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확신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2007년 6월 17일 오후 6시, 시리아에 대한 미국 정책을 결정짓는 회의가 열렸다. 부시 행정부의 체니 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헤이든 CIA 국장,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 엘리엇 에이브럼스 국가안보부보좌관, 제임스 제프리 국무부 근동(近東)담당 부차관보 등이 참석했다.
헤이든은 지금까지 취합한 정보 사안을 회의 참석자들에게 공유했다. 그는 “이 시설은 핵시설이 확실하다. 북한과 시리아는 핵문제에 대해 10년가량 협력해왔다. 이는 핵무기 프로그램의 일부로, 북한이 지었다”고 했다.
덧붙여 시리아에 어떤 조치를 취하는 데 문제가 하나 있다고 했다.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재처리 시설이나 ‘무기화(武器化)’를 담당할 기술진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핵무기를 만들어 이를 실전에 사용할 탄도미사일 등의 무기 프로그램도 발견되지 않았다. 헤이든은 “아직 무기화하려는 정황을 찾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확신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low confidence)”고 했다.
미국의 정책은 사실상 공격하지 않는 방향으로 기울었다. 이라크 전쟁이 잘못된 정보 판단에 따라 시작됐다는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확신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정도의 정보만 믿고 다시 전쟁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헤이든의 분석 결과가 결국에는 대중에게 공개될 텐데 ‘완벽한 정보가 없었음에도 공격을 가했다’는 비난을 우려했다.
부시 행정부 수뇌부 회의에서는 IAEA(국제원자력기관)와 유엔을 통한 외교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게이츠 국방장관은 “미국인들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이 한 주권국가를 향해 기습 공격을 한 전례는 없다. 우리는 진주만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체니 부통령은 미국이 공격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동과 전 세계를 더욱 안전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미국이 핵 비(非)확산에 매우 진지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사담 후세인을 잡은 후 무아마르 카다피는 핵물질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리비아의 원심분리기와 우라늄을 모두 미국이 확보해 보관 중이다”라며 “사담에게 무력(武力)을 사용한 직접적인 결과”라고 강조했다. 체니 부통령은 “핵시설이나 기술을 확산한다면 공격받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이란과 북한 등 불법무기 개발에 나서는 불량국가들에 확실히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
참모진의 설전(舌戰)을 들은 부시 대통령은 “서둘러 결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의견을 직접 들어보고 싶어 했다. 마침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가 며칠 후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올메르트 총리를 ‘내 친구(my buddy)’라고 칭하는 등 가까운 관계였다.
같은 해 6월 19일 올메르트 총리가 워싱턴에 도착했다. 미-이스라엘 정상은 대외적으로는 팔레스타인 문제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양(兩) 정상의 회담을 취재한 기자들의 질문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집중됐다.
기자들이 떠나자 올메르트 총리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면 빨리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부시는 올메르트를 데리고 백악관 내 관저로 향했다. 부시 대통령은 특별한 지도자가 방문하면 대화가 녹음되지 않는 관저로 안내했다.
설득에 나선 올메르트 총리
부시는 올메르트에게 시리아 핵시설을 공격하는 데 몇 가지 우려가 있다고 했다. 원자로를 짓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무기화하려 한다는 정보가 없다는 것이었다. 핵무기를 운반할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는 증거도 없다고 했다.
올메르트는 시리아의 과학연구소에서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하는 연구진이 존재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시리아의 핵시설은 중동과 세계에 위협으로 존재한다고 했다. 올메르트는 “내 기억이 맞다면 인류 역사상 원자폭탄은 두 도시에 각각 한 차례씩 사용됐다. 미국이 그렇게 했는데, 미사일을 사용했는가? 비행기에서 폭탄을 떨어뜨렸다. (시리아랑) 뭐가 다른가”라고 압박했다. 올메르트는 “시리아 전투기 35대가 출동했는데 이 중 2대에 핵무기가 있다고 가정해보자”고 했다. 이스라엘 공군은 비행기 요격(邀擊) 기술이 좋지만 35대 중 일부는 영공(領空)을 침투할 것이고, 그중 핵무기를 탑재한 비행기가 하나는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시리아 전투기가 출동하면 1분 안에 이스라엘 영공에 도착한다. 시리아는 미사일이 필요없다”고 했다. 올메르트는 “미국이 시리아 핵시설을 공격하면 이란에도 확실한 경고를 할 수 있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조치”라고 했다.
