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19일 全斗煥은 비상계엄령 준비를 명령했다!(1)

특종/출동부대에 하달된 계엄령 준비 문서 입수
*계엄령 준비는,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軍 동원 카드로 과격시위를 잠재우고, 盧泰愚가 직선제를 수용하도록 압박하려는 陽動전술이었다.

1987년 6월19일 全斗煥은 비상계엄령 준비를 명령했다!

특종/출동부대에 하달된 계엄령 준비 문서 입수

趙甲濟(조갑제닷컴 대표)·金永男(조갑제닷컴 기자)

광주 민주화운동이 진압된 후 전남도청 앞으로 進駐한 계엄군. 1980년 광주에서의 경험은 1987년 전두환 대통령과 군부의 행동을 제약했다.
  
명령 1~5: 1987년 6월 19일 전두환(全斗煥) 당시 대통령이 전국적 규모의 비상계엄령을 준비, 세부지침을 軍에 하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육군본부의 작전명령 문서와 ‘출동부대 소요진압 작전간 행동 지침’ 문서.


1987년 6월19일 비상계엄령 준비 명령 문서 확인

 우리는, 1987년 6월 19일 전두환(全斗煥) 당시 대통령이 전국적 규모의 비상계엄령을 준비, 세부지침을 군(軍)에 하달한 사실을 문서로 확인하였다. 전두환 전(前) 대통령의 회고록과 당시 측근들의 증언을 통해 군을 동원한 비상조치가 검토됐다는 이야기는 여러 차례 등장했지만 문서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급 비밀로 분류된 육군본부의 작전명령은 6월 19일 박희도 육군 참모총장 명의로 출동부대에 내려갔다. 임무란에는 “육군은 현 임무를 수행하면서 ’87. 6. . 시부로 소요진압 작전을 실시한다”고 적혀 있다. 작전명령은 출동부대에 대한 배속 명령으로 이어진다. 역사적 문서이므로 우선 원문(原文)을 소개한다.
 

명령 1~5: 1987년 6월 19일 전두환(全斗煥) 당시 대통령이 전국적 규모의 비상계엄령을 준비, 세부지침을 軍에 하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육군본부의 작전명령 문서.


〈육군본부
  발신: 육군 참모총장
  수신: 수신처 참조


  주무: 작전처장(국장, 부장)
  작상전 제 호
  제목: 작전명령 제87-4호
 
  1. 관련 근거
  2. 위 관련 근거에 의거 아래와 같이 작전명령 제87-4호를 지시함(보고, 통보합니다).
 
  ---------------------------------------------------------------------------
 
  육군본부
  서울, 용산(CS 2155)
  ’87. 6. 19.
 
  작전명령 제87-4호
  1. 상황
  2. 임무
  육군은 현 임무를 수행하면서 ’87. 6. . 시부로 소요진압 작전을 실시한다.
 
  3. 실시
  가. 작전개념
  (1) 육군은 ’87. 6. . 시부로 소요진압 작전에 가용한 부대를 다음과 같이 배속한다.(별첨, 전투편성참조)
      (가) 26사단, 3특전여단, 해병 2개 연대를 11군단에 배속
      (나) 9사단을 9군단에 배속
      (다) 7, 11특전여단을 31사단에 배속
      (라) 706특공연대를 39사단에 배속
      (마) 20사단, 30사단, 1, 5, 9특전여단, 701, 705, 708특공연대를 수방사에 배속
  (2) 소요진압 작전은 명에 의거 실시한다
  (3) 전, 후방 경계부대는 ’87. 6. . 시부로 진도개 “둘”과 동일한 경계태세를 유지한다
 
  나. 제1군사령부
  (1) 현행 임무 계속 수행
  (2) 책임지역 내 소요 확산 예방 및 의명 소요진압 작전 실시
 
  다. 제2군사령부
  배속: 26, 9사단, 3, 7, 11특전여단, 해병 2개 연대, 706특공연대
  (1) 11군단장을 부산, 경남지구, 9군단장을 충남북 지구 계엄사령관으로 임명
  (2) 26사단, 3특전여단, 해병 2개 연대를 11군단에 배속하여 부산 지역에서 운용
  (3) 7, 11특전여단을 31사단에 배속하여 광주 지역에서 운용
  (4) 9사단을 9군단에 배속하여 대전 지역에서 운용
  (5) 706특공연대를 39사단에 배속하여 마산 지역에서 운용
  (6) 201특공여단을 50사단에 배속하여 대구 지역에서 운용
 
  라. 제3군사령부
  (1) 현행 임무 계속 수행
  (2) 책임지역 내 소요 확산 예방 및 의명 소요진압 작전 실시
  (3) 26, 9사단, 706특공연대를 2군에 배속 전환
  (4) 20, 30사단, 701, 705, 708특공연대를 수방사에 배속 전환
  (5) 수도기계화 사단: 육군 예비
 


  마. 수도방위사령부
  배속: 1, 5, 9특전여단, 701, 705특공연대, 20, 30사단
  (1) 현행 임무 계속 수행
  (2) 의명 충정 작전 실시
 
  바. 특전사령부
  (1) 현행 임무 계속 수행
  (2) 3, 7, 11특전여단을 2군에 배속
  (3) 1, 5, 9특전여단을 수방사에 배속
  (4) 특전사(-6): 육군 예비
 
