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중순 올메르트 총리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다간 모사드 국장이 긴급한 사안으로 미국을 방문할 테니 직접 만나달라고 요청했다. 백악관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전화였다. 이스라엘은 가까운 동맹이지만, 한 나라의 정보기관 수장(首長)이 다른 나라의 대통령을 독대(獨對)하는 일은 통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딕 체니 부통령을 필두로 한 핵심 당국자들이 먼저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다간은 백악관에서 체니 등과 만났다. 그는 “시리아가 핵시설을 만들고 있다”며 “시리아가 핵무기를 갖기 위한 핵 프로그램을 보유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다간은 책상 위에 여러 장의 컬러 사진을 꺼내 올렸다. 건물이 건설되는 사진이기는 했지만 사진만으로는 핵시설로 단정하기 어려웠다. 다간은 “이는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한 가스냉각형 흑연감속로”라며 “북한 영변 핵시설 것을 거의 똑같이 복제한 것”이라고 말했다. 체니 부통령과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 엘리엇 에이브럼스 국가안보부(副)보좌관 등은 할 말을 잃었다.
다간은 결정적인 사진을 꺼내 보였다. 아시아계 남성 한 명이 파란색 운동복을 입고 있는 사진이었다. 다간은 이 남성 옆에 있는 사람이 오트만 시리아 원자력위원장이라고 설명했다. 다간이 꺼낸 다음 사진에도 등장한 이 아시아계 남성은 추리닝이 아닌 정장을 입고 있었다. 북한과의 6자회담 과정에서 촬영된 사진이었다. 다간은 이 남성이 영변 핵시설의 책임자인 전치부라고 했다. 시리아 원자력위원장 컴퓨터를 해킹해 얻은 특급 정보였다.
체니 부통령은 오랫동안 시리아와 북한 간의 커넥션을 주시해왔다. 그는 2001년부터 북한과 같은 악당 국가들이 핵기술을 암시장에 팔아넘길 수 있다는 주장을 해왔다. 전치부 역시 미국 정보 당국의 감시 대상에 들어 있었다. 체니는 과거 여러 차례 정보 당국자들에게 “북한과 시리아 사이에 핵협력이 있느냐”고 물었으나, 항상 “아니다”라는 답변을 들어왔다. 그동안 체니가 갖고 있던 심증(心證)은 이스라엘의 정보로 뒷받침되었다. 북한은 핵기술을 공유하는 수준이 아니라 원자폭탄용 원자로까지 지어주고 있었다.
“당신이 맞았습니다, 부통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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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클 헤이든 美 CIA 국장. |
헤이든은 이스라엘이 전달한 사진 등 모든 증거를 면밀히 검토했다. 한 장을 제외한 모든 사진은 조작 없는 원본, 즉 제대로 찍힌 사진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 장의 사진에서만 트럭 옆 부분에 써 있는 글자가 지워져 있었다. 미국은 시리아나 이스라엘 중 한 곳이 트럭 옆에 써 있는 문구를 숨기기 위해 이 부분을 지운 것으로 봤다. 헤이든은 훗날 인터뷰에서 “우리는 모든 증거를 면밀히 검토했는데, 이는 이스라엘을 불신했기 때문이 아니다”라고 했다. 어떤 의혹 혹은 음모론이 불거져도 미국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헤이든은 이스라엘이 정보를 전달한 이유는 미국 CIA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내다봤다. 모사드의 정보력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재원(財源)과 인력 면에서는 CIA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역내(域內) 정보를 수집하는 면에서는 뛰어나지만, 미국은 전(全) 세계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기 때문에 여러 국가가 연루된 사건의 퍼즐을 맞추는 데는 앞설 수밖에 없다.
헤이든은 이스라엘이 전달한 정보와 자체적으로 검증한 자료들을 가지고 백악관으로 가서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에게 보고했다. 헤이든은 시리아가 핵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었다고 오랫동안 의심해온 체니에게 말했다. “당신이 맞았습니다, 부통령님.”
‘확실한 것이 없으면 전쟁은 없다’
조용히 헤이든의 보고를 들은 부시는 두 가지 지시 사항을 내렸다. 이 시설이 원자로가 맞는지 뒷받침할 추가 증거를 확보할 것, 정보가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할 것이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확실한 것이 없으면 전쟁은 없다(No core, no war)’는 신중한 정책을 펴고 있었다.
며칠 뒤 부시 대통령은 올메르트 총리와 전화 통화를 했다. 올메르트는 “이 지역을 폭격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부시는 올메르트에게 이 문제를 제기해준 데에 감사한다면서도 인내심을 가져줄 것을 요구했다. 부시는 “정보를 검토할 시간을 달라. 그런 다음 답변을 주겠다”고 했다. 올메르트는 이에 동의하면서도 부시가 빠른 결단을 내릴 것과 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후 미 행정부 고위 관료들은 특별팀을 구성해 정보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장·차관급을 포함한 극소수만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부시는 이런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정보가 새나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관리들을 압박했다. “이 건에 대해 무엇이라도 외부로 유출된다면 당신들 모두 해임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는 민간 핵 과학자를 불러 기밀 유지 약속 서명을 받은 뒤 사진에 나온 건물이 핵시설이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미 의회 핵심 관계자들과도 일부 내용을 공유했다. ‘미 의회는 국가 안보상의 핵심 정보 활동에 사전 통보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었다.
딜레마에 빠진 미국
시리아에 핵시설이 건설되고 있다는 첩보가 거의 사실로 확인되자 미국은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하게 됐다. ‘매파’와 ‘비둘기파’로 갈리던 시기였다. 미국은 당시 이라크와 전쟁을 하고 있었는데 해외 용병(傭兵)들이 시리아를 통해 이라크로 유입되고 있었다. 만약 미국이 시리아의 핵시설을 폭격하면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외교적으로 협조를 얻어낼 수 없다는 의견과 시리아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정보 당국은 이르면 2007년 8월 원자로에 연료봉이 들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8월 이후 공격을 가한다면 핵폐기물이 유프라테스강으로 유입될 수도 있었다. 미국은 경고 없이 다른 나라를 선제(先制)공격한 적이 없다는 전례도 문제였다. 외교적으로 먼저 문제 해결을 해봐야 한다는 사람들의 주장에 힘이 실렸다.
북한은 미국 등과의 6자회담을 진행하며 ‘핵폐기에 나서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시리아에 핵시설을 건설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적발됐다. 시리아 핵시설 파괴가 북한의 비핵화(非核化)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이를 물거품으로 만들지 불확실했다. 미국 국민들은 중동의 대량살상무기(WMD)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정보 수집 능력을 신뢰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첩보가 확실하다고 해도 중동 국가와 또 한 차례 전쟁하는 것에는 반발심이 컸다.
부시 행정부 고위 관리들은 세 가지 대응 방안을 내놨다. ▲시리아 핵시설을 미국이 직접 공격하는 것 ▲이스라엘이 공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시리아의 핵시설 건설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통보하는 방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