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 선정 가장 유명한 그림 10점

1위는 모나리자

미국의 CNN이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10점을 선정했다. 지난 5년간 구글 검색이 가장 많은 그림들을 조사했다고 한다.

1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로 조사됐다. 이 그림은 1503년에서 15019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그림은 현재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은 피렌체의 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의 부인인 리사 게라르디니라는 주장이 있다. 이런 주장에 반대하는 전문가들도 많다고 한다. 20세기 이전의 경우에는 모나리자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1911년 전직 루브르 박물관 직원이 이 그림을 훔쳐 2년간 숨겨놓았다. 이런 사건이 알려진 다음부터 이 그림이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됐다고 한다.

2위에 선정된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다. 이 그림은 1495년에서 1498년 사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지에에 전시돼 있다. 이 그림은 예수의 최후의 만찬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높이 4.6m에 폭 8.8m로 매우 크다.

3위는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다. 1889년 그려졌고 현재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반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 그림을 그릴 때에는 프랑스에 있는 곳에서 정신 치료를 받고 있을 때였다. 당시 머물고 있던 방 창문에서 이 그림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4위는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다.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절규 그림은 총 두 점이 있다고 한다. 하나의 그림은 2012년 경매에서 1억2000만 달러에 팔렸다고 한다. 이 두 점의 그림 모두 모나리자 때와 마찬가지로 도난을 당했다. 그럼에도 운 좋게 다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5위는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이다. 에스파냐 내란을 주제로 전쟁의 비극성을 표현한 작품이다. 1937년 그려졌고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소피아 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이 그림은 2차세계대전 당시 안전한 뉴욕의 현대미술관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피카소는 스페인에 민주주의가 회복될 때까지 이 그림이 뉴욕에 머물게 해달라고 했다. 이 그림은 1981년 마드리드로 돌아왔다. 독재자인 프란시스코 프란코가 죽고 6년이 흐른 뒤였다.

6위는 오스트리아 화가인 구스타프 클림트의 ‘연인(키스)’이다. 1907년에서 1908년 사이 만들어졌다.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르 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7위는 네덜란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그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이다.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츠하이스 왕립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이 그림은 모나리자와 많은 비교를 받는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실존 인물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우리츠하이스 박물관은 2012년부터 2014년 사이 리노베이션을 가졌다. 이 기간 이 그림은 미국과 이탈리아, 일본에서 전시됐다.

8위는 이탈리아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이다.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이 그림은 1485년에 그려졌다. 10위 안에 든 그림 중 가장 오래된 그림이다.

9위는 궁중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1656년에 그린 ‘라스 메니나스(시녀들)’이다.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마드리드는 10위 안에 선정된 ‘게르니카’와 ‘라스 메니나스’ 두 점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이 그림은 벨라스케스가 그린 가장 큰 그림이기도 하다.