부시는 즉답을 할 수 없었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말만 했다. 이날 저녁 올메르트 총리는 체니 부통령과 만찬을 가졌다. 체니는 올메르트에게 이스라엘이 아닌 미국이 시리아의 핵시설을 파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올메르트는 체니가 같은 편이라는 생각에 안심했지만, 라이스 국무장관과 게이츠 국방장관,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체니의 의견에 강력하게 반대한다는 것을 알았다. 올메르트는, 결정은 부시 대통령이 내리겠지만 군사작전에 반대하는 참모진의 의견이 예상보다 크다는 것을 깨닫고 귀국길에 올랐다.
게이츠 vs 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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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딕 체니 미국 부통령과 게이츠 국방장관은 시리아 핵시설 공습 문제를 놓고 갈등했다. |
올메르트가 떠난 며칠 후 부시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다시 참모진과 회의를 가졌다. 게이츠와 라이스 등은 유엔을 통해 아사드 정권을 압박하는 외교적 노력이 선행(先行)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군사옵션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게이츠는 한 발 더 나아가 “올메르트가 미국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싫다”는 발언도 했다. 게이츠는 부시를 계속 압박했다. 그는 “미국이 외교적 해결법을 선택했는데, 이스라엘이 따르지 않는다면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을 올메르트에게 명확히 알려야 한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가 핵시설을 공격당해도 보복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 했으나, 참모진 대다수는 이를 믿지 않았다. 게이츠는 이스라엘이 시리아 핵시설을 공격하면 시리아와 전쟁에 빠지게 될 것이고, 미국과 중동 전체가 말려들 수도 있다고 했다.
체니는 군사옵션만이 이란과 북한 등을 동시에 압박할 수 있으며 해결방안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체니의 주장이 끝나자 부시는 “이 시설을 폭격해야 한다는 부통령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 있는가”라고 물었다. 어느 누구도 답하지 않았다.
부시는 IAEA와 유엔에 시리아 핵시설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결정했다. 더불어 미국의 결정에 이스라엘의 반응이 어떨지 참모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은 미국이 이끄는 외교적 해법에 동참할 것이라고 했다. 체니는 “‘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힌 올메르트는 실제로 행동에 나설 것”이라며, 라이스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게이츠 장관은 며칠 뒤 부시를 만난 자리에서 이스라엘이 미국 동의 없이 어떤 행동에 나서지 않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올메르트, “이스라엘 안보의 책임은 내 어깨에 달렸다”
부시 대통령은 7월 13일 오전 8시(이스라엘 현지시각 오후 3시) 올메르트 총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시는 “우리 정보 당국이 무기 프로그램이라는 확신을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한 주권국가를 공격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며 IAEA에 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했다.
부시는 시리아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문제도 있다고 했다. 의회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정보 출처를 밝혀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미국이 이스라엘 때문에 또 다른 국가를 공격했다’는 이야기가 전국에 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 악화(惡化)를 부르고, 중동 문제를 해결하는 미국의 역량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했다. 부시는 올메르트에게 “상황이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느냐”며, 이스라엘에서 라이스 국무장관이 올메르트 총리와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시리아 핵시설을 국제사회에 폭로하자고 했다. 듣고만 있던 올메르트 총리가 입을 열었다.
“대통령 각하, 각하의 논리와 생각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안보에 대한 궁극적 책임은 제 어깨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해야 할 일을 할 겁니다. 제 말을 믿어도 좋습니다. 저는 원자로 시설을 폭파할 겁니다. 이 문제는 이스라엘의 신경을 건드리는 일입니다. 당신 앞에서 정직하고 진심의 마음을 보여줘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귀하의 전략은 제게 매우 충격적(very disturbing)입니다.”
올메르트의 폭탄 발언에 부시는 물론 통화를 듣고 있던 엘리엇 에이브럼스 국가안보부보좌관은 깜짝 놀랐다. 부시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그는 통화 말미에 “마음대로 해라. 당신들의 일에 끼어들지 않겠다”고 했다.
올메르트는 부시에게 마지막 부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부터 이 문제가 새나가지 않게 해달라”며 “우리가 갖고 있는 유일한 이점(利點)은 시리아가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니, 아무도 이 문제를 떠들지 않도록 해달라”고 했다. 부시는 “입 단추를 꽉 잠그고 있겠네, 친구”라고 했다. 전화가 끝난 뒤 부시는 “(올메르트는) 배짱이 두둑한 사람”이라며 “아무것도 유출돼서는 안 된다. 모두 그냥 입 닥치고 있어라”고 말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