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폭격 없었으면 시리아 核 IS 손에 들어갔을 수도

북한-시리아 핵개발을 끝장낸 모사드의 컴퓨터 해킹과 폭격 작전의 전모(4)
  부시, 올메르트의 ‘변함 없는 모습’에 감동
 
  다음 날 게이츠 장관은 화가 나 대통령에게 불만을 표출했다. 올메르트가 미국에 도움을 청해놓고서, 미국이 시리아 핵시설을 공격하는 방안이 아니면 필요 없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이 이스라엘의 인질이 돼버렸다고 했다. 그는 부시에게 올메르트가 독자적 공격에 나서지 않도록 확실한 경고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시는 “올메르트에게 경고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부시는 올메르트의 ‘변함없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도 했다.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은 몇 년 후 부시의 결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다.
 
  〈올메르트는 부시가 좋아하는 지도자상을 보여줬다. 올메르트는 (시리아 핵시설이) 이스라엘 국가와 유대인의 현존하는 위협이라고 말했다. 이런 위협을 제거하는 일을 다른 사람 손에 맡기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게 이스라엘의 가장 친한 친구인 미국이라도 말이다. 부시의 결정은 그의 이런 모습을 존중한다는 뜻에서 나왔다.〉
 
  이제 미국 행정부는 이스라엘이 언제 공격할 것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원자로가 가동되기 전이라는 점은 명확했다. 원자로의 외부 공사는 마무리됐고, 냉각 시설은 최종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공격까지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사실을 부인할 수밖에 없는 구역’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왼쪽)가 2007년 6월 19일 워싱턴을 방문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대외적으로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났다고 했지만 시리아 핵시설 폭파 논의를 했다. 출처=이스라엘 총리실

  올메르트 총리는 부시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가 있고 나서 며칠 후 각료회의를 소집해 “미국인들은 행동에 나서지 않겠다는 답변을 줬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정부는, 시리아 핵시설을 공격한다고 했을 때 시리아가 어떻게 나설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올메르트에 비판적이었던 에후드 바라크 국방장관은 여러 시나리오에 대한 분석이 확실해질 때까지는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폭격한다는 것은 거기에서 끝나는 군사작전이 아닌 국제정치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군 정보국 아만에서 하나의 아이디어가 나왔다. 아만의 연구부서를 이끌던 요시 바이다츠 장군은 ‘사실을 부인할 수밖에 없는 구역(deniability zone)’이라는 개념을 들고나왔다. 이스라엘이 공격한 뒤 침묵하고 원자로에 대한 문제를 시리아에 직접 제기하지 않는다면, 시리아도 보복에 나서지 않고 침묵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시리아 지도자 바샤르 알아사드로 하여금 원자로를 짓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도 되게끔 만들자는 게 바이다츠의 전략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이 침묵하면 알아사드도 침묵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전략이 나오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시리아 내부에서 핵시설이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게 첫 번째 이유였다. 이스라엘 군 정보 당국은 시리아의 핵심 군 장성들도 핵시설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했다. 알아사드는 각료와 군부에 핵시설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는 것보다 비밀리에 추진하는 것을 선호했다는 것이다. 이란과 러시아도 이 시설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스라엘 군부가 작전 계획을 수립하는 사이 치피 리브니 외무장관은 공격 이후의 외교적 대응 매뉴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공격 후 각국에서 “왜 공격한 것이냐”고 문의할 경우에 대비한 답변서를 만들었다. “우려해주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시리아에는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공식 대응을 삼가기로 했다. 다른 전화 통화가 예정돼 있어 이만 끊어야 할 것 같다. 우리 쪽에서 곧 찾아가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겠다.”
 