10위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아담의 창조’이다. 천지창조로 번역되는데, 바티칸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 그려져 있다. 아담을 근육질의 남성으로 그린 것이 특징 중 하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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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 필자가 尙美會(상미회) 여행단과 함께 버스를 타고 마드리드 근교의 펠리페 2세 궁전 에스코리알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에스코리알 바로 옆 돌산 꼭대기엔 높이 140m의 세계최대 돌십자가가 박혀 있고 이 바위산 속으로 동굴처럼 생긴 스페인 內戰 희생자 묘지가 파여 있다. 우리 버스가 진입로로 우회전하는 순간 깜짝 놀랐다. 깃발을 흔드는 차량 행렬이 도로를 꽉 메우고 있었다. 거의 젊은이들이었다. 다음날(20일)이 프랑코 사망 30주년인데, 그의 무덤이 있는 돌산 동굴로 몰려가는 지지자들의 행렬이었다.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를 응원하러 가듯이 독재자를 추모하러 가는 선진국의 젊은이들!
 그 며칠 사이 스페인 언론들은 프랑코의 功過(공과)를 다루는 특집 기사들을 내보냈다. 한 신문은 ‘그는 독재자인가, 국민 영웅인가’라는 제목을 달았다. 프랑코가 1936~1939년 사이 스페인 내전을 주도하고 수십만 명을 죽게 했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높은 편이었다. 프랑코가 반란을 일으켜 좌파 정부를 타도하지 않았더라면 스페인은 공산화되고 여러 나라로 분열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에서부터, 프랑코가 生前에 지금의 카를로스 王을 후계자로 키워 死後의 민주화를 준비하였다는 好評도 있었다. 
스페인 언론은 특히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스페인이 독일, 이탈리아 편에 서지 않았던 사실을 지적, 이 결단으로 오늘의 스페인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스페인의 운명을 결정한 프랑코-히틀러 회담이 열린 것은 1940년 10월23일이었다. 당시 독일은 폴란드에 이어 6주만에 프랑스를 점령하고 공군력으로 영국을 공격중이었다. 유럽 정복이 눈앞에 다가온 듯하던 시기였다. 이 힘을 배경으로 히틀러는 프랑코를 설득, 독일 편에 서도록 하려고 스페인 국경에 인접한 프랑스의 한적한 도시로 그를 불렀다. 프랑코는 기차를 연착시켜 히틀러를 기다리게 하였다. 심리전을 쓴 것이다. 회담에서 프랑코는 히틀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참전 조건을 제시하였다. 히틀러가 스페인 內戰 때 자신을 도와준 데 감사하면서도 영국을 치기 위한 동맹에 들어오라는 히틀러의 제의를 거절하였다. 프랑코는 영국은 비록 고립되었으나 막강한 해군력을 믿고서 미국의 뒷받침을 받아 끝까지 버틸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언하였다. 종일 걸린 회담에서 프랑코는 히틀러의 압박을 견디어냈다. 회담이 소득 없이 끝난 뒤 히틀러는 측근들에게 이렇게 불평하였다고 한다.
 '저 자와 회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생이빨 서 너 개를 뽑는 게 낫겠다.'
 만약 이때 프랑코가 독일 편을 들기로 결정하였더라면 스페인은 독일, 이탈리아처럼 패전국이 되고 그는 戰犯으로 단죄되었을 것이다. 스페인은 2차 대전중 중립국으로 남았다. 戰後엔 미국과 손을 잡고 소련에 맞서면서 경제개발에 성공하였다.   

 프랑코 사망 30주년이 되는 날 나는 마드리드의 소피아 미술관 2층 6호실에 있는 피카소의 명작 ‘게르니카(GUERNICA)’ 앞에 섰다. 이 흑백 大作은 反프랑코=反戰의 상징적 그림이다. 공산당에 입당했던 피카소는 스페인 內戰 때 공화파의 부탁을 받고 1937년 파리 세계 박람회에 출품할 그림을 구상하고 있다가 나치 공군이 스페인 북쪽 바스크 지방의 게르니카 마을을 폭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 名作을 그렸다.
 피카소는 생전에 스페인이 민주화 된 뒤에 이 그림을 조국에 가져가서 전시하도록 유언했었다. 그 사이 이 그림은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었다. ‘게르니카’는 1981년에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으로 왔다가 소피아 미술관으로 옮겼다.
 죽은 아기를 안고 부르짖는 어머니, 말, 소, 부러진 칼의 이미지가 보는 이들을 생각 속으로 밀어넣는 이 그림에 대해 이런 評이 있다.
 “고야는 개인주의적인 관점에서 전쟁의 비참함을 사실적으로 그렸으나 피카소는 전쟁의 본질과 의미를 추상화하여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적 이미지를 만들었다.”
 스페인은 프랑코와 피카소를 다 포용하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역사의 쓰레기통을 뒤져 먹고 살려는 선동적 정치인들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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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필자는 프랑스의 부르고뉴 및 南佛(남불) 프로방스와 니스 칸느 지방을 9박10일간 여행하면서 세계문화유산 세 곳을 구경했다. 리용의 舊(구)시가지, 오랑주의 로마시대 극장, 그리고 한때 교황청이 있었던 아비뇽의 舊시가지.


  인구가 약 9만 명인 아비뇽은 14세기 때 만든 길이 4.5km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벽이 워낙 잘 보존되어 있고, 장엄한 교황청 건물이 압도하므로 城內(성내)로 들어가면 14세기의 중세시대로 되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생긴다. 우리 尙美會(상미회) 여행단 일행이 묵은 유럽 호텔도 500여 년 전에 지은 건물이고 나폴레옹이 묵었던 방도 있었다.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 중에 부하장군들이 춥다고 불평하면 '여기가 아비뇽의 유럽 호텔인 줄 아느냐'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아비뇽에 머물면서 가 볼 만한 곳이 주변에 많은데 우리는 버스를 타고 약 30분을 달려 생 레미로 갔다. 화가 빈센드 반 고호가 자살하기 1년 전에 1년간 입원해 있으면서 不朽(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던 정신병원이 이 작은 마을에 있다. 이 病棟(병동)은 관광지로 유명해져 1년에 200만 명 이상이 생 레미를 찾는다. 정신병동은 기념관으로 변했고 고호가 썼던 방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은 '이 천재가 조금만 참았더라면 부귀영화를 누렸을 터인데' 하는 생각에 젖는다. 정신병동 부근 경치는 '추수하는 사람' '올리브 나무' '생 레미의 밤' '별이 빛나는 밤' 같은 그림에 있는 그대로이다. 그림에 먼저 익숙해져서인지 현실이 그림을 본떠서 생긴 것 같았다.


