의 2 정도만 파괴할 수 있을 뿐이고 폭격을 피한 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테일러가 확전을 막기 위해 24시간 전에 사전 통보를 하자고 주장하자 케네디가 직접 나서 7시간 이상의 통첩은 정치적으로 별 효과가 없다고 일축했다.
긴 회의 후 당시 관계자들은 1차적으로는 해상 봉쇄를, 해상 봉쇄 후에도 미사일 전개가 계속 될 시에는 공습을 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맥나마라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해상 봉쇄만으로는 소련이 쿠바에 배치된 미사일을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터키와 이탈리아에 배치된 미군 미사일 철수나 관타나모 기지 반환 등 미국 측 거래 조건들이 사전에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듣고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이 요구할 시 터키와 이탈리아 미사일을 철수할 수는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관타나모 기지는 거래 조건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케네디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3일 후인 23일까지는 공습 준비를 해놓으라고 지시했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