  리브니 장관은 법률 전문가들을 소집해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에도 대비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유엔 안보리에 제출할 결의안을 미리 작성했다. 결의안에는 사건 경위와 이스라엘의 행동은 정당방위라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겼다. 시리아가 핵 비확산 조약을 어기고 불법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나선 것을 전 세계가 규탄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모사드와 아만은 심리학자와 정신분석가들을 불러 알아사드가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 토의했다. 가비 아슈케나지 이스라엘 방위군 참모총장은 알아사드가 보복에 나설 가능성은 50%로 내다봤다. 보복 여부는 이스라엘 정부와 정치인들이 모두 침묵을 지키는지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는 각료회의에서 “침묵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발발하게 될 전쟁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며 “우리는 알아사드가 거짓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했다.
 
  이스라엘의 딜레마는 몇 달간 지속됐다. 원자로를 폭격하면 시리아와의 참혹한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고민, 폭격하지 않는다면 적국(敵國)이 핵무기를 갖게 된다는 고민이었다. 정책 결정권자로서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문제였다.
 
 
  “오늘밤 공격해야”
 
  9월 5일 올메르트 총리는 시리아 관련 마지막 각료회의를 소집했다. 원자로 건설이 거의 완료된 것으로 보이는 위성사진이 새로 입수됐다. 유프라테스강에서 원자로를 향하는 곳에 냉각 시스템을 위한 수로(水路)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스라엘 군 정보국은 원자로 가동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일부 기자에게서 ‘이스라엘이 시리아에 대한 군사작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루머를 확인해달라’는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은 미국 신문사 소속이었는데, 외국계 기자는 이스라엘의 군(軍) 검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스라엘 군부는 작전계획이 유출되기 시작해 우려하게 됐다. 작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각료들은 오전 10시부터 회의를 시작했다. 총리실은 “각료회의는 가자지구에서 일어나는 하마스의 공격을 막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냈고, 기자들의 질문은 받지 않는다고 했다.
 
  군 정보 당국은 시리아 핵시설 공격으로 인해 발생할 여러 시나리오에 대한 브리핑을 했다. 아슈케나지 방위군 참모총장은 공격의 세부 내용은 자신이 결정하게 해달라고 했다. 이스라엘 공군은 여전히 최종 작전계획을 짜고 있었다. 각료회의에 참석한 장관 중 한 명만 제외하고는 원자로 공격에 찬성했다. 공식적인 각료회의는 오후 3시에 끝났지만 올메르트와 바라크, 리브니 세 명은 다시 모여 회의를 계속했다. 아슈케나지 참모총장과 야단 아만 국장, 다간 모사드 국장이 한 명씩 차례로 회의에 들어가 각자의 의견을 말했다.
 
  야단 아만 국장은 대규모 공격을 가하면 알아사드가 침묵할 수 없으니 제한적 공격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투기 몇 대만 투입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고 했다. 다간은 전투기로 공습하는 방안이 좋을 것 같다는 짧은 의견만 남겼다. 정보수장들이 떠나고 아슈케나지 참모총장이 들어왔다. 올메르트 총리는 어떤 방식의 공격이 좋겠느냐고 물었다. 아슈케나지는 “오늘밤 공격해야 한다”며 “작전을 수행할 준비가 돼 있고 육군은 공격 이후 발생할 일들에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
 
  리브니 외무장관은 공격이 이렇게 빨리 진행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올메르트와 바라크는 대체로 동의하는 입장이었다. 각료회의 투표가 끝났기 때문에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너무 많은 사람이 알게 된 것이다. 리브니는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했다. 올메르트 총리는 “지금 당장 해야 한다”며 “(결정권자인) 우리 셋이 투표를 하는데 2대 1의 결과가 나왔다는 역사를 만들지 말자”고 했다. 리브니는 손을 들었다.
 
  올메르트와 리브니, 바라크는 텔아비브에 있는 이스라엘 방위군의 지하 전술통제실에서 작전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올메르트는 잠깐 집에 들러 샤워를 하고 두 시간 정도 눈을 붙였다가 밤 10시30분에 일어나 통제실로 향했다.
 