  생 레미 병동에서 고호가 그린 自畵像(자화상)은, 강한 의지력과 슬픔, 허무함, 그리고 초점이 잡히지 않는 맑고 푸른 눈동자로 해서 인간의 모든 고뇌를 다 진 듯한, 그의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1853년에 네덜란드의 탄광촌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37년간의 생애를 방황과 失戀(실연), 열정과 狂氣9광기)를 넘나들면서 화가, 설교사, 교사로 살았다. 그의 그림에는 가난한 가족과 열심히 일하는 농부들이 자주 나온다. 탄광촌 설교사로서 광부들과 함께 생활한 적도 있는 그의 순수한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의 순수함은 수많은 상처를 받는 화폭이기도 했다. 그의 그림은 그의 心像(심상)이기도 하다.


  그가 파리에서 좌절하여 1888년에 프로방스에 내려왔을 때 네덜란드의 어두운 하늘에 익숙해 있던 그에게 南佛의 태양과 광채는 하나의 구원이었다. 그가 프로방스 시절 2년간 그린 작품 속에 등장하는 밝음은 태양과 달, 대낮과 밤의 광채이다. 낙관과 비관이 동행하는 그림이다. 소설가 故(고)李炳注(이병주)씨가 '山河'라는 소설의 副題(부제)처럼 썼던 말이 생각났다.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月光(월광)에 물들면 神話(신화)가 된다.'


  어빙 스톤이란 사람이 쓴 고호 傳記(전기) 소설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그가 프로방스로 불러내린 고갱에게 하는 말이다.

  '난 태양을 그릴 땐, 사람들로 하여금 태양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회전하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엄청난 힘을 가진 빛과 熱波(열파)를 내뿜는 태양을. 한 인간의 초상화를 그릴 때 난 그 사람이 보고 행동하고 겪었던 모든 것, 그의 全인생의 흐름을 느끼게 만들고 싶소.'


  생 레미에서 그린 자화상이 바로 그런 그림일 것이다. 화폭 하나에다가 인생의 모든 것을 그려넣으려고 인생을 불사른 그의 그림이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고 있지만 그는 돈도 명예도 인정도 받지 못하고 죽었다. 뒤늦게 천재를 알아본 사람들이 그 천재의 고뇌가 만들어낸 작품을 즐기면서 행복해지는 것은 도대체 무슨 연고인가. 고호와 비슷한 상태에서 자살했던 조각가 권진규가 남긴 낙서가 생각났다.


  <凡人(범인)에겐 침을, 바보에겐 존경을, 천재에게는 감사를!>

 고호는 밤 하늘의 별을 보고는 뇌리에 담아 두었다가 낮에 그렸다. '별이 빛나는 밤'이 그것이다. 그는 자연을 상상으로 그리고싶었다고 한다. 한 천문학자는 이 그림의 별자리를 근거로, 그린 날짜까지 계산하였다. 1889년 6월19일 새벽 네 시에 본 밤하늘이란 것이다. 돈 메클레인이 작곡, 작사, 노래한 'Vincent'의 가사가 그 어떤 미술평론보다도 고호의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이 그림은 1941년 이후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돈 메클레인 작곡, 노래

'Vincent (Starry, Starry Night)'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Look out on a summer's day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Shadows on the hills
Sketch the trees and the daffodils
Catch the breeze and the winter chills
In colors on the snowy linen land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ll listen now

Starry, starry night
Flaming flowers that brightly blaze
Swirling clouds in violet haze
Reflect in Vincent's eyes of china blue

Colors changing hue
Morning fields of amber grain
Weathered faces lined in pain
Are soothed beneath the artist's loving hand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ll listen now

For they could not love you
But still your love was true
And when no hope was left in sight
On that starry, starry night

You took your life, as lovers often do
But I could've told you Vincent
This world was never meant for
One as beautiful as you

Starry, starry night
Portraits hung in empty halls
Frame-less heads on nameless walls
With eyes that watch the world and can't forget

Like the strangers that you've met
The ragged men in ragged clothes
The silver thorn of bloody rose
Lie crushed and broken on the virgin snow

Now I think I know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re not listening still
Perhaps they never 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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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의 반 고호 관련 미술관  두 곳
  
   빈센트 반 고호(1853-1890년)는 네덜란드 화가이다. 그는 늦둥이 화가였다. 그림을 그리
  기로 결심한 것이 스물일곱 살 때였다. 그때까지 교사, 설교사, 그리고 畵廊(화랑)에서 일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었다. 그가 권총자살로 生을 마감하기까지의 불과 10년간 畵家(화가) 활동으로 남
  긴 작품은 엄청나다. 유채화 800점, 수채화·素描(소묘)·스케치 등이 1000점이나 된다.