  사. 제1항공 여단(-)
  (1) 육군 예비
  (2) 의명 소요진압 작전 실시
 
  아. 기타부대
  (1) 현행 임무 계속 수행
  (2) 화학, 통신, 군수지원부대: 소요진압 작전 지원 준비 철저
 
  자. 육군 예비
  (1) 특전사(-6)
  (2) 1항공여단(-)
  (3) 수도기계화사단
 


  차. 협조지시
  (1) 일 개시: 추후지시
  (2) 전 부대는 ’87. 6. . 시부로 진도개 “둘”과 동일한 경계태세를 유지(해제 및 강화되는 경우는 추가 지시함)
  (3) 이동부대는 출발 시 보고 철저
  (4) 출동 전 정신교육 및 세부 진압 요령 교육 철저
  (5) 세부 작전 지침
      (가) 탄약휴대: 대(對)침투 작전 휴대 탄약 기준 적용
      (나) 식량휴대: 비상식량 3일분 휴대
      (다) 군은 중요시설 점령 경계를 원칙으로 하고, 시가지 작전은 경찰 병력을 최대 활용
      (라) 가스탄 발사 등 폭도의 전투의지를 약화시킨 후 진압봉 사용
      (마) 투입 시 경계대책 강구
      (바) 고립 및 분리 시 대책 수립
      (사) 발포 명령은 선(先) 육본 건의 후, 승인하 조치
      (아) 총기 유기 및 피탈 방지 대책 강구
      (자) 초기에 강력하고 완벽한 작전 실시
      (차) 철저한 진압 및 도주 시 추적 강조
      (카) 관계기관, 특히 경찰과의 유기적인 협조
      (타) 부대 이동 간 작전명령 변동사항에 유의
      (파) 진압작전의 정당성 입증 자료를 확보(사진, VTR 등)
      (하) 작전 중지 시 즉각 복귀계획 수립
      (거) 기간 중 능력 범위 내에서 대민(對民) 선무활동 실시
      (너) 공공시설 사용 시 파손 및 오염 방지
 
  4. 전투 근무지원: 현행 규정 참조
  5. 지휘 및 통신: 현행 규정 참조
  출발과 동시 부대 문지 제거
 
  수령 후 보고
  참모총장 대장 박희도
  주무관 작전참모부장 소장 이문석〉
 
 
  출동 명령은 내려가지 않았다!
 
  이 문서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그 전날 대규모 시위가 있었던 부산 등 주요 도시에 비상계엄령을 선포, 군대를 투입한다.
 
  *부산, 마산, 광주, 대구, 대전을 집중적으로 통제한다.
 
  *병력 출동 및 배속을 준비하고 있다가 명령이 내려가면 즉각 실천에 옮긴다.
 
  *문서가 급조된 듯, 질서가 없다. 대구, 광주는 계엄령 대상인지 위수령인지 애매하다.
 

출동부대 소요진압 작전간 행동 지침.


  이 문서와 함께 하달된 또 하나의 문서가 있다. ‘출동부대 소요진압 작전간 행동 지침(出動部隊 騷擾鎭壓 作戰間 行動 指針)’이라는 문서다. 이를 읽어보면 1980년 광주사태를 많이 의식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행동 지침 첫 쪽에는 “과거 시위 양상을 기준으로 행동 지침을 작성하였기 때문에 현 소요 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에는 다소 미흡”하다는 내용이 있다. ‘진압부대에게 음식물 또는 꽃, 리본 제공 등 진압의지 약화 기도에 대한 대비책이 별무(別無)하며 언론인과 성직자 접촉에 대한 세부 행동 지침이 수립되어 있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재야 및 시위권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출동부대 장병들의 진압의지 약화를 획책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과격 분자들이 자해행위 후 진압부대에 책임전가 및 여론 호도 또는 시위의 과격화 유도가 예상된다”고 했다.
 
  행동 지침으로는 “소요 군중 및 시민과 일체의 대화 및 접촉을 금지하고 묵묵히 행동만으로 실천, 성가(聖歌)·애국가 제창 및 각종 유언비어 유포 시 일체의 감정표시 및 부화뇌동 금지”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진압 과정에서는 “시위군중 타격 시 두부 및 급소 부위 타격을 금지하고 하퇴부를 타격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부녀자, 노약자에 대한 구타 및 욕설 등 시위군중 흥분 유발 행위를 금지하고 화학탄 발사 시 직격탄에 의한 시위군중 피해를 방지하라” “해산 및 도주군중 추격 및 구타를 금지하고 시위군중 체포 시 민간인 직접 신문을 금지하고 경찰에 인계하라” “성직자, 여성 연행 시 몸 접촉을 최대한 지양하고 손목 잡고 연행하라” “기자들의 시위 진압 장면 사진 촬영을 최대한 억제하라. 필요 시 카메라를 회수하고 차후 반환하라(필름은 회수 조치)”고 적혀 있다.
 


  이 문서를 받은 사람 중 한 분은 당시 특전사령관 민병돈 예비역 중장(육사 교장 역임)이다. 민 사령관은 계엄령 준비 명령을 접하자 ‘오늘 잘못하다간 나라가 망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부하 장교들을 시위 현장에 보내 보고받은 상황은 군대가 출동해도 막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는 육사 15기 동기생인 고명승 국군보안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요지의 충고를 했다고 한다.
 
  “군대가 나오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 사태 수습이 안 된다. 장교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동요하고 있다. 군대가 진압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렇게 되면 전두환 대통령도 불행해진다. 이 말을 꼭 대통령을 만나 전해주고 나에게 알려다오. 누가 한 말이냐고 물으면 민병돈이라고 해라.”
 
  몇 시간 뒤 고명승 사령관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대로 전 대통령에게 전했다”는 것이었다. 민 장군이 “반응이 어땠어”라고 했더니, 고 사령관은 “(전 대통령은) 싱긋이 웃으면서, ‘알았으니 가봐’라고 하더군”이라고 대답했다. 다음 날 새벽에 출동 명령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였지만 명령은 내려오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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