 
  ‘임무 완수’
 
  밤 10시30분쯤 이스라엘 남부에서 F-15 네 대, 네게브 사막에서 F-16 네 대가 출격했다. 여덟 대의 전투기에는 20톤 상당의 폭탄이 실려 있었다. 조종사들은 시리아의 방공망을 피하기 위해 고도 200피트 이하로 아주 낮게 날았다. 통신이 새나갈 수 있어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시리아의 저항은 없었다. 시리아는 전투기들이 들어오고 있는 것도 알지 못했다. 자정을 갓 넘긴 시점 전투기들은 목표지점에 도착했다. 20톤 상당의 폭탄이 핵시설에 투하됐다. 모든 상황은 카메라에 담겼다. 조종사들은 비행기에 달린 열감지 카메라를 통해 건물이 제대로 파괴됐는지 확인했다. 작전 지휘관 조종사는 ‘애리조나’라고 무전을 보냈다. ‘임무 완수’라는 암호였다.
 
  군 수뇌부는 조종사들이 안전하게 돌아올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시리아가 눈치챈 이상 조종사들이 저고도로 비행할 이유는 없었다. 고도를 높이고 고속비행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터키 쪽 국경으로 향한 뒤 안전한 서쪽으로 비행했다. 시리아는 몇 발의 미사일을 쐈지만 명중시키지 못했다. 작전 시작 4시간이 안 된 새벽 2시쯤 이스라엘 전투기들은 안전하게 기지로 복귀했다.
 
  작전 종료 몇 시간 후 이스라엘 군부는 ‘사실을 부인할 수밖에 없는 구역(deniability zone)’ 전략이 먹혀들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시리아 군대는 동원되지 않았고, 미사일도 발사대에 올려지지 않았다.
 
  시리아 국영 사나 통신은 정오쯤 짧은 보도를 내보냈다. 이스라엘 전투기가 전날 밤 시리아 영공을 침입했으나 시리아 방공부대가 이들을 쫓아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전투기가 사막 지역에 약간의 폭탄을 투하했지만 인명 및 자산 피해는 없었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올메르트 총리는 호주를 방문하고 있던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올메르트는 간단히 안부를 물은 뒤 “우리가 싫어하던 것 기억하느냐”고 했다. 부시는 “그렇다”고 했다. 올메르트는 “이제 더 이상 그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부시는 신중하게 “오, 매우 흥미롭다”며 “어떤 대응이 뒤따르거나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이 있느냐”고 했다. 올메르트는 “아니다. 현재로선 대응이 있을 것이라는 신호가 없다”고 했다. 부시는 “알았다”며 “만약 대응이 있다면 미국 전체가 귀하의 뒤에 있을 것이라는 점을 믿어도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올메르트는 부시의 이 말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회고했다.
 
  며칠 뒤 부시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부시는 “내 친구 에후드(올메르트)!”라고 소리쳤다. 그는 “호주에서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이스라엘이 제대로 된 일을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시리아 核, IS 손에 들어갔을 수도
 
  이스라엘이 시리아 핵시설 폭격을 공식 인정하고 당시 작전 영상을 공개한 것은, 11년이 지난 2018년 3월이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적들이 핵무장하는 것을 막는다는 이스라엘의 정책은 계속 유효하다”고 했다. 시리아는 원자로를 건설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여전히 부인하고 있다.
 
  시리아 핵시설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수괴(首魁)던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최근 미군 특수부대의 습격 작전으로 사망하자 다시 화제가 됐다. IS는 핵시설이 건설되던 데이르알조르 지역을 3년간 점령했다. 이스라엘의 폭격이 없었다면 IS가 핵무기를 손에 넣는 핵재앙이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IS가 핵을 가졌다면 미국도 알바그다디 습격 작전 같은 것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습격 작전은 고사하고 IS 요구에 국제사회가 끌려 다니게 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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