   고호의 동생 테오는 畵商(화상)으로서 형을 경제적으로 도왔다. 1890년 7월에 고호가 자살한 이
  후 고호의 작품은 동생 소유가 되었는데 동생도 여섯 달 뒤 사망했다. 고호 작품의 관리는
  테오의 아내, 아내가 죽은 뒤에는 그녀의 아들에게로 넘어갔다.


   1962년 유족들이 갖고 있던 작품들은 당시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빈센트 반 고호
  재단이 사들였다. 구입자금은 네덜란드 정부에서 출자했다. 1973년에 암스테르담에서 반
  고호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반 고호 작품이 약 630점(그림 230점, 데상 400점), 그밖에도 19세기의 유명한 화가와
  조각가들의 작품이 같이 전시되고 있다. 고호의 居處(거처)를 따라서 네덜란드 시대 - 파리 시대
  - 아를르 시대 - 상 레미 시대 - 오벨 술 오와즈 시대로 대별되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고호의 기복 많은 생애를 한 눈에 훑어볼 수 있다.

   고호는 다른 수많은 天才(천재)들처럼 당대에는 평가받지 못했다. 그가 자살하기 직전에 겨우 그
  림이 팔리기 시작했다. 동생 테오는 화랑에서 일하면서 兄(형)과 어머니까지 부양했다. 이런 집
  안사정에 대한 고민이 고호를 자살로 몰아간 한 원인이었다.
   고호 미술관의 전화번호는 +31(0)20 570 5200        
   암스테르담에서 동남쪽으로 약 두 시간, 차로 달리면 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 안헴이 있고
  그 주변은 국립공원 숲 지대이다. 이 한가운데 크뢸러 뮬러(Kroeller Moeller Museum) 미술
  관이 있다. 이 미술관에도 고호의 작품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 生前(생전)에 불우했던 고호는
  죽어서 암스테르담과 이곳의 두 미술관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크뢸러 뮬러 미술관
  은 국립공원 안에 있으므로 조각 정원이 근사하다. 이곳을 찾을 때는 시간을 넉넉히 잡고
  주변 경관까지 즐길 수 있도록 해야 아깝지 않다. 전화번호는 591-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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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北이탈리아 도시 밀라노에 가서 레오날드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을 구경하려 갈 때였다. 체코 남자가 운전하는 버스는 코모를 출발한 뒤 밀라노의 가장 유명한 건물인 대성당으로 향했다. 운전사는 밀라노가 처음이라고 했다. 중심부로 들어가는 데도 몇 번 길을 혼동했다. 겨우 대성당 앞에 당도한 것은 오후 4시. 우리는 운전사에게 오후 5시에 같은 장소로 와서 대기해달라고 부탁한 뒤 대성당 구경을 하고 같은 장소로 돌아왔다.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오후 6시부터 '최후의 만찬'을 보기로 예약이 되어 있는데 5시20분이 되어도 버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하철로 이동하기로 하고 사람들을 급히 불러모으는데 모퉁이를 도는 흰색 버스가 보였다. 우리 버스였다. 유럽 여행의 成敗(성패)는 버스 기사에게 달려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15세기 말에 브라만테가 설계한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체 교회였다. '최후의 만찬'은 오랜 복원공사로 해서 일반 공개가 금지되어 있다가 그 몇년 전부터 제한 공개를 하고 있다. 20명 이하가 단체로 15분만 관람할 수 있다. 이 교회와 그림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교회의 식당 벽에 그린 그림이 '최후의 만찬'이다. 미술 교과서에서 많이 본 그림이 나타났다. 예수가 열두 제자와 만찬을 하고 있는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입체적으로 生動(생동)한다는 인상을 가장 먼저 받았다. 원근법 덕분에 벽 속으로 따로 방이 하나 만들어져 있고 그 안에서 예수가 만찬을 주도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등장인물들도 모두 움직인다. 표정이 제각각 심각하다. 그들의 손짓이 긴박한 그 무엇인가를 표현한다. 나는, 손이 말처럼 수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이 그림을 보고 알았다.

가이드는 이 그림의 특징에 대해서 만찬을 가로 한 열로 배치한 점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원탁에 모이는 구도를 깨고 옆으로 벌여놓은 것은 인물들의 표정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게 함으로써 구경하는 이들이 실감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 그림의 순간은 요한복음에 나온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 하루 전 열두 제자들을 불러모아놓고 저녁을 먹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보며 뉘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예수의 제자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한대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빵)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셨다가 가롯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이 말씀은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이가 없고(하략).'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다'라고 선언한 직후의 순간을 잡은 것이다. 열두 명의 제자들은 놀라고 의아해 하고 불안해 하면서 또 서로를 의심하고 혹시 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하여 겁을 먹고 있는 상황이다. 이 그림을 보면 등장 인물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누구지?'
'네가 예수님에게 물어봐.'
'아니, 이게 무슨 말씀인가?'
'정말이야?'
'저 놈 아닐까.'
'이걸 어쩌지.'

이 그림은 세 사람끼리 뭉쳐서 수근수근하는 모습이다. 예수의 왼쪽 손은 빵으로 향하고 있다. 문제의 인물인 가롯 유다는 예수쪽으로 얼굴을 돌린 바람에 표정이 보이지 않고 얼굴이 시커멓게 되어 있다. 유다의 등 뒤로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게 처리된 손이 칼을 잡고 바깥으로 쑥 나와 있는 모습이 보인다. '배신의 칼'처럼 느껴진다.

이 그림의 맨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물은 머리카락과 수염이 길고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안내자는, 그가 열두 제자 중 디모데인데 다빈치 자신의 얼굴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이 그림이 그려진 곳은 교회의 식당이고 벽화의 무대도 식당이다. 예수의 등 뒤로 세 개의 창문이 보인다. 창문 너머로 그려진 경치는 다빈치가 자랐던 토스카니 지방이라고 한다. 이 경치로 해서 이 식당이 그림 속으로 더 연장되어 있는 느낌이 든다.

이 그림이 美術史的(미술사적)으로 중요한 것은 다빈치가 새로운 畵法(화법)을 썼기 때문이다. 종전의 벽화 그리기는 벽에다가 회칠을 한 다음 축축한 상태에서 제한된 시간 안에 그림을 그리는 플레스코 방식이었다. 다빈치는 마른 벽에다가 그렸다. 그러기 위해서 물감을 새로 개발했다.

즉, 안료를 계란의 흰자위와 섞어서 만든 물감을 썼다. 이렇게 한 이유가 있었다. 다빈치는 그림을 그릴 시간을 길게 갖고자 했다. 이 기간 그는 밀라노의 거리를 쏘다니면서 그림의 모델들을 구했다고 한다. 특히 가롯 유다의 모델을 구하러 감옥에 자주 갔다고 한다. 교회 책임자가 그리기를 빨리 끝내달라고 요구하자 다빈치는 '그렇다면 귀하를 유다의 모델로 그리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名作(명작)을 그리기 위한 시간벌기, 그것을 위한 새로운 技法(기법) 개발, 덕분에 이 그림은 완성된 지 20년이 지나서부터 그림물감이 말랐다가 벽에서 떨어지는 등 손상이 가기 시작했다. 그 뒤 여러 차례 이 그림은 복원공사를 당해야 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최후의 만찬' 중 다빈치가 그린 원래 상태는 10%도 안된다는 說(설)도 있다. 물론 안내자는 이런 의문제기에 펄쩍 뛰었다.

그리는 데 3년이 걸렸지만 다빈치는 이 그림을 준비하는 동안 손 발 등 人體에 대해서 많은 데상을 남겼다. 그 데상물들은 지금 영국 윈저城(성) 왕실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다. 준비과정을 살펴볼 때 다빈치는 역동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해부학, 기계학, 탄도학, 광선과 소리의 반사에까지 연구를 깊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그림은 15세기 말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이 총집결된 곳이기도 하다는 이야기이다.

다빈치는 예수의 그림만은 미완성 상태로 남겨두었다. 예수의 이미지가 애매하다. 그는 예수를 그릴 만한 자격이 자신에겐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다빈치가 이 그림을 통해서 후세에 전하려고 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예수의 폭탄선언을 맞은 제자들의 너무나 인간적인 반응을 통해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것일까. 아니면 그냥 극적인 장면을 그린 